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1절 5절 성장하는 교회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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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달은 ‘긍정과 성숙함이 충만한 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보내고 있습니다.
‘긍정과 성숙함이 충만’하다는 것은
내가 불신앙과 부정적인 마음과 저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축복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불신앙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지고 생활하면, 믿음과 관계없이 생활하게 됩니다.
믿음과 관계없이 생활하면, 언행이 믿음과 관계없는 언행이 되어 집니다.
가만히 보면, 말도... 믿는 사람의 말과, 않믿는 사람의 말이 따로 있습니다.
“오늘은 일진이 않좋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는 날이다.”
이런말은 믿음의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생각도 믿음의 사람의 생각, 않믿는 사람생각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요.
이런 생각은, 믿음의 사람의 생각인 것입니다.
자 이렇게 모든 부분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생활하여,
믿음이 자라나는 한달, 믿음생활이 충만한 한달로..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만 믿음의 자라고, 긍정과 성숙함이 충만하게 되는가?
아닙니다. 사회도, 나라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믿음이 자라나는 교회, 긍정과 성숙함이 충만한 교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뿌리가 튼튼한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말씀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5절을 주목하여 보면,
‘여러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해진다는 것은, 그 전에는 믿음이 약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보니까,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지키면서 살아 갈때에,
교회의 믿음이, 점점 더 굳건해 졌던 것입니다.
또,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전에는 성도들의 숫자가 적었는데,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 갈때에,
성도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교회는, ‘믿음이 자라고, 숫자도 늘어가는 교회’라고 설명 드릴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믿음이 않 자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4 에는 말씀 합니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믿음이 자라나는 교회의 특징은, 사도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열심히 지키기를 힘썼는데,
믿음이 않자라는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 귀를 닫습니다.
반대로 성경말씀이 아니라, 다른 허탄한 이야기를 듣는데, 귀를 쫑끗 세웁니다. 그리고는 성경말씀을 지키는데 힘쓰는 것이 아니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데 힘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가리마를 2대 8이 아니라, 3대 7로 탔습니다.
목사님이 왜 가르마를 3대 7로 탔을까요?....허탄한데 귀를 쫑끗 세웁니다.
아무개 집사님이 빨간 옷을 입고 왔습니다.
왜 빨간 옷을 입고 왔을까요?....허탄한데 귀를 쫑끗 세웁니다.
저도 머리가 빠지다 보니까..머리카락이 덜 빠지라고...가리마를 약간씩 왔다갔다 합니다.
패션은 인격의 완성이라고 하는데, 더 젊어 보이려고, 빨간색을 입을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데에 귀가 쫑긋 세워집니다. 그렇데요? 그래요.. 그럴수가 있을까요?
소문이 대문이 대고, 나중에는 온통 허탄한 소문과 이야기로만, 가득하게 되어 집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 보다가, 기도하는 것 보다가.
찬송하는 것 보다가, 성경말씀 읽는것 보다가...
사람의 말에 귀를 쫑긋하고, 허탄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진리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는, 2절 말씀에 보니까, 믿음이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좋아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사람들이 천거를 합니다.
“바울 사도님.. 디모데는 믿음이 좋은 청년인데, 전도 여행에 데리고 가십시요.
앞으로 공부를 시켜서, 믿음의 큰 제목이 되도록 하여 주십시요”
자 내가 사도바울 옆에 있다면, 디모데에 대하여, 어떻게 말해 주겠습니까?
“ 저는 디모데를 적극 추천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3절 말씀보니까, 전혀 다른 눈으로 디모데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허탄한데 귀를 쫑끗하고, 허탄한데 눈을 큼직막 하게 떳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입니다.
그렇다면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헬라인 이니까.. 유대인 이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유대인이 아니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유대인은 디모데의 족보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은 할례를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디모데는 율법을 지키나? 않지키나? 쑥떡~쑥떡~ 소문을 냅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훼방합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 인데, 디모데는 반만 유대인인데, 그러면 유대인이 이방인을 데리고 가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유대인은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꼬투리를 잡고, 믿음을 끌어 내리는데, 힘을 쏟고 있엇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4절 5절에는 말씀합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만, 투기, 비방, 언쟁, 분쟁..자 이런 것들은, 진리를 잃어버린 것이요, 경건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그 결과는 타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유대인들에게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럴 때, 사도바울이 결단을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디모데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려고,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여,
디모데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니, 유대인이 맞다고 설득을 하고, 디모데를 데리고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이 굳건하다는 것은, 허탄한데 눈을 크게 뜨지 않고, 허탄한데 귀를 쫑긋하지 않는, 성숙한 믿음을 뜻합니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튼튼하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허탄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열매를 맺기 위하여 힘쓰는 나무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장하고 성숙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잔뿌리가 많은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어떤 아저씨가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주머니를 만져 봅니다. 그러면서 어색하게 말을 합니다. “핸드폰을 차에 놓고 온 모양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차에 있으면 다행이게, 항상 신경을 않쓰고~, 잊어버린 핸드폰이 몇 개인지 몰라~~”
그 모습을 보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저씨는 핸드폰에 신경을 쓰고, 아주머니는 말씨에 신경을 쓰면,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겠구나..
