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변하여 창세기 35장 6절 15절
2006.10.07 20:13:37 조회5391
창세기 35장 6절 15절 이름이 변하여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
즐거운 한가위 잘 보내셨습니까?
길이 막히고, 그리고 피곤하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하였던, 친척들을 만날 때, 얼마나 반갑습니까?
친척중에 어떤 분은, 얼굴이 너무 변하여 알아보기 힘든분도 있습니다.
또 친척중에 어떤 분은,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어떤 분인지, 위에 어른은 어떤분인지, 성품이나, 어릴적에 기억들을 떠올리면, 사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그런의미에서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기억되어야 할것입니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하겠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야곱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야곱은 좋은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전혀 이름처럼 살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영악하고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자 이러한 야곱이 오늘 말씀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1. 신앙의 이름을 잊어버린 야곱입니다.
얼마전 법원에서,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을 살펴본,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이름으로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김샌다, 나죽자, 김꼭지, 허방구, 임신용.
이름은 그 사람은 무형의 얼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붙혀 주었는지, 한편으로는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반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은 이름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을 보고, 좋은 새이름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하나님께서 붙혀주신 새이름입니다.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 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힘들때, 어려울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받은 이름입니다.
이 이름으로 받으면서, 야곱은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시간이 흐르고,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편안하게 되어지자,
야곱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구하여 주셨는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이름을 주셨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과는 상관없이, 세상에서 맘대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신앙과 관계없이 살아갑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야곱도 자기 힘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런 가정들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은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장가가고, 시집가고 난 다음에, 전혀, 신앙과는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이 보게 됩니다.
부모님은 기도하며 키웠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신앙을 모두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이 되어서, 만나게 되면, 완전히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축복하여 보낸 자식이, 야곱입니다.
야곱 스스로도 죽을 자리에서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살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믿음을 잊어버리고, 친척들을 잊어버리고 살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다 다를까... 큰 사고가 납니다. 자녀들이 사고를 저지릅니다.
막내딸이 사고를 저리르고, 아들들이 칼을들고 살인을 저지릅니다.
시작은 말다툼인데, 나중에는 너무나 큰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뭐 난리가 났습니다.
주위에 족속들이 피에는 피로,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될 때, 그제서야, 야곱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품안에서 있을때는, 그것이 얼마나 복된것인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것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맘대로, 살아갈때에, 자녀들이 큰 사고를 저지를때에...
그래서 이제 멸망의 자리에 서고보니, 하나님의 품안이 얼마나 귀한줄, 깨닫게 되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옛날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던, 믿음의 고향으로 찾아갑니다.
6절7절 말씀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그래서 세상고향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믿음의 고향이 더 중요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신앙의 이름을 기억하는 야곱입니다.
요사이 ‘유산소 운동’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땀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산소를 섭취하여, 노폐물을 제거하고, 지방을 분해하는 운동이 바로 유산소 운동입니다.
유산소 운동은 땀이 흐른다고 그만두면 않되고, 충분히 해야 지방이 분해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걷기를 하더라도, 30분 정도, 1시간 정도 충분히 걸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하였다고, 효과 있는것 같다고 그만두면 않되고, 꾸준히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지방이 쌓이지 않고, 분해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건강을 촉진시키는, 신앙의 유산소 운동도 있습니다.
기도, 말씀, 회개, 섬김, 봉사 등이 되겠습니다.
할때, 효과가 있다고 그만두면 않됩니다. 충분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야곱은 이 ‘신앙의 유산소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뜨겁게 은혜받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은혜인가? 반복하여 기도하고, 반복하여, 회개하여,
노폐물인 죄는, 예수님 보혈로, 분해시겨서 내보내고,
말씀과 찬송으로 충만해야 될텐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번 은혜는 받았지만, 건강한 믿음생활이 없다가 보니, 곧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생활합니다.
더 이상 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 전체가 죄로 가득차도, 도무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어떤 코끼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미 한 마리가, 등산을 한다고 가다가, 코끼리 배 위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코끼리가 가려워서, 잠에서 깨어나서 말합니다.
