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4장 12절 15절 희망의 시작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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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7년 1월달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민족의 명절 ‘설날’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중앙일보 설특집기사 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제목이 ‘50세가 넘으면 휙~ 휙~’
제목이 독특하여 내용을 보았더니, 50세를 넘어서면 눈깜짝 할 사이에 5년 10년이 금방 지나 간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는 속도감이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다는 대단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금방 60을 맞이할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전과는 다르게, 기사를 찬찬히 보았습니다.
이번 설날을 맞이하여 ,50대, 어떤 분은 60대, 또 70대에 진입한 분들이 계실것 같습니다.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 갑니다.
어떨때는 빠르게 흐르다가, 어떨때는 느리게 흐르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지만, 광음과 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희망차고 보람되게 흘러 가는가 하면,
아쉽게 빠르게... 휙~ 휙~ 흘러 갈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 2017년, 새롭게 시작하는 1월달을 마무리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2017년을 바라 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니, 한 시대를 마무리 하고, 희망을 활짝 열어 져쳤던, 믿음에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사람의 나이는, 오늘 본문 10절을 보니까? 85세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고단한 인생 여정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큰 도전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주저하는데, 오히려 사서 고생을 하려고, 위험한 땅, 척박한 땅으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 적으로, 내것만 찾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 때문에,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15절 보니까,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혼란한 세상, 카오스가 정리되고, 평화의 시대, 행복한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 어떻게 하여서, 팔십 다섯 살을 맞이하는 갈렙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14절 하반절 말씀을 보니까, 그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음이라”
그렇습니다. 믿음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쫓았을 때,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해 낼수 있었습니다.
사실 60만 되어도, 이젠 몸이 예전 갖지 않다. 고 생각 합니다.
70세만 되어도, 나는 세상 다 살았다, 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80세도 아니고, 85세가 되면, 절대로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연세에, 갈랩은 위대한 믿음의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럼 갈랩은 어떤 도전을 하였습니까?
1. 희생의 도전을 하였습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오늘 말씀에 배경을 설명해 드리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거주하는 일곱족속이, 우상을 섬기고, 그 땅을 더럽힘으로, 그 땅에 그들을 토해낼 때,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주공산 황무지에 가서 깃대를 꼽는 것이 아닙니다. 악하고 완악하고 나쁜 일곱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여리고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다음 중부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북부 지역을 정복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야 되는데, 남쪽으로 가려고 하니까,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아무도 안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쪽에는 엄청나게, 무섭고 불안당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룻 강아지나, 범을 무서워 하지 않지,
산전 수전 공중전 까지 겪어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안가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야, 뜨거운 냄비를, 뭐 뜨겁다고 하고, 함부러 쥐다가, 손을 데입니다.
하지만 119 소방대원들은 어떻습니까? 철저합니다. 모자를 씁니다. 방화복을 입습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진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예전에, 교회 지붕에 꿀벌들이 날아온적이 있습니다.
꿀벌들이 윙윙 거리며 교회 지붕에 집을 지으려고 해서, 119에 연락을 했더니, 소방대원들이 출동을 하였습니다.
저는 대충, 올라가서 에프킬라를 뿌리를 줄 알았는데, 옷입고, 장비를 챙기는데, 30분은 넘게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철저하고 장비를 준비하고, 그 옆에 보조하는 대원들도 2명이 붙어서 지원을 합니다.
장비를 다 갖추고, 방충복을 입고, 살충제를 뿌리니까, 벌들이 떨어지고, 다른데로 날아갔습니다.
내려온, 소방대원이 땀을 딱으면서 말합니다.
“야~ 이번에 최고로 많았습니다. 대단합니다.”
고수가 상대방을 알아본다고, 전문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이 위험한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5절 말씀을 보니까,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5년 광야 생활에,
나올때는 애굽 군대에 쫓기고, 광야에서는, 에돔족속, 미디안 족속에게 쫓기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일곱족속과 끊임 없는 전쟁을 하였습니다.
전쟁 그러면, 이제는 척 보면 압니다. 철저히 장비 챙기고, 손발을 척척 맞추어서,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남부지역을 갑시다.” 그랬더니,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부 지역에는,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기럇 아르바’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땅을 지키는, 아르바는, 아낙 사람들...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괜히 갔다가는 힘만 들고, 잘못하면 큰 봉변을 당하고, 큰 사고가 날수 있으니, 글쎄요~~~
다들 머뭇 머뭇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도 똑같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쉬운일 재미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일, 힘만 드는 일이 있습니다.
손 쉬운일, 재미있는 일은 누구나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일 힘만 드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여렵다고, 힘만 든다고 안해도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르바가 무서워서, 가만히 두면, 나중에 아르바가, 군대를 모아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날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운 일, 힘든일이 있습니다.
그 일, 힘들다고, 어렵다고 가만히 두면, 나중에는 그 일 때문에 모든 것이 스톱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랩은 85년을 살아가면서, 그것을 알았습니다.
어려운일 힘든일, 가만히 두면, 누구라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보니까, 12절을 보니까, “내가 그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나섰던 것입니다.
