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 1절 4절 거룩한 생활을 삽시다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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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저는 전국장로 찬양대 합창연주회에 잘 다녀 왔습니다.
합창연주회 마지막에는 참가했던 모든 합창단이 다 나와서, 연합으로 ‘헨델의 메시야에, 할렐루야 합창’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메시야’는 헨델이, 예수님의 탄생, 수난, 부활을 각 3부 만든‘오라토리오’입니다.
음악의 장르 중에, ‘오페라’는 무대장치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배우들이 있습니다.
‘오라토리오’ 는 무대장치가 없고, 합창위주이며, 성경 내용으로 만든 음악을 ‘오라토리오’라고 합니다.
‘칸타타’는 ‘오라토리오’ 하고 비슷합니다, 성경 내용으로 주제로 하지만, 스토리가 없어도 되고, 길이가 ‘오라토리오’ 보다는 좀 짧습니다.
‘할렐루야 합창’은 헨델의 ‘메시야’의 2부..즉 예수님의 수난부의 절정에 나오는 ‘합창곡’입니다.
1743년, 헨델의 메시야가, 런던에서 연주되었을때의 일입니다.
당시 모여있던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습니다.
“세상 나라는 주가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영국황제 조지2세가 ‘할렐루야 합창’의 가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서서...자신의 왕관을 벗고, 합창이 끝날 때 까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국황제가 왕관을 쓰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을수가 있겠습니까?
그 가사를 들을 때, 영국황제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자신의 왕관 조차 부끄럽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을 부를때는,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이 되어서, 모두 다 일어서는 것이 ‘신앙관례’가 되었습니다.
전국 장로 연합 합창대가 마지막으로, ‘할렐루야’를 합창할 때...저는 당연히 일섰습니다. 같이 갔던 우리교회 권사님 집사님도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옆에 보니, 끝까지 앉아서 않일어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합창대가 나올 때 마다, 박수치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환호를 하였는데,
정작, 모든 합창대가 나와서,
“세상 나라는 주가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신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혀도..꼼짝도 하지 않고, 제할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싶어서 둘러 보았더니,
모두다 일어서 있는데, 군대군대에서, 몇명이 앉아서 일어설 생각을 않하고.... 잡담을 하거나, 핸드폰 보든데 정신이 없습니다.
‘성가 합창 연주회’에, 관객으로 왔다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없을수가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조금의 상식이 있다면, 당연히 헨델의 메시야 할렐루야 합창을 모를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일어서서 있는데도... 끝까지 앉아서 내할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거룩함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나의 생각이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나갈 때, 거룩함입니다. 나 혼자 목욕했다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문둥이가 나았다고, 믿음이 좋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중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려 감사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한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죄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거룩하신 예수님과 관계가 없고, 예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지면, 어떻게 스스로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상반기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을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1. 성전에 나와서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태어날때부터 선지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로 임명해 주셔야,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무명의 청년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생각할 때 너무너무 나라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호탕하고, 열심있던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누가 다스리며,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사야 청년은 너무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간절하여, 성전에 찾아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그렇게 훌륭하던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북쪽에는 앗수르, 바벨론, 남쪽에는 애굽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매어달리지 않은 것은, 아직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않매달리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제 동생이 물에 빠진적이 있었습니다.
‘애가 물에 빠졌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짜릿~ 한 것이 와서,
나도 모르게 “동생이 물에 빠졌구나” 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수영을 못합니다. 달려 가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짧은 시간에 별생각을 다하는데...가서 보니까...이미 동생은 물에서 나와 있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제 친구가 이미...동생을 건져 놓았습니다.
그 친구가 말합니다.
“지원아.. 경원가 얼~마나 매달려서... 내 손발..막 잡아서..
하는수 없어, 뿌리치고...머리카락을 당겨서 겨우 꺼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잘~ 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온힘을 다하여 손과 발과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의지가 되던 웃시야 왕이 죽으니까...
성전에 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와서 예배드릴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 하겠습니다.
마치 사슴이 목이 말라서,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상한심령이 되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상한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만나 주십니다.
성령께서 이사야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이사야가...신령한 눈이 열리니까.. 옷자락이 보입니다.
“성전에 왠 옷자락일까?. 누구 옷자락이지...?”
