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50절 사명으로 감사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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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달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11월달은 ‘감사함으로 영광돌리는 달’로 정하였는데, 오늘은 전체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통하여,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 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감사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감사해야 하는가? 나의 생활속에 일로 인하여 감사할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통하여 감사하고,
그 사명으로...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 때 마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 졌습니다.
노아때가 그랬고...
아브라함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쫓아 갈 때, 그러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본다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돈이라는 가치로 치환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기쁨과 자랑을 쫓아서 살아갑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 후서 3장 1절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자 이런 때 일수록,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1. 교회는 구별된 주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속에서도, 거룩한 생활을 살아갈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세상속에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자 이 사실은, 창세기 7장에 노아의 방주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 때,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려... 하십니다.
이때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만들게 하십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방주를 통하여 살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가까이 올 때,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문을 활짝 여십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각종 동물들이 그 방주로 모여 듭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로 모여 듭니다.
그래서 그 동물들은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살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당시에 사람들은, 노아를 손가락질 합니다. 방주를 보고 비웃습니다.
“요즈음 시대에 방주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는데..누가 믿을 사람이 있습니까?
방주에 들어가서 따뿐하게 있기 보다는..카바레...나이트바~..재미있는 곳에 가겠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한사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될 때, 방주의 문이 쿵~하고...닫힙니다.
그리고 하늘의 샘과 땅의 샘이 터지면서, 물이 쏟아져서 모두 멸망하고, 방주의 들어간 정결한 짐승과 노아의 가정은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들어오십시요.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럴 때, 세상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요즈음 교회가 문제야~
요즈음 시대에 교회는 필요없습니다. 다 없어져야 됩니다.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는다는데...너무 독단입니다. 착하게 살면, 아무나 구원받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결국 교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정결하여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교회로 들어 갑니다.
그럴 때, 때가 되면, 일곱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교회의 문이 닫히고, 심판의 시계가 움직이는 때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천국잔치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바로 이 자리에 계신..한분 한분의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것은, 구원의 방주에는 들어왔지만, 아직 심판의 때가 이르지 않은고로, 믿음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을 놓고 왔다고, 다시, 도로...세상으로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앉은 자리가, 비좁고 불편하다고,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눅 9:61-62 에 말씀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몸은, 구원의 방주에 들어 왔지만, 마음은 세상에 놓고 왔습니다.
요즈음 단풍 구경이 좋은데, 단풍 구경을 가야 되겠습니다.
친구들 하고 낚씨 가면 좋은데, 낚씨를 가야 되겠습니다.
결국에는, 도로 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과 되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또, 어떤 사람은, 구원의 방주에 들어 왔지만, 자꾸 옆에 사람, 앞에 사람, 뒤에 사람을 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 보기 보다는, 옆사람을 바라 봅니다. 내가 앉은 자리를 바라 봅니다.
그러면서 불평을 합니다.
저 사람의 자리는, 내 자리 보다가 더 좋은 것 같에요..
저 사람은 믿음도 않좋은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속상 합니다.
요한복음 21:22 에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불평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더 좋아 하시는 것 같에요.
예수님은.... 요한을 더 높혀 주시는 것 같에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때까지, 요한을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교회에서 예수님을 않보고, 사람을 볼 때, 불평불만과 시험에 들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거룩하게 부름을 받고, 구원의 방주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구원의 방주에 타야 하겠습니다. 도로 나가면 않되겠습니다.
또한, 구원의 방주에 들어왔는데, 예수님을 노치고 사람을 붙잡아...불평불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않되겠습니다.
2. 교회는 흠이 없고 정결해진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UN에서 회의를 합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의 대표들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자~ 200여개국이나 되니까... 각나라 대표들이, 한마디로, 한마디로... 자기나라를 소개하기로 합시다.
영국 대표가 말합니다. 영국 신사.
돌일 대표가 말합니다. 독일 성실
일본 대표가 말합니다. 일본 친철
미국 대표가 말합니다. 미국 개척정신..
그러자 바로, 한국대표가 불평을 합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네글자나 말하고... 왜그래요.. 좀 빨리빨리 소개 합시다.~”
그래서 미국대표가 “미안합니다.” 그리고 들어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구원의 방주에 불러 주시고,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도간에 서로, 화목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17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사도바울은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받았다고 하니까..그러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주신 분이 누구 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예수님께 사명을 받았노라’고, 받은 사명의 성격을 고백 하였습니다.