갈랩은 도전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서 안할려고 하는 그 일을, 내가 하겠다고 희생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갈랩은, 내가 성공하고 내가 잘되기 위한 도전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앞날을 생각하고, 내가 희생하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들다고 안할려고 하니까, 내가 하겠다고 하는, 희생의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희생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 하십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삶을 살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희생하고, 나를 따라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24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믿음의 삶은 나를 부인하는 것을 연습하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삶입니다.
나만 귀한 줄 알고, 내것만 찾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때, 비로서, 영생하게 되고, 구원을 발견하게 되어 집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2:25, 말씀...
그런 의미에서, 갈렙은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2. 갈렙은 섬기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어릴 때,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가르킬 때,
중국 부모님들은, “친구를 잘 사겨라” 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꽌시’ 라고 하지요? 중국은 사회의 모든 것이 관계, 인간 관계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꽌시가 없으면 사업을 할수 없습니다.
공직자가 되더라도, 꽌시가 없으면, 승진하고,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부모님들은, ‘친구를 잘 사겨라’
일본 부모님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무조건 ‘실례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 양보를 못해서 서로가 안달일 정도이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친구라도 발고 올라서라” ‘니가 못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올라갈 것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을 가르킵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경쟁사회입니다.
옆에 사람을 끌어내리고 서라도, 내가 올아가야, 살아 납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갈렙은, 여호수아와 경쟁관계입니다.
출애굽 한 사람으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딱 두사람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런데 1인자가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면 2인자인 갈렙은 어떡게 해야 합니까?
여호수아를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올라가야 1인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갈랩은, 여호수아를 깍아 내려야 합니다.
여호수아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를 공격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우리를 제일 위험한 곳으로 내몰고 있다.
제일 험한 곳, 위험한 곳은, 여호수아 당신이나 가시요. ”
그런데 성경을 보면,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2인자로 남기를 자쳐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를 세워 줍니다. 여호수아를 높혀 줍니다.
힘든일이 생기면, 여호수아가 나서기 전에, 오히려 갈랩 스스로 나서서, 그일을 도맡아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험한 ‘기랏 아르바’ 때문에, 어려움이 발생하니까,
갈렙은 여호수아가 말하기 전에, 오히려 먼저, “그 곳은 내가 맡겠습니다. 나에게 맡겨 주십시요.”
그리고 1인자 여호수아를 철저히 세워주고, 높혀주고, 희생하였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에게 유익하고, 누구에게 손해 입니까?
당연히, 1인자인 여호수아는 유익이고, 2인자인 갈렙은 손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아니, 그 당시, 그 순간에는, 여호수아가 유익이고, 갈렙은 손해 인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는 높임을 받았고, 갈렙은 힘든 일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존경을 받았고, 갈렙은 위험한 곳에 갔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장기적으로~~, 역사적으로~~, 최종적으로 볼 때, 갈랩은 손해를 보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일을 할때에는, 경쟁의식이 발동할수 있습니다.
옆에 사람을 깍아 내리고,
옆에 사람에 대하여 않좋은 말을 하고,
그러면 그 사람은 낮아지고, 내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사람을 높혀 주시고, 겸손한 사람을 세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게 사람의 중심을 꿰뚤어 보시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 살펴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희생의 도전, 섬기는 도전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중심을 다 꿰뚫어 보셨습니다.
오늘 말씀 12절 하반절에 보면, 갈렙은 그 괴로운일, 위험한 일을 자청할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의 의지하는 믿음, 하나님만 바라 보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그들을 쫓아 낼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목표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그것을 분명히 해 낼줄 믿습니다.
이 믿음만 있다면, 못넘을 산, 차지할 못할 땅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랩의 그 믿음의 중심을 보시고, 그 희생, 그 섬김을 보시고
축복을 내려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약간 잘되는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시는 사람이, 마지막에는, 잘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잘 되어야, 참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갈렙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는가?
갈랩이 가려는, 그 험한 땅이, 오히려 축복의 땅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험한 땅을 맡은, 유다지파가 제일 번성하는, 지파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후손중에 다윗이 태어 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 15절에 보면, 헤브론의 옛 이름을 ‘기럇아르바’라고 나옵니다.
다윗왕은 바로 갈렙이 어렵게 차지한 기럇아르바..곧 헤브론을 터전으로 하여, 유다 왕이 되고, 이스라엘을 통일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때, 갈랩의 희생과 섬김이 없었다면, 갈랩의 믿음이 없었다면,
헤브론에서 다윗왕은 나올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투철한 갈렙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는 사라져도, 갈렙의 후손인 유다지파는 남게 되어, 오늘날 유다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내가 지금 수고로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 일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갈렙의 믿음의 수고로, 기럇아르바가 바뀌에 헤브론이 되었듯이,
나의 지금 그 자리가 바뀌에, 축복의 자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올 한해는, 수고의 자리가 바뀌어 축복의 자리가 되고,
희생과 섬김으로, 평화와 번성을 가져오는
갈렙과 같은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