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4장 7절 희망이 있습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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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달을 시작합니다.
2월달은 ‘믿음으로 희망을 여는 달’이 되겠습니다.
서두에 질문을 드려 봅니다.
‘올 한해를 희망적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절망적으로 보십니까?’ 라고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대답이 나올수 잇습니다.
학생의 자리,
부모님의 자리,
사업가의 자리, 직장인에 자리..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올 한해를 희망적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절망적으로 보십니까? 라고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에게 권면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욥은 고난과 절망 중에 있었습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기러던 양과 낙타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욥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욥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적 상황에서 있었습니다.
그러한 욥을 향하여, 소발은, “희망이 있다”라고 권면합니다.
소발은 희망에 대하여, 한 나무를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나무가 찍힐지라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데, 도끼에 찍혔습니다. 넘어졌습니다. 나무의 밑둥이만 남았습니다.
그 나무의 조건을 보면, 전혀 희망적이지 않는 나무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 나무가 희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무에서 다시 움이 나고, 연한가지게 계속 나와서,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게 되니까...그 나무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싹이 나고, 가지가 올라오는 한... 찍혔서 베임을 당하고, 넘어져도...희망이 있습니다.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생명이 있으면, 움이 나고 가지가 솟아납니다.
존 미어세이어 라고 하는 학자가 ‘강대국,국제정치의 비극’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교과서 처럼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저자에게 한국인에게 주는 글을 써 주십시요. 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 책서문에 한국인을 향하여 장문의 글을 써 주었습니다.
이 세계 역사를 보았을 때, 가장 슬픈역사를 가진 나라는, 단연 한국입니다.
한국과 폴란드는 세계에게 가장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존 미어세이어는, 한국을 세계최고의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있는, 가장 슬픈역사를 살아가야 하는 국가로 꼽았습니다.
듣고 보니, 우울합니다.
우리는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할, 운명을 타고 난 나라입니까?
성경속에서 가장 절망적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장면을 꼽을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소국입니다. 바벨론은 강대국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똘똘 뭉쳐서 한마음 한뜻으로 바벨론에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 결과 나라가 지리멸렬 하여, 혼란에 빠집니다.
그 틈을 노려 바벨론의 처들어 옵니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을 알고 슬퍼 합니다.
하지만 이때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들려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13 말씀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면, 희망이 없는 것 같지만
마찬가지라로,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 거룩한 씨가 남아 있어서,
그루터기 역할을 하여,
이스라엘은 다시 움이나고, 가지가 솟아나고,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씨가, 생명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루터기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신앙의 공식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날도, 거룩한 씨가 남아 있는 곳에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절망의 상황을 맞이해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가지가 솟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우리나라도에도 그래도 적용됩니다.
일제 식민지가 되어서, 우리나라가 찍히고 베임을 당하여 넘어졌습니다.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상황을 본다면, 절망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거룩한 씨가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전도를 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계시록을 1천독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백번 읽는 것도 쉬운일이 아닌데, 1천번을 읽다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만큼 하나님께 매어 달렸던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은, 바로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당하는 가운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예수님을 아는 학생들이 배출됩니다.
세상을 향하여, 예수믿는 사람들이 나아갑니다.
우리가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그렇지,
오늘날 상당수의 명문 대학교는, 우리 교단총회가 세운 대학들입니다.
연세대학, 이화여대, 서울여대, 숭실대, 한남대, 계명대, 한동대학교...등등..
고등학교는 일일이 셀수도 없습니다.
다 우리총회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바로 우리 교단입니다.
우리총회에서 병원도 많이 세웠습니다. 신촌 영동세브란스, 전주 기독병원, 대구 동산의료원...큰 병원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회속에서 선한 청지기가 되어 살아갈때에,
이론적으로 보면, 세계 최고의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서, 슬프게 살아가야 할것 같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작년 한해만 하더라도..
폴란드 보다가, 우리나라가 배나 더 잘 살게 되었습니다.
작년도 폴란드 1인당 GDP가, 만 2천불인데, 우리나라는 2만 7천불 입니다.
이론이 않맞습니다.
폴란드는 두개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고, 우리나라는 4개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폴란드가 우리보다 두배는 더 잘살아야 하는데, 거꾸로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두배나 더 잘사는 나라로 뒤집어 졌습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주위 4개의 강대국 중에,
중국, 러시아 보다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더 높습니다.
이제는 일본도 바싹 뛰쫓고 있습니다.
끼어있는 강대국 보다, 오히려 더 잘 사는 나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높혀 주셨습니다.
