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신앙 마태복음 20장 25절 28절
2006.09.30 20:03:30 조회5101
마태복음 20장 25절 28절 섬김의 신앙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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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총각 한명이, 결혼 소개소에 찾아 갔습니다.
직원이 말을 합니다. “여기에 결혼을 원하는 여자에 대하여 적으십시오”
이 노총각을 한참을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적기 시작합니다.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나만 사랑하고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입니다.
또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잘 돌보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요리 잘 하는 여자, 옷 사는데 돈 많이 않쓰는 여자, 부지런히 집안 청소를 잘 하는 여자,
마지막으로,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내 말을 철썩같이 믿어주는 여자입니다.”
이글을 본 결혼 소개소 직원이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총각으로 있는 겁니다.
오히려 어떤 남편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면, 금방 결혼 하게 될 것입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 감동이 있습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 보람이 있습니다.
이제, 이번 주간은 추석연휴로 보내게 됩니다. 가족들을 만나고, 또 모든 결실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 가을에 어떤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여러가지 목표와 결실이 있으시겠습니다만. 그러나 그 모든 계획하였던 것 위에, 섬김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섬김의 열매를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더욱이,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사실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기로 오셨다면, 섬김의 열매만큼 귀한 열매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섬김의 열매를 바라보며, 섬김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시편91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성도를 사랑하시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건저주시고, 높여주시고, 응답해주시고, 그리고 영화롭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복된 계획 입니까?
분명 하늘나라에서 우리 성도들은 생명의 면류과 상급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큰 자가 될 것입니다. 높은자, 영화로운자, 으뜸되는 자가 되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자, 으뜸되는 자, 높은 자, 그리고 영화롭게 되기 위하여서는.....
먼저....., 낮은자, 섬기는자 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죄속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서, 낮아 지셨습니다. 섬김의 자리에 앉으 셨습니다.
낮은 자리, 섬김의 자리에 계시는, 예수님께 나아 오려면, 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눈높이를 예수님의 자리로 낮추어야 합니다.
교만의 자리, 으뜸의 자리에서는, 낮은 자리에 계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셨던, 베들레헴 기념교회에의 정문은 너무나 낮게 만들어 졌습니다.
꼭 지난 여름수양회에 다녀왔던, 석류굴 입구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예수님이 나셨던 자리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섬김의 삶, 낮아지는 삶, 그리고 청지기의 신앙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시편 91편 말씀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내가 그를 높이리라. 내가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
어떤 높은자리에 있는 사람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곧 죽을텐데, 지옥에서 사자가 영접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지옥의 사자가 영~ 이상합니다. 얼마나 옷을 깨끗하게 잘 입었는지...
고개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며, 예절을 잘 지킵니다.
또 지옥에 가보니, 호텔 라운지를 닮아 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장식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한참 구경을 잘 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천국갈 준비를 하십시오....그런데 천국에는 데리고 가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이 높은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연습을 시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연습을 시킵니다.
이 높은사람이 화를 냅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천국가고 싶지 않소..... 지옥에는, 이런 것, 하나 않해도, 쉽게 갈수 있소....그러면서 천사를 쫓아버리고, 홀가분하게 지옥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가 보니, 지옥이 딴판입니다.
사방에 뜨거운 불못과 비명소리가 가득합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풍경입니다.
덜덜 떨면서, 사탄에게 묻습니다. “지난 번에는 지옥이 이렇지 않았는데요 ”
사탄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 아직도 광고를 믿는, 순진한 사람이 여기도 있군..
현지사정으로, 코스가 바뀌었으니.....당장 불못으로 들어가거라...\"
깜짝놀라, 잠에서 깨어나서...그 다음부터는 철저하게 섬김의 연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에 가장 큰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섬김의 신앙, 낮은 자, 청지기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천국에서는 높여 주시고, 으뜸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만 해도 좋은데, 거기에서 으뜸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천국에서, 높은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철저하게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환난에서 오히려 영화롭게 해주시고, 장수함으로, 이름으로 높여 주심으로, 구원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섬김의 사람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둘째, 섬김은 공동체적이요, 무조건 적입니다.
다시한번 26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너희중에’ 라는, 말씀을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섬김은, 교회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섬김은 남선교회, 여선교회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섬김은 우리 집에 있어야 합니다.