교회도 성장하고 성숙하고, 긍정적이고 행복이 충만한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잔뿌리가 많은 교회가 성장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받아들이는데, 힘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이 훼방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결격 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심을 다하여, 디모데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 27절에는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 교회를 보았더니, 세상적으로 볼 때, 학식이 높고, 능력이 있고, 문벌이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학식이 높고, 능력이 있고, 문벌이 좋은 사람들은 어디에 많이 있었습니까?
고린도 바로 윗동네인... 아테네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아무리 전도를 하여도, 도무지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테니 사람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성경말씀이 좋은 말씀이구나...그리고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열심히 전도하는 구나...그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내가 눈군데, 시시해서 교회 나갈 수 있나?... 교회에 않나옵니다.
내가 누군데, 이 바쁜 세상에, 교회 나가서 손해볼일 있나? 하루라도 더 가게를 열어야지...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에는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였습니다.
한편, 아테네 밑에 동네, 고린도에 와보니,..... 동네가 수준이 떨어집니다.
동네만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수준이 떨어집니다.
학식도 떨어지고, 능력도 부족하고, 문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였더니, 아멘~ 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도바울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순종을 합니다.
열심히 교회 나오기 시작합니다.
열 일 제처 두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고린도에는 교회가 세워 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점점 성장 합니다. 쑥쑥 자라납니다.
교회가 성장하니까, 꼭 이상한 사람들이 생깁니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교회안에 다툼이 생기고, 이단이 쭉쩡이를 뿌립니다.
그 사실을 알고, 얼른 사도바울이 편지를 씁니다.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를 받아서 읽어보고, 회개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더 굳건해 집니다. 숫자가 더 늘어갑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는,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떤교회는 너무 양반들만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뼈대있는 집안에, 뼈대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뼈대없는 사람은 발을 붙이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뼈대 있는 사람 몇 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어떤교회는 무언가 촌스럽습니다. 수준이 낮습니다.
하지만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문턱이 낮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나 자꾸 들어 옵니다.
어머니는 믿음이 좋고, 아버지는 믿음이 없는 짝가정도 괜찬습니다.
학식이 부족해도 괜찬습니다.
문벌이 부족해도 괜찬습니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습니다.
아무리 나무가 커도, 큰 뿌리 하나만 덜렁 있으면,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잔뿌리는 힘이 없습니다.
잔뿌리는 큰 뿌리 옆에 그냥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큰 뿌리 옆에 잔뿌리가 많이 생길 때, 그 나무는 진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잔뿌리가 많은 교회, 잔뿌리가 많이 돋아나는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 어떻게 하면 잔뿌리가 많이 돋아 날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전도활동에서 정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믿음이 좋습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입니다.
디모데를 데리고 가면, 계속하여 디모데는 헬라인이다. 디모데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논쟁이 발생할수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나중에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할때, 유대인들이...소동을 일으켰습니다.“사도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왔다.~”
디모데는, 사도바울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부담과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디모데를 전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디모데를 전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힘썼습니다.
사도바울은, 율법과 관습을 버립니다. 복음안에서 변화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초대교회에 부흥되고, 많은 이방인들이 전도 되어 나왔습니다.
이방인들은 고향이 틀립니다. 인종이 틀립니다.
이방인들은 관습이 틀립니다. 이질감이 듭니다.
나중에는, 기존에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 보다가,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더 많아 집니다.
교회에 나와 보면,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습니다.
교회를 빼앗기고 잃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어렵게 우리 유대인들이 교회를 세웠는데, 이방인들이 나와서, 교회가 이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오늘 본문, 앞장...그러니까 사도행전 15장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기도를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교회의 문턱을 높혀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교회에 못나오게 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변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렵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게 하고”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법으로 살아가게 합시다.
오히려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변화되어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용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오픈 마인드가 되어, 열린마음으로
이방인을 포용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변화 하기를 힘썼습니다.
내가 변하고, 문턱을 낮추고, 오히려 열심히 섬길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여러 교회에 전하여 지키게 하였고,
스스로 디모데를 전도하여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럴 때,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하여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카톨릭을 왜 구교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카톨릭을 ‘옛날 교회’, ‘구교’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의 관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카톨릭이 깨닫고 얼마나 변할려고 노력하는지,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우리 ‘신교’보다가 더 열심히 쫓아 다닙니다.
새로운 것도, 더 열심히 받아들이고...그래서... 우상의 것도 받아들이고, 우상 제사장들과 교류를 할려고 해서 문제입니다만...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복음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쫓으며,
오픈마인드가 되어서,
문턱을 낮추고, 변화되고, 섬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디모데와 같은, 잔뿌리들이 무성하게 나서, 초대교회처럼 굳건하게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도, 믿음이 성장 성숙합니다.
우리교회는 초대교회 처럼, 열린마음, 낮은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