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7절 10절 내 은혜가 족하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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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천사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순찰하다가 개구멍이 뚫린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천사가 마귀를 호출하였습니다. “아니...어떻게 단속을 않해서, 이렇게 개구멍이 생기도록 하고...당장 책임을 지시오...”
마귀게 황당해 하며 말합니다.“이 구멍이, 지옥에서 뚫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천사가 웃으며 말합니다. “천국에서 지옥 갈려고 구멍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려고 구멍을 내지...”
맞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딱 잡아 땝니다.
천사가 너무너무 화가 나서 말합니다. “정말 이렇게 하면, 법대로 하는수 밖에 없습니다. 법대로 할겁니까?”
그러자 마귀가 씩~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요.. 변호사, 판검사, 국회의원...법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마 그쪽보다, 우리쪽이 훨씰 많을 껄요.”
결국 천사가 당해내지 못하고, 개구멍을 매꾸고 물러 났다고 합니다.
오늘은 천국잔치입니다.
지금은 아무나 이곳에 들어올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천국잔치에는 아무나 들어올수 없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천국잔치에 들어오고 싶어서, 구원의 표를 구하려고 하지만, 절대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천국잔치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임금님이 잔치를 열고 사람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핑계를 댑니다. 밭으로 일하러 갑니다. 사업하러 가버립니다.
그럴 때 임금님은 군대를 보내어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제는 초대없이 아무나 들어오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늘 천국잔치에 들어온 분들은 청함을 받고, 택함을 입은 성도들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천국잔치를 통하여, 구원의 표를 받고, 거룩함의 예복을 덪입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고린도후서 12장에는, 사도바울이 천국잔치에, 먼저 가서 구경하고 온 장면이 나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천국잔치를 먼저 가서, 구경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천국을 모를 때에는, 이 세상이 전부 인줄 알았습니다.
천국을 가서 보기전에는,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최고 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천국을 보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9절 말씀을 보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사도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약한것, 작은것, 없는 것....이런것들은 자랑꺼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약간 부끄럽기도, 창피하기도 하고... 오히려 허풍을 떨어서라도 있는것처럼, 많은 것 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무의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 천국을 보고 난 다음, 철저하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약한것, 작은것, 없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는 사람으로...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왜 이렇게 약한것, 작은것, 없는 것을 자랑하게 되었습니까?
1. 복음의 목적을 가지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감사의 목적이, 내가 될 때, 나는 세상의 조건으로, 감사의 기준을 삼게 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있는 것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살피게 됩니다.
있는 것을 살피면,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현재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만약 이사라도 할려고 하면, 어디에서 그렇게 물건이 많이 나오는지...
“목사님...이번에 이사하면서...반도 더 버렸습니다.” 그러는 분들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가만히 있으면,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느냐? 아닙니다. 없는 것부터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옆집에 갔더니 후라이팬이, 다이아몬드 코팅이 되어, 기름도 않부어도 계란 후라이를 할수 있다고 하던데...
후라이팬 꼭~~~~하나 더 있어야 될꺼 같은데...
어찌 후라이팬 뿐이겠습니까? 텔레비전도 더 큰거....자동차도 더 좋은거... 집도 더 좋은집...
나중에는 결국 돈이 좀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라고 끝이 나게 됩니다.
내가 목적이다 보니,
지금 현재 내가 목적이다 보니,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걸음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나는 항상 지금의 내가 아닙니다.
조금만 있으면, 60이 됩니다. 70이 됩니다. 천국에 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천국에 가서 보고 난 다음에는, 목표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을 8절을 보면, 사도바울에게도 사실은 아쉼운 것이 있었습니다.
8절 말씀....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사도바울에게 간질병과 같은, 좀 보기에 거북한 병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을 합니다.
나의 고질병이 떠나가고, 내가 좀더 건강하였으며 좋겠는데...
누구나 그런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좀더 공부를 잘하였으면,
내가 좀더 외모가 출중하였으면,
내가 좀더 돈이 많았으면,
내가 좀더 건강 하였으면..
그것이 없어서 내가 온전하지 못하고,
그것이 없어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지금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아쉬운 것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세 번, 작정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40일 작정기도를 하여도,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고,
40일 동안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한다면...
그런데 보통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뛰어나고 신령한, 바울사도가 작정기도를 합니다.
40일 새벽기도를 세 번씩 하던지...40일 금식기도를 세 번씩 하였던지...
하여간, 한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삼차에 걸쳐서 작정기도를 하였습니다.
자 그럴 때 사도바울이 응답을 받았겠습니까? 놀랍게도, 기도의 응답 대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음성이 오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지금 너에게 있는 병이, 너에게 족하다.
