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는 자의 두가지 차원 마태복음 10장 37절 42절
2008.01.11 22:47:59 조회5262
마태복음 10장 37절 42절 따르는 자의 두가지 차원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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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왔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의 전에 나아오신, 우리 성도님들께,
특별히 든든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올 한해를 시작하는, 1월달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정신병자 한명이, 벌떡 일어서더니, 강단 앞에 뛰어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리칩니다.
“나는 베드로다.... 나는 베드로다...”
성도들이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설교하던 목사님이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때 부목사님 한분이 급히 방송실로 뛰어 올라가더니,
마이크에 에코를 넣고,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는 너 같은 제자, 둔적이 없다. 다. 다. 다.~~“
그러자, 말리던 장로님이 있때다 싶어서 말했다고 합니다.
“거바요... 예수님이, 당신 제자 아니래잖아요..어서 내려와요..”
그러자, 날뛰던 병자는 시무룩해져, 고개를 푹 속이고 조용히 걸어나 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참 제자인가?,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않가신 길로, 가면서, 예수님 따라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단’들입니다.
이단들은 능력도 나타납니다.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몰려가서, 신통한 이단들의 모습에, 깜빡 속아 넘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태복음 7:23절 말씀입니다.
따라가는 것이면 않됩니다.
예수님이 가실 길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김포상도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올 한해 예수님을 힘있게 따라가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잃어버리고 따라가야 합니다.
3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을 잘 따라가기 위하여서는, 예수님을 바르게 따라기 위하여서는,
십자가를 도외시한, 다른 길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따라가기 위하여서는 꼭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잃어버림을 뜻합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은 잃어버려야 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고, 지금 까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형틀에 달린 사람이, 얻을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못든 것을 잃어버리는 장소가, 바로 형틀이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십자가는 잃어버림을 뜻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림에는 목표와 목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같은 시간, 더 재미있게 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더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공부함으로써,
욕망과 욕심을 억누르고, 즐겁고 재미난 시간은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목표가 있기에, 오히려 잃어버린 시간은 투자가 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투자합니다.
투자는 재물과 시간과 노력을 버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더 큰 결실을 바라보기에,
오히려 투자 합니다. 그럴때, 나중에 투자한 만큼, 노력하고 애쓴 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잃으셨습니다. 생명을 잃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왜면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잃으시는 것을 아까와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더 큰 것을 얻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죄로 멸망하고, 실패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영혼을 살릴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잃으시는것을 아까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잃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떤 목사님이,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영감님이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위독합니다.”
가보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거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이 간절하여 졌습니다.
“저 분을 이대로 보내서는 않되겠다. 꼭 예수님 영접시키고 보내야 할텐데....”
목사님이 조용히 이 영감님 손을 잡을 말합니다.
“영감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밖혀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럴때, 예수님 옆에 달려있던,
한 강도는 죽음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그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너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를 생각하시고, 영감님도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러자 그 영감님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 \"
그러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강도면 어떴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
얼마나 듣고 싶은...., 세상의 모든 주고라도,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닙니까?
하지만 잃어버리지 못하여,
자기의 자존심을 잃어버리지 못하여, 예수님을 못 따라가지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출 줄 모릅니다.
조그만 오해에도, 무시당했다고, 자존심 상해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시간이 아깝습니다. 내 보화가 아깝습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것은 아까와서, 조금이라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지셨던 피묻은 십자가를 가르키며 말씀하십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또 잃을때,......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따를 수 없습니다.
38절 말씀, 한번 더 보겠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먼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것,
성도들은 꼭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문제아 들만 모아놓은, 대안학교에, 새로 여선생님이 부임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산만합니다. 교실은 엉망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합니다. “이제부터는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제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일 자세가 안좋은 학생을 앞자리에 앉힙니다. 학생이 투덜 댑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묻습니다. “왜 제일 앞자리에 오게 되었을까요?”
학생은 머묻머묻 대답합니다. \'제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자 아무게 학생 책을 읽기 바랍니다. 그러자 학생이 투덜댑니다. “왜 제가 책을 읽어야 되요?”
선생님이 질문합니다. “왜 먼저 읽어야 할까요? ” 학생은 머묻머묻 대답합니다. \'제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아, 불량청소년이라고 취급받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뭉클하게 되었고,
그 반은, 점점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지지 않고, 예수님만 따르는것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입니다.
