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성전을 수리하라 왕하 12장 1절 5절
2005.07.17 06:22:14 조회5639
왕하 12장 1절 5절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라
예후의 칠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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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글린 브라더스 라는 이름의 서커스단의 미국 뉴욕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서들이 시작되어, 호랑이 곡예 차례가 되었습니다.
네 마리의 벵골 호랑이를 데리고, 조련사는 곡예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정전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극장은 깜깜하게 되었습니다.
관객들은 공포에 질려서 조련사를 걱정하며 웅성 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큰 철창속에, 호랑이들과 함께 있는 조련사가 과연 무사할까... 만약 호랑이가 당황하여 야성을 들어내면, 조련사는 죽음을 당할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참 후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관객들이 숨을 죽이면서 보니, 글쎄 호랑이들은 어둠속에서도 조련사의 명령에 따라서, 재주를 넘고 있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련사가 나중에 고백합니다.
“저도 정말 무서웠습니다.
제가 만약 당황했더라면 호랑이의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는 호랑이를 보지 못하지만 호랑이는 저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랑이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밝은 곳에 있는 것처럼, 연습한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꺼진 호랑이 우리속에 서 있는 조련사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악한 영은 그리스도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기의 자리, 위기의 순간에...더욱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절 말슴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요아스는 7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되는 아달랴 왕비가 자기 아들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손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할머니가 아들들을, 손자들을 죽일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의 악한 여왕으로 유명한 이세벨의 딸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아달랴가 남유다로 시집왔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아달랴가 온 뒤로, 남편 여호람 왕은 병으로 죽게 됩니다. 아들 아하시야 왕은 아달랴의 고향인 북이스라엘과 연합하게 하여,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남편과 아들이 죽자, 아달랴는 남아 있는 다른 모든 아들들을 다 죽여 버리고, 손자들을 다 죽여버리고 여왕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 참화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요아스입니다.
6년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아달랴를 물리치고, 7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어려움을 당한 요아스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러다 보니, 요아스 왕은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한 선정을 배풀었습니다.
그 첫번째 선정이 바로, 퇴락한 성전을 고치는 일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6년간 숨기셨다가, 살려주신 바로 그 은혜의 자리...하나님의 전...
그 전의 퇴락한 모습을 보니 견딜수 없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요즈음 욕을 많이 얻어 먹지만, 그래도 잘되는 비결중 하나는...미국사람들 만큼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사람도 드물다고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 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때, 자기집보다가도 먼저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멋있는데 가보면 꼭 교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풍경이 멋있는 강가에는 꼭 교회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래서 강가 옆에 있다고, 이름도 강옆교회...리버사이드처치...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이 좋다고...차집에 이 교회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찻집...리버사이드..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요아스왕은 나이가 작았지만, 신앙의 교훈을 따라,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퇴락한 성전을 고쳐내는 큰 역사를 이루어 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르므로 위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의 교훈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가 있을때,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큰 역사는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어린 나이에 성전을 수축한 요아스 왕은 그후 41년간이나 왕위에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보통 유다의 왕위는, 짧으면 2년 3년...길면 10년 정도 되는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무려 41년 간이나 왕위에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릴때에 벌써 성전을 수축한 요아스왕 입니다.
그러니 41년간이라면, 얼마나 역사들이 많고, 얼마나 기록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41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던 요아스 왕에 대한 기록은 성전 수축 딱 한가지만, 말씀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요아스 왕에 대하여서는, 퇴락한 성전을 고친 것 외에는 기억될 만한 것이 전혀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럿습니까?
처음에는 여호야다의 교훈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 난 다음에는, 자기맘에 즐거운 대로 행하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41년 긴 세월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기억하시는 것은 퇴락한 성전 고친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장수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억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달란트 받은 청지기로 살아서는 않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50년 100년의 삶을 살도록 주셨지만, 나중에 셈하실 때, 너에게서는 도무지 기억나는 것, 하나 없다고 하신다면, 그 인생은 장수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인생임 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중에 전도하는데, 어떤 60쯤 되신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겉모양은 너무 멋있게 생겼습니다. 마치 권사님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젊을때는 교회 반주도 하였지만, 이제 자기는 교회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 따라서, 절에 갔는데, 이제는 절에서 반주도 하고 극락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에 더 이상 전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한달란트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다 파묻어 버리고, 우상의 길로 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아스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환란속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교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수축하는 일을 할수 있도록 써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파묻어 버리고, 산당에 우상을 숭배하는 인생으로 41년간이나 보내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교회는 신앙훈련으로 퇴락한 공동체를 수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교우들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기쁨으로 주님의 자리에 참여하는 성도님다 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