“개미야, 너무, 무겁워... 내 배에서 내려가면 않되겠니”
코끼리의 말을 들은 개미가 갑자기, 고개에 힘이들어갑니다. 거드름을 피웁니다.
그러다 개미가 앞발을 번쩍 치켜들면서 소리쳤다고 합니다.
“너 앞으로 까불지마, 까불면, 이 발로, 널 밟아 죽일꺼야”
그러자 이 광경을 보던 하루살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답니다.
“세상에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보겠군”
신앙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죄에 마비가 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지금 잘 되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반복해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찬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지만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잘 모르지만, 죄와 멸망의 상황앞에 서게 되었을때, 믿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믿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안에 있던, 이방신상을 버렸씁니다. 집안에 있던, 이방의 풍습을 버렸습니다.
정결하게 하여, 옷을 바꾸어 입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나님, 지금 내가 영적으로 병들었습니다.
믿음의 병들때, 생각이 병들고, 생각이 병들때, 생활이, 가정이, 모든일이 병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고쳐 주시옵소서...
그럴때, 하나님 나타나십니다. 9절 10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그래서 사실 믿음의 이름을 귀하게 여길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름에 복이 있고, 그 이름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얼마나 귀한 이름입니다.
성도....얼마나 귀한 이름입니다.
집사....하나님 집의 청지기란 이름이 아닙니까?
권사, 안수집사..... 하나님의 권능과 축복이 들어있는 이름들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할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사오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성도, 집사, 권사, 안수집사가 불러주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응답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러주셨으면, 만나주십니다.
전능의 하나님으로 만나 주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나주십니다.
‘콘스탄틴’이 ‘밀비안’이라는 다리를 두고, ‘막센티우스’와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투에서 이기면, 승리자가 됩니다.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패하면 반역자가 됩니다.
‘콘스탄틴’은 밤새 초조해하며, 두려워 하다가, 어머니 ‘헬레나’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다른 ‘밀비안 다리’를 앞에두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기도중에 하늘에서 십자가가 나타나며, 음성이 들립니다. “이 이름으로 승리하리라”
그리고 이름이 나타납니다. “예수그리스도”
깜짝놀란 콘스탄틴이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모든 깃발, 모든 방폐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겨라..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뜻하는 ‘로 익스’를 세기고, 콘스탄틴부대는 출정합니다.
전투 결과, 적장 ‘막센티우스’는 밀비안 다리에서 강으로 떨어져 죽고, 정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앞에우고 나갔던, ‘콘스탄틴’이 승리하여 로마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되자말자, 그때까지 있었던, 로마의 모든 우상을 폐하고, 바로, 기독교로, 로마의 국교로 정한다는 포고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313년 콘스탄틴황제의 로마 기독교 공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름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야곱
15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세상 사람은 생각하여도, 근심스러운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은 살아도, 않되는 것만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흔히, 내 팔자야...그리고 신세타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만, 그러나 먼저 믿음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회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야곱이 회개하고, 변하여, 이스라엘로 살아갈 때, 생활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예배중심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주시는 곳에서, 돌기둥을 세우고, 예배를 드립니다.
또 생활이, 믿음이 중심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이름을 붙이는데,
하나님께 은혜받은 것을 생각하며, ‘벧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야곱은 그가 가는 곳에 이름을 붙이는데, 믿음의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곳은 내가, 기도하던 자리...
이곳은 내가, 응답받은 자리..
이곳은 내가, 말씀보던 자리..
이곳은 내가, 찬송하던 자리...
우리 성도님들의 생활의 자리도, 야곱처럼 변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던 야곱,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던 야곱,
그래서 삶의 모든 자리가 신앙의 자리로 바뀌게 되자...
야곱의 삶에 변화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름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송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인 야곱이 신앙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자녀들이 각자 하나님의 약속위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평안한 가운데, 각자 터전을 잡고, 건실하게 살아갑니다.
더욱이, 한자녀도 잘못되는 일 없이, 야곱의 12자녀 모두 잘 되어, 이스라엘은 민족이 되고, 그 아들들은 12지파가 되는 축복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소 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노폐물과 같은 것들은 배출되하,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신앙의 이름위에서...
야곱과 같은 축복과 신앙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