섬김은 부부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섬김은 공동체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섬기기 쉽습니다. 오히려 가까운데 있는 사람은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왜 가까운데 사람은 섬기기가 어렵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결점, 그 사람의 잘못, 그 사람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오다 보니,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고, 섬기지 못하게, 방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볼때에 섬길수 있게 됩니다.
부부는 서로 헌신하도록 보내어 졌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헌신하도록 보내어 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헌신하도록 보내어 졌습니다.
만약 그렇게 속을 썩이는 남편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집안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만약 그렇게 화나게 만드는, 아내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집안은...너무나 끔찍합니다.
만약 그렇게 화를 돋우는 자녀들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생 자녀들을 찾아서 다니며 눈물로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섬기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지 모릅니다.
그러나 섬김의 열매는 감동입니다.
섬김의 열매는 보람입니다.
평생 눈물로 기도하였는데, 자녀들이 부모님들의 기쁨이 될 때, 얼마나, 보람되고, 얼마나 감동이 있겠습니까?
평생 눈물로 기도하였는데, 남편이....“여보..그동안 너무 미안했지....나도 이제...교회갈게” 그러면 얼마나 감동이고,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어떤 가정법원에서, 판사가 묻습니다. \"어째서 이혼을 하려는 것입니까?\"
남편이 답답하다는 듯이 하소연 합니다. \"아내가 기어이, 침실에서 염소를 기르겠다는 겁니다...그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판사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염소 냄새가, 그렇게 고약하면, 창문을 열어 놓으면 어떨까요?\"
남편이 펄쩍 뛰면서 말합니다.
\"그건 않될 말입니다. 그럼 제가 키우는, 내 비둘기들이 다 날아가 버릴텐데요?\"
섬기지 못한 조건은, 사실 쌍무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섬기지 못할 조건을 찾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사람을 섬기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중에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람을 향하여,,,“ 이전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너희들” 이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건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원수같은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섬겨 주셨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이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 원수되었던 우리들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사, 그 막힌담을 허시고”
하나님께서, 원수되었던 우리들을 오히려 먼저 불러 주십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른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러도 그 사이에 담이 있습니다. 그 담까지 허시면서, 찾아오셔서, 섬겨 주십니다.
심지어는 죽기까지 섬겨 주십니다.
그래서 섬김은, 공동체적이요, 또한 조건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섬김이 있을때, 건강하게 됩니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섬기실 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섬기시는 곳에는 구원받는 새 생명의 역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섬김이 있는 가정에는,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힘이 넘칩니다.
섬김이 있는 교회도, 예수님이 권능과 역사하심이 넘치게 나타납니다.
섬김은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코이노니아, 와 디아코니아가 일어납니다.
코이노니아는 친교라는 뜻이고, 디아코니아는 봉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가 안으로 섬길때는 코이노니아가 일어나고, 밖으로 섬길때는 디아코니아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력있고, 역동적이고, 부흥하는 교회에는,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가 왕성하게 일어납니다.
작은 나무는 섬기려고 하여도 힘이 듭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입니다. 새가 와서 앉으면 잎이 떨어집니다. 다람쥐가 열매를 따먹으면, 가지가 부러집니다.
그러나 큰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새가 와서 지져겨도, 괜찮습니다. 다람쥐가 열매를 따먹어도 괜찬습니다.
큰 나무는 전혀 흔들림 없이, 그늘도 되어주고, 열매도 주면서, 많은 동물들을 살수 있도록 해 줍니다.
믿음이 작으면 섬기려고 하여도 금방 흔들립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큰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옆에 새처럼 시끄럽게 심한 말을 해도, 다람쥐 처럼 자꾸 와서 괴롭혀도, 그것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넉넉히 섬길수 있습니다.
섬김은, 믿음만큼 섬길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섬기는 사람은, 그만큼 건강한 믿음도 건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섬김이 있는 사람은, 가정은, 교회는, 나라는 건강한 나라입니다.
섬김이 없는 사람은, 가정은, 교회는 나라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섬김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보람과 감동이 있습니다. 더 나가서, 영혼구원이 일어나는 영적 사건이 섬김입니다.
기도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도와 말씀 만큼이나 중요한 영적 활동이, 또한 섬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시려고, 낮아지시고, 섬겨주셨던것 처럼,
성도들도 섬기려면, 눈 높이를 낮추어야 합니다.
옆에 계신 집사님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섬김으로, 활력있고, 건강하고, 복음의 역사가 충만한 삶을, 살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