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35절 38절 성탄절을 바라보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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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넷째 주일입니다. 내일 모래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이발을 하였습니다. 또, 안경도 바꾸었습니다.
아기예수님을 모시고, 새롭게 출발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새 마음, 새 뜻으로 출발하기 위하여, 확~ 바꾸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아기예수님을 바라보자’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탄절 그러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 오르십니까?
“성탄절은 공휴일이야~”그리고 평범한 공휴일의 하나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성탄절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날”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아기 예수님 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에 아기예수님을 바라보고,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아기예수님과 함께, 새 출발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동정녀 마리아가 나오고 있습니다.
27절에는, 동정녀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을 하게 된 처녀, 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루는 천사가 찾아와서 말합니다.
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자~ 천사에게 이 말씀을 전해 들을 때, 동정녀 마리아는 마음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지금 요셉과 약혼을 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결혼식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천사가 말하기를, 성령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때, 한 아들을 잉태하게 되는데,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게 될 것이다. ~ 라고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즉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기예수님을 유다백성들 700년 동안 기다렸던 분입니다.
구원자입니다. 메시야입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렇게 기다렸던 아기예수님이 드디어 나를 통하여, 태어나는 구나...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정녀 마리아가 기뻐할수만 있는 일인가?
그 일은 분명히, 너무나 귀하고 은혜로운 일이지만,
동정녀 마리아는 약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면,
미래에 남편 될, 요셉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남편은 마음이 너그러워 넘어간다 손 치더라도, 마을에 소문이 다~ 날것입니다.
“건너 마을에, 요셉은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와 결혼을 한단다~”
너무너무 복잡한 상황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 이런 상반된, 두가지 상황의 중심에 설 때, 동정녀 마리아는, 마음이 복잡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700년 동안 기다렸던 아기예수님이 나를 통하여, 드디어.. 이제 세상에 태어 나시는 구나.
나는 요셉과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아기예수님의 태어나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와 비슷한 자리에서, 성탄절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은혜롭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잡한 문제를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사업의 문제,..
성탄절이 되었지만, 성탄절에만 신경을 쓸수 없습니다.
갖가지 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 성탄절을 맞이 합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근심을 하면서 성탄절을 보내게 됩니다.
한번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내가 만약, 동정녀 마리아, 라면, 어느 문제를 더 우선시 하시 겠습니까?
아기 예수님이, 태어 난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내가 곧 결혼 한다는 것이 더 중요 합니까?
마리아는 이 질문에, 설수 밖게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가 태어나면, 민족적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쁨이요, 개인적으로도 말할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곧 결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반대로 근심하고 걱정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으니
나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이 사실을 감추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마리아는 이 두가지 질문을 만날 때, 상반된 두가지 상황에 설 때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선택하게 되었는지...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아기예수님이 태어나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전하여준 소식을 들을 때, ‘아기예수님이 태어나심을 아멘~’으로 받아 드렸던 것입니다.
37절에 천사가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절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즉, 동정녀 마리아는, ‘나는 하나님의 여종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아기예수님이 나에게서 태어나시면,
그로 인하여, 인간적으로 발생될 어려움 오해들이, 만약에 있다 하여도,
메시야가 태어나는 일인데, 내가 감당하고, 내가 감내하고, 내가 겪겠습니다.
나는 괜찬으니까, 메시야를 나에게서 태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선하게, 아멘~으로, 그렇게 이루어 지기를, 화답 하였습니다.
믿음이 좋다, 믿음이 나쁘다 는 것을, 간단하게 판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믿음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변곡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앞과 뒤가, 확~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게 바뀔때도 있고, 나쁘게 바뀔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보면, 통쾌하고 시원한 장명이 있는가? 하면, 땅을 치며 아쉬워 하게 되는 장면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고려말~조선초기에는,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만주를 개척 합니다.
군사를 보내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국토를 늘려 나갑니다.
고려말, 윤관장군 때에, 이야기를 보니까,
우리가 북쪽으로 진출하니까...여진족들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습을 합니다.
윤관 부대가 포위를 당해서,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자 이 소식을 들을 때, 주위에 있던, 다른 군사들이, 결사적으로 험한 산을 넘고 달려와서,
유관 부대를 포위한 여진족을 오히려 공격하여서, 여진족을 이기고 대승을 합니다.
이 장면에서 글쓴이가 설명글을 달았습니다.
