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히브리서 6장 11절 15절
2005.10.01 18:30:58 조회7321
히브리서 6장 11절 15절 오래도록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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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교도소에 어떤 제소자가 들어오는 빵차에 몰래 올라 탔다고 합니다.
얼마후에 빵차가 교도소를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차안이 더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땀이 뻘뻘 나고, 숨이 턱에 걸릴 지경이었지만, 참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면..자유의 몸이 된다..
한참 후에, 차가 서더라는 것입니다.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보니, 다른 교도소에 도착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이 재소자는 오래참지 말고, 중간에 뛰어 내릴걸 하고, 후회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사회에는 오래참는 모습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동전만 넣으면, 금방 음료수가 ‘철커덩’ 하고 튀어 나옵니다.
컴퓨터에서 클릭만 하면, 금방 금방 자료가 튀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참는 모습이 없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치있는 것는 오래 참아야, 오래 기다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명품들은 어떻습니까? 찍어내듯이 나오는 명품들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기술도 어떻습니까? 단번에 되어지는 것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중에서 오래 참을때에, 약속된 기업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은 오래 참아야 합니다.
중국에서 유럽에 자동차를 수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럽에 어떻습니까? 벤츠니, 아우디니....백여년 가까이 자동차를 만들어 온, 명품 자동차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은 기술도 없습니다. 자동차를 만든지 이제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베끼기 시작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앞 부분은 혼다 차를 베낍니다. 내장은 포드차를 베낍니다. 뒷 모습은 벤츠차를 베낍니다.
그랬더니, 몇 달 안되어, 멋있는 차가 나왔습니다.
이 차를 유럽 시장에 갖다가 파는데, 모두들 디자인이 멋있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안전도 평가를 위하여 모의 테스트를 하였더니, 시속 64 키로 충돌에, 운전자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니 겉은 그렇게 멋있고 멀쩡한데, 휴지조각도 아니고, 겨우 시속 64로 달리다가 사고가 나도 운전자가 사망이라고 하니.....그래서 달리는 흉기라고 손가락질과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필요한 기술은 개발하지 않고, 열매 만을 챙기려고만 하다가, 당한 망신이라 할 것입니다.
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래참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골고루 다 있어야, 마침내, 약속되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빨리 빨리가 대충 대충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철근 넣어야 될 때, 대충대충, 넣지 않고 그냥 빨지 지어버립니다.
라디오를 만들어야 되는데, 대충대충, 부품들 막사와서 조립만하여서 팔기 시작합니다.
빨리 진도가 나갈 때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곧 결과가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서있던, 4층짜리 빌라가 옆으로 넘거 갑니다. 아니 멀쩡한 다리가 지진도 없는데, 그냥 주저 앉아 버리고 맙니다.
또 처음에는 부품을 주다가, 얼마 후, 부품값을 막 올려 버립니다. 그리고 특허료를 몇배나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냥 넘어갈때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더 큰 댓가를 지불하게 되더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그러지만
기도할줄 모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내가 와서 평안을 느끼고 가는 것인 줄 압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믿음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때, 곧 무너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 그렇게 열심인데, 왜 요즈음 않보인데요...
그럼 옆에서 말합니다. 그집사님 시험들었데요...
야고보서는 말씀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신앙에 태만함으로
믿음이 약함으로
오래참음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기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바르트는 신앙의 있어서 중요한 실수중 하나가 태만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매주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것...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한층 한층 쌓아, 강한 믿음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져진 믿음의 토대 위에 집을 쌓아 올릴때, 바람이 불어도 창수가 몰려와도, 꿈쩍하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2. 오래 참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쌓아진 믿음의 토대위에, 은혜의 집이 한층 한층 올라갈수 있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14절 15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어떤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가정은 부부가 둘다 암에 걸린 가정이었습니다.
아내도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암에 결려 심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약이 잘 들어 남편은 살아 났지만, 아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난 남편집사님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밤늦게 신세 타령을 하면서, 날밤을 세웁니다.
그러니 중학생 아들은 가출을 합니다.
고등학생 딸은 자기 방을 쓰레기 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집안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사님 힘을 차리시고, 신앙으로 이겨내셔야지요...
그래도 도데체 맘을 잡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집에 가 보았습니다.
이 집도 똑같이 아내가 일찍 하늘나라고 가고 말았습니다. 남편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어떻게 유지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남편집사님은 신앙을 포기 하지 않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열심히 유치부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나중에는 부장집사님이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고백합니다. ‘목사님 저는 얼마나 아이들이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집에서는 신앙으로, 아들 둘을 잘, 키워내는데, 이 아들 둘 이 잘 성장하여,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이제는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이 아들들은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인줄 안다고 합니다.
두가정 모두, 똑같이 불행하게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한분 집사님은 절망하고, 실망하며, 가정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다른 집사님은 오히려 감사함으로,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가정 지켰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매주일 예배드리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기도하는것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말씀 읽는것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치고, 창수가 몰려와서 뒤덮을때,
그때, 믿음으로 한층 한층 쌓아 갔던, 신앙의 사람은, 일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 믿음위에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신앙위에서 살아갈때에...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인지, 들어나게 되는 날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지는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위에서, 오래참음으로, 소망 가운데에서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대로, 약속되로 마침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님들이 이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한 평생 겪으면서, 믿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온 몸으로 깨우치다 보니,
그래서 권사님들 가운데 기도의 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기도의 권사님이 많이 나와야 겠습니다.
3. 하나님은 넘치게 주십니다.
신바람 황수관장로님...
우리교회에서는 영상으로 오후 찬양예배때 보았습니다만..
연세대 교수로, 또 이곳 저곳, 바쁘게 강의를 많이 하시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강의를 듣노라면,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황장로님에 주신, 웃음의 은혜는,
젊을때, 그 많큼 고생하던 때에 대한 응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간증하시는데, 젊을때, 너무너무 고생이 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오래참으며, 푯대를 향하여 나아갔더니..
하나님께 때가 차매 열어주시는데, 연세대 교수로, 또 웃음으로 채워 주시는데,
이제는 웃음을 잃고, 근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히려 치료해 주시는 은혜를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복되게 갚아주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말씀합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로 인하여 기뻐하기 보다는, 지금 주시는 은혜로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현재 주시는 은혜만 바라볼것이 아니라,
그때에 나에게 주실, 말할수 없는 감사와 찬양의 때를 바라보며, 기뻐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은 갈길 조차 알수 없는 고난의 시기에, 오히려 믿음으로, 오래참으로
하나님을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오래도록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여,
아브라함은 자손들 까지도, 하나님의 복된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고난 가운데에도, 오히려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갔다니
하나님께서 조금씩 이루어 주시는데..
나중에는 뿌리지 않는데서, 거두게 하심같이 말할수 없는 복으로 넘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리도 후서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오히려 굴하지 아니하고,
믿음위에서 오래참음으로 말씀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승리와 기쁨에 때를, 오래동안, 누리게 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