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1절 7절 40일 광야의 자리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3월달이 시작 되었습니다.
3월 한달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도 철저하게 ‘십자가의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달이, 3월달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향하여 올라 가셨습니까?
우리가 오늘날도, 에덴동산의 자리에, 자꾸만 반복해서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여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행복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조건적으로 보면, 행복 할수 밖게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살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근심걱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살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적으로도 제일 건강하고, 제일 멋있는 상태입니다.
외적으로도 모든 만물을 다스리며 살아갑니다.
자, 아담과 하와가 그런 에덴 동산에 있었더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행복과 감사가 믿음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과 의심과 불신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찾아와서, 유혹을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처럼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처럼 선악을 알수 있게 되고, 하나님 처럼 될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어라, 선악과를 따먹어라...”
얼마나 말도 않되는 유혹입니까?
뭘 먹어서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는, 그 말 자체가, 벌써 거짓말이 아닐수 없습니다.
요즘도 비슷한 유혹을 하면, 아직까지도, 잘 넘어 갑니다.
시중에 보면, ‘총명탕’이라고 있습니다. 한번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름 자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학생들, 수험생들에게 좋습니다. “총~ 명~ 탕~”
뭘 먹어서 머리가 총명 해지면, 박스로 사놓고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책을 않보고, 공부를 않하는데, 총명탕을 마신다고, 머리가 좋아지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뭘 먹는다고,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유혹 그 자체가 벌써 거짓말 냄새가 풀~풀~나는데...
그런데 그 유혹에 넘어 갑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다는, 교만과 의심과 불신앙이 있을 때,
아담과 하와는 그 유혹을 받아들이고, 선악과를 먹어 버립니다.
이런 유혹에, 아담과 하와만 속은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교만과 의심과 불신앙 속에 빠지게 될때, 누구라도, 동일한 유혹을 받으면, 스스로 속게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시험의 자리에 찾아 오셨습니다.
1절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에 오르셔서, 멋있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자체도 대단한 고난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하여서도,
예수님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2절에 보면,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밤낮 금식,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을,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뭘 먹으면, 단번에 해결되고,...그런거 없습니다.
“뭘 그렇게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느냐? 쉽게 쉽게 하면 되지...”.그것 자체가 말도 않되는 유혹이 아닐수 없습니다.
30층 짜리 아파트를, 뭘 그렇게 기초를 깊게 파고,
뭘 그렇게 내진 설계를 철저하게 하고,
뭘 그렇게 어렵게 공사를 합니까? 그냥 설렁설렁 30층, 대충 쌓아 올리면 되지요..
얼마전에 뉴스에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통일거리를 조성하는데, 남한에 지지 않도록 고층아파트를 세우라고 하니까..
기술도 않되면서, 그냥 쌓아 올리면 되는줄 알고, 아무 생각없이... 쌓아 올리다가
결국 무너져서 300명이나 깔려 죽었다고 하지요..
30층 아파트를 지을려면, 30층을 올릴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됩니다.
30층을 견딜 수 있게, 기초를 깊게 파야 하고,
30층을 견딜 수 있게, 벽체의 튼튼하게 세워야 합니다.
모래성도 아니고, 아무 생각없이 올라가기만 하면, 어떻게 30층의 건물을 튼튼하게 지을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대속하는 십자가를, 어떻게 쉽게 질수 있습니까?
십자가는 제일 악독한 죄인이 달려서 죽는 형틀입니다.
십자가는 제일 무서운 저주의 자리입니다.
고통만 당한다고, 우리의 죄가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우리 대신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실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속죄의 제물, 화목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짐은 벗어지고, 우리에게는 구원의 빛이, 비치어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쉽게 감당할수 없는 중한 십자가 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찾아가서, 40일동안 밤낮 금식하며, 준비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금식하고 부르짖으며, 시험을 당하시며, 준비하시고, 또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40일 동안 매일 기도하자, 그리고 기도표를 나누어 드렸습니다만,
40일 동안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하루만 기도하면 되지, 40일동안이나 기도합니까?”
부활절 전,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부활의 큰 기쁨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의 제목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40일 아니라, 100일도 기도할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기도하면 될까요?”
“집사님께서, 마음에 확신이 드는날, 만큼 기도하십시요. 성경에는 40일 기도도 있고, 1백일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로, 일천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랫더니, 이 집사님이 대답합니다.
