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10절 12절 같은출발 다른결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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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성공하고, 갑자기 실패하는 것 아닐 것입니다.
그 동안 걸어갔던 노정이, 쌓이고 쌓여서 어떤 사람은 성공의 자리에 도착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실패의 자리에 도착 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성공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아브라함과 롯’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출발이 같았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란’이라는 동네에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함께 같이 출발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동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라고 아브라함을 존경합니다.
아브라함은 살아 생전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롯은, 알아주는 실패와 저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쫄딱~ 망하고,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나와서, 평생을 굴에서 살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후손도 부끄러운 저주의 족속, 암몬과, 모압 족속만 겨우 남기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날 한시에,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였는데, 한사람은 성공의 사람이 되고, 또 한 사람은 실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나뉘어지는, 갈림길의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갈림길은 무엇입니까?
1. 말씀이 이끄는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같이 출발 하였을때, 두 사람은 똑같았습니다.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은, 하란에서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
하란을 완전히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출발할때는 완전히 출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출발하고도, 떠나온 곳을 뒤돌아보며, 미련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길을 계속갈까? 아니면 다시 돌아갈까?
길을 한참 가서도, 계속 뒤를 돌아봅니다. 이길을 계속 가야하나 다시 돌아가야 하나?
자 이런 사람은, 몸을 출발하였으되, 마음을 출발하지 못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출발하면, 그 다음에는 전심전력--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힘을 다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땀을 뻘뻘흘리며 푯대를 향하여,질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다른곳에 계속 미련을 두면 목표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다른 길을 자꾸 돌아보면, 목표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푯대만 바라보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때, 그 목표에 도착할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아브라함과 롯은, 출발할 때, 완전히 출발하였습니다.
하란에 어떤 미련도 두지 않았습니다.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모든 사람을 이끌고,
완전히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자 이렇게 할 때, 아브라함과 롯은, 똑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은,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양과 소도 많아졌습니다. 소유가 많아져서 감당하기 벅찰정도가 되었습니다.
롯이, 믿음의 사람--아브라함과 동행할 때에 형통하였습니다. 소유가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은, 성공의 비결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14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사람과 만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의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보면, 모두 않믿는 사람입니다.
않믿는 사람과 어울려서 세상방식대로 교재를 합니다.
세상의 관심, 세상의 관습, 으로 살아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세상의 습관이, 나의 몸에 베이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교재를 하면, 세상의 습관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같이 출발하였습니다. 같이 생활하고, 같이 걸어갔습니다.
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어떻게 보면, 오늘 말씀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출발하였는데, 그냥 일단 출발해본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가는데, 그냥 걸어 가는것이 아닙니다. 기준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푯대입니다.
하지만, 롯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갔습니다.
“옆에 사람에 장에 가니까, 덩달아...그 사람을 따라서 장에 간다고~”
아브라함이 출발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따라서 출발 하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믿음의 사람과 함께 동행하니까.. 믿음의 사람이 받는 복을, 함께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롯은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가는지, 분명하게 기준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갈림길이 나오고, 선택을 해야 할 곳을 만날때...
아브라함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롯은, 세상의 습관, 세상의 방식, 세상의 기준이 나타납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살피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살펴보고,‘소돔’과‘고모라’를 보면서, 마음이 흡족해 합니다.
롯은 만족해 하면서, 가나안 땅을 떠나서, 소돔과 고모라로 들아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 이 결정은, 당시는 롯이 현명한것 같습니다.
물이 풍부한 소돔과 고모라, 숲이 우거진 소돔과 고모라...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제일 좋은 땅이 소돔과 고모라 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 세상의 습관을 쫓아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이끄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르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이, 가고 있으니까, 그냥 어울려 걸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함께 어울려 갈때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만, 갈림길이 나타나면, 결정의 자리를 만나게 되면,
나뉘어 지게, 될 수밖게는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창인이가, 훈련소에 들어가서, 논산 훈련소에 가보았더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모두들 힘들어 갑니다.
입대식이 끝나니까...그 많은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이 다 집으로 돌아 갑니다.
마침 팻말을 보니까, 훈련소 안에 교회가 있니다. ‘입소대 교회’
날은 더운데, 교회는 한참 먼곳에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흐리며 그 교회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앉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입소한 아들을 위하여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보았더니, 예수믿는 사람은 틀립니다. 눈에 익은 사람 같습니다. 남 같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별하시는 구나...