조금 더 고개를 들어 보니까.. 이제는 의자가 보입니다. 그런데 의자가 보통의자가 아닙니다.
순간 이사야가 알아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의자 시구나..
하나님의 옷자락 이시구나..
그렇다면 저 의자에 앉아 계신분은 하나님 이시구나..
이사야가 고개를 숙이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종이 듣겠나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들려 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는 곳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못보고, 딴 것만 봅니다.
오늘 날씨가 화창하구나...
찬양대의 박자가 맞는가? 틀리는가?
아무개 집사님 머리는 어느 미장원에서 했을까?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것을 생각하고 주목하고 돌아갑니다.
자, 이사야 선지자는 그 전에도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가 열심히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앉아 계신것을 못보았습니다.
즉, 성전의 겉 모습만 보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웃시야 왕이 죽고, 간절만 마음이 되어 성전에 나올 때....
믿음이 눈이 떠지고,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을 찾고 찾을 때
성전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볼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전에 나와서, 성전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전을 100번 찾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 사람은 예배는 실패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성전에 들어가니까,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 11절 에는 말씀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사도요한에 천국에 가보니, 천국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이 있습니다.
들어가 보았더니, 24 장로가, 면류관을 벗어서, 겸손하게 .... 예수님 앞에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신 곳입니다.
예배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사야의 심령과 같이되어, 예배드릴때 하나님 만나야 하겠습니다.
2. 주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룩하게 보내어야 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무실에 가는데, 급하게 가다보니,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모자를 쓰고 갔습니다.
안내를 하는 아가씨가, 대충인사를 하고 안내를 합니다.
같은 일로, 또 그 사무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심방을 마치고 바로 가다보니,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머리도 단정하게 하고 갔습니다.
안내를 하는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상냥하게 안내를 합니다. 커피를 갖다 줍니다. 대접이 틀립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말쑥하게 입고 오셨네요”
“사람이, 마음도 중요하지만, 겉모습도 중요하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의 거룩함이, 말과 행실의 거룩함으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리스도인은 한사람 한사람이, 그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좌정하신 곳이 성전인데,
성령님이 내 속에 좌정하시면, 나의 몸은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9:13 에 말씀합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은 성전의 일을 해야 하고, 성전의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일이 무엇입니까?
성전에는 예배에 사용되는 거룩한 성물들이 있습니다. 그 성물들을 관리하고, 성물들을 살펴야 합니다.
성전에서는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자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안내를 해야 합니다. 예배의 순서를 진행해야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 예배드린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모든 성전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전에서는 나는 것을 먹어야 된다고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것으로 식물을 삶고, 내 영혼의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주일날, 다른 것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삼아서는 않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은 서로 성전에서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서로 섬기고, 나누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전에서의 생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성전에서 성도간에 거룩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한 예가.. 고린도전서 16:20 에 나옵니다.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성전에서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문안할 때, 그 가운데에, 거룩함이 임하게 됩니다.
주일날, 교회 현관에서, “한주간 평안히 잘 지내셨 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십시요.“
“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즐거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자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성전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눌때, 하나님 거룩함이 그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인사를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인사 할때 마다, 더욱 거룩하게 되는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날,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출애굽기 34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 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모세에게 가까지 오기를 어려워 합니다.
모세가 의아해서 찬찬히 살펴 보았더니,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오니까..모세의 얼굴에...하나님의 거룩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차가운데 가면,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지요..
마찬가지로, 시내산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뵙고 내려가니까...모세에게 거룩함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함의 빛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사람들이 모세에게 감히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서야...사람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올수 있었습니다.
내가 주일날,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 속에 생활하고, 돌아가면...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남아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17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데, 그 거룩함 속에 있다가, 가는 우리도, 그러합니다. 거룩합니다.
나에게서 거룩한 빛이 날때, 사탄은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악한영들이 거룩한 빛을 보고 피하게 됩니다. 도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룩함의 싸이클이 반복될 때,
주일부터 시작되는 한주간 동안의 생활은 은혜충만 기쁨 충만의 생활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성전에서 거룩하게 되면, 한 주간 동안, 승리 합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뵙고 만나야 합니다.
주일날은, 성전에서는 거룩하게 보내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어 한주간을 시작하면, 승리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