정예부대, 안정예부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안정예부내는,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먼저 내~뺀다고 합니다.
내가 공격받은 것도 아닌데, 남에 일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안정예부대는 적이 처들어 왔다는 소식을 들어면, 알아서 조용히 뒤로 도망을 간답니다.
반대로 정예부대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주위에 부대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히려 달려가서 적과 맞서 싸웁니다.
이런 정예부대의 기풍이 있어서, 고려말부터, 조선초기에는, 100여년간, 압록강, 두만강으로 국토를 넓혀 갔다고 합니다.
믿음에도 정예 믿음이 있고, 않정예 믿음이 있습니다.
않정예 믿음은, 힘든 사명,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내~ 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어려운 사명, 중요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작전상 후퇴를 합니다.
반대로 정예 믿음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명,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히려 달려가서 힘을 보탭니다. 적극 도와 줍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동정녀 마리아는, 정예 믿음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천사가, 마리를 통항여 아기예수님이 태어날 것이라 할때에,
않정예 믿음이라면, 거부하였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누구 신세 망칠 일이 있습니까?
결혼도 않했는데 아기를 잉태하면,...
싫어요, 다른 사람 알아 보시고, 저는 빼 주십시요.
만약, 그렇게 되어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다면,
구속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른사람을 통하여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났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체의 어머니로써 영예를 얻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을 보면, 마리아는 정예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려운 사명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멘, 나는 여종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시옵소서”
마리아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구속사의 변곡점이 되어, 아기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세상에 소망이 비취는, 대~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은 성탄절을 큰 믿음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공휴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오니, 나의 믿음을 통하여,
이번 성탄절이 은혜 충만한 성탄절이 되게 하시고,
아기예수님을 통하여, 좋은 일이 가득하게..
큰변화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정예믿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성탄절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유머입니다.
어떤 아저씨가 평소에, 항상 아쉬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도, 멋있게 꾸미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을 해 보았으면....
그런데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당장 보석집에 가서, 아내를 위하여, 금 목걸이, 금 반지를 샀습니다.
양장점에 가서, 아내를 위하여 최고급 명품 옷을 샀습니다.
아내가, 금목걸이, 금반지, 최고급 명품을 옷을 입고, 망년회에 갔습니다.
아저씨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사람 너무 멋있지요. 우리 집사람 한테... 않어울리는게 있으면, 말해 보세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않어울립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성탄절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아기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사실에 어울리는, ‘믿음의 시야’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고 하니...
성탄절 이전과 성탄절 이후는, 구속사의 대변화가 발행하게 됩니다.
구원의 빛이 비췹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지 못하고, 성탄절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이는, 성탄절에... 기대하는 선물을 못받으면, 속상해 합니다.
어린이는 고차원적인 주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완성되지 못하다 보니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을 설명해 주어도, 다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써 이해하기 쉬운 부분을, 이해하다 보니,
성탄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의 사건 보다가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먼더 떠올리고, 성탄절 선물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면, 생각이 깊어집니다. 넓어집니다.
성탄절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 에는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볼때에, 겉모습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 의미와 예수님의 본질을 바라보니까..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전문적 식견과 지식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의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원인과 치료의 방법을 바라보게 됩니다.
“간이 않좋으시군요.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면 됩니다.”
그 속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부동산을 하는 분은, 땅을 그냥 보지 않습니다.
그 땅의 지목과, 미래의 가치를 가지고, 그땅을 봅니다.
시야가 틀린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넓게 봅니다. 대범하게 봅니다.
어떤 사람은 좁게 봅니다. 옹졸하게 봅니다.
그 사람이 큰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보는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큰 사람은, 크게 봅니다. 대범하게 봅니다.
않큰사람은, 좁게 봅니다. 옹졸하게 봅니다.
보는 것은,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큰 사람은, 말도 대범하게 말하고, 행동도 대범하게 행동하다 보니,
대범하게 넓게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절, 아기예수님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 하는 것은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고, 생활로 연결 됩니다.
적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적은 믿음의 말을 하게 됩니다.
적은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적은 믿음의 일을 하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성탄절에 아기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냥보고, 그냥 넘어가서는 않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고,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능력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그러면서 큰 은혜로, 큰 믿음의 눈으로 성탄절을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하고,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믿음으로 아기예수님의 나심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시야를 가지고, 성탄절을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자 이런 믿음으로, 이번 성탄절을 보내어, 아기예수님과 은혜롭게 출발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