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 9절 13절 그루터기 사명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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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매우 더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분야에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만, 특히 건강에도 지혜를 발휘하여, 큰 탈없이, 더운 시기를 잘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여름이 좋은가? 겨울이 좋은가? 참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수 없습니다.
짜장면이 좋은가? 짬봉이 좋은가? 아빠가 좋은가? 엄마가 좋은가?
선듯 한쪽만 선택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좋은것 같습니다. 백번 질문하여도 저는 여름이 좋습니다.
물론 겨울이 좋은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치우고, 난방 때문에 신경을 쓰고,
그런것에 비하면, 저 같은 경우는 여름이, 백번 좋은것 같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신앙생활할때도, 난감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도 직입적으로, 바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좋습니까? 세상이 좋습니까?
구원이 좋습니까? 멸망이 좋습니까?
예배가 좋습니까? 놀러 나가는 것이 좋습니까?
말씀이 좋습니까? 돈이 좋습니까?
쉽게 결정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 그 두가지가 동시에 있게 되면, 선듯 선택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4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쉽게 선택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바른게 선택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선택합니다. 멸망을 선택합니다. 돈을 선택합니다. 예배드리지 않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7월달은 깊은 믿음, 성숙한 믿음이 됩시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8월달은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는 믿음입니다.
즉 깊은 믿음, 성숙한 믿음은 위기를 축복으로 바꿀수 있는, 능력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찾아온 위기는 무엇입니까?
9절에서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사명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지자들은 선지자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 그 문제에 대한 목적으로 가지고 부름을 받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까?
이사야 6장은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장 이라고 하지요.
이사야는 보통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사명은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씀을 드리자면, 남은 그루터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나무가 그루터기만 있다면, 본래 그 나무는 큰 나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꾼에게 배임을 당하였는지, 아니면 썩어서 죽어버렸는지, 알수는 없으되,
하여튼 큰 줄기와 가지가 모두 없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뿌리와 얼마 남지 않는 그루터기입니다.
그루터기는 어떻게 보면, 그 나무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렇게 크고, 화려하고, 멋있는 줄기와 가지와 깊은 어디로 가고, 그루터기만 덜렁~~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루터기는 그 나무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 주는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루터기는 한편으로는 기회가, 어렵지만, 다시한번 시작할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올라와서 점점 줄기가 되어 쑥쑥 자라기 시작하면,
그 나무는 다시한번, 예전에 멋있는 모습을 회복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루터기는 그 나무의 희망과 기회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루터기를 찾으시고, 그루터기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을 만드시고, 세상의 사람이 가득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죄악이 이끄는데로 죄악을 따라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온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남은 그루터기, 노아의 가정을 통하여, 구원의 새싹이 다시한번 솟아 오르도록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후에도 세상이 다시한번 죄악이 가득하게 되자, 누구의 가정을 통하여 구원의 줄기가 이어지도록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구원의 줄기가 이어지도록 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 아브라함의 자손인....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이 가득하여, 썩은 나무같이 넘어지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버리지 않으시고,
믿음이 있는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고,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이 돋을수 있도록 해 주실텐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그루터기가 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그들이 바른 믿음위에서 그루터기의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가르치라....고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루터기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너무너무 중요한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9절 10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구원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썩으면, 뿌리에 달려 있다고, 무조건 잎이 푸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까?
나무가 썩으면, 뿌리에 달려 있어도, 잎이 나지 않습니다. 꽃이 피지 않습니다. 열매가 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지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죽은 믿음인데, 자동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것이라고 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죄악으로 가득하면, 돌들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수 있는 분이시요,
이스라엘 자손들은, 죄악속에 살아가면, 도끼로 찍혀서 불에 던져 넣을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10:19 이런 말씀입니다.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누가복음 18:8 에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스라엘 역사에서 마지막 때가 될 때,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너무 적어서, 마치 그루터기 처럼, 퀭하니 밑둥치만 남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너무너무 적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세계역사의 마지막 때가 되면,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너무너무 적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작년 2015년을 시작하면서 뉴스위크지는 교회 특집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요은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입니다.
유럽에 네델란드에는, 가톨릭교회가 1천6백여개 인데, 지난 10년동안 그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천여개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네델란드는 유명한 개혁교회 신학자를 배출한, 개신교에도 중요한 나라인데, 앞으로 5년 내에 개신교회 교회도 700개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덴마크는 2백개의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독일은 515개의 가톨릭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나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는데, 그럼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영국 브리스톨의 유명한 세인트폴교회는, 서커스 훈련학교,로 바뀌었습니다.