사명을, 내가 자의로 하다고 할 때, 문제가 발생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의로 한다고 할때, 기분 않좋으면 않할수도 있습니다. 다른 일이 생기면 다음에 해야지...그러고 망각 하기도 합니다.
사명을 주신분을 잊어버릴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씀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초대교회에 입교를 하였습니다.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점~ 중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파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선’이라고 하는말은 깨뜨릴 파, 배선...배가 파도나 장애물을 만나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배에는 중요한 직위가 있습니다. 갑판장, 항해사
갑판장은 갑판을 살피고, 관리하고 책임을 집니다.
항해사는 배가 가는 길을 살피고,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갑판장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사명을 미루어 버리면 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항해사가 배가 가는 항로를 살피지 않고, 사명을 미루어 버리면, 배가 항로에서 벗어납니다.
암초가 있는 위험한 곳으로 배가 가기 시작합니다.
기계가 고장이 나서 조종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장나고 위험한 곳으로 가면, 배는 파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초대교회...그러니까 구원의 방주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중요한 사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사명을 주신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명을 자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사명을 게을리하고 버립니다.
그럴 때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초대교회는 큰 위험에 끼치고, 스스로는 믿음에 파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신앙지도를 밭고,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를 반면교사로 삼고,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 사명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나 혼자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타고 있는 구원의 방주를, 잘 가게 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여,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믿음의 아들이라는 칭찬을 받고, 모범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혼자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밥도 먹여 주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기저귀도 갈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게 되면, 스스로 모든 일을 하게 됩니다.
누가 먹여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밥을 잘 먹습니다.
누가 입혀주지 않아도, 스스로 옷을 잘 입습니다.
더 성장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됩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밥을 줍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위하여 밖에 나가 일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는 기분이 않좋아서, 아버지의 역할을 않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아버지의 역할을 않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세상을 보면, 죄악으로 관영하여, 가정을 깨뜨리는 아버지가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명, 어머니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가정이 깨어 지니까...자녀들을 뿔뿔히 흩어져서, 고아원에 갑니다.
제가 한번은 고아원에 봉사하러 보았더니, 다섯 살, 여섯 살...아이들이, 한 30명쯤, 한방에 모여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코를 흘리면서 서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꼼짝 하지 않고, 구석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부모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버리니까...아이가 고아원 밖에는 갈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옆방으로 가 보았더니, 거기는 갓난아이들이 누워 있습니다.
이 아기들은 누구입니까?
네~ 아기를 놓았지만 키울수 없다고 맡긴....아기들입니다.
어떤 아기는 조용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떤 아기는 앙앙~ 거리고 울고 있습니다.
이 아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이 버려서, 아예...부모님 없이...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한동안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면서, 보았던 장면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맡길 때는, 믿음이 성숙하였기 때문에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사명은 단순한, 직책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과 구원을 일정부분,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구역장이 되었는데, 내가 맡은 구역원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맡은 구역원들을 살피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하여 음식을 주지 않고, 살피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변합니다.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엄마 밥주세요~ 아버지 선물 사주세요” 얼마나 당당해 지는지 모릅니다.
또한 기가 쎄집니다....무서움이 없어 집니다.
"우리 아빠, 힘이 얼마나 쎈지 모르지?....우리 아빠 한테, 일러 버린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를 최고로 알고, 신뢰합니다.
사명자가 사명을 잘 감당하면, 사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으로 인하여,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에게.. 크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높힘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24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을 잘 감당하면, 예수님께 칭찬받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게 되니까..
이 사실을 알다가 보니, 사도바울은 사명 감당하는 것이, 신이나고, 즐겁고, 은혜로워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나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명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돕고, 그 사람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뿐만 아니라, 나도 예수님께 칭찬을 받고, 영광올려드리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높힘과 존경을 받는..
너무너무 귀한 ‘은혜의 통로’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감사의 마지막은,
나를 구원의 방주에 불러 주신 것을 통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통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감사’, ‘사명의 감사’를 통하여
최고의 감사생활을 하는 한 주간으로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