신명기 31:6 말씀합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우리에게, 거룩한 씨...생명이 있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놓지지 않고, 하나님께 메어 달리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나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절망적이라고, 자동적으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느냐?
아닙니다.
나에게 생명있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희망있는 믿음은 어떻게 시작하느냐?
손바닥 만한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이 되겠습니다. 2005년 4월달에, 광진구에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어린이 대공원에, 코끼리 세 마리가 탈출을 하여, 시내로 나왔습니다.
코끼리 3마리가 약속이나 한 듯이, 골목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식당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코끼리 3마리가 휘젖는 바람에 식탁도, 의자도, 밥그릇도 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어려운데, 코끼리가 행패를 부려서... 식당 문을 닫게 생겼습니다.
망연자실 큰 절망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발상을 하게 됩니다.
그 식당은, 수리를 위하여 영업을 중단하고, 완전히 ‘코끼리’로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식당 이름도, ‘코끼리 들어온 집’
식당 메뉴도, ‘코끼리 정식, 코끼리 특정식’
모든 걸 ‘코끼리’로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박이 났습니다.
이 집이 코끼리가 들어와서 난리가 난 그 집 맞이요?
이 자리가, 아기 코끼리가 앉아 있던 그 자리가 맞지요?
오히려 코끼로로, 장사 잘되는, 유명한 집이 되었습니다.
절망의 조건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희망의 조건은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절망을 향하여 걸어가지 않고, 희망을 향하여 걸어간다면,
그 사람은 희망이 이루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희망의 역사를 써내려간, 믿음의 성공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꼽으라면, 엘리야 선지자를 꼽지 않을수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김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삼년반 동안 가뭄을 내리십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불신앙과 가뭄의 땅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꿀수 있겠습니까?
엘리야 선지자는 차근차근, 한가지씩, 한가지씩 해결해 나갑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불신앙을 해결 하기로 합니다.
갈멜산에 올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불러서 대결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제단을 사르는 대결을 벌려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이깁니다.
그리고, 불신앙의 근원이 되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죽입니다.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였으니, 이제는 가뭄을 해결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제 가뭄을 멈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게 쉽게 되겠습니까?
가뭄을 그치고, 비가 내리도록 하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엘리야 선지자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완전히 몸을 구부려, 머리가 무릎사이에 들어가도록, 완전히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고..
열심히 기도 합니다.
한번, 두 번, 세번..... 일곱 번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희망과 성공과 은혜와 축복이, 정말 귀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쉽게 오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1등하기가 쉽습니까?
소문나는 음식점이 되기가 쉽습니까?
성공하고, 높아지고,
형통하고, 잘되는 것이 쉽습니까?
3년반 가뭄을 되돌려,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엘리야 선지자는 완전히 겸손한 자세로 낮추어...
일곱 번 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엘리야 선지자가 일곱 번, 기도하는데,
사환이 말합니다. “저기 먼 바다에,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 납니다.”
만약 그 대답이 없었다면, 엘리야 선지자는 일곱 번 아니라, 열일곱번, 칠십번 이라도, 기도하고 또 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희망을 향하여,
간절하게, 열정적으로 기도할때
엘리야는 저주의 가뭄을 멈추고, 은혜의 단비가 내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꾸고 싶다면,
근심을 형통으로 바꾸고 싶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다면,
응답의 구름이 일어나도록, 일곱 번, 아니라 열일곱번이라도 기도하는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사환이 손 같은 구름을 볼때에, 그 구름이 무엇인지..
사환은 도무지 몰랐습니다.
만약 사환이 손 같은 구름의 의미를 알았다면, “엘리야 선지자님, 이젠 됐습니다.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가뭄은 그치고... 비구름이 피어 오릅니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환은 그 손같은 구름이 응답인지, 비를 내리는 구름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손같은 작은 구름이 피어 오른다고만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알았습니다. 그 구름이 응답이고, 그 구름이 이스라엘의 3년반의 가뭄을 멈추고 큰 비가 내리도록 할 구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영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절망 가운데에도 희망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알아 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눈이 없는 사람은, 희망의 구름이 피어 올라도, 그것이 희망인줄 모릅니다.
응답의 구름이 피어 올라도, 그것이 응답인줄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수 있는 무기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말씀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다음 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만, 40일 동안, 구하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절망이 바뀌어 희망이 되고,
근심이 바뀌어 기쁨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절망의 조건이 있습니까? 희망의 조건도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믿음으로 나아가면, 절망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납니다.
이번 사순절에,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