“목사님, 그럼 저는 1천번제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하여, 일천번 기도를 하였는데, 1천번이면 적은 날이 아닙니다. 거의 3년동안이나, 기도하게 됩니다.
자 이 집사님이...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까요? 못받았을까요?
기도의 제목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나서, “목사님..또 한가지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새로 일천번제를 또 시작 하겠습니다.”
축복의 길은, 가 본 사람만이 그 기쁨을 압니다.
은혜의 기쁨, 구원의 기쁨은, 가나 혼인잔치에 물 떠 온 하인만 알듯이,
받은 사람만 그 기쁨, 그 은혜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우리보다가 더 철저하게, 더 낮은자리, 더 고난의 자리에 찾아 가셨습니다.
이번 사순절은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셨던 광야를 기억하며, 40일 아니라, 30일도 괜찬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쫓아서 가면,
은혜의 예수님을, 내가 만날수 있습니다.
기도중에 만날수 있고, 일을 하다가도 만날수 있고,
이번 사순절에 예수님을......분명히 만날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6절,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연약한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2017년 작년에 작고한, ‘브래진 스키’라는 학자가, 마지막 유작으로 쓴 책이 있습니다.
스트래드직 비전. 직역하면, 적략적 비전 이란 책입니다.
그 책에는, 만약에 미국에 힘이 빠지면, 세계에서 수많은 나라중에, 정말로 피곤하고 곤란한 나라는 한국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사람들은, 3가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릅니다.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를 모르는 같다.고 쓰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수한, 바로 다음해에, 6.25 전쟁이 났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데,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싸움에서 이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강한척 합니다.
오히려 신념과, 지식과, 지혜가 대단한 척 합니다.
사탄이 40일 금식 기도하신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이 모두...똑같이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강하고 능하고 힘이있고...연약하지 않으니, 그 힘을 보이라, 그 능력을 보이라고, 시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강한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5:1 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강한자는, 그 강함을 보여서,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믿음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강한자는, 오히려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믿음이 약한자의 약점을 섬길 때,
믿음이 강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은, 그 믿음좋음을 보여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믿음이 않좋은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섬길 때,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은, 사탄에서 자랑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죄에서 구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을 사용하시려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악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 하나님의 아들의 강함,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보이라고 할 때,
일언지하게 거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절하시고,
사탄을 물리 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잘못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능을 잘못 사용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잘못 이해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잘못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사탄이 감이 어디,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 덤벼 들어, 한번 뽄때를 보여 주어야 되겠다.
그리고 돌을 떡으로 만들어 버리고,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 내리면,
나의 강한 능력을 보여 주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강함, 나의 능력, 나의 권세만 자랑하는...
내가 영광받아 버리고, 내가 높아지는 , 교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만은 나를 과신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나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태만은 나의 사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연약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 잡을때, 끌려가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릴때 온갖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로마군병들이 채찍으로 내리칠 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로마군인들이 못을 밖을 때, 피가 났습니다.
로마군인들이 창으로 찌를 때, 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무 권세도, 능력도 나타나는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에게서 연약하게 죽으셨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연약하게,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을 다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강한 능력을 보이려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않내려 오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않내려 오고, 온갖 고통과 조롱을 참으시면서, 끝까지 십자가 지시는.... 그 사실이...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십자가에서 않내려 오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침내, 우리의 죄짐은 풀어지고,
우리 앞에는, 구원의 길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강함은, 연약하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성자 되신 예수님의 한량없으신 능력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짐을 풀어주시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만왕의 왕, 만군의 주, 평화의 왕이.. 되심이, 십자가의 연약함 속에, 강하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이 좋을 때....., 믿음이 강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연약한 자를 섬겨....낼 때,
나의 강함, 나의 믿음좋음, 나의 은사와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깊은 은혜, 놀라운 응답은, 준비없이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은 십자가를 지시려고,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광야에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섬김을 이루기 보다는
내가 강하고, 내가 자랑하고, 내가 높임받게 될 수 있습니다.
사순절, 십자가의 여정을 쫓아서,
나는 십자가 뒤에 숨고
십자가의 섬김, 십자가의 사랑을 훈련하여
예수님만 높혀드리고, 예수님께 영광올려 드리는....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