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20절 24절 배워서 든든하게 서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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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월달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달은 목표가......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달’이 되겠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고, 우뚝 세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높임, 그냥 존경, 그냥 우뚝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있는 것으로도,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을수 있습니다.
돈으로, 재물로, 권세로, 명예로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곧 사라져 버립니다.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5억 10억, 아니 100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보니까, 그대로 있느냐?..... 사라져 버립니다.
한진해운도 사라지고, 우리나라의 재벌 조차도 평균적으로 10년이 못가서, 세워 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능력으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존경을 받고,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지면, 다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지면, 영원히 칭찬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질수 있습니까?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영원한 능력, 믿음의 능력은 어떤 것이 있는지....성경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1. 성경말씀을 잘 배울 때,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질수 있습니다.
오늘 20절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배울 때 능력이 생깁니다.
잘 배울 때, 그 사람속에, 능력이 꽉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22 에는 말씀합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아들이라고, 무조건 높임을 받고, 무조건 존경을 받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보면, 조선시대때 철종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가, 갑자기 임금님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강화도는 주말이 되면, 차들이 막히고, 펜션에, 음식점에, 볼꺼리가 많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만
조선시대때 강화도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시골 한적한 곳이 강화도 였습니다.
그래서 철종은 어릴 때, 강화도에 유배가 되어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나갔습니다.
오후에는, 논에서 풀을 뽑았습니다.
저녁에는, 새끼줄을 꼬면서 보내었습니다.
즉, 철종은 배울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습니다. 서당에 서짜도 모릅니다. 글짜도 읽을줄 모릅니다.
스스로도, 내가 장차 앞으로 임금님이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뒷마을에 봉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름도 순박하지요..
철종이 말합니다. “봉이야...넌 세상에 제일 멋있는 처녀야...
난 앞으로 커서, 봉이 너 하고 결혼해서 살 거야~~~.
아담한 초가집도 짓고, 사과도 심고, 배도 심고, 그래서 강화도에서 행복하게 살자”
“그래 원범아~~ 나도 너하고 결혼해서...우리 초가집 짓도, 행복하자 살자”
그런데 갑자기 조선에 임금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급하게 임금님을 세워야 하는데,
대충 족보를 따져보니까...
강화도에서 살고있는, 글자도 모르는 철종이, 가장 합당한거 같습니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강화도에 살고있는 철종을 불러다가 임금님을 삼았습니다.
철종이 임금님이 되니까... 신하들이 철종을 임금님으로 존경 하겠습니까?
배우지 못하고, 글자도 모르니까...
임금님은 임금님이로되, 신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투명인간 임금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애굽기로 돌아가서, 공주님이 아들이 된, 모세는,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게 되었습니다.
배울 때, 능하게...능력이 있게 됩니다.
능력이 있게 될때...다른 왕자들 보다가, 더 높임을 받는, 모세가 되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믿음이 깊어질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거룩함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수 있는지, 알수 없습니다.
‘레위기’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는 것이 ‘레위기’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죄로 여기시는지, 가르켜 주는것이 ‘율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해 주는 것이,‘복음서’입니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지 말씀하는 것이 ‘성경책’입니다.
잠언 30:3 말씀합니다.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성경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를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경륜,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 배우지 않으면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자를 아는 방법은, 성경말씀을 배울 때 만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73 에는 말씀합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배우게 해 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2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22절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우지 못하였으니까... 어두움에서 살았습니다. 두려움에서 살았습니다.
큰 나무를 보아도 두렵습니다.
갑작스런 일을 만나도, 불안합니다.
가현산 쪽으로 가다보면, 아직도 ‘무당집’이 있습니다.
무당들이 이야기 하지요...“큰 나무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큰 나무에 새끼줄을 두르고, 허연~~~천을 늘어뜨리고, 한해에 한번씩 큰 나무 앞에서 굿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마을에는, 논 한가운데, 큰 고목이 있엇습니다.
그런데 그 고목에는 사람들이 안갑니다.
왜냐하면, 무당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무서워서 갈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마을에 않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도 병해충이 생기고, 사람들도 않좋은 일이 생기고...
그러니까.. 무당이 당장 ‘그 나무에 제사를 않드려서 그렇다~~~’ 그래서 다들 고개를 끄뜩이고, 동네에서 대대적으로 나무앞에서 큰 제사를 지낸적이 있습니다.......않배웠으니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무나 돌은,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그것을 빚어서 만든것은 다 우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수목과 땅의 육축과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않배우니까...불안하고, 괴로우면....큰 나무 앞에 가서 고개를 숙입니다.
