요한복음 2장 6절 10절 물떠온 하인의 기쁨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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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가가 정치를 하면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그 정치인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요즘 같은 시대에, 당신과 같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정치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합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할수 있습니까?”
“네 그럼요. 시키는대로, 할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봇대나 길가에, 아무렇게나, 쉬~~를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황당한 소리라 질문을 합니다.
“아니 멀정한 화장실을 놓아두고 뭣 때문에 길이나 전봇대에 쉬를 합니까? 공중도덕이 있고, 사람이 체면이 있지...”
그러자 정치인이 말을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사람다운 짓만 해서는, 절대로 돈을 벌수가 없습니다.
공중도덕과 체면은 놓아두고, 동물과 같은 헝그리 정신을 가지 십시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왔다고 합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말 같기도 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다들 궁금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혼 잔치를 하는 집에서, 조금전 까지만 해도,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최고 품질의 극상품 포도주가 생겼는가?
그 비밀을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결혼잔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물 떠온 하인들만, 그 비밀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그 비밀을 아는, 물떠온 하인들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이니까 농사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숱하게, 이곳 저곳 옮겨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점점 잘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집에서 칼을 잡는 무사만, 318명이나 되는, 대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축복의 비밀을 모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노년에...99살 100살...남들은 힘이 빠지는 나인데, 아브라함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이삭이 태어나고...가축도 점점 많아지고, 젊을 때 보다가 더 잘됩니다.
그 축복의 비밀이 무엇일까?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만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아브라함만 아는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맨몸으로, 일꾼으로 들었습니다. 품삯도 받지 못하고, 거의 14년이나, 일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점점 잘됩니다.
나중에 외삼촌 라반이 말합니다. “얼룩지로고아롱진 양과 염소는, 야곱의 것으로 하자...”
염소는 가끔 얼룩진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이 얼룩진 양을 보셨습니까? 심지어는 새까만 양도, 수백마리 중에, 한 마리, 볼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외삼촌 라반이 말한 날부터, 염소들이, 양들이 새끼를 낳았다 하면, 갑자기 얼룩지고 아롱진 것이 너무너무 많이 태어납니다. 나중에는 얼룩지고 아롱진 양과 염소가...외삼촌 라반의 양과 염소 보다, 더 많아 집니다.
그 축복의 비밀이 무엇일까?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만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야곱만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되는 음식점에는 무언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고추장에도 다른집과는 틀린, 그집만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절대로 아무한테나 않가르쳐 줍니다.
그 고추장의 비밀은, 우수운 말로, 며느리 한테도 않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중요하기 때문에, 귀하기 때문에, 나의 성공의 핵심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않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되고,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과 그 사람만이 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 그럴수 밖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가나의 혼인잔치도 극상품 포도주의 비밀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큰일 날뻔한 혼인잔치가, 극상품 포도주의 등장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기쁨과 축하와 축복이 충만한 혼인잔치...그 비밀이 무엇인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떠온 하인들이 알았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
함부로 알수 없는 그 축복의 비밀을
어떻게 물떠온 하인들은,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축복의 주인공을 만들어 가시는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순종이 나를 축복의 주인공으로 만듭니다. 6절8절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은, 가나의 혼인잔치가 되겠습니다.
‘가나’라고 하는 마을에, 혼인잔치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신랑 신부입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신랑 신부의 이름이 없습니다. 누구의 집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지도,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 결혼하고, 누구의 집에서 결혼식이 있었는가? 여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물떠온 하인들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떠온 하인들이 어떻게 하였는지, 요한복음은, 상세하게 그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말씀에 나오는, 가나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신랑신부 보다가, 물떠온 하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물떠온 하인들은, 가나혼인잔치를 축복의 잔치로 바꾼 핵심중에 핵심입니다. 주인공들입니다.
물떠온 하인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나 혼인잔치는, 걱정의 혼인잔치 였습니다.
