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28절 29절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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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장수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보았더니 “속 터진다”...라는 말이랍니다.
만두를 만들었는데 만두에 속이 터져버리면, 만두를 만든 보람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속터진다는 말을 싫어 할것 같기도 합니다.
화룡점정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용을 그리는데, 마지작 눈을 그려넣기 위하여, 점을 찍습니다. 그런데 그 점이 잘 찍히면, 그림이지만 살아서 움직이듯이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런데 눈 그림을 잘 못그려서 옆으로 휙~~~ 나가 버리면, 그 동안 애쓴 것이 버리게 됩니다.
12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12월달은 올해의 화룡점정과 같고, 만두장사가 만두를 찌는 것과 같은 중요한 달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12월달을 어떻게 보내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율법을 가지고 외식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죄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바른 믿음생활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에는 죄가 무엇인지 가르켜 줍니다.
율법에는 거룩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처음,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살아갈 때은 모든 것이 은혜로웠습니다. 죄된 생활을 버리고, 거룩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부정한 것을 버리고, 경건한 것을 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듯이,
유대인들이 율법의 선과 악, 거룩함과 부정함을 배워서 알게 될 때,
율법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높은 자리에,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율법은 내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통로입니다.
율법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높혀서 남을 판단합니다.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서, 남을 정죄합니다.
즉, 율법의 바른 목적, 하나님 앞에 거룩한, 믿음의 백성이 되는 목적을 버리고,
율법을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 율법에는 정결법이 있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까?”
“예수님, 안식일에는 안식일에 지켜야 할 율법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잘 지키는지 어기는지 우리가 지켜 볼겁니다...”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은 어디가고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님을 책잡고,
주위 사람들을 정죄하고, 주위 사람을 책잡는데,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똑같은 것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똑같은 칼을 식당에서 잘 사용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병원에서 잘 사용하면, 수술하여 아픈사람이 병을 났게 됩니다.
하지만 죄악된 방법으로 사용하면,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율법을 잘 사용하면, 나쁜 것은 멀리하고, 좋은 것을 가까이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교만하게 되어, 율법을 사용할때,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훼방하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을 정죄하기 까지 하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교만하게 율법을 잘 못 사용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시면서, 외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겉은 율법을 잘 지키는 척 합니다. 겉은 경건한 척 합니다.
하지만 속을 보니, 율법의 목적은 어디가고 없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시험합니다.
율법에 가지고 다른 사람을 죄있다 죄없다고, 다른 사람을 죄인이다 아니다, 결정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게인의 외식을 보시고,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속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슴 하셨습니다.
무덤은 겉은 얼마나 좋습니다. 예쁘게 잔디를 깍아서 놓았습니다. 하얀비석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꽃도 갖다가 놓습니다.
겉은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샆으로 땅을 파보면, 그 속에는 관이 있습니다. 관을 열어보면,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식주의, 외식주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어떻게 보셨는가? 바로 회칠한 무덤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깨서는 마태복음 23:13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외식함과 형식주의가 얼마나 믿음생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모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도 천국으로 않들어 갈뿐만 아니라, 남도 천국에 못들어가도록 가로막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싫어하신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외식하는 사람, 형식주의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사두개 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로 그 부분이 분명히 나오고 있습니다.
28절에 보면,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표면적으로,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고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제사장백성으로,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범죄하고 믿음의 길을 벗어나면, 들에있는 돌들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이 아니라 속이, 맘속에 바른 믿음을 가득찬 이면적 유대인, 진짜 선민 진짜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며 나라를 세워나가던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 조선시대때 양반이 있었지요.
성리학적 유교적 관접에서, 치국과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반은 공부를 잘하여, 문반, 무반 즉 양반을 통하여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백성들을 위하여, 앞장서고 나라를 세워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처음에는 율법을 지키며, 그리스 침략군에 맞서서 항거하던 독립투사였습니다. 그리스의 안티오커스 왕의 폭압정치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여, 외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고, 이스라엘의 하스모네어 왕가를 옹립한 독립의 일등공신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좋은 믿음은 사람지고 말았습니다. 형식만 남고, 외식만 남아서,
예수님을 훼방하고, 시험하였습니다.
또, 사두개인은 누구입니까? 사독제사장 가문으로 대대로 성전에서 봉사하고,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 계열입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좋습니까?
하지만 나중에는 그 좋은 직분과 사명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형식만 남고, 외식만 남아서, 예수님을 훼방하고 시험하였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스스로도 천국에 못들어가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막아서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때는 좋게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출발할때는 너무너무 모범되고, 너무너무 은혜롭게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날때는 나쁘게 되었습니다.
나쁜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천국에 않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목표를 잊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목표를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민이 되라고,
하나님을 높이고 제사장의 민족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목표는 어디가고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은 없어지고,
오히려 외식하고 형식만 남고,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고 남을 정죄하고
심지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판단하고 예수님을 정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잃어버릴 때,
천국을 안들어가고, 천국을 막아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악 이란 히브리어 단어가 ‘하바르티아’ 라는 단어입니다.
