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6절 23절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계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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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셋째 주일이 되겠습니다. 다음 주일은 성탄절입니다.
요즈음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절기를 보니, 이번주 토요일이 ‘동지’가 되겠습니다. 동지는 일년중에 낮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긴 날, 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엄청난 추위가 시작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추위가 언제 지나 가느냐? 1월달이 지나고, 그래도 2월 초, 입춘이 오면, 조금씩 조금씩 추위가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우리의 느낌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덥다 추워지니까, 몸이 적응하는데 너무나 힘이 듭니다.
빨리 겨울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내가 바란다고, 겨울이 갑자기 봄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나의 바램과는 상관이 없이, 겨울이 다 지나갈 때, 그때서야 봄이 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말씀을 드리자면, 겨울은 시련의 계절입니다.
자연을 살펴보면, 겨울에는 동물들에게 고통의 계절입니다.
추우니까 땅속에 깊이 들어가서 겨울잠을 자면서 겨울을 넘깁니다.
가을동안 숨겨놓았던 도토리를 꺼내어 먹으면서, 겨울을 넘어 갑니다.
그런데 봄을 기다리다가 실패하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추위를 못 견디고 죽어 버립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버립니다. 그러면 봄을 못보고, 겨울이 끝이 되는 것입니다.
시작하면서, 힘든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은,
마치, 겨울을 보내면서, 봄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간절한 사건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구원자가 오셔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겨울 같은 시기는 지나가게 하여 주시고, 봄 같은 세상을 만들어 주시 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심정으로,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얼마나 기다렸으면, 족보를 꼼꼼하게 기록하여서 그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족보의 시작이, 아브라함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에 사로잡혀갈때 까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후부터 예수님 오실 때 까지...
1. 아기 예수님은 잊혀진 계절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때는 언제인가? 오늘 본문 22절 23절에는 이렇게 그 때의 의미에 대하여 말슴하고 있습니다.
22절 23절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선지자는 우리가 잘 알다싶이, 이사야 선지자가 되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예언이 있고 난 다음에, 아기 예수님께서는 속히 오히시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예언 이후에 다윗왕국이 바벨론에게 망하게 됩니다.
아니~ 다윗왕국이 흔든흔들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그래서 빨리 메시야가 오셔서, 이 혼란한 왕국을 바로 세워주시기를 기다렸는데
오히려 다윗왕국이 바벨론에 망하고 사로잡혀가도, 아기 예수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14대가 지나가 버립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허물어 졌던 예루살렘 성을, 보수 하면서
유다 백성들은 이제 빨리 메시야가 오셔서, 예루살렘 성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다시 건축을 하고, 무너진 다윗왕국을 다시 세워 주시기를 기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후, 700년 후에,
마지막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지 400년 후에,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찾아 아셨습니다.
그동안, 유다백성들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근심도 걱정도, 기대도 끝나는 자리...
그래서 잊혀진 계절에,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요셉의 집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베들레헴 동네에 오셨습니다.
자~
그 동안 유다 백성들은 예수님이 않오시는가 보다, 그리고 소망을 접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유다 백성들은, 겨울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추위로 보면, ‘동지’정도 되었습니다. ‘동지’ 겨울의 시작 정도 밖에 않됩니다.
그 다음에 로마가 밀고 들어오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이 그 다 넘어집니다.
로마에, 모든 세상을 덮혀 버립니다.
이제는 로마의 우상들로, 로마의 제도들이, 모든 세상을 완전히 덮어 버립니다.
계절로 본다면, ‘동지’지나고, ‘소한’,‘대한’, 눈이 엄청나게 쌓이고, 추위로 온 세상이 뒤덮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휩쓸고 지나갈 때, 간절하게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추위가 지나고 빨리, 따뜻한 봄날이 왔으면~
하지만 봄날은 커녕, 엄청난 박해와 핍박으로, 로마가 밀고 들어옵니다.
유다백성들은 완전히 절망합니다. 소망을 내려 놓습니다. 기대를 잃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선지자의 예언도 기억하지 않고
겨울과 같은 그 계절..
아기예수님은, 잊혀진 계절에 찾아 오셨습니다.
소망이 잊혀지고,
기대가 뭍혀 버리고,
답답함 조차 파뭍혀 버린, 철저히 잊혀진 계절에, 아기 예수님께서는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탄절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나는, 아기예수님이 나에게 어떻게 찾아 오기를 기대 하십니까?