아들이 입대하고 다같은 상황, 같은 길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날씨가 더우이까, 썰물이 빠져 나가듯, 다 나가버리게 하시고,
예수믿는 사람들은 똑같은 날씨에 똑깥이 덥지만, 교회에 불러 모으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고, 힘을 주시는 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출발한다 할지라도, 갈림길이 나옵니다. 선택에 자리에 서게 되면,
그러면, 세상의 습관을 쫓아서 걸어가는 사람은, 세상의 습관을 쫓아서 선택하고, 가버립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길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가저오게 합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길로, 한 사람은 롯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날씨가 매우 덥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하여, 건강을 챙기고, 믿음의 길, 사명의 길을 잘 걸어야가 하겠습니다.
더위 그러면, 제일 더운곳으로 중동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요단지역... 얼마나 더운지 모릅니다.
‘낮에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라를 말씀이 이해가 되는 곳입니다.
낮에 해 아래 있으면, 몸을 상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스라엘, 요단 지역입니다.
오늘 말씀보면, 아브라함과 롯도, 땀을 뻘뻘흐리며, 더운 환경가운데... 선택할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결정을 해야 합slekj.
그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밑에..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수 밖게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롯과 갈라서야 할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하나님, 보여 주십시요.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 곳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눈을 들어 보라..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고 보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비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날씨는 덥고, 세상은 힘들고, 아유~ 살맛 않나, 아유~ 나는 죽겠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낙망, 낙심, 원망을 보는 것입니다.
목사님, 내가 하는 일은, 하나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팔자가 박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과 계획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과 부정적인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롯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곳을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곳을 보았습니다.
눈을 들어서, 요단지역을 바라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구나”
믿음의 눈이 아니라, 욕심의 눈, 시기 질투의 눈, 불신앙의 눈으로 볼때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척박한 땅이요, 소돔과 고모라는 멋있게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사람이 하는것을, 그렇게 멋있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남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게 보이드라..” 멋있기는 뭐가 멋 있겠습니까? 만병의 근원이 담배라고, 보건소에 가보면, 통로마다 금연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나는 남자가 술마시는 것이 그렇게 멋있게 보이드라” 뭣있기는 뭐가 멋 있겠습니까?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프랑스 적포도주 와인을 고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금방 볼수 있습니다.
알고는 절대로 먹을수 없다고 합니다.
살충제는 몇 번을 뿌리는지 모릅니다. 방부제를 넣고, 발효촉진 약품을 넣고, 맛을 내기 위하여 화학약품을 넣고, 나무통의 냄새를 내기 위하여 인공향을 넣고..
프랑스 기자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거 먹고 탈 안나면, 정상이 아닙니다. 절대로 먹을수 없는 것들 입니다.”
프랑스 기자가 주인한테 물었습니다. “나만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 다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않하면 10년을 기다려도 상품이 될까 말까입니다. 그렇게 해서 장사를 어떻게 합니까? ”
농약 범벅에, 화학약품이 범벅이 된 것이 현실인데, 프랑스가 이정도면 중국, 일본, 남미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믿음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라도, 롯과 같은 눈을 가지고, 바라보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 사사기의 교훈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것을 보고, 척박하지만, 황량하지만, 날씨가 덮지만...가나안 땅에 머물기로 합니다.
반대로, 롯은,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보고, 기름지고, 숲이 욱어지고, 시원한..소돔과 고모라에 가기로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나안 땅, 약속의 땅, 구원의 땅, 큰복의 땅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자리요, 사명의 자리요, 예배의 자리입니다.
롯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떠나가 버립니다. 사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된 직분과 직임의 자리를 쉽사리 떠나가 버립니다.
롯이 그랫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볼때에, 가나안 땅을 쉽게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럴때, 곧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찾아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 죄로 인하여, 불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것을 다 불타고, 재가 되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출발하고, 함께 걸어갈 때,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던 그 많은 재산, 그 많은 가축, 그 많은 소유를 다 잃어버리고, 몸만 빠져 나옵니다.
두 딸과 함께, 소알 뒷산 굴에 들어가서, 평생을 후회하며 목숨만 보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 곳에 머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 곳을, 세상의 눈으로 보아서는 않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않보면, 머무르기 힘든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말씀에 나와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기도의 자리에, 서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경말씀 읽고, 찬송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있기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 곳이, 설마 주일에 낙시터 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 곳이, 설마 술집이요, 세상의 죄악된 자리 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두세사람이 모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리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롯은 자기 좋은대로 행하면서, 설명은 장황 하였습니다.
“저 자리는 하나님의 동산 같은 자리이다. 저 자리는 애굽의 동산같이 좋은 자리이다.”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설명한다고, 하나님의 마음도 그곳에 계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더운 여름에,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로 걸어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곳에 머물러서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의 큰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