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자 신명기 30장 14절 16절
2005.07.17 06:20:58 조회6726
신명기 30장 14절 16절 바라보자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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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박사는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분으로 유명한 과학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아이큐가 200이 넘는걸로 추측되지요.
그런 아인슈타인 박사가, 죽어서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이 오셔서 그런지 천사 셋이나 마중을 나왔다.
박사가 그중 한 천사에게 물었다. \"천사님은 아이큐가 얼마나 되지요?\" \"백 팔십인데요.\"
잘 됐군요. 저와 함께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즐겁게 토론하면 되겠군요.
박사가 두번째 천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천사님은 아이큐가 얼마나 되지요?
천사가 대답하기를 백삼십인데요.
뭐 그만하면 됩니다. \"그럼 저하고, 세계 경제에 대하여 토론하면 되겠군요\"
세번 째 천사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천사님은 아이큐가 얼마나 되지요?
세번 째 천사가 머뭇머뭇 거리고 대답하기를 자신은 부끄럽지만 칠십 인데요 라고 대답합니다..
박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웃으면대
\"그럼 저랑 한국 정치에 대해 토론하면 되겠군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마음은, 세상을 담아 내는 그릇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과학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과학 담아 냅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착한 세상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혼란스러운 우리사회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지도자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느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서양의 정치 격언에는 ‘투표를 할때는 귀는 닫고, 눈은 열어라’ 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치가들의 말을 듣지 말고, 그 마음과 경륜을 보라고 하는 말인것 같습니다.
말은 한때는 잘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말과 같지 않다면, 말한대로 행동하기는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경제를 살리는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은 선하게 살아야 되겠다고 하지만, 선함이 그 마음 안에 없다면, 선하게 살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첫째로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말씀을 입에 넣고, 말씀을 마음에 넣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늦게 결혼하는 친구에게 축전을 보내려 합니다.
“목사님, 결혼하는데 좋은 말씀이 없을까요?”
그럼 요한일서 4장 18절을 보내십시요..
요한일서 4:18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 \"
그리고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평서 성경을 잘 않도다 보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라니...요한복음이면 요한복음이지..요한일서라는것도 있을까? 생각하고
용감하게 “친구로부터 요한복음 4:18절”이라고 장절을 적어서 축전을 첬습니다.
결혼식장에서는 사회자가 축전을 받고 사회를 봅니다.
\"친구로부터 요한복음 4:18 이라는 축전이 왔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성경을 펴서 읽고는, 시부모와 하객들이 까무러 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8절 말씀은...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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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마음에 담으려면,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 있으면, 말씀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그러면 말을 하여도 성경말씀으로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말을 해도, 좋은말, 긍정적인말, 사람을 세우는 말..힘을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아침에 와이셨츠를 입다가 화를 냅니다.
아니 이 여름에 흰 화이셔츠를 어떻게 입고 나디나? 여자가 센스도 없게.....
아내가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직장에 도착했는데, 남편에게 문자멧세지가 옵니다.
여보 미안해요.
어릴때 가난해서, 흰와이셔츠 입는것이 부러웠어요.
우리 아버지는 흰 와이셔츠 입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남편에게 흰 와이셔츠 입히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런데 날씨도 더운데.. 내가 센스없이 흰와이셔스 고집해서 미안해요..
그러자 남편이 문자를 보냅니다.
아직도 나의 혈기가 죽지 못해미안하오
말과 행실과 생각이 아직도 상처를 주었으니 미안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은, 흰 예복을 예비해야 하는데...
앞으로 나는 흰 와이셔스만 입기로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더랍니다.
이렇게 부부간에도 뭐가 될려면, 손발이 이렇게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부부,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람은 문제가 하나도 않 일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는 똑같이 일어납니다.
다만, 그 일어나는 문제를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으로 금방 치유하고, 해결하고, 극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없고, 말씀이 없고, 그래서 내 자존심이 살아있는 가정은,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상처를 더욱 깊게 하고, 나중에는 마음속에, 흉한 흉터를 남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마음속에 말씀을 담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복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보는 곳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1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보아야 합니다. 복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은 보아도, 화를 보고, 사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옛날에 아이들에게는 일부러 막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엽고 좋은데도, 돼지니..돌쇠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니 좋으면 좋지, 왜 이런 않좋은 이름을 붙여줍니까?
그렇게 하여, 악한 것에게 감추어 지고, 나쁜 일들이 비켜 가도록 하려고, 막이름을 붙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막이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구약의 이름들의 뜻을 살펴 보면, 하나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세계인구에 0.25%에 불과하지만, 단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만 만하더라도 25%를 차지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면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값은 값이면,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 중에서, 생명과 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나가서 그리스도인은 같은 값이면, 예수님을 더 보려고 해야 합니다.
말씀을 더 보려고 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모든 것이 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있습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봅니다. 음식 맛을.. 본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손으로도 봅니다. 물건을 만져 ..본다..
피부로도 봅니다. 감촉을 느껴 본다..
귀로도 봅니다. 소리를 들어 본다..
사실 사람은 모든감각 기관으로 통하여 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자녀는 내자녀기에, 다른 아이들 보다, 더 멋잇게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 더 아름답게 보려고 합니다.
훈련기간이 끝나고 훈련소에서 퇴소식을 합니다.
가족들이 가서 고생한 아들을 격려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친구 아주머니들 한테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들....얼마나 늠늠한지 몰라.. 글쌔 행진하는데 보니까, 다른 군인들은 다 발이 틀이고, 우리 아들 한사람만 발이 맞데...라고, 아들 자랑을 하더랍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님이 바라 보려고 하는, 아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보십니다.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더 이쁘게 보시려고 하십니다.
더 아름답게 보시려고 하십니다.
사단이 말합니다.
욥에게는 이런 나쁜 면이 있습니다. 욥에게는 이런 실수한 것이 있습니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는 욥의 그런 모습이 안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옆에서는 자꾸만 그렇게 말해도, 오히려 욥의 이쁜 모습만, 사랑스러운 모습만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좋은 것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좋은 면, 우리 성도들의 좋은 면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저도 가끔씩은 다른 교회 성도님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다른 교회 성도들은 왠지 남 같습니다. 별로 정이 않갑니다.
별스럽게 보이고, 또 별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교인들은 하나같이 미남 미녀들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재일 점잖코, 재일 신앙도 좋은것 처럼 보입니다..
제 눈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좋은것만 보이도록, 아름다운 것만 보이도록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세상에 대하여서는 눈이 닫히고,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다른교회 성도들에게는 눈이 닫히고, 우리교회 성도들에게는 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생존하고, 번성하고 복을 받게 됩니다.
16절 말씀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이렇게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눈이 열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도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생존하고 번성하며, 땅에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복을 주시는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단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활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넘처나게 될 것입니다.
생명과 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활속에 예수님의 생명과 복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찬송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활속에 성령님의 나의 삶을 풍성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여름 장마에, 이러한 성도만이 누리는 즐거운 은혜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