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4절 19절 초대교회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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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 되겠습니다.
종교개혁은 미래를 향하여 현재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향하여 현재를 바꾸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믿음의 진로를 망각하여 갈바를 알지못하고 방황하게 될 때,
미래를 향하여, 좀더 좋게 개혁하자는 것이 종교개혁, 개혁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듣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개혁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입니까?
오늘날 한국교회가, 아니 세계교회가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 것입니까?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다 있는데,
성경말씀을 떠나서 살아갈 때,
성경말씀을 덮어놓고, 인간의 제일 좋은 지혜를 찾을 때,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 다시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14절에서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초대교회가 있던 시대는, 매우 혼란한 시대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가 더 혼란스럽 습니다. 지금의 혼란은 혼란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사회가 많이 타락하였습니다. 먼저 법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이 닫는 만큼, 사치와 완력과 욕심으로 살아 갔습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그것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국가적으로도, 타락이 극에 달하던 시대였습니다.
폭력으로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팍스로마나’ 라는 용어는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순순한 말이 아닙니다.이면에는 로마의 힘과 무력에 의하여 찾아온 평화라는 그당시 현실이 들어 있는 용어입니다.
황제는 법과 질서와 선을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황제가 나서서 무법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다 너무 심하여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면, 예수믿는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덮어 씌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옥에 넣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콜로세움 맹수들에게 던졌습니다.
십자가에도 못밖고, 불에도 던지고....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할수있는 모든 악행을 다하여, 공포를 조장하여, 사회를 억누르려 하였습니다.
자 그런 사회에서, 복음의 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 지는 것입니까?
이런 상황이지만,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 15절에서 중요한 결단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로마는 어떻게 할수 없어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곳이지...
평화의 도성도 아닙니다. 진리의 도성도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 나가는 곳이, 로마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런 로마를 향하여, 오히려 할수만 있다면, 또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곧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믿음입니다.
혼란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손가락질 하고,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의 한중간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왜 그렇게 어려움을 오히려 짊어 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 대답은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 때문에, 그 혼란의 한중간에, 일부러 뛰어 들어가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잡혀서 맹수들에게 던져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헬라인에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은 로마로 빨리 가기로 결심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혼란합니다.
세상에는 못살겠다는 아우성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못살겠다. 무엇 때문에 못살겠다.
그러면서, 손가락질 하고, 이야기 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한영혼 한영혼을 위하여, 전도하는 사람은 오늘 이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잇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은 내가 마음 내기가 그래서 그렇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예배드릴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점점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사라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교회는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고, 예배드리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예배드리던 교회였습니다.
어디서 예배드린다는 것만 발각되면, 로마군인들이 들이닦쳐서, 예배드리는 현장을 덮쳐서 성도들 잡아가니까.. 로마 군인들을 피하여 무덤 속에 굴을 파고, 예배당을 만들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카타콤이라고 하지요...지금도 로마에 가면, 로마 당시 집단 무덤 옆에 굴이 있습니다. 그 굴속에 들어가면 예배당이 나옵니다.
관광객들이 멋있는 콜로세움, 바티칸은 많이 가면서, 초대교회 당시, 예배드리기 위하여, 죽음을 넘나들었던 믿음의 현장은 관심이 없습니다.
1517년, 종교개혁자들은 바로 그 현장....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초대교회의 믿음의 현장을 직시 하였습니다.
1500년 당시에도 사회가 혼란하였습니다. 사회가 각종 부폐와 부조리로 가득하였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고생이 너무너무 심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 모든 혼란과 혼돈을 능이 이길 길은,
복음 외에는 없다고,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갈것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종교개혁이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리포메이션입니다.
다시, 형성하는 것입니다. 림폼더 처치입니다. 다시 돌아간 교회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듯,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가듯
교회도, 우리의 믿음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랑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겨나가던, 초대교회의 믿음, 초대교회의 신앙자세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바르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17절에서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초대교회는 안팍으로, 매우 혼란을 겪었음에도, 절대로 믿음의 순수성,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초대교회는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초대교회는 내부적으로도 큰 혼란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이단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는, 니골라 당이 있으니....나도 이것을 미워 하노라.
요한계시록 2장 에는, 자칭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요한1서 2장에는...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 났으니...
