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질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 25절
2008.03.01 15:50:58 조회5466
고린도전서 1장 18절 25절 세가지 질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어느 초신자가 할렐루야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라서, 옆에 있는 집사님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집사님, 저기 ’할렐루야‘ 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런데 그 집사님도, 정확히 잘 모르겠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받았는데, 대답은 해 주어야 하겠고, 그래서 생각 나는데로, 얼른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 자매님, 쉽게 설명드릴께요.
남원에 가면, ‘광한루’가 있고,
진주에 가면 ‘촉석루’가 있듯이,
천국에 가면 ‘할렐루야’가 있지요.“
한편으로 보면, 너무나 잘 설명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면, 좀 부족한 설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하십니까?
천국에 할렐루야 처럼, 알기는 알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은 없으십니까?
드디어, 3월달, 부활의 달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의 달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은혜의 달이요, 기쁨의 달 이라 하겠습니다.
부활의 달을 맞이하여,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서는 분명히 알고, 정확히 감사하는 은혜의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달을 맞이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가지 질문으로,
우리의 바른 신앙을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1. 십자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18절,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부활절은 이번달 넷째주일, 23일 주일이, 부활절이 되겠습니다.
부활절이 되면, 달걀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주위에 계신분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며, 모두 기쁨으로 보내게 됩니다.
분명, 부활절은 기쁨의 날이요, 은혜의 날입니다.
하지만 부활절 전에, 십자가와 죽음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버려서는 않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기 때문에, 또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은 그렇다면, 어떤 죽음 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만 생각하기 보다가는, 예수님의 죽으심 또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부활 하실 것을 아시기, 여러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편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음에 기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형틀입니다.
죄인이 쉽게 죽지 못하도록, 고통을 크게 느끼며, 죽도록 하는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살도록 힘을 쓰게 만듭니다.
피를 흘려서, 목이 마르고, 힘이 빠지게 됩니다.
몸의 무게로, 축 늘어지면, 숨을 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려고 발버둥 치면, 못 박힌 손과 발이 더욱 상처가 심해지고,
손과 발이 아퍼서, 가만히 있으면, 축 늘어져, 숨을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려고 살려고, 애쓰면서, 못 박힌, 손과 발이 다 헤어지고,
그러면서 마지막 까지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면서, 죽게 되는 장소가
바로 십자가 인 것입니다.
삶의 의지가 가장 강한곳,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장소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 험한 십자가.. 그 의미를 모를때는, 예수님 참 않되셨다고만 생각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실은 나 때문에 지신 십자가 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창에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께서 십작에서 가시 면류관과 못에 상하였던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대신, 징계를 받으므로, 오늘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대신, 채찍에 맞으므로, 오늘 우리는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힘이 없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붙잡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스스로 버리는 권세...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권세 이셨고,
이것이, 우리를 위한 사랑의 권세 이셨던 것입니다.
왜 부모님은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합니까?
자녀들이 시험치면, 함께 밤을 세웁니다.
자녀들이 대학가면, 입학금을 준비하려고, 생활이야 어떻게 되든, 탈탈 털어, 학교에 갖다 줍니다.
누가 질문하기를, 누가 강제로 그렇게 시켜서, 자녀를 위하여 희생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 질문하는 사람이 어리섞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하여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권세가 아니겠습니까?
버리는 권세, 그 권세야 말고, 진정 숭고한 권세요...
특히나, 자녀도 아니고, 죄인이요, 원수였던,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되어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권세는,
사랑의 권세, 아가페 권세 였던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 권세를 사용할 줄 압니다.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 권세를 사용할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버리는 권세, 십자가의 권세를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복음의 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21절에서 23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석유사업으로 거부가 된, 택사스의 어느 부자가, 친구를 자기집으로 초청하였다고 합니다.
식사가 끝난 후, 이 부자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부자는 친구에게 자랑합니다.
‘저기 왼쪽에 보이는 유전들이 보이는가? 저 엄청난 석유 유전지대가, 다 내것 이라네...’
친구가 깜짝 놀랍니다.
또 말합니다. ‘이번에는 저기 앞에, 땅 끝까지 펼쳐진, 목장이 보인가? 저것이 다 내것이라네...’
친구가 깜짝 놀랍니다.
또 말합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보이는, 처 푸른 초원이 보이는가? 땅 끝까지 펼쳐진, 이 초원이, 대 내것이라네...’
친구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더니 조용히 대답합니다.
“정말 대단하군, 자네는, 이 땅에 엄청난 재산이 있구먼...”
그리고 조용히 하늘을 가르키면서 질문합니다.