그럴때, 자녀들을 내려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며, 은혜만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바른 신앙위에 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내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 같습니다.
쉽게 가려면, 무거운건 내다 버리고 가야, 쉽게 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때, 예수님을 따라갈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모순’ 이 아니라 ‘역설’인 것입니다.
잃으면 얻게 됩니다.
버리면, 받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면, 예수님을 따라갈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따름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가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주일마다 일찍 서둘러야 합니다. 그런데도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지휘자는 항상 ‘좀더 맑은 소리 내세요... 좀더 힘있게 찬송하세요’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아니요... 이 십자가가 나를 힘있게 세우는 ‘은혜의 자리’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직부서, 교회학교 교사, 구역장, 안내 위원, 남녀 선교회....
그냥, 편하게 몸만, 신앙생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수 있습니다.
봉사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또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시간도 빼앗기고, 신경도 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십자가의 자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은혜의 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봄이 되는, 4월달 8일에는, 한국인 우주인이 탄생된다고 합니다.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발사되어, 우주공간에 나갔다고 돌아오게 되어 진다고 합니다.
우주인이 되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무중력 훈련’이라고 합니다.
우주에 나가면, 나를 억누르는 중력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몸이 공중에 붕붕 뜨고, 몸무게가 없어집니다.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동안 나를 억누르고, 귀찮게 하는 중력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몸이 건강하고, 장수할거 같은데, 사실은 반대라고 합니다.
나를 내리누르던, 중력이 사라지면, 몸을 지탱하는, 뼈가 급격히 약해지고, 심장이 약해 집니다. 그리고 근육이 약해져서, 건강에 위태롭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우주에 나가면, 일부러, 뼈와 심장과 근육을 유지하기 위하여,
알맞은 운동을 꼭 실시해 주게 된다고 합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를 괴로움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오히려, 나의 신앙의 심장은, 더욱 예수님으로 뜨거워 집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기도와 찬송, 더 은혜롭게 됩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로 신앙이 건강하여졌기 때문에,
시험이 올 때, 활력있게 시험을 이겨 냅니다.
하지만 평소에 십자가로, 신앙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조그만 시험을 올때, 그만 넘어지게 됩니다. 일어서지 못합니다.
고민과 근심으로 힘들어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를때, 먼저 십자가를 힘있게 지는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따르는 이웃 사랑으로 열매맺게 됩니다.
4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십자가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구체적으로 생활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겠습니까?
바로 이웃사랑으로, 작은 자에게 냉수 하나라도, 베풀고 희생하는 차원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젊은 아버지가 골목에 나와서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봉팔아 화내지 마라. 봉팔아 화내지마\"
마침 길을 가던, 한 아주머니가, 그 모습이 정겨워, 말을 건냅니다.
\"에그, 젊은 양반 고생이네, 애기 울음이 대단하구먼...
......근데, 아기 이름이 참 예쁘네요........ 봉팔이 봉팔이....\"
그러자 젊은 아버지가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가 봉팔인데요.\"
애 때문에, 애 한테 화를 내지 않고, 자기 화를 억누르기 위하여,
애쓰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은 큰 것이 아닙니다. 애한테 화가 나지만, 화를 참는 것. 그것이 사랑의 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사랑’이라는 큰 가치는, 구체화 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적 덕목이 구체화 되지 아니하면, 아무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중요한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어린 아이에게....
그것도 비싼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냉수 한그릇, 이라도 줄때,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그것을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체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드릴때 만이 아닙니다. 식사할 때, 또 일찍 안내할 때, 맡은 모임에서, 봉사할 때....
지극히 작지만, ‘예수님 따름의 믿음이’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을때,
예수님께서는 그 알곡을 보시고, 천국창고에 기억해 놓으시고,
합당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일날 주님의 전에 나오는 것이, 모이는 교회의 모습이라면,
세상에 돌아가 6일 동안 살아가는 것은,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밭에 나가, 심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예수님 따름의 믿음이’ 그곳에 심겨져, 구체적으로 심겨질때, 열매는 맺히게 됩니다.
그것이 냉수 한그릇 주는 것과 같다 할지라도, 결단코,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상이 되게 해 주십니다.
가족들이 복음에 눈을 뜨게 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속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김포상도교회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를 건강하게 합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구체화 되어져야 합니다.
그럴때, 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십니다.
이번 한주간, 더 나가 올한해,
십자가로 건강하여지고,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상급을 받게 되는,
예수님 따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