‘하바르티아’는 표적에서 벗어나다. 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민족에게 주신, 목표를 벗어나고
바리새인에게 주신, 인생의 목표를 벗어날 때,
외식하고 형식만 남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천국문을 가로막는,
하바르티아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단 한가지, 제일 중요한 목표는, 죄악에서 벗어나서, 열심히 달려가서, 천국문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모든 것을 얻고도, 천국문이라는 과녁을 비켜 나가면, 그것은 실폐 입니다.
세상에서는 부러울것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천국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과녁을 벗어나는 실폐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8 말씀합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두손 두발, 다 가지고, 아니 곱으로 네손, 네발 달렸다 하더라도, 그 손과 발이 과녁을 벗어나게 하며,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되면,
그 손과, 그 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제 자신을 ‘나는 과외 선생이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세상에 족집게 과외선생님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공식을 외우고, 요렇게만 하면, 대학 들어갈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 가도록 가르키는 족집게 과외선생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도록 가르쳐 주는, 족집게 선생입니다.
요렇게만 천국에, 무조건 들어갑니다.
이렇게만 하시면, 천국에, 틀림없이 들어갑니다.
세상에는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강조하는, 몽학선생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 거부가 되고,
이 세상에서 자녀를 많이 낳고,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이 세상에서 오래살고...
물론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은 나쁜것이 아닙니다.....하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을 놓치면, 나머지 것이 다 있다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번에는 뉴스에 보니까, 최순실도, 서울시내 큰교회 들에, 나간적이 있다. 고 합니다.
나간적만 있으면 무엇 합니까?..큰교한번 나가서 어, 건물 참 좋다...그리고 구경하고,
그 다음 교회에 가서, 아까전에 보다 더 큰 것 닽다....그리고 구경하고...
큰 교회들을 엮어서, 어떻게 해볼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교회에 나간다는 뜻은 그런뜻이 아니지요.
그 교회에 교인이라면, 직분이 있어야 하고, 섬김이 있어야 하고, 헌신이 있어야 하고, 기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자기 스스로가, 이쯤하면........., 내가 천국문에 들어갈수 있을지 없을지, 제일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을 때, 천국문이 열리고, 에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확신 하였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어떤 사람들이 그런 다지요. 갑자기 문밖에 이상한 것이 왔다 갔다 하는게 보이는데....어이구 무서워, 어이구 무서워..., 그래서, 뭐가 보이냐고 하는데, 임종 하더라...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중간에도 좋습니다. 세상에서는 부귀영화, 권력과 명예.... 누릴 것 다 누립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잘 못 됩니다.
가보니까 천국문은 꽉 닫혀 있고, 아무리고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지 않더라고 하면,
앞에 잘된것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일 마지막이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12월달, 2016년, 올해의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이 나는 목표를 잊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제일 중요한 이유, 바로 그 목표를 분명히 알고,
연말에 오히려 분명히, 그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까?
한번은 저의 아버지와 제가, 토론을 한적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경 말씀에 곳곳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나와 있는 성경구절들을, 서로 이야기 하며, 토론을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어렵지 않겠는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적을 수 있다고, 논조를 폈습니다.
그럴 때 저의 아버지가 마태복음 8장 11절, 말씀 합니다.
마태복음 8장 11절...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천국에 들어가 있는 확실한 분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와 야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많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수가 많을 수 밖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본 자손들...유대인들 중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고개를 끄떡 끄덕 하게 되었습니다.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와서, 천국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도, 분명히 한자리 씩, 자기 자기를 차지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이 축복은, 제가 하나님께 의탁드려, 드리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께 짖꿎은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천국에도 없는 것이 있습니까?..
네...그럼요...천국에도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4절을 보면, 천국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애통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그랫더니 옆에 있던 학생이 질문합니다. “ 목사님, 학교도 없을꺼 같에요 ”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부모님이 질문합니다. “ 목사님, 방학도 없을꺼 같에요”
“아~~ 네...그렇겠군요”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혹이, 연말이 되어서 마음이 답답하고,
혹이, 연말이 되어서 우울하고, 힘이 빠지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희망과 소망이 가득합니다.
천국을 향하여 달려 가면, 기쁨과 은혜가 충만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18에서 멋있는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연말입니다. 12월달을 시작하는 첫째 주일,
12월달은 한해를 마무리 하는, 파장 분위기로, 아무렇게 끝나는 달이 아닙니다.
한해를 완성하는 달입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제일 중요한 달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제일 중요한 목표를 가슴에 품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올 한해 전체를 잘 마무리 하고, 큰 칭찬과 보람과 확신으로 살아가는
김포상도교회 믿음이 식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