네델란드에 유명한 요셉교회는 엄청나게 큰데, 스케이트 보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양반입니다.
미국피츠버그 성요한침례교회는 맥주를 파는 선술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네델란드의 교회는 프랑켄슈타인 술집이라고 간판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심지어 영국 스태포드셔의 성베드로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유럽에서는 교회가 문을 닫고, 꽃집, 슈퍼마켓, 스케이트보드장, 술집으로 바뀌는데, 반대로 이스람을 믿는 인구는 꾸준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인구의 10프로, 열에 한명은, 이슬람을 믿는 모슬램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독교 인구가 자꾸 줄어듭니다.
엄밀히 말하면,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보니까, 예배당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하얀 옷고, 검은 양복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사진이 있어서,
어느 교회인데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가 보았더니,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이단이었습니다.
금요기도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열성적으로 기도를 하는 영상이 있어서,
어느교회인데 이렇게나 많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가 보았더니...
넥타이를 맨 젊은 남자들이 백여명이 넘게 앞에 앉아서 열심히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착하게 보이는 아가씨들이 수백명은 될것 같습니다.
권사님으로 보이는 분들도 수백명입니다.
대단한 교회가 아닐수 없다는 생각에 자세히 보았더니, 만민중앙교회...이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상하게 젊은사람, 청년들, 장년들...할것 없이, 열심히 모이는 곳은, 이단 뿐입니다.
정통교회들은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심지어 분당에 충성교회를 비롯하여서, 멀쩡하게 잘 지은 교회 건물이, 이단에 팔려 넘어가는 경우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또한 그나마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시험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교회 주위에도, 불로교회, 열린교회, 김포전원교회, 행복한 교회 등등... 어려움을 않겪은 교회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교회가 넘어지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힘을 못씁니다. 예전같으면 강대국이라고, 떵떵 거리며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을텐데...
교회가 무너지니까...그 나라도, 힘을 잃어 버리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우리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12절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멀리하고, 교회에서 봉사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넘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럴 때, 그 나라도 힘을 잃고,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현상적으로 윤리도덕적으로 설명할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설명할수 없습니다.
왜 영국이 2류국가 3류국가 되어서, 힘을 못쓰고,
그나마 남아있는 나라는 조각조각 나뉘어 져서, 스코틀랜드, 에이레, 웨일즈...등등 우리는 영국이 아니다 나가겠다.. 영국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국가가 되고 있습니까?
이제는 중국은 미국을 겁내지 않습니다.
미국의 국력은, 경제적으로, 이미 중국에게 큰소리를 칠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미국이, 힘이 빠지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도 사회적으로 경제도 답이 않보이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러한 현상에, 가슴아파하며, 괴로워 하였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사야 뿐만 아니라, 엘리야도 가슴아파 하였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이제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19:18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사도바울은 바로 이 장면에 대하여, 로마서 11장 4절 5절에서 말씀합니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맞다...지금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 나를 머리고 바알과 아세라 에게 갔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은자가 있습니다.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마알에게 무릎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믿음의 사람, 칠천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할수 있도록, 그루터기를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런즉 이와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가 있느니라...”
즉 오늘날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죄악이 관영하고, 교회가 무너지고, 이단이 들끓어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 그루터기를 남겨두실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그 그루터기 같은 성도들에게는 중요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품는 것입니다. 복음을 품고, 바른 신앙을 품고,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시작하실 때, 쓰임받을수 있도록, 믿음의 정절을 품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속에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고, 그 속에 다시 시작할수 있는, 생물들의 씨를 품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을 다, 모아서, 홍수가 지날 동안, 방주속에서 잘 보호하다가,
홍수가 끝날 때, 그 동물들을 세상에 풀어 놓아서, 다시 세상이 동물들로 가득하도록, 품는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의 행실, 바른 믿음의 문화, 바른 믿음의 역사,
다음 세대를 시작할, 믿음의 씨앗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싹을 튀워서, 복음의 큰 나무가 자라날수 있도록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싹 너무나 작습니다.
하지만 새싹이 자라나면,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싹의 작음을 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않됩니다.
오히려 새싹의 미래와 꿈을 생각하면서, 새싹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는, 복음의 그루터기의 사명을 주셔서, 오늘날 죄악에 절하지 아니하고,
은혜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하심을 받으면서,
그루터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루터기는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성도입니다.
김포상도교회는 그루터기의 자리에 부름 받은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이 시대에 죄악의 세력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는
그루터기의 사명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