또. 같은 장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그가 적그리스도니
요한2서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초대교회 당시에도 벌써, 꼽을수 없을 만큼 많은 이단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라 칭하는 자가 여기저기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내가 가르치는데로 하면 된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음으면 않되고, 나를 믿어야 한다....
오늘날만 이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만 자칭 재림주, 남자여자 하나님, 성령...등등....적그리스도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이단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1서 4장 3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행위가 점잖타고 다 진리가 아닙니다.
바른말 한다고 다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전 인터넷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네티즌이 구원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카톨릭 교리교사 쯤 되는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가르쳐 준다고 답을 하였습니다.
첫째. 정말 교황님 모자에, 666이라고 써있나요?
둘째.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생각합니까?
...쭉쭉 내려가서
다섯째. 연옥이라..음..그건 죽어봐야 알겠죠.
교황은 666이 아니다...그건 교황을 변호한다고 이야기 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카톨릭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리교사가....순진하다는 듯이...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것이 카톨릭의 현주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꾸 성경에 없는 율법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는 막던 것과 같이...가톨릭은 많은 교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칙을 잘 공부한, 가톨릭 교리교사는, 자기도 그렇게 배우고, 일반신자들을 가르칠 때..배운대로 가르키게 되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입문과정일 뿐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카톨릭 사제들에게, 카톨릭 신부들에게 면죄권이 있다고 가르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카톨릭 신부에게 일일이 다 고해성사를 하고, 면죄를 받아야 된다고 가르킵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게 합니다. 신부가 듣고 가벼운 죄는, 1000번 성모기도를 하세요. 40일 기도를 하세요. 일천번제를 하세요.. 신부가 시키는 것을 하면..그 죄를 용서해 준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죽으면, 연옥에 가서, 세상에서 씻지 못한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으면서, 정화를 해야 된다고 가르킵니다. 이때 성인들이 도와주면 그 정화의 과정이 단축되고 않그러면 엄청나게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벌을 받으면서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성인들을 떠받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급이 높은 성인은 누구일까? 결국 성모 마리아라고 가르치면서, 연옥에서 벌을 적게 받으려고, 모두 성모 마리아에게 메달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과정이 다 끝나야, 비로서 천국문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때 예수님을 만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 보시고 조금만 조그만 흠결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빠구입니다.
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까? 성경통독을 많이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것입니다.
한 구절도, 신부가 죄를 용서해 주고. 연옥이 있고. 연옥에 가면 성인들이 도와주어야 하고....이런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이런 말씀을, 가르쳐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면, 왜 가톨릭은 성경에도 없는데, 어디에서 누구한테 배워서 이런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스스로 교칙으로 만들었습니다.
교황이 그렇게 정하였기 때문에, 성경에는 없지만 가르치고 치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연옥을 믿어라...
성경에는 없지만, 성모 마리아는 원죄와 자범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요, 성모마리아는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다.
성경에는 없지만, 연옥에서 성인들이 우리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성인은 이 사람, 이사람, 이사람을...성인으로 세운다...교황이 성인을 세웁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우리교회 보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마어마 하게 더 큽니다.
교인수로 보면, 우리교회는 100명이라면 하나님의 교회는 수십만명입니다.
건물 크기로 보더라도, 우리교회는 너무너무 적고, 하나님의 교회는 수천평, 수만평에 해당하는 건물과 땅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고, 건물이 큰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벗어나서, 자기가 스스로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자칭 하나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의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성경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다 가르켜 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읽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와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18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런데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그 사람의 모든 경검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너무나 미약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조그만 마을 회당을 찾아 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럴 때 그 작은 불꽃이, 점점 크게 성령님의 불꽃이 되어, 초대교회에 임할 때,
초대교회는 안과 밖에 많은 혼란과 박해적 요소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로마의 황제가 회개 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사람들이 로마의 거대한 우상신당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또 콜로세움에서 맹수들에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폐하고, 마차경주를 하는 것으로 바꿉니다.
초대교회의 승리는, 제도적, 물리적, 폭력적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의 승리, 사랑의 승리, 믿음의 승리 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의 크고 적음은,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많고 적음도 그렇습니다.
오히려 바른 믿음위에 든든히 서있느냐? 가 더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바로 그 믿음으로, 살아가고 잇느냐? 가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이 혼돈하고 혼란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는 안과 밖에 이단과 박해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승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른믿음이 중요합니다.
성경말씀대로 바르게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위에, 든든히 서서,
혼란한 이시대에,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