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4절 17절 초대교회 신앙을 발견하자
2006.10.28 17:15:17 조회7247
로마서 1장 14절 17절 초대교회 신앙을 발견하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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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6위, 너 이러는 거 아니다
5위, 막말로..
4위, 까놓고 말해서
3위, 인간적으로
2위, 솔직히
1위, 진짜
혹시 이런말은 사용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또 주위에서, 이런말을 들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시대는 ‘진짜’, ‘솔직히’, 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믿음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여, 항상 조심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서, 사람은, 특히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라진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됩니다.
믿음의 사라진 가정은 병든 가정이 됩니다.
믿음의 사라진 사람은 병든 사람이 됩니다.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특별히 종교개혁 기념주일 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살아가던 1517년에도, 믿음이 없어, 세상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든 세상중에서도, 특별히 교회가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교황, 레오10세가 성베드로성당을 짓기 위하여, 면죄표를 팔았던 것입니다.
각 죄에 해당하는 면죄표를 , 마치 기차표나 버스표 같이, 꼭 사야,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선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50만원, 큰죄를 지은 사람은 5000만원.....
이 표가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선언을 하다보니, 모두가 이 천국행 면죄표를 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병든 로마가톨릭을 향하여,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선언문」을 붙여, 교황과 천주교회가 믿음의 병이들었다고, 회개를 촉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붙잡았던, 말씀을 통하여, 바른 신앙의 모습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빚진자의 신앙
14절 말씀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많은 책을 썼습니다. 루터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쓴 글자는 \' 우리 모두는 거지입니다.\' 라는 글자 입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만, 종교개혁의 말씀이 되었던, 로마서 1장 17절, 바로 앞에 있는 14절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빚진자의 신앙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강조합니다. \'나는 빚진 자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섞은 자에게나,......나는 빚진 자입니다.
사도바울이 무슨 큰 잘못을 하였길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는 것입니까?
로마서 13:8 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의 빚을 졌던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의 빚진자, 즉 \'빚진자의 신앙\'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말에, 은혜는 시냇물에 세기고, 원수는 바윗돌에 세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렇게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은 나의 심장에 세기고, 예수님께 ‘사랑의 빚진자’가 되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느날 비가오는 저녁에, 한 젊은 여자가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여기 목사님 없어요? 목사님이 깜짝 놀라 나옵니다. 누구세요...?
\"제가 세상에서, 너무나 억울하고, 또 죄도 짓고, 이제 자살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이 목사님이 말합니다. \"자매님...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여자분이 화를 냅니다. \"그런 소리 들으려 온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잠잠히 있다가 이야기 합니다. \" 저는 죄가 적어서 돌맹이라고 합시다.
자매님은 죄가 많고 원한이 많아서, 큰 바위돌이라고 합시다.
둘다 연못에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 여자분이 말합니다. \"둘다 가라 앉지요...\"
\" 네 맞습니다. 바윗돌은, 무거워서 먼저 가라 앉고, 돌맹이는 가벼워서 늦게 가라앉을지 모르지만... 둘다 연못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럿습니다...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똑같이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 이렇게 똑같이 지옥에 가라앉은 저와, 당신을, 예수님이 건져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이 여자분이 펑펑 눈물을 흘리면 마음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아무에게도 사랑의 빚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원망을 쏟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북한은 세계를 향하여, 원망을 쏟아내며, 국민들은 굶어 죽어도, 핵을 터트리면서, 건들면, 이판사판 다 죽는다고 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빚’을 지지 않고 사라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자녀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그물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아무리 높은 권력도, 명예도, 금력도, 사실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심을 하고 움켜잡아도, 길어야, 몇십년 밖게 가지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움켜 잡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오히려 욕심스럽고, 죄스러운 것들은 다, 불 못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서 있던, 나를 예수님께서는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천막장이로 살아가면서도 오히려 복음의 빚진자의 삶으로, 감사하며 살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16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그럿습니다. 금력이 없는 것이, 권력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헛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리섞게, 쫓아가는 것이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사도바울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귀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귀한지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의 빚진자로 살아가는 신앙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2. 복음의 능력을 믿는 신앙
어떤 교회에서,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말씀을 듣다가, 할머니 한분이, 눈물이 글썽 글썽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만,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맙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물어봅니다.
\"할머니, 오늘 설교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으셨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눈이 퉁퉁 불어서 말합니다..
\"목사님 .며칠 전에, 제가 오랬동안 키우던 염소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턱에 있는, 수염을 보니까, 자꾸만, 죽은, 그 염소 생각이 나서 ..
너무 아까워서.....그만 눈물이 나오지 뭐에요...\"
이 할머니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목사님 턱에, 수염 때문에, 염소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고 또 바르게 생활화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5절,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복음에는 분명히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의 능력을 분명히 믿고, 인정하고, 그래고 복음의 능력으로 살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로마천주교, 교황에 맞서서, 이 복음의 능력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초대교회 신앙을 회복하자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람들이 루터를 향하여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당신은 로마 교황이 무섭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일을 할수 있었습니까?\"
루터는 담담하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새벽에 2시간 꼭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덪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권력에 맞설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복음의 능력을 덧 입기에, 초대교회 신앙으로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할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복음의 능력을 덧 입기 위하여,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찬송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3 절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
얼마나 분명하고, 얼마나 명료한 신앙입니까?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게 합니까? 고난 당하면, 기도하지 않고, 근심합니다. 걱정합니다. 답답해 합니다.....
기도하지는 않고, 근심하고 걱정할때, 거기에 어떻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즐거우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지 않습니다. 내가 즐거워 하고 내가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즐거움의 방향도 하나님을 향하여, 고난도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복음으로 살아갈때...생활속에서는 어떠하든지 복음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3.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
17절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족보를 보면, 얼마나 화려한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큰 성을 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계를 잘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를 잘하여서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5장에는 셋의 족보가 나옵니다.
셋은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 동생으로, 아담의 계보를 이은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의 족보를 보면, 똑 같습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자녀들을 낳았으며,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심지어 가장 많이 장수하였다고 하는 므두셀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저 자식을 낳고, 장수하다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신앙의 사람들은, 자녀들을 셋, 넷, 할수만 있으면 많이 났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사람들이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자녀를 낳고 죽은것만 기록하였겠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축복하셨습니다.\"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렇기에, 믿음의 사람들도, 한 일이 많이 있겠지만,
성경이 주목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대로 살았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일을 하여도, 높이 올라가도, 하나님 앞에서는 큰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높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한것은, 하나님께서 축복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이 가장 귀하고, 크고, 존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 믿음의 계보를 기록할때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대로 살았다는 그 사실을 철저하게, 성경은 기록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높은 자리로, 세상의 명예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된 삶, 존귀한 삶이 아닙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것....복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귀한 삶이요, 복된 삶이요, 존귀한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못되 었을때, 로마 천주교의 교황이라 하더라도, 루터는, 분명하게 회개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다시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 갈 것을 강권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사건이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할, 존귀하고, 의로운 삶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복음의 빚진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때에,
존귀하고, 의롭고, 초대교회의 신앙이 회복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