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9장 37절 거룩한 성도의 길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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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 우리 총회 주제는, ‘다시 거룩한 교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에,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회복하려 하였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다시 기억하여,
거룩함을 회복하는 한해가 되자, 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우리교회도, 올해는, 이러한 전체적인 뜻에 발맞추어, 우리교회의 당면한 목표를 생각 하면서, ‘믿음으로 준행하는 교회’로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오직 믿음으로 나갈 때 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준행하는 교회,
준행이라고 하는 것은, 준할 준, 행할 행입니다.
믿음에 의거하여, 행하며 나가자...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성도는, 장로교 교리 문답집에 보면, ‘거룩하게 구별된 무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김포상도교회 믿음의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불러주신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교회로 다시 세워지기 위해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세워지기 위하여서는,
결론적으로, 잃어버렸던 거룩함을 회복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거룩함’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오늘은 설교주제가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성화의 길을 가는, 성도라면,
거룩함이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함은, 결국, 신성함 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적인 것,
하나님의 속성..
바로 그것이, 거룩 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불러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9:6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죄악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거룩함이 회복되는 길을 시작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좋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충만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 갈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음성을 들을수 있었고,
직접 대화하듯,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악속에 빠집니다. 거룩함을 잃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거룩하기 보다는, 오히려 죄악 속에 살아 갑니다.
사람들에게서 점점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라지고, 죄악과 멸망과 죽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십니다. 그러면서, 거룩함이 없어지지 않도록, 구속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우상을 섬기는 우상의 도성, 에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내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 있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십니다.영적으로는, 율법을 통하여, 죄악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죄악을 멀리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은 점점 사라지고, 거룩함이 회복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격리된 광야에서, 죄와도 격리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점점 많아지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처럼, 우상을 섬기다가 생명이 사라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을 다시 불어 넣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거룩함을 불어 넣으신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면,
먼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정결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론을 통하여, 제사장들이 거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됩니다.
그 다음, 제사장들을 통하여, 속죄제와 화목제와, 여러 가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거룩하게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함은, 단순히 어떤 기분좋을 일을 했다고, 거룩함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연결되어 질 때,
하나님과 거룩하게 접촉되어 질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전달되어 지고, 전파되어져, 그 사람이 거룩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29장 37절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이레동안 예배드리는 제단을 속죄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서, 이레 동안 제단을 속죄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럴 때, 번제단, 속죄단, 각족 제단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 후에, 예배드리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제단에 접촉하게될 때, 그제단을 접촉하는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예배드리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제단 위에 번제물을 올려 놓을 때, 그 번제물은 거룩한 번제물이 되어 졌습니다.
신명기 5:12 에는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려면, 내가 거룩하고 싶다고, 스스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성함이 임하여 있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 사람은 거룩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찬식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성령님의 도움을 얻어서, 먹고 마실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나오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거룩한 하나님의 은총을 덪입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때,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놓으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접촉으로 전가되고, 전하여지고, 임하여지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휘트니스 클럽에 가서, 아무리 땀을 뻘뻘 흘리고 운동을 해도, 휘트니스 클럽에서 운동했다고, 알통이 나오면 나왔지, 내가 거룩하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십자가도 없고,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거룩함이 나에게 전가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면, 빗자루를 들고, 쓸면서, 제단을 접촉하면, 거룩함이 나에게 전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향한 나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나를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룩한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시는 것이 계십니다.
이건 어디가서, 배울수가 없습니다.
제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여,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에게만 가르켜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분문 말씀에 보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배단을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시고, 이 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은, 거룩하게 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7:1 에보면,
“속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는 지극히 거룩하니”
하나님께 회개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 십니다.
레위기 2:10 에 보면,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성찬식 후에 남은, 떡과 잔은 지극히 거룩합니다. 그래서, 함부러 해서는 않됩니다.
레위기 27:28 말씀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헌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서 헌금과 헌물을 지극히 거룩하게 보시기 때문에, 드리는 사람은 준비할 때, 정성껏 준비하고, 하나님 앞에 정성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유다서 1:20 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성도의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믿음, 정금같은 믿음,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게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히 여기시는 것을, 우리는 특별히 유념하고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2.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거룩함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미국에서, 리더쉽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끼친, 존 맥스웰 목사님이 심방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성도과 함께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성도가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저기 다람쥐가 있네요” 목사님이 “어디 어디요?” “아이구, 방금 지나갔습니다.”
