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완성 누가복음 17장 11절 19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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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달력을 보았더니, 수요일에는, 겨울에 들어간다는, ‘입동’이 있었습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시간은 훌쩍 지나서, ‘추수의 계절’-‘가을’이 되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보람되게 잘 보내셨습니다.
또한, 올 한해를 지혜롭게, 잘 마무리 하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 앞에서 감사하여, 크게 칭찬받은, 나병환자의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나병은 상당히 나쁜 병입니다.
보통 병이 들려도, 감사가 사라집니다. 근심과 걱정이 나타납니다.
하물며 나병에 걸렸다면, 큰 절망중에 살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기쁨의 사건’,‘감사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삶의 스토리가 확~ 바뀌어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 순종할때 감사가 시작 됩니다.
‘화룡점정’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자는 눈동자 ‘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화가가,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너무너무 멋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않그립니다. 그림속에 눈동자가 없습니다.
자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그림이 멋있어도, 눈동자가 없다면, 얼마나 그림이 흉하겠습니까?
화가가, 그림을 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름다운 눈동자를 그려 넣습니다.
맑고 정감있고 생동감 넘치는 눈동자를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습니다.
자 그럴 때, 그 그림은 명작품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를듯 해도, 중요한 것을 빼먹는다면, 미완성 작품이 될 수 밖게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잘 마무리 할 때, 완성된 작품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는, 우리의 삶을 완성 시키는, 화룡점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환자는, 나병이라는 큰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명환자 열명이 멀리서서 소리를 높혔습니다.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시 사람들은, 나병을, 저주스럽게 여겼습니다.
나병환자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습니다.
사람이 고칠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면 않됩니다.
사람들이 보이면, “우리는 불결합니다. 우리는 나병 환자입니다.”, 멀리서 알수 있도록,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멀리서 오시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달려갈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수 없습니다.
멀리서, 소리만 낼수 있었습니다.
자 나병환자들 얼마나 마음이 애가 타겠습니까? 예수님만 만나면, 어떤 병이든지 고쳐주신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을 그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하여, 낼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 세상에는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고는 싶은데, 보면서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회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저걸 내가 잡아야 하는데, 기회를 보면서, 간절한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 그 소리를 들으시고, 돌아 보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레위기에는, 만약 나병이 깨끗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여, 보통사람이 되었음을, 확인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나병환자들이 제사장에게 보여, 깨끗하게 됨을, 확인 받으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말을 들을 때, 나병환자들은... 선뜻 이해가, 잘~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병이 쉽게 나을 병이 아닌데, 제사장에게 찾아갔다가, 몸에 한쪽에라도 나병이 조끄맣게 발견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나병의 고통속에 살아왔던 환자들은,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는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 14절, 하반절에 보면,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렇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순종 하였습니다.
만약에 너무 똑똑하여 “예수님, 제가 나병이 심한데, 제사장에게 가서 치도곤을 당하게, 만들고 싶으습니까?” 그러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이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니까, 갔습니다. 순종하였습니다.
제사장에게 가면서, 나병환자들은 스스로..깨끗하여 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할 때, 감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나에게 감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 나에게는 좋은 일이, 행복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좀 바꾸어 보겠습니다.
나는 좋은 일, 행복한 일이 많이 일어나도록, 예수님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할때, 감사의 역사가 나에게 일어나게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금요기도회는 얼마나 역사가 일어나는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한 기도제목은 한달을 기도합니다. 6개월을 기도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나 기도제목이 힘든 기도제목이어서 2년동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 사마리아 동네에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순종은 나를 감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열쇠입니다.
순종할 때, 감사의 역사가 시작되고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감사의 완성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 나올 때, 감사가 완성됩니다.
15절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인터넷에, 커피를 먹는 사람을 분석한 글이 있습니다.
가을에..블랙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고독을 아는 사람이고,
커피에, 설탕 한 스푼을 넣는 사람은, 추억을 아는 사람이고,
커피에, 설탕 두 스푼을 넣는 사람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고
커피에, 설탕 세 스푼을 넣은 사람은, 설탕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너무 많은 설탕은 몸에 해로우니, 적당하게 커피에 넣어서, 마셔야 된다고 합니다.
감사는 무엇입니까?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일어나는 것입니까?
호박이 굴러 들어오듯이, 좋은일이 생기면, 감사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 15절, 16절은, 나병이 깨끗하게 낫고 난 다음, 일어난 사건이 되겠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운이 일어났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10명중 아홉명은, 뿔뿔히 제갈길을 갔습니다.
내가 깨끗이, 나은 것만 좋아하고 기뻐할 줄만 알았지, 정작 나를 낫도록 해주신 예수님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명은, 깨끗하게 낫도록 해주신 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나는 나명으로 힘들어 하였는데, 나병을 낫게 해주신분은 누구일까?
그렇구나, 예수님 이지...예수님께 찾아가야 되겠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열사람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누구나 가끔씩 경험하게 됩니다.
측은한 마음,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해결되니까...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고.... 말한마디가 없습니다.
자기 문제가 잘 해결 되었다고, ...혼자 좋아 합니다. 다음에 나를 보면서도, 본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경험할 때 어떠십니까? 계속해서 도와주고,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지 않게 됩니다.
한번은 해주었어도, 다시는 도움을 주지 않게 됩니다.
감사의 완성은, 내가 좋은 일을 생긴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분을 분명히 알고,
그 분과 내가... 감사의 교제를 할때, 감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더 확장하여서, 구원이 무엇입니까?
내가 구원을 가지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까?
구원은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에 초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권을 발행하는, 예수님을 내가 알지 못하고,
예수님도 나를 모르면, 어떻게 구원이 완성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17:3 에는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0:14 에는 말슴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느니라”
나는,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잘 압니다.
예수님도 목자가 자기양을 잘 알듯이, 나를 잘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나 사이에, 구면이 있고, 서로 잘 알 때,
예수님께서 나를 초대해 주시고, 나는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완성은 무엇입니까? 인격적으로 내가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잘 모르고, 예수님도 나를 잘 모르면,
어떻게 기도를 할때, 응답을 받을수 있겠습니까?
민수기 12장 7절 8절에 말씀합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얼마나 잘아시고, 신임을 하시는지, “모세를 내 온집에 충성하는 자다.”
나는 모세에게는, 직접 대면하고~~ 명백하게 음성을 들려 주느니라~~
모세도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지, 하나님을 형상을 직접 보며, 하나님과 교제를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모세가 홍해를 만나서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홍해가 갈라지게 해 주십니다.
사막에 물이없어서 기도할 때, 반석에서 물이 솟게하여 주십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잘알게 될 때, 기도하면 응답받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삶을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1회적으로, 좋은일이 요행이 있다고...기쁘하고 끝났던, 아홉명은 미완성 감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칭찬받은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서... 감사의 완성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한번 기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일을, 주신... 예수님께 찾아가 감사드렸습니다.
감사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감사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구원의 초대권을, 나병환자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감사가 시작됩니다.
감사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감사할 때, 감사가 완성 됩니다.
감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가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감사로, 내가 예수님을 알고
감사드릴때, 예수님 께서도 나를 알아 주시고..
그럴 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에도,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엇하고 있느냐?
추수감사절에 돌아와 감사하는 자녀가, 너희냐?
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자 이 감사의 칭찬, 구원의 칭찬을 내것으로 받고 고백하는, 김포상도교회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