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35절 43절 희망을 부르는 믿음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마가복음 9장 21절 29절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믿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닫혀있던 희망의 문을 열어 졎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의 문을 활짝 열어 졎히셨고,
죄악을 향하여, 구원의 문을 활짝 열여 졎히셨습니다.
나에게는 지금, 혹시 닫혀 있는 문은...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 문을 어떻게 열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는 답답하게 닫혀있는 문을 활짝 열였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답답하게 눈이 닫혀서, 볼수 없는 맹인이 예수님께 나올때, 시원하게 눈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귀신의 장난으로 아들이 괴로워 하던 사람이, 예수님께 나올때, 시원하게 귀신을 쫓아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막히고, 닫혔던 문을 활짝 열수 있었던 비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사람들은 믿음으로 꼭꼭 닫혔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믿는 것은 심증적으로 동조하고, 마음속으로 좋은 감정을 갖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믿는 것은 예수님께 찾아가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더나가서 방해와 시험이 있어도 계속하여 예수님께 부르짖는것 입니다.
즉....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믿음이, 말과 행동과, 생활로 튀어 나올때, 마침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 계속하여 두드리는 믿음이, 튀어 나와야 합니다.
오늘은 성경말씀은 두 부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두말씀을 통하여, 희망의 역사를 만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8장, 여리고 도상의 맹인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리고 도상의 맹인은 교과서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 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때, 소문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오고 계시데~~~~”
마침 여리고성 앞에서 구걸하던 맹인이 있었습니다.
자 맹인이라면, 앞을 못보는 사람입니다. 앞을 못보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앞을 못보는 것으로 인하여, 다른 모든 것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영향을 받습니다. 인생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맹인은 결국 구걸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막혀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막혀 있는 것으로 인하여, 다른 모든 것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회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가정은, 그 한가지 문제 때문에, 가정 전체가 침울하고 시험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한가지문제 때문에, 평생 짐이 되어서, 인생이 힘을 펴지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리고의 맹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맹인 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막혀 버립니다.
일을 할려고 해도,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할려고 해도,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맹인은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서, 여리고성 어귀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맹인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믿음’--예수님께 달려 나가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믿음이 무슨 차이가 있으며,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고 예수님께 달려 나가는 믿음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덜려 나가는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귀하게 보십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합니다. “저분이 예수님 인가 봐..... 저기저기...흰옷을 입으신 예수님이오신다...” 금방 사람들 구름때 처럼 모여 들어서 예수님을 에워 쌉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 맹인이 소리를 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당연히 야단을 칩니다. “너갖은 구걸뱅이가...예수님이 어떤분인 줄 알고...조용해라 조용해...”
만약 평소에 이말을 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조용하겠습니다.” 그리고 굽신굽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고 계신다는 말을 들을때, 이맹인은 180도 틀려졌습니다.
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멈추어 서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구걸하던 맹인은, 거지옷에, 형편없는 몰골로, 사람들에게 이끌려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대답합니다. “주여...보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눈이 않보이다 보니, 이 한가지가 막힘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나쁘게 되어, 지금을 거렁뱅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어찌 맹인의 욕심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맹인은 예수님께 이 말씀을 드릴려고, 사람들이 꾸짖고, 잠잠하라 해도, 더 크게, 더 간절하게...
사람들이 들으라고 소리친게 아닙니다.
예수님 귀에 들리게 하려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올때,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려고 와야 합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기도할 때, 봉사할 때, 헌금드릴때, 예수님 귀에 들리게 하려고,
예수님 마음에 들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잠하라고 해도, 하지 말라고 해도,
제가 봉사 하겠습니다. 제가 찬송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정성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여리고의 맹인을 불러 주셨듯이, 예수님께서도 나를 불러주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면, 그 모든 것이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눈물,
나의 정성,
나의 간절함....
예수님께서 여리고 맹인처럼...기회를 주신다면...그 믿음은 성공한 믿음이요, 승리한 믿음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어떻게 보면, 너무나 쉽습니다. 이렇게 쉽게 예수님께서 들어 주시다니...
한편으로는, 진짜 이렇게 까지 칭찬받을 믿음인가? 살짝 의구심도 듭니다. 맹인의 믿음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눈도 뜨고, 칭찬도 받고, 너를 구원하였다는....말씀도 해주시고...그정도 믿음은 누구나 갖고있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맹인의 믿음이 대단한 믿음이라는 사실이 밝혀 지게 됩니다.
43절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맹인이, 보게 될 때, 생각보다가 의외의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가 해결될때,
우리가 어떤 축복을 받게 될 때...
여리고의 맹인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참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을 받게 되어도,
처음에는 그것만 해결되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라고 할것 처럼 매어 달리다가도,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일상적인 일인양... 당연시 합니다.