3절에보면, “포도주가 떨어진 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탄산음료를 좋아합니다만, 어떤 분들은 커피를 좋아 합니다.
느끼한 음식을 먹고 탄산음료를 먹으면 개운해 집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 개운해 집니다.
그것처럼, 당시 이스라엘에는, 물이 좋지 않아서, 음료수가 없다보니, 포도즙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불평이 터저 나옵니다.
불평을 하면, 포도주를 더 사오면 될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집에서 담아서 먹습니다.
불평한다고, 동네 마트에 가서, 덜~~렁 사올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잔치분위기가 싸~~해 집니다. 걱정근심, 불평불만이 터져나오는, 괴로운 가나혼인잔치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이 있지만, 사람이 할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말한다고 노력한다고 애쓴다고, 바뀌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없는 포도주를 어떻게 갑자기 구할수 있겠습니까?
가나혼인잔치는, 이미 엎질러 진 물이요, 바꾸어 질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비슷한상황을, 맞딱드릴 때가 있습니다.
중과부적입니다.
나름대로 애쓰고 노력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이했습니다. 설마 생각했던거 보다가, 일이 이렇게나, 다를줄은 몰랐습니다.
엎질러 지고, 수습할수 없어, 괴롭습니다.
일은 당황스럽게 진행 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까. 이때, 물 떠온 하인들이 등장합니다.
불평불만, 걱정근심으로 변한, 가나의 혼인잔치..
그런데 극적반전이 일어납니다.
가나혼인잔치가, 기쁨과 칭찬과 즐거움의 잔치로 바뀌게 됩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순종”이었습니다.
물떠온 하인들은, 가나혼인잔치가 근본적으로 바뀌도록한 주인공이자, 왜 그렇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아는,
이 모든일의 증인입니다.
물떠온 하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6절 말슴을 보니까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정결예식이라 함은,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에 들어올 때, 손을 씻습니다. 발을 씻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라고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손님이 집에 오면, 율법대로, 정결하게 손을 씻고, 발을 씻을수 있도록, 물을 준비하였다가, 그 물을 손님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발씻을 물도 주지않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만 합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정작 자기는 율법대로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시는가?만 보고 있으니,
바리새인은 자가당착에 빠지고, 외식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고 책망을 하시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섬에 가보면, 옥상이나 마당에, 커다란 물탱크를 놓아두는 곳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그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도 물이 귀하다 보니, 커다란 돌항아리를 놓아 둡니다.
집이 크면 물도 많이 사용하니까, 물항아리가 더 많아 집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커다란 물항아리가 여섯이나 놓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을 내리십니다.
7절 말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예수님께서는 손씻고 발씻는 물을 담아 놓는, 큰 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 합니다.
이 장면이 바로, 가나혼인잔치의 역사 시작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부족한 것은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채우라고 하신것은, 포도주가 아니가, 먹는 물항아리도 아니고,
손씻고 발씻는 물항아리에, 그것도 여섯개 전부, 가득 채우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 전에, 시험에 보십니다.
이 사람이 축복을 받을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시험을, 반드시 하십니다.
그 시험에 통과될 때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나누기로 합니다.
척박한 땅, 않좋은 땅, 반대로 좋은땅, 물댄 에덴동산 같이 아주좋는 땅...그 땅을 마음대로 택하게 합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과 롯은, 각각 이땅이요, 이땅이요, 하고 택하게 됩니다.
롯은, 좋은땅, 물댄 에덴동산 같이 아주 좋은 땅을 선택 합니다.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 메마른 땅을 선택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척박한 땅을 선택해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롯이 좋은 땅을 선택해서,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이 아닙니다.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도성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사람들의 죄악과 원성이 심히 무거운 땅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런데도,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
롯은 왜? 죄악의 도성으로 유명한 땅을 선택하였습니까?
롯은 욕심에 눈이 멀게 될 때, 믿음이 니라, 말씀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자기 맘대로, 죄악의 도성이지만, 물댄 동산같이 좋으니까...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였습니다.
