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14절 22절 화목하게 하심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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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넷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이번주 금요일이 되겠습니다.
항상 성탄절이 되면, 다사다난 하였던 한해가 지나간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한해가 지나가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봄에는, 봄같지가 않다고 해서,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유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봄 만 봄 같지 않은것이 아니라, 여름도, 가을도,~ 겨울이 되어도, 어색하기만 하고, 싱숭생숭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기 예수님이 오시던 첫 번째 성탄절은, 지금과 비교할수 없이, 혼란하고, 어색하고, 싱숭생숭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장 1절에는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즉 바다건너 로마에 사는 황제가, 모든 사람들은 다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로마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나라들이, 호적조사를, 시작 합니다.
왜? 라는, 이유도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고향으로 가는, 대이동이 시작 됩니다.
당시 유대에 분봉왕은 헤롯, 입니다. 유대에 왕인데 유대인이 아닙니다. 에돔사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백성들 불평하고, 원망과 혼란이 대단하였겠습니까?
“언제 집으로 돌아갈수 있습니까? 호적조사가 마무리 되어야 됩니다.~
언제 호적은 끝납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호적, 순서를 기다리세요~
하지만, 아기예수님의 오심은 지체되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에 기록된데로 베들레헴에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씨는 춥고 마음은 싱숭생숭 합니다. 성탄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성탄절은 전혀 지체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아기예수님은 변함없는 은혜로 찾아와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시므온과 안나 처럼,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여,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예수님께 경배하고, 성탄절의 축복이 나에게 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기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죄의 권세는 무너지게 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제물이 되어 주십니다.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자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성전과 예배가 퇴색되고, 거룩함을 잃어갈 때,
성전건물을 무너 뜨리시고, 예수님의 몸위에 거룩한 교회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대제사장 되시고, 대속제물 되심으로, 예배를 친히 주관 하십니다.
그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이제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예배에는, 천국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도들이 덕스럽게 말씀을 이루어 가도록, 직분을 주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아기예수님이 이 세상에 찾아 오시기 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 이었습니까?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에는 예수님이 오시기전, 우리의 모습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 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육체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르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죄 아레 있을 때, 사람은 위에것을 찾지 못하고, 육체가 이