동네 어귀에 큰 돌앞에 가서 고개를 숙입니다... 않배웠으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만이, 가능합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전에는 고난 당하는 것이, 저주이고, 재수가 없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고난 당하면, 어떻게 든지, 고난을 벗어나기 위하여서, 애쓰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께서 친자녀들에게 주시는, 징계와 교훈에 대하여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교훈하기 위하여 징계 하듯이, 오히려 칭계가 없으면 친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주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교훈하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고차원적인 신앙으로,
표층적인 믿음에서, 깊은 믿음의 경지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마태복음 11:29 말씀 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경말씀을 배울때, 믿음이 깊어 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 믿음이 깊어지고,
성경말씀도 모르면서도 믿음이 든든해 지고...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날 노회를 갔더니, 어떤 장로님이 저에게 와서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랑으로 돌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만 책을 만들었는데, 은퇴기념으로, 목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책이 바로 이책입니다.
내용이 무엇인가? 읽어 보았더니,
평생동안, 주일대예배, 오후찬양예배... 대표기도를 하였던, 기도문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떤 기도가 신령한 기도입니까?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은혜를 끼치는 기도입니까?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니까...갑자기 좋은 말이 떠올라서, 두손을 들고 흔들면서, 열정적으로 소리를 크게 하는것이 좋은 기도 입니까?
기도생활 하나만 하더라도, 성경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내 맘대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서서, 그의 하나님여호와의 이름을부르고, 그의손을 그 부위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엘리사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갔는데,
나아만 장군이 생각할때는, 엘리사가 나와서, 안수기도할 때, 손을 흔들며, 요란하게 기도하면~~~ 효과가 좋은 것이 아닌가? 혼자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냉정합니다. 밖에 나와보지도 않고, 유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시요.. 라는 말을 전합니다.
자 어떤 기도가, 능력이 나타나는 기도입니까?
손을 흔들며 요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을때에, 병이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에서 기도할 때, 질서있게 기도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준비함도 없이,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니까, 이것저것, 기도의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이말저말,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귀를 귀울이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나의 정성스러운 준비의 과정을 받으십니다.
대표기도하는 그 순간 보다가, 어쩌면 오히려 대표기도를 준비하는, 준비의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표현은 없는지, 덕스럽지 못한, 단어는 없는지
기도하며, 일일이 준비하고 살필 때,
성령님께서 나의 판단과 나의 준비하는 과정 전체에 역사하여 주셔서,
성령님께서 거룩한 기도문이 되도록, 완성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생활 한가지만 예로 들어 살펴 보았습니다만,
바른 기도생활, 모범된 기도생활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바르게 기도하는 것과
내 상상과, 내 생각대로만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밖게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평생동안, 대표기도 순서를 맡을 때 마다, 하나님 앞에서 정성스럽게 기도문을 작성합니다.
평생동안 대표기도한 것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큰 감동과 모범이 되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때에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듯이, 선지자자,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을 하고...
성령님은 즉흥적으로, 값자기 그 사람의 생각을 빼앗아 버리고, 그런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람들은 성경에 없는데도
나만에 생각을 하고, 나만의 상상과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성경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그럴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바울서실을 쓸때 갑자기 막써내려간 것이 아닙니다. 일일이 정성스럽게, 글을 쓰면서, 나 바울이 친필로 쓴다고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일곱 개의 친필서신 이지요?
또 사도바울이 구술하고, 실라, 대필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바룩이, 예리미아 선지자의 모든 말을,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예레미아서를 대필하였다고 나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하기 위하여, 정성스럽게 자세히 살피고, 준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준비없이, 즉흥적으로, 배우지도 않고서도,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것과,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 성경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배울 때, 나는 바른 믿음위에 설수있게 됩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됩니다.
튼튼한 믿음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나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어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한주간 동안, 주일예배 드릴 것를 생각합니다.
예배 드리기 위하여 준비합니다.
시간도 준비하고,
기도의 제목도 준비하고,
헌금도 정성스럽게, 제목을 붙혀서, 준비를 합니다.
주일이 점점 가까워 집니다.
수요예배도 드리고, 금요기도회도 드리고, 토요일에는 성전을 청소하면서, 주일예배를 준비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거룩한 예배자가 되도록,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
마침내 주일이 되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이 계신곳을 향하여 출발을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예배를 위하여, 봉사를 합니다.
예배시간이 되면, 마음을 정리하고, 예배를 시작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옷자락이 나를 덮어 주십니다.
그러면, 찬송할 때 은혜가 충만하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들을때, 듣는 귀가 열려, 심령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새겨집니다.
마치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돌판에 세겨지듯,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심령속에 아로새겨집니다.
축도를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손이 나에게 내려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때는, 세상을 이길 능력이 충만하여, 새피조물이 되어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걱정근심이 틈을 탈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악한영이, 감히 싸움을 걸어 올수가 없습니다. 평강으로 매일매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9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없어질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유한합니다.
말씀을 배울 때, 바른믿음, 든든한 믿음, 거룩한 믿음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붙잡고,
평강의 하나님과 매일 매일 동행하는, 믿음생활을 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