“그런데 이 땅위에, 저 위쪽에는, 자네 소유가 얼마나 되는가?
천국에도, 자네 소유가 이렇게 많은가?”
그러자 이 부자친구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아직 거기에는 투자하지 못했다네, 자네가 좀 도와주게나...”
예수님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계신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상을 구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칼로 이 세상을 구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사람들이 열심당원들입니다. 그들은 칼을 품에 숨기고 다녔다고 하여, ‘시카리우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민족도, 신앙도 버리고, 세리가 되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천국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땅에 세우기 위하여,
복음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버리는 권세를 사용하셔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악세상에, 구원길이 열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으로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믿는 것 때문에, 사자굴에 던져저도, 기도하며, 순교해 갔습니다.
예수믿는 것 때문에, 베드로도 십자가에 달리게 되엇습니다.
로마 군병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리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 할 말이 없느냐?”
그럴때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나도 달리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어떻게 내가 감히 같이 달릴수 잇겠습니까?
나는 십자가에 꺼꾸러 달려 죽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십자가, 양들을 위하여, 죽으시는 것이
세상의 지혜로 보자면, 미련한 것이요, 거리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 십자가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생키’라고 하는 유명한 찬양가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어렵거나, 힘들어도,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는,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배를 타고 가면서, 또 찬양을 하기 시작 하엿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여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주소서....“
그럴때, 한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생키 선생님, 혹시 남북전쟁할 때, 1862년 메릴랜드에 있지 않았습니까?”
생키는, 깜짝놀라서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그때 제가 북군으로 그곳에 참전하였는데요... 어떻게 그걸 아세요?”
그 사람은 감사하며, 대답합니다.
“저는 그때 남군이엇습니다.
보초를 서고 있는 북군 병사를, 총으로 죽이려고 하는데,
그 병사가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 찬송소리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돌아섰는데,
오늘 찬송을 들으니, 그 때, 그 병사가 오늘, 당신이군요...“
‘생키’는 어려울때, 왜 찬송해야 하는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사용하십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는것...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평소에 기돟는 것,.....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그 찬송을, 그 기도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세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이 볼때는 미련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도구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나는,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찬송가 기도를 통하여,
오늘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24절 25절 말씀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남편이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 여보, 스포츠 신문에, 오늘 내 운세가 어떼요?”
남편이 말합니다. “ 음...00년생은, 오늘 운수 대통한다고 나와 있는데...”
그러자 아내가 좋아하며 말합니다. “ 앗싸! 오늘 고스톱 치러 가야지! ”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근데, 당신 친구들, 전부 동갑 아니야? ”
아내가 말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스포츠신문에 나와있는 허탄한 운세를 보면서,
그것으로 소망을 삼아,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부질없는 삶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버리는 권세를 사용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는 운수대통의 자리가 아니라, 저주의 자리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라고 하면, 입에 담기 조차 싫어하였고,
‘십자가’라고 하면, 고개를 돌리고, 먼길로 돌아갔던,
멸망과 저주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저주의 자리에 가셨습니다.
사실 그 저주의 자리는, 사탄을 따라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악된 사람들이 떨어지는 자리요...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가는, 멸망의 자리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저주의 자리, 십자가 위로 가셨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도 갈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예수님께서 대신 서시고,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서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우리가 서야할, 저주의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대신 달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소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예수님을 따라살아갈 때, 우리는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할머니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우울증을 앓고 계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목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제가 부족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편 건강하고, 자녀들 잘 되고, 손자손녀들 이렇게 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하루에도 열두번,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습니다.
목사님, 죽는 맘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는 죽고 싶어서 죽습니까? 누구는 멸망하고 싶어서 멸망합니까?
하지만, 죄로 인하여, 죽을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실존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 집사님, 그럴때 마다, 주기도문 외시고, 찬송하십시오..
예수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집사님이 소리 지릅니다.
“ 아멘...”
그 후에, 그 집사님은, 때마다, 주기도문 외고, 찬송하면서,
예수이름으로, 사단이 주는 죽음의 권세, 유혹의 권세를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활을 살펴보면, 어려운 일, 힘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왜 왔는지, 또 어떻게 하면 벗어나는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지신, 예수이름으로 살아갈때에,
사탄의 유혹은 이기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권세가, 나의 권세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십자가로 살아가고 잇습니까?
복음의 지혜로 살아가고 잇습니까?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고 잇습니까?
이 세가지 질문을 가지고,
부활의 달, 3월달 보내실때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의 능력을 받고,
부활의 소망을 깨닫게 되는,
큰 은혜가 있는 3월달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