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한계는 고린도 후서 10장 12절 18절
2005.08.28 05:51:29 조회6120
고린도 후서 10장 12절 18절 우리의 한계는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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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가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오시자 신나서 달려 나갑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할머니, 컴퓨터 가지고 오셨지요?\"
\"아, 가져왔지 누구 부탁인데..옛다!\" 그리고 할머니는 한 줌 콩을 손자에게 줍니다.
\"아니 할머니 이건 왠 콩이에요?\" 그러자 할머니가 빙그래 웃으면서 대답하더랍니다.
\"니가 콩부터, 콩부터, 가지고 오라고 해서, 할미가 콩부터 가지고 왔다..\"
그리고 콩을 손자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귀가 어두워, 컴퓨터 대신 콩을 주셔도, 손자손녀들은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할머니는 얼굴의 주름살도 졌습니다.
허리를 굽어 있습니다.
귀는 어둡습니다.
하지만 손자 손녀들은 그 어떤 미인 보다가도, 할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이 더 믿음이 갑니다.
귀먹어, 조용히 말씀하는 그 말씀이 더 사랑이 갑니다.
그래서 컴퓨터 대신 콩을 주어도 손자손녀들은 할머니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우리의 분량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은 최고를 향하여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가장 이름있는 가말리엘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공회에서 선임되어, 산헤드린의 전권대사가 되어 다메섹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릇듯,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인정받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그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는 로마 시민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이나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이렇게 독하게 성공을 향하여 달려갔을까요?
왜 이렇게 높아지려 했을까요?
왜 이렇게 많이 가지려 했을까요?
바울은 그전에는 자기자신 스스로 자기를 비교하고 판단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를 비교하고 판단할 때, 자기가 자랑스럽고, 자기 스스로 내가, 너무너무 맘에, 들고, 또 좋은 분 있으십니까?
글쎄 아마도 잘 없을 것 같습니다.
거울을 들여야 보면, 어떻습니까? 자기가 미워질 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작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배가 나왔을까?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팔자가 사나울까?
전승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은 젊어서 이미 머리가 빠져서,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였다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은 외모가 형편없어서, 보는 사람들이 없신 여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은 건강이 않좋아서, 간질이 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열심히, 최고를 향하여 달려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 만나고도 처음부터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하여서라도, 자신이 싫어 하는 자신의 모습... 육체의 가시를 없에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항상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가는, 그래서 항상 나를 괴롭게 하는,
이것을 없이해 주시면, 복음전도에 효과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하였습니다. 한번도 아니라 세 번씩이나 작심하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을 다닐때에 무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감으면, 한 줌씩 빠집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머리가 없는 전도사님이 위로합니다. 나도 다 겪었습니다. 아멘으로 감사하면 됩니다...
그런데....얼마뒤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아~ 가리마를 반대로 타면 되겠구나..
요즈음도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빠집니다,
이발소에 가니, 머리를 꾹꾹 눌러 주면 그래도, 좀 더디게 할수 있다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멘으로 받고 있습니다.
제가 머리카락이 빠지면,
빠지고 있는 다른 분들이 용기를 얻을 것이요, 또 완전히 빠지신 분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빠져도 아멘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기도하며 주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사도바울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미워하던 자신의 모습을 용납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여 주신 한계 안에서 된 일입니다. ”
또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은,
한계를 벗어나서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브라유”라는 소년이 아버지의 공방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송곳을 가지고 장난 치다가 그만 두눈을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브라유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깜깜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전 까지는 자기 맘대로 뛰어 다녔는데, 이제는 더듬 거리며 방안도 잘 다닐수 없게 되었습니다.
분노와 슬픔으로 성장한 브라유는 어느날,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자신을 눈멀게 한, 그 송곳을 다시 잡게 되었 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시각장애자들이 읽고 쓸수 있는 점자...브라유식 점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납하고,
기대로 바라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는 한계를 따라 더욱 위대하게 해 주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
예수님은 용사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가도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장군도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힘이들고, 배고플때, 기도하시면서 오래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가지신것 이상의 것을 하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지만 에수님은 공생에를 통하여, 오히려 우리를 향한 사랑을 사랑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모두 다, 능력입니다.
유명한 무디 목사님이 미국 상류층이 사는 동부의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한 사람이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저는 영문학 박사인데, 무디 목사님은 초등학교만 나오셨지요?
네..
그래서 제가 들어보니,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에는, 문법적으로 틀린곳이 24 군데가 있더군요.. 어떻게 문법적으로 24군데나 틀린 설교를 할수 있지요?
그러자 무디목사님이 대답하더랍니다.
저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문법적으로 24군데나 틀린 실력으로도,
힘들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박사님은, 완벽한 문장을 하실수 있으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도하셨나요?
예수님이 무디 목사님에게 주신 초등학교 졸업은, 예수님 안에서, 무디 목사님에게 큰 능력이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어린이들과 친하여서, 오히려 어린이들을 전도하며, 시작하여...
나중에는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볼때,
그래서, 우리교회도, 지금 이 김포상도교회가 되게 된 것이 은혜요,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김포상도교회가 김포상도교회가 되게 되었기 때문에,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소망을 붙잡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의 나 된것이 은혜요, 또 능력입니다.
지금 나를 사용하셔서, 주님은 놀라운 복음에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 에고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나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줄 아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 칭찬받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라이벌 의대생이 두 명 있었다고 합니다.
두 학생이 하루는 병원의 복도를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분명히 류마티스 관절염이야.”
그러자 다른 학생이 질세라 말합니다. “천만에, 저건 디스크가 틀림없어.”
서로 자기가 맞다고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 남자가 다가오더니 아주 힘겹게....
“저…화…화장…실이 어디지요?” 라고 묻더 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으로, 자기의 기쁨을 삼아서는 않되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좋아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으로 기뻐해서 않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준은 내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독 사람들은 훈장을 달고 다니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훈장을 10개나 20개나 양복 앞에 붙혀서, 철렁거리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의시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자, 그 많턴 훈장이 아무 쓸모가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양복 앞에 훈장들을 달고 다디면, 웃음거리가 되어 지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멋있는 자랑거리도,
하늘나라에 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열매, 의의 열매, 생명의 면류관은, 영롱하게 빛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로마서 12:3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것은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복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칭찬받기를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