지금 너에게 아쉬운 것이, 너에게 족하다.
지금 너의, 그 모습이, 너에게 족하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럴 때 사도바울은 세가지로, 왜 나의 지금, 그 모습이, 나에게 족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만하지 않게 하려는, 예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7절 말씀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으니’
두 번째는 내가 약한 그때 예수님의 능력이 온전하고,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9절 말씀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내가 강할 때, 교만으로 흐르게 되고, 예수님의 의지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나에게 강하게, 온전하게 역사하실수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약할 때, 내가 겸손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게 되면, 예수님은 나에게 강하고, 온전하게 역사하십니다.
세 번째,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기 위하여, 오히려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살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9절 하반절의 말씀이 되겠습니다.‘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그것이 없어서 불완전 하다고, 아쉬워 했습니다.
그것만 더 있으면 완전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 집니다.
모든 것을 볼 때, 그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눈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욕심으로 보니까,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미워집니다. 슬퍼집니다.
나중에는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끝없이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밭을 갈고, 해산하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하나 더 가지니까..행복하게 되었느냐?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 더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이 될 때,
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 욕심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더 분을 내고, 더 필요한 것을 자꾸 눈에 보이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과 관계있는 삶이 아닙니다.
이런 삶은 천국을 향하는 가는 삶이 아닙니다.
행복한 삶도 아닙니다.
더 나아지는 삶도 아닌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기 되려면, 그 선악과를 버려야 합니다.
탕자처럼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에 대하여는 부족해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하여는 어리섞어져야 합니다.
더 순진해지고 순수해 져야 합니다.
부족하고, 순수하고, 낮아지고, 어린아이 처럼 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슴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베드로전서 5:6에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나, 없나?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나에게 더 역사하시느냐? 않하시느냐?
예수님이 내속에 거하시느냐? 않하시느냐?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찾아 오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됩니다.
누가복음 24:32 에 말씀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오늘 아침에도 일어났을 때, 성령님이 나의 귓가에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이야...교회 나가야지..교회 나가야지...”
그 음성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마음이 뜨거워 지는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목적이 되어, 내가 중심이 앉아서, 욕심을 부리고, 미워하고, 분을 내어서는 않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속에 찾아오시도록,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2. 의지적으로 믿음안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는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골로새서 3:15 에는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평강으로 나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노아가 땅에 발을 딪고 내려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감사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그전에는 멋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높은 권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죄악속에서 살아가는 부귀영화와 권력과 재물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다음에 보니까...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노아의 가족만 남았습니다.
땅에 발을 딪고 내려와서, 걸어 다니는 것...무엇이 감사합니까?
하지만 세상이 모두 물속에 잠기고, 노아가족만 덩그러니 겨우 살아 남았을 때, 당연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귀도 물속에 사라지고,
권력도 물속에 사라지고,
외투 한 벌에, 지팡이만 잡고 있는 노아 이지만, 부귀도 이젠 소용 없습니다. 권력도 이젠 소용없습니다.
홍수속에서 살아남은,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의지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 문앞에서 천사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기...제가요...금이 많이 있는데, 천국에 들어갈 때, 이 금을 가지고 갈수 있게 해 주십시요..
이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표가 있습니다. 하지만 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니....난감하기 그지 없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구원은 받으셨으니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데, 꼭 금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하시니... 그럼 그렇게 하십시요..”
그러자 뛸뜻이 기뻐하며, 금두껍이, 금 가락지...골드바...한 아름안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곧 세상에서 친하게 지내던 교회집사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뻐인사를 나누는데 한 사람이 말합니다.
“아니..김집사님...금을 왜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오셨어요..”
“네 천국에서 두고두고 쓸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아휴...김집사님...천국에는 널린게 금이에요.. 벽돌대신 금 사용하고요, 길에 아스팔트 대신 금 깔고요. 금은 처지 곤란입니다. 계시록 21장도 않읽어 보셨어요”
“천국은 흙이나, 돌이나, 금이나 그게 그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사방을 살펴 보았더니, 성벽, 길이고 다 정금이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오히려 천국에서는 성도의 믿음의 금보다가 더 귀합니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씌우실 때,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가도, 영원히 빛나게 되는 것이, 바로 성도가 받는 상급의 면류관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사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부족한 것을 살피고, 더 있으면 만족하겠다고 욕심스럽에 살피는 하루가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찾아오심으로 인하여, 내가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며, 믿음이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예수님께서 천국잔치에서 성도에게 주실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매일매일 감사의 믿음의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