이것이 다, 믿음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생활속에 선택하는 것을 통하여, 롯의 믿음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결과 롯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이 큰 항아리 여섯을 물로 가득 채우라고 할 때,
하인들이 불순종할수 있습니다.
“예수님 뭘 좀 모르시는것 같은데, 지금 손씻을물, 발씻을 물은 필요가 없습니다.
손님들은 손발 다 씻고 들어갔습니다.
없는 것은, 포도주입니다. ” 그리고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들고, 불순종 할수 있습니다.
순종은, 생활속에서, 아차하는 작은 순간에,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지극히 작은 일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열왕이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나으려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갔더니,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세요.” 라고 말을 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너무너무 화가나고 섭섭합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문둥병 났는 것인데,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평소에도 매일매일 샤워하고 생활하는데, 내가 때가 있어서, 온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며, 시간을 허비하느니,
일도 바쁜데 차라리 돌아가서, 다메섹의 좋은 강에 가서 편안하게 목욕을 하리라..
그럴 때, 하인이 따끔하게 말을 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그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크게 깨달은바 있어,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목욕하며, 그대로 순종할 때,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 깨끗하게 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말씀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
항상 기도하라. 쉬지말고 기뻐하라..범사에 감사하라..
많은 현대인들이, 나아만 장군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예배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승리가 필요합니다. 성공이 필요합니다. 사업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건강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은 않주시고, 전혀 관계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니, 답답합니다.
이 바쁜 와중에 엉뚱한 것을 하라고 하시고...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났겠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누가 예수님 말씀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는지, 찾고 계신다고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선택의 자리가 아닙니다.
했다가 않했다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끝까지, 온전히, 완전하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8절 말씀을 보니까..“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물을 채우는 것도, 가나혼인잔치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인데,
이번에는 그 물을, 손님들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합니다.
맹물을...., 그것도 손씻고, 발씻는데 사용하는 물을,
잔치에 손님들에게 포도주 대신, 마시라고, 갖다가 주면,
물떠온 종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떠온 종들은, 마지막 이 명령에, 정말 머뭇거리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고, 손님들 한테 야단맞고, 주인한테 뭇매를 맞고, 낭패를 당할찌...
아니면, 예수님 말씀을 거부하고, 주인한테...예수님이 너무너무 이상한 것만 시키니까.. 도저히 순종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해 바칠지
물떠온 종들은, 마지막 명령에,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의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때,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게 만드십니다.
숨이 차고, 힘이 빠지고, 마지막 깔딱 깔딱....“예수님 진짜 너무하십니다. 이렇게 까지 순종해야 합니까?”
그런 근본적인 질문이 터져 나오도록, 예수님께서는 나의 믿음의 밑바닥에, 진짜 순종이 있는지, 믿음이 있는지....
예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전, 분명히 확인하시고 달아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대충대충 상황극처럼 하고, 축복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믿음의 밑바닥이 탈탈 털리고,
입에서 단내가 날 때, 기도하는지, 불평하는지...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그 믿음을 달아보신 후에,
응답을 내려 주십니다.
축복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2번째로 축복을 가져오는 순종은, 완전하고 온전한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나의 기도의 무릎은, 낙타 무릎입니까?
나의 봉사의 손은, 눈물이 뭍어 있습니까?
나의 예배의 자리는, 움푹 패어 있습니까?
물떠온 하인의 순종은 끝까지 순종이요, 마지막 까지 순종 이었습니다.
그럴 때 혼인잔치는 기쁨의 잔치, 은혜의 잔치 축복의 잔치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순종을 사용하여,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끝까지, 완전하고, 온전하게, 예수님 앞에 순종하겠습니다.
여섯 통을, 가득 채우라면, 가득 채우고,
일곱 번을 씻으라면, 일곱 번이나라 여덜번도 씻겠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경말씀에 나오는 축복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되는 삶을 살아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