“당연히 그런것은 해결되고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지...뭘 그런걸 가지고 호들갑이야...”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인 것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10의 문둥이를 고쳐주니까...9명은 뛸듯이 기뻐하며, 자기 갈길 가버렸습니다.
딱 한명만 돌아와서, 예수님 발앞에 무릎꿇고 “예수님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감격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탄식 하시면서 말씀 하셨지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침을 받고, 감사할 때, 내 영혼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열심히 따를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받은 사명을 실실하게 감당할 때, 상급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여리고의 맹인은 고침을 받을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거 하러 가지 않고, 그 길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것을 보고, 여리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여리고의 맹인...믿음이 좋습니까? 이 믿음이 있다가 보니, 예수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시고,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문을 열어 주시는가?
여리고의 맹인과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관망적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어느 시골에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타고 가던 차가, 옆에 개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소리칩니다.
“도와 주세요. 도와주세요...저는 아무개 국회의원입니다.”
농부가 황급히 와서 보더니, 그냥 가버리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너무 황당해서 소리쳤습니다. “아니 왜 보고, 그냥 가는 것입니까?”
그러자 농부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국회의원 말은 도무지 믿을수가 있어야지요”
아무리 높은 직위에 있어도, 자기 신뢰를 자기가 깍아버리면,
하찬은 사람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스스로 나의 것을 깍아버리면 않되겠습니다.
천국의 초청장을 잘 품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을 소중이 잘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성경말씀에 약속해주신 축복들을 잃어 버리면 않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믿음에서부터 막힙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입을 꼭 닫아 버립니다. 찬송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않고, 성경도 읽이 않습니다.
손도 꼭 닫아 버립니다. 봉사도 하지 않고, 헌신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꼭 닫아 버립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도무지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서 꼭 닫고 있으면, 나에게 닫혀 있는 기도의 제목, 인생의 고개가 어떻게 활짝 열릴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9장에 아버지는 병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치지 않습니다.
너무나 점잖습니다. 마치 다른사람 일을 대신 해주는 것 처럼, 성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22절에서 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여리고 맹인은 구체적으로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나를 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이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수 있거든, 도와 주십시오.”
마치, 실력이 있으면, 한번 해 보시고요. 않되면 다른데 가 봐야 되겠지요.?. 이렇게 냉소적이고 방관자 적인 말을 하는데, 이런 마음은 믿음이라고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방관자 적이고, 관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이 바로 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음의 사건속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남의 일을 구경하듯이, 방관자 적인 자리에 서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나... 할 수는 있을까..관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역사가 일어나고,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경꾼이라고 하지요...지켜보고, 관망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 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리고의 맹인처럼, 그 구경꾼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 사람들을 헤집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여리고의 맹인에게는 눈이 떠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의 병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것은 잘 했습니다. 하지만 관망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무엇이라고 할수 있거든...도와 주십시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없음을, 관망적인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너의 믿음이 없어서, 너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지....믿는자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너의 관망적인 자세를 버리라...
이 말씀을 들을때,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24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그때서야,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내가 믿나이다.”
무엇이라도 할수 있거든 도와 달라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였던
나의 불신을 용서하여 주시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그러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통성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소리 질러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아이의 아버지 소리를 질러서 예수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믿음없는 자여, 나에게서 떠나가라”
그랬다면 어떻게 되엇겠습니까?
내 마음속에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튀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을 튀어 나오고,
기도와 찬양과 봉사와 헌신으로, 튀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달려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 소리를 질러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제자들이 이 모든 상황을 보면서, 왜 우리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왜 우리들은 능력있는 생활을 하지 못합니까? 질문을 합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앞에서 능력있는 생활, 신령한 생활, 은혜의 생활을 하는 비결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시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 달려가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던, 여리고의 눈뜬 맹인의 믿음을 오늘 나에게도 있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생각만 하고,
나의 일인데도, 관망만 하고,
예수님이 무엇을 할수 있으실까? 내가 계산 다하고, 내가 판단을 다하고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다시 한번 겸손하게...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부족함을 도와 주옵소서.”
아니....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께 소리지르며 달려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데도,
멀찍이 서서, 관망하고,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맹인처럼, 아이의 아버지 처럼, 나에게도 그들 못지 않게, 열려야 할 일, 해결 되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수 잇을만 하면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믿음없이, 방관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달려나오게 하시고
간절히 소리 지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믿음이 없어서 그대도 있지않고, 믿음이 있어, 칭찬받고 응답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음 달, 총동원 초청주일을 통하여, 전도자들이 달려나와서, 닫혔던 것이 열리고, 막혔던 것이 풀어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령님의 역사가,
이곳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