“목사님, 방금 토끼가 지나갔습니다.”
“목사님, 세상에나 사슴이 지나갔는데, 못 보셨지요?”
고속도로에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립니까? 가르켜서 고개를 돌리면, 이미 지나가고 없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알고보니, 그 성도는 사냥꾼이 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무릎을 첫다고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역시 눈이 틀리군요”
세상의 죄악에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은, 거룩함을 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환상을 보여 주셔도 볼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거룩함을 귀하게 여깁니다. 거룩한 곳을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거룩함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10:10 에는 말씀 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렇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거룩함을 얻는 사람들이 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생일은, 이 세상에서 으앙~~~ 하고 태어 날때가 첫 번째 생일이라면,
영적으로 거듭남의 생일은, 바로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거룩하게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죄악 세상에서 살아갈때에, 죄의 때가, 깨끗한 구원의 예복에 묻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태어나면, 완전히 죄와 상관없이 되는가? 아닙니다. 성화의 삶, 거룩함의 깊어 지고, 다시 계속하여 거룩함의 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화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2 말씀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곧 예수님의 몸 안에서, 거룩하여지는 생활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화의 생활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고린도전서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교제할때에는, 거룩한 교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할때에도, 거룩하게 식사를 하여야 합니다.
인사를 할때에도, 거룩하게 인사를 하여야 합니다.
이걸 하려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식사 하려면 맛있는 맛집에 가면 됩니다.
운동하려면 운동하는 곳에 가면 됩니다.
친교하려면 취미 동호회에 가면 됩니다. 자동차 동호회, 등산 동호회, 농구 동호회...
교회생활 하는 이유는, 접촉하여 거룩하게 되고, 거룩함을 나누어 더욱 성화 되려고, 교회 생활하는 것입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4:4 에는 말슴합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대할 때, 거룩함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교회생활이 잘 되면, 교회에서 거룩함에 연습이 잘 되면,
이제는 가정에서도 거룩함으로 생활하고,
세상에서도 거룩함으로 생활하고,
스스로도 거룩함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거룩함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디모데전서 4:5 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말씀 생활을 잘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기도생활을 잘 합니다.
말씀 생활, 기도 생활, 이것이 바로 경건 훈련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이것을 잘 하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1:15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렇게 경건생활을 잘 하면, 이제는 모든 행실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할때는, 거룩한 표현의 단어를 씁니다.
행동을 할때도, 거룩한 행동을 합니다.
걸음걸이도, 거룩한 걸음을 걷습니다.
웃을때는, 거룩한 웃음을 웃습니다.
가만히 보면, 거룩한 걸음걸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종 걸음, 촐싹 걸음,
불안한 걸음 거리가 있습니다.
웃음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웃음이 아닙니다. 인자한 웃음, 온화한 웃음,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비빗웃음이 있습니다. 음흉한 웃음이 있습니다. 가롯유다 같이, 예수님을 팔고 은 30을 받고, 죄를 짓고 만족하는, 죄악의 웃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거룩한 음성으로, 거룩한 말을 하고,
거룩한 걸음거리로, 거룩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 22장 11절 에는 말씀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너무 가깝다가 보니, 이제는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자는 권면하고 복음을 전하여 주어도, 불의를 행하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둘수 밖게 없습니다.
반대로 거룩한 자는, 더욱 거룩한 생활을 살아가기 위하여, 힘쓰며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예수님께서 오실 때, 불의한 자와 거룩한 자는, 그 행한 대로, 예수님게서 갚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까? 이기주의적이지만, 거룩한 하나님과 영원히 살기 위하서가 아니겠습니까?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흠도 점도, 조금만 얼룩만 있어도, 금방 나타날수 밖게 없습니다.
빛되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에는 거룩하지 않는 사람은 거기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벌써부터, 다행하게도, 지금부터 준비할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거룩한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거룩하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하여 거룩함을 잘 보전 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나가서도,
집에서도,
혼자서도,
거룩한 생활을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