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심히 소리질러 마가복음 10장 46절 52절
2005.06.04 21:26:43 조회6237
마가복음 10장 46절 52절 더욱 심히 소리질러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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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달을 시작하는 첫째 주일이 되겠습니다.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보면, 1년 12달의 반을 보내는 달이라 하겠습니다.
일년에 반이 지나간다고 할때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2005년 반이 지나가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학생들은 반대로 한달만 있으면, 이제 방학이구나, 하고 6월달이 빨리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릴 수도 있겠습니다.
올해의 반을 보낸는 이 시간에는, 그 동안의 6개월의 삶을 돌아보며, 바디메오의 신앙을 통하여, 맞이하는 남은 6개월의 믿음의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바디메오는 신앙인이 기회를 어떻게 선용해야 하는 가를, 잘 보여주는, 모델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인생에는 3번의 기회는 찾아온다고 말들 합니다.
나는 몇 번의 기회를 이미 사용하셨습니까?
또한 올해 2005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기회의 한해는 아니십니까?
바디메오는 누구보다가도 기회가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메오는 맹인이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무시를 받으며 살았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 처럼, 존경과 명예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회가, 꼭 필요하였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째 바디메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디메오에게서 본받아야 할 자세는, 예수님을 만났을때, 예수님을 나의 기회로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권을 삽니다. 그러면서, 옆 사람 보기가 멋쩍으니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할 것 아닙니까?”
그말이 옳은것 같습니다. 복권 꿈을 꾸러면, 최소한 복권이라도 사야지, 복권을 사지도 않으면서, 복권 이야기 해봐야 무슨 소용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복권 산다고 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바디메오는 평소에 눈을 뜨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나도 남들처럼, 눈이 떠져서,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좋을텐데...
그런데 하루는 구걸하다가 옆사람들이 이야기는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님이란 분은,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신데..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봉사도 눈을 뜨고, 귀신들린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고침을 받는데...
그리고 시일이 많이 지난 어느날, 사람들이 웅성거리를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기~ 저기~, 나사렛 예수님이란 분이 지나 가십니다.”
눈봉사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서,
좋은 구경 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좋은 말씀을 주시는 분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바디메오는 바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수 있는, 분으로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회를 맞이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 집니다. 또 행동이 담대해 집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애타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자 나의 일생을 바꿀수 있는 기회가 지금 내 앞을 지나가는데,
거기서도 점잔을 뺄것 빼면서, 지킬것 다 지키고, 양보할 것 다 양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 저 시간 나시면, 저 좀 뵐수 있으실까요?
바디메오는 이렇게 점잔케 말하지 않았습니다.
간절히... 속타는 마음으로,더욱 소리질러,“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예수님 앞에서는 바디메오와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름 없는 열처녀를 향하여, 기름 가진 열처녀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은혜의 임박성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6:2 이렇게 말씀합니다.
“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지금, 바디매오와 같이, 예수님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의 기회로 보고, 나를 고쳐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마나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바디메오에게 오셨던것 처럼,
오늘 나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오실줄로 믿습니다.
둘째 바디메오는 사람들의 벽을 뛰어 넘었습니다.
은혜 앞에는 항상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이 방해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장막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고개를 넘지 못하고, 돌아서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꼭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소리, 소리 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이런 바디매오를, 방해하는 장벽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방해가 그 장벽이었던 것입니다.
조용히 하라고 윽박 지름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너같은 맹인은 비키라고 밀칩니다.
사람들의 방해는, 바디메오가 예수님께 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여기에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같은 맹인이 소리질러 봐야, 돌아보시기라고 하겠나?
나같은 거지가 소리질라 봐야, 바쁘신데, 만나 주실 리가 있나?
바디메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들의 장벽이 가로막으면, 막을 수록,
오히려 더욱 소리 질러.. 거듭, 거듭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두드려 맞았도, 발길질 당해도,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바로, 바디매오의 위대한 신앙인 것입니다.
시험을 겁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이 없기를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위대한 신앙은 시험이 와도, 더욱 부르짓는 신앙인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때에는, 더욱 매어달리는 신앙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주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는, 살아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붙잡혀 들어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 두드려 패는것은, 변하지 않는 모양인가 봅니다.
몇일 전에도, 일본어로수역으로 들어간, 우리나라 어부들을, 일본해경들이 그렇게 두드려 팼다고, 하는데...
주기철 목사님때는, 나라가 없으니, 아주 대놓고 고문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면회 하는데,
그렇게 몰골이 형편 없으시던 주기철 목사님은, 그래도 웃으시면서 아들을 맞이하셨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시고, 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힘들면, 사실 기도하기도 힘듭니다.
어려움면, 신앙생활 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감옥속에서도, 기도하셨고, 고문속에서도, 예수님을 더욱 붙잡으셨더라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아,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는 지금 장신대 교수님이 되셨고, 또한 더우기 우리나라가 광복을 얻고, 오늘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에, 마음이 설래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가로막는 큰 성벽이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가나안땅을 못들어가게 막고 있는, 장벽은 여리고 성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전 같으면, 돌아가자고, 왜 이런데서, 우리를 망하게 불러 내었느냐고, 하였겠지만,
광야에서 신앙훈련한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대신, 순종하였습니다.
낙담대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벽을 향하여, 외첬습니다.
그렇게 크게 부르짓을 때에, 그 큰 장벽, 여리고성은 무너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벽 바라보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부르짖는 믿음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바디메오는 자기 소원을 병백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어느 강연장에서 강사가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그 곳은 ‘사랑해’입니다..”
이것을 듣던 아주머니가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래 나도 남편한테 가서 이 말을 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나도 한번 들어 봐야지..
그리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여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딜까요?“
남편이 어려워 머뭇머뭇 합니다. 그러자 부인은 웃으면서 힌트를 줍니다.
“당신이 항상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거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아~ 알았다.. “열바다”, 열바다 지..?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사실은 매우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기의 인생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
자기의 신앙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매우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 하십니까?
왜 예수님을 따라 가십니까? 라고 질문할 때에,
네, 나의 신앙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라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것,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신앙의 목표, 신앙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 신앙의 목표가 분명할 때, 신앙에, 성공할수, 있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비명을 들으시고, 바디매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분명하게, 명료하게 대답니다.
예수님, 눈을 뜨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이 눈, 좀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 고침받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특징은, 고백이 분명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를 고쳐주십시오.. 내 딸을 살려 주십시오.. 내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내 하인을 고쳐 주십시오...
이러한 분명한 고백이 있는 바디매오는 눈을 뜨게 되자, 또한 분명하게, 예수님을 쫓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가는 신앙은, 분명한 정체성이 있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살아갈때에, 분명한, 목표와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남은 6개월...분명한 신앙의 목표와 고백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장벽이 있을때 더욱 부르짓으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부르짓어 불러, 눈을 뜨게 되었던 바디매오 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부르짓어, 꼭 응답받는,
2005년 보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