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가정 사도행전 16장 24절 34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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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는 여자를 부를때, 무조건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도, 아이를 데리고 다녀도, 분명히 아줌마로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아가씨라고 물러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안하는 것이, 이제는 사회문화가 되었기 때문에, 여자는 결혼 안하는 것을 아예 전제로 해서, 아줌마라는 호칭은 사라지고, 아가씨라는 호칭만 통용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요즈음 저 출산으로 인하여, 상당한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3명 이상 놓게 되면, 정부에서 돈을 주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이민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왜 요즈음은 가정을 혐오하고, 또 가정이 수축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까?
그것은 가정이 사라지고 나 만 있는 시대고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거추장스러운것...
가정은 힘든 짐...
그래서 가정을 버리면 홀가분 하고, 자유스럽다고 까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저와 온집이 하나님을 크게 믿었으므로...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은혜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 구원받고, 가정이 은혜받는 것으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구원은 나와 내 집이 구원받는 것입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는 가정이, 구원받는 다는 신앙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만큼 자녀사랑이 지극한 나라도 없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한국국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한국국적을 물려주지 않는 것을, 가진 것의 상징처럼 여기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많습니다.
자녀 교육으로, 군복무 문제로, 사회에 소망이 없다고 하면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가지도록 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모님은 한국인, 자녀들은 외국인이 되어 있는 가정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으로는 어떠합니까?
가정에서 온전히 가정 전체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가정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나는 예수님 믿고 천국가지만, 자녀들에게는 천국 국적 물려주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더 공부하도록 하기 위하여,....
또 시류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는 자기가 알아서 가야지요..
하고 오히려 방치하기 까지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는 가정이전에,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챙기고, 또 챙긴다고 그 말을 듣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덤과 에누리가 사라진 사회 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정찰제가 당연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틈과 여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평가만 난무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화이트 칼라, 사무직 가운데에는, 밤을 세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다 보니, 남 보다 더 앞서기 위하여서, 당직을 자청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 나는 열심히 일 할수 있어요.... 나는 밤세워 일하는 것이 즐거워요... 일 좀 더 시켜 주세요.....
그러면서, 맘에도 없는 당직을 자청한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간수는 에누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치에 틈도 없이, 맡겨진 죄수를 관리하고, 또 상관에게 평가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그가 맡은 죄수인 사도 바울이, 일순간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보니까 옥문을 다 열려 있습니다.
쇠사슬을 다 끊어져 있습니다.
아차 이사람이 도망 갔구나...
나는 이제 망했구나..
그리고 칼을 가지고 자살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틈이 없는, 에누리가 없는 이 간수는 자신에게도 에누리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관리하는 죄수가 탈옥한 것을 보고는, 칼로 자살할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어두 컴컴한 곳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
우리 성도님들도 몸을 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괴롭고 어려울때, 우리는 몸이 상하게 됩니다.
치지고 누가 하나 알아주지 않을때, 우리는 몸이 상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간수를 향하여 소리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 다 있습니다. 그럴때 간수는 마음이 녹아 내리고 말았습니다.
왜 도망 않가셨습니까?
좋게 대해주지도 못하고, 괴롭히기 까지 하였는데,
왜 나를 배려하여서, 도망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간수는
자신의 그 각박한, 삶....
잠시의 틈도 없이...다른데 눈돌리지 못하고, 숨도 제데로 못 쉬면서 살아가는 저주스러운 자기 삶....
그래서 조금의 애누리도 없어서 실수하면, 자살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사도바울을 향하여 질문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
그럴때 사도바울은 권면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멀쩡한 아이가 집을 가출을 하여서, 교회에서 자야 되겠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서, 이것 저것 물어 보니,
부모님이 집에만 들어오면, 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건 부수고... 밤새 소리 지르며 싸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가출하면, 부모님은 싸우는 것을 그만 두고, 아이 찾으로 다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수시로 집 분위기만, 않 좋으면, 가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아이는 괜히 삐뚤어져 살아갑니다.
알고보니, 무남독녀...부모님들은 이 아이, 하나만 있다보니, 자기 생명처럼 떠받듭니다.
잘해도 칭찬, 못해도 칭찬...고장나고, 더러워 지면, 고치고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 사 줍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화가 납니다. 나도 잘못하면, 야단 맞고, 잘 하면 칭찬 받고 싶은데.....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부모님이 자기를 떠받드니까...
부모님으로부터 일부러 멀어지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탈은 부모님이 나지만, 아프기는 아이들이 아프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일으키지만, 일이 손에 않잡히는 것은 부모님들이더라는 것입닏.
가정은 남편 아내, 아들, 딸.....네명이 모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명이 남편과 아내와 딸과 아들이 엮여져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아버지 따로, 아내 따로 아들 따로, 딸 따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누룩과 같아서....한사람이 구원을 받아도, 그 구원은, 퍼저 나갑니다. 가정 전체로 퍼저 나갑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복음으로 변할 때, 아버지도 변하고, 그래 아들과 딸도 복음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가정에 주시는 구원인 것입니다.
어떤 여자 성도님이 신유집회에 참석하고 집으로 갑니다.
집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화가 났습니다.
밥은 안 주고,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하냐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자 성도님이 남편을 보고, 호통을 첬다고 합니다.
“이 사단아 물러가라..”
그래서 남편은 야단맞고, 한동안은 사단으로 불리워지며, 눈칫밥을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원은 한사람에게만 주시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정 전체를 세워나가는, 은혜의 변화인 것입니다.
구원은 편가르기가 아닙니다.
가정에서 믿는 사람, 않믿는 사람, 나눠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정에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로워 질때, 그 가정 전체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그 가정 전체가 복음으로, 가정이 변화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34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
한사람의 간수가 복음 앞에 노출될때, 간수만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그 간수의 가정 전체도, 복음 안에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극복하고 살아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영생에 이르는 사람으로 변하고,
그의 가정은 천국국민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의 청체성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는, 가정 전체가 천국국민 되는 것을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신앙을 물려주는, 신앙을 퍼트리는,
복음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누룩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정 전체가 복된 길로 걸어가는, 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