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모님. 눅가복음 15장 20절 24절
2005.05.08 10:10:40 조회5151
눅가복음 15장 20절 24절 부모님, 부모님.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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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에는 그 시대를 나타내는 트랜드, 큰 흐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트랜드 중에 하나는 ‘권위의 상실’이라 하겠습니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대통령이라고 하면, 각하 라는 존칭과 함께,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어떻습니까?
대통령은 각종 패러디에 인용되는 단골 메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 대통령 뿐이겠습니까? 선생님들도 권위를 잃어버린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은 어떠합니까?
과거에는 ‘군사부 일체’라 하여, 나라와 사회를 지탱하는 세가지 권위에 원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모님이 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부모의 권위도 많이 상실되게 된것이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이제는 ‘효’라는 것은, 상당히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이런 세태에 섭섭하지는 않으십니까?
한편으로는 억울하시지는 않으십니까?
··········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는 섭섭한 마음을 감출길 없는 한 아버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다를바 없는, 속이 터지는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만한 둘째 없다고 하는데, 둘째인 탕자도 얼마나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지 모릅니다.
이 탕자는 효도는 하지 못할 망정, 아버지에게 화를 내면서, 날마다 언성을 높이며, 아버지에게 대어듭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유산으로, 아버지의 재산 중, 자기 분깃을 달라고 악을 씁니다.
견디다 견디다, 할수 없어서, 아버지는 결국, 재산의 일부를 아들에게 줄수 밖게 없었습니다.
자 재산까지 빼앗은 아들은, 그 재산을 처분하여, 멀리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런데 아버지는 그 못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2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그렇게 못된 아들...
재산을 빼앗아간 아들...
그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볼때에....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모른척 하지 않았습니다.
화를내고,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달려가서, 측은히 여기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자기를 끓어 앉는 아버지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입 맞추는 아버지 앞에서 과연, 어떤 악한 아들이, 성질을 부리며, 대어들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은 그 한량없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는 존재입니다.
자기를 향한, 부모님의, 그 사랑 앞에
모든 자녀들은 눈물흘리게 되며, 감사하게 되며, 존경하게 되어집니다.
둘째로 부모님은 참는 분이십니다.
내가 화를 낼때도, 부모님은 참으십니다.
내가 실패하고 좌절하여, 원망할 때에도, 못 도와 주어서 어떻하냐고, 오히려 자기를 답답해 하시며, 부모님은 참으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라면, 성질도 있고, 속 마음도 있을텐데.... 부모님은 참으며, 살아 가십니다.
내가 조금 성공하여, 형편이 좋아질 때에, 부모님 앞에 자랑할려고, 가 보았더니,
어느듯 부모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계십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에너지를 자녀에게 주고, 자신은 늙어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받아주는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악하던 탕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상담학자들은 어린아이의 인격은 부모님을 통하여, 객체화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분노의 감정이 본능적으로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발산하여도, 부모님은 받아 줍니다.
아이가 엄마 젓을 먹으며, 엄마를 깨물어도, 엄마는 아파하면서도, 계속 젖을 먹여 줍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통하여, 엄마를 믿게 되고, 자신을 믿게 되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조그만 잘못에도, 화를 내고, 채벌을 하게될때, 아이는 불안하게 됩니다.
또 내가 실수 하지는 않을까? 또 내가 잘못하지는 않을까? 나는 실수하고 잘못하는 아이야...
그래서 아이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불안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어 진다고 합니다.
탕자는 화를 내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삐뚫어지고, 잘못된 성격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탕자를 아버지는 끝까지 받아주었기에..
탕자의 잘못된 성격은, 모든 것을 받아주는 넉넉한 아버지의 사랑안에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탕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깨닫는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소변을 받아 오라고 합니다.
이 아버지는 재빨리 집에 가서 큰 병에, 소변 가득 담아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깜작놀랍니다. “아니 무슨 소변을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까?
검사를 하고 의사선생님이 말합니다.
“검사 결과가 좀 독특하지만, 큰 병 없이 건강하십니다.”
그러자 이 아버지가 기뻐하며 재빨리 전화를 합니다.
“여보, 우리가족은 모두 건강하데...... .
우리가족 모두 마음 푹 놓으라고!”
자녀들은 부모님이 실수는 전혀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든 조건이 완전히 갖추어 졌기 때문에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어설프고, 모자라는 나의 모습이 보여도, 자녀이기에 사랑하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부모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께 가시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예수님의 온 몸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넓은 사랑의 팔로 안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때,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죄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할때가 더욱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 보다가 세상을 더 우선시 하는, 죄를 지을때가 많이 있습니다.
항상 죄를 짓고, 돌아와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오히려 은혜의 새옷을 입혀 주시고,
용시의 새신을 신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됨의 가락지를 다시 끼워주시기 까지 하십니다.
이 할량없는 사랑 앞에, 녹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왜 날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예수님 왜 화내시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받아 주시는 겁니까?
아무리 질문을 하여도, 예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오히려 나를 측은히 여기시고, 입맞추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할량없는 사랑이 있기에,
자기 파괴적이고, 또 자기 분노로, 자지러저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의 잘못된 모습들이 있지만,,...
그 모습들을 다시 추수려 일어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게 되고, 세상을 향하여 새힘 얻어 나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부모님의 모조건 적인 사랑 때문에 내가 온전하게 성장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답답하지만 참고 나를 사랑하시던 부모님을 향하여, 이제는 내가 사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또한 더욱이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으로, 오늘 내가 세상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답답한 나의 죄된 모습에도 참으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세상속에서 온전하게, 또 풍성한 은혜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