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첨을 맞추어서 창세기 13장 8절 18절
2006.09.23 20:07:40 조회5225
창세기 13장 8절 18절 초첨을 맞추어서..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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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가나 살아갈 때에, 한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나 자신일수도 있습니다.
또는 자녀일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일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사람에게는, 각자 삶의 초점이, 한가지씩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초점은 삶의 기준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그 기준에 따라서, 사람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나의 삶은, 무엇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십니까?
나의 삶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는, 서로 다른 삶의 초점을 가진,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어 살았던 아브라함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았던 롯입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은, 그 삶이 지향하는 초점 만큼이나, 그 결과도 분명하게, 차이가 나게 되어 집니다.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에서 살게 되었지만, 오히려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롯은, 풍요로운 땅을 선택하였지만, 실패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사람의 차이점한 단 한가지입니다. 삶이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때 그 삶이 복되고, 귀한 삶이 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1. 기다릴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아저씨와 조카 사이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길을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그러한 아브라함을 따라 나선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롯은 기다릴줄 몰랐습니다. 계산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 잘되어, 이제 땅을 서로 나누게 되었을때...아브라함이 말합니다.
9절 말씀,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자 그럴때, 조카라면, 아저씨에게 양보하는 것이 겸양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롯은 사리에 밝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양보란 없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장에 살펴보니, 동쪽이 더 좋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보니, 너무나 풍족하고, 아름답습니다.
롯은 바로 이야기 합니다. “ 네 저 풍족한 동쪽땅, 소돔과 고모라 땅을 제가 하겠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결정입니까? 좋은 땅, 물이 풍성한 땅...그 땅에서 살면, 더 풍족하고, 부요해 질수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결정입니까?
그러나 결과는, 롯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은 나중에 어떤 땅이 되고 맙니까? 죄로 가득찬 땅이 되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유황불로, 소금바다가 되어 버립니다.
롯은 겨우 목숨만 건져서 나오게 됩니다.
롯의 시작과 계획은 좋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멸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단순간, 잘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단순간, 죄가운데에서 멸망하는 모습을 또한 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지금 내가 척박한 땅에 서 있다 할 지라도, 오히려 믿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 하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39편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 시리이다“
나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깜깜하여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길을 잃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길을 잃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복된 길, 은혜의 길, 진리에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
척박한 땅과 풍요롭게 보이는 땅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27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영국이 낳은 유명한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 핍박을 받아, 옥게 갖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눅눅하고, 너무나 고생스럽습니다.
어느 날 옥사의 장이, 번연 목사님께 와서 말합니다. “고생이 심하시지요.. 잠깐 가족들을 뵙고 오세요..”
번연목사님은 너무나 감사해서, 감옥을 나서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옥사장이 묻습니다. “아니 목사님, 왜 돌아오셨어요”
“네...호의는 고마우나,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시간도 않되어, 왕이 갑자기 감옥을 시찰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번연 목사님을 찾아서, 한참동안 논쟁을 하고 돌아 갑니다.
왕이 돌아가자, 옥사장 가슴을 쓸어내리고, 와서 고개를 숙입니다.
“목사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셔서,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목사님께, 언제 가라,마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사님 가고 싶을때, 가시고, 오고 싶을때 오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2.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사리에 밝은 조카 롯이, 좋은 땅을 택하여서,
아브라함은 어쩔 수 없이, 척박한 땅에 택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도, 이스라엘 땅을 보면, 얼마나 척박한지 모릅니다... 요단강의 물을 끌어오지 않으면,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땅이 이스라엘 땅입니다.
자 이런 땅을 차지하게 된, 아브라함은, 왜 마음속에 서운함이 없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하였을 것입니다. 또 답답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아멘으로 받고, 말씀 그대로 믿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이 후에라도...
아브라함이, 자신의 땅이 척박하다고 불평하는 적이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보며, 섭섭해 하는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땅이, 좋은 땅이 되고, 복의 땅이 된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고 살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커다란 배가 고장이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장이 주저주저 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내리도록 합니다.
일본사람을 보고 선장이 말합니다.
\"당신이 뛰어내리면 세계최초요\" 그러자 일본사람이 선뜻 구명복을 입고 뛰어내립니다.
미국사람을 보고 선장이 말합니다.
\"소련사람이 먼저 뛰어내렸소\" 그러자 미국사람이 얼른 구명복을 입고 뛰어 내립니다.
영국사람을 보고 선장이 말합니다.
\"지금 뛰어내리면 신사요\" 그러자 영국사람은 웃으면서 뛰어내립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선장에 말을 어떻게 믿을수 있느냐고, 하나도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그때 마침 한국에 대해 잘아는 부선장이, 나타나 소리칩니다.
\"한국분들 들으십시오...지금 뛰어내리는 것까지만, 공짜입니다..빨리 뛰어내리세요..\"
그러자 모두, 앞다투어, 뛰어내렸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제 개장한, 이마트 개장 광고는 열심히 듣지만, 하나님 말씀에는 귀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는 당연히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멘으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텔레비전 보다도, 상품정보 보다도, 더 정확하고, 온전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과, 삶과 영혼과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은혜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너무나 놀라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롯은 풍족한 땅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롯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갔습니다.
롯의 삶의 초점은, 성공이요, 세상 부귀와, 열락과 권세요..명예였습니다...
그럴때 롯은 진노의 유황불 속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땅은 척박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삶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땅이 복된 땅이 될 것이라, 말씀하실 때에, 그런줄로 알고, 아멘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럴때, 그 땅은 정말 복된 땅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유럽에서는, 이스라엘 채소와 과일이, 달고 맛이 있어서 인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해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또 땅에는 무기질이 풍부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만 주면, 뜨거운 햇빛과 풍부한 무기질 때문에, 과일이 달게, 잘~ 익는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펌프로, 요단강의 물을 끌어다가, 농장에다 주기 때문에,
이스라엘 과일과 채소가, 유럽에서는 그렇게 인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분명히 이루십니다.
믿음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3.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18절 말씀입니다.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달이 자꾸만 날 따라와요. 왜 그래요?”
그러면 엄마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그래.. 너가~ 예뻐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요즈음 바쁜 엄마들은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엄마, 달이 자꾸만 날 따라와요. 왜 그래요?”
“너 따라오는 거 아냐. 신경 쓰지마..”
한가지 더 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엄마, 달이 자꾸만 날 따라와요. 왜 그래요?”
“포톤케논에서 떨어지는 폭탄이야. 피해”
게임으로 살아가면, 모든 것이 게임으로 풀립니다.
바쁘게 살아가면, 모든 것이 다 바빠지고, 경황이 없어 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예배드리며 살아가기에, 모든 생활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삶을 살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옮겨 도착하면, 제일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주시는 영적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속에서, 나의 맘속에, 사랑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속에서, 나의 영에,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속에서, 나의 삶에, 참 용서와 참 위로 베풀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삶의 초점’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향하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세상적으로는 실패한것 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배에는 항상 성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예배에 성공할 때, 신앙생활이 성공하고, 신앙생활이 성공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성공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예배에 성공하고, 예배에 승리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75살 때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때도 갈바를 알지못하고, 근심중에 있었습니다.
또 의지하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 갈때도, 아브라함은 척박한 곳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삶에 분명한 것, 한가지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인도하셨습니다. 믿음의 길로, 은혜의 길로, 복된 길로, 풍성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오늘도, 나를, 나의 가정을, 우리 교회를 인도하려 하십니다.
나의 삶은 무엇을 향하여 초점이 맞추어 져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삶을 초점을 맞추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