연말이 되어서, 올한해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선물을 주시면서, 아기 예수님이 나에게 찾아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답답하던 문제, 근심하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성탄절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추워서 몸이 찌뿌등 하고, 기분도 않좋은데, 겨울이, 봄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듯이...
아기 예수님이 나에게 오셔서, 내 주변에 않좋은 일들을, 좋은 일로 확~ 바꾸어 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기예수님은 언제 찾아 오셨는가?
본문 17절에 보면, 14대씩 나눌때 때, 세 번째 마지막에, 찾아 오셨듯이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절’에 찾아 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계절에 찾아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잊혀진 계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절, 하나님의 때를 쫓아,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나에게 찾아 오시는가?
내가 바라는 시기에, 내가 바라는 방법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정하신 시기에,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방법으로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내가 바라는 때가 아니라, 예수님게서 정하신 때에, 찾아 오십니까?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면, 너무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마가복음 1:15 에는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차야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입니다.
한창 겨울인데, 갑자기 여름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후 혼란이 생기고, 세상은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식물이 꽃을 피웠는데, 갑자기 눈이 내립니다.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데, 갑자기 여름이 됩니다. 그러면, 않되겠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작은 생각으로는,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선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님께서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계절,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는 ‘인내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 군대가... 메뚜기때 처럼 처들어 옵니다.
“하나님, 빨리 저 미디안 군대를 막아 주시고 해결해 주십시요.”
기드온이 마음이 급해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3만 2천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 중에, 무서워 하는 사람을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리니까 3분의 2가 집으로 돌아 가 버립니다.
남은 1만명도, 물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무릎꿀고 먹는 사람을 또,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9천 7백명이 돌아가고, 3백명만 남게 됩니다.
3만명이 왔는데, 3백명만 남았습니다. 백분의 1로 줄어버렸습니다.
아니, 지금, 눈앞에 미디안 군대가 처들어 왔는데,
지금 당장, 3만명이 나가서 싸우고, 하나님께서는 번개를 내리 치시고,
그래서 멋있게 미디안 군대를 이기면,
이게 딱~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쁜 시간에, 차근차근 살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물을 먹게 하십니다.
3만명도 부족한데, 백분의 일로 줄여서 3백명을 만들어 버리 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급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방법과는...틀려도 너무나 틀립니다.
“하나님, 눈앞에 저 미디안 군대는 어떡하고, 난관은 어떻게 해결 합니까?”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메시야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난관이 오면 걱정하다가, 넘어가면 스스로 자랑을 하기를, 그때 내가 나의 힘으로, 나의 지혜로 해결했다고,
나중에는 교만하게 됩니다.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잊어 버립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계절이 바뀌는데 내가 살아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주관한다는 교만과 불신앙에 빠지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시고, 메시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분명히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시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직 구원자 되시고, 메시야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시간, 예수님의 방법으로, 이 세상에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조금 힘들면, 죽겠다고 원망과 절망으로 힘들어 하다가,
조금만 괜찬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던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부터 다윗왕까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이 받는 복과 성전에서 예배 드리는 자의 가정이 받는 복을, 다 보여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우상을 향하여 살아갈 때,
그 다음에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고난의 계절을 보내게 하십니다.
또,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겨울같은 세상을 보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기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봄 같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소망을 빛춰 주시고,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는 예수님 외에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3. 하나님의 계절은, 나에게 봄 같은 계절입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데,
그렇다면 ‘나’는, ‘자기 백성’ 안에 들어가겠습니까? 않들어 가겠습니까?
‘자기 백성’ 가운데, 나는,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아기 예수님, 바로, ‘나’를 구원하여 주시려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아기예수님은, 지금...나의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가 되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행운, 이 은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6절 17절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모두 다, 아기예수님을 만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탄절 만나고.. 죄사함 받고, 그런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아니, 성경에 있는 모든 의인들은.,...모든 선지자들은
성탄절 만나고 아기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못보고, 그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성탄절을 앞에 두고, 아기예수님이 오심에 소식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선지자들 보다가도, 의인들 보다가도, 내가 더 복된 사람, 내가 더 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나는 공로없이 겨울이 아니라, 구원 봄날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나는 믿음이 부족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보호하여 주심으로
형통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은혜로운 일입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잊혀진 계절에 베들레헴에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만, 구원자 이심을 보여 주시려고, 하나님의 때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아기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만난 사람에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나의 보호자가,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대강절 주간, 이 믿음으로, 성경속에서 가장 복된 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