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던져두고 누가복음 5장 1절 11절
2005.02.28 23:40:58 조회5465
누가복음 5장 1절 11절 그물을 던져두고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마ㅊ도록(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사순절은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나의 신앙의 돌아보는 기간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2월달을 마감하며, 또 겨울을 끝내며, 또 만물이 움트는 봄을 바라보며, 베드로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함께 하였던, 500여 형제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던, 120 문도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전도할때에, 짝하여 보내었던 70여 제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베드로를 주목하고, 베드로에 대하여 자주 기록 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신앙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분명,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을 것을 믿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신앙은 한때, 배신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신앙에 승리하여, 박해와 핍박으로, 교회가 흔들리고, 혼란스럽게 되자, 그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거꾸로 지면서까지 희생하여,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고,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교회를 훌륭히 지켜 내었던 믿음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계속 자라나고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큰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게 된다고 하듯이, 크게 성장하기 위하여서는, 그 기초가 되는 믿음의 자세와 토대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무명의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볼때에 그의 신앙은 기초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10년 가도 제자리 걸음하는 신앙이라면,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은 받았습니다만, 상급없고, 면류관 없는 구원이라면, 부끄러운 구원이라 하겠습니다.
이왕 구원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는 모범이 되는 성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도,
면류관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3절 말씀에는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마음이 얼마나 순전하였으며, 또 남을 위하여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5절 말씀에는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되어집니다.
베드로는 밤 낙시를 하였습니다.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리고 잡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날이 새고 말았습니다.
아침이 밝아오자, 눈이 알딸딸 합니다. 온 몸은 쑤십니다. 그래서 피곤한 몸이 되어서 그물을 정리하며, 해변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배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들어오는 베드로에게 부탁하며, 배에 오르시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보통 사람이라면, 허락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밤 한잠 못자고, 몸이 피곤합니다. 그래서 빨리 들어가서 잠을 자야, 또 저녁에 고기잡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도 못자고, 피곤한 몸인데, 다시 배를 돌려 운전해 달라고 합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내일이 먼저고, 우선 내가 피곤한데, 또 아무것도 남는것이 없는데, 언제 보았다고 예수님을 위하여, 누가 이런 수고를 하겠습니까?
나는 피곤하니까 다른 배나 알아 보십시오..
괜히 여기서 그러지 마십시오. 그나마 있는 고기 다 도망갑니다. 다른 곳에 가십시오..
아마 그렇게 말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배에 모시고,
밤새도록 잠 못자서, 피곤한, 몸으로, 오전 내내, 뙤악볕에서, 배를 운전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수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는 것은
나를 내려 놓는 행위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주장을 스톱, 정지 시키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는 것입니다.
요즈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로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을때에, 그러면 이제 나의 마음에 근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근심을 내려놓지 않고, 꼭꼭 껴 안고, 그 마음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길로 뛰어 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돈이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또 400억 당첨을 한번해도, 좋을텐데, 그런 로또 수백번 당첨되야, 가질수 있는 상상이 않되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망했다고 하면서”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인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방금 영화를 만들고, 모두가 잘 될꺼라고 하는데, 혼자 마음의 중압감과 멍애를 감당할 길이 없어, 다른길이 없다고 하며, 목을 매어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않되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렷다고, 다른 길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 때문에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어떠 하였습니까?
밤새 피곤함으로 가득찬 자리였습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여, 절망감으로, 분함으로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을때,
자신의 생각, 자신의 주장은 내려놓고,
예수님을 자기의 생활의 중심인, 자기 배에 모셔 들였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수지타산을 따져서 생기는 이익이 아닙니다.
은혜는 아멘의 자리입니다.
2. 베드로는 예수님께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다.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오전내내 피곤하게, 배를 운전한 것도 참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인데..
그런데,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바다로 운전해 나가서, 예수님이 가르키시는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대단히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그만 했으면 됬으니. 나는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5절 말씀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텔레비전에서 VJ 특공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요즈음 뜨는 신종직업을 탐방하여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한 가게 사장님이 이런말을 합니다.
‘요즈음은 잘 해서는 성공할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가 될 때에 성공합니다.
우리 가계는 손님들께 잘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가 되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하여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분내어 한번, 예수님 말씀 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철저하게 최고로,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오전 내내 힘들었으면서도..그래서 피곤이 머리에 까지 찼으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이 바다로 가자고 하니까, 또 바다로 나갔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밤이 새도도록 얻은것은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대답에는 놀라운 고백이 들어 있는 것을 주목하게 됩니다.
오전 내내,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또 한번의 명령에 이번에도 또 피곤하지만 내 생각을 한번 더, 접고, 순종했던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밤이 맞도록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을때에는 기쁨으로 할수 있습니다. 즐거움으로 할수 있습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위로 받으면서, 이제는 선선히 감사하면서 순종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돈이 무슨 돈인지 아십니까?
할머니 라고 합니다. 머니 돈.. 할 머니..
유머입니다만,
어떻게 그 힘든 세상을, 그 긴 시간을 부부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의무감으로, 살아라고 한다면 못살것입니다.
법으로 살아라고 한다면, 그렇게 못살 것입니다.
하지만 즐거움으로 사랑으로 살아갈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볼때마다, 즐겁고 힘이 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볼때마다, 기쁘고 넉넉하기에....
그 긴시간, 험한세상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가며,
함께 살아갈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무감으로 한다면, 베드로가 어떻게 또 하겠습니까?
시작은 의무감으로 시작하였을지 몰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변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며, 아멘 하며, 할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자세가 틀려질때, 은혜의 차원도 틀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6절 말씀에는 그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절 말슴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
베드로의 이런 은혜를, 다 받게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써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도 어느 정도지, 사실 그 넘어에 것은 하나님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한두 마리는 사람이 잡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는 것은 사람이 할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새로운 신앙의 차원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3.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고는, 거기에 멈추어 서지 않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점에서 멈추어 서게 됩니다.
한번 주신 은혜를, ‘행운이다’, ‘복 받았다’고, 하면서, 일회적 사건으로 넘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기가 많이 잡힐때, 일회적 사건으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사건으로 이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게하신, 사건 넘어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회개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였습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는 이 사건 후에 동생과 함께,
또 그와 함께 일하던, 야고보와 요한도 전도하여 함께,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후로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네 사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앞장서서 가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앞장서서 봉사하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힘써 섬기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세우는,
큰 신앙의 소명을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서 계시는 쪽으로 나의 배를 몰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타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다로 몰고 나가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베드로의 배가 받았던, 은혜를, 받고,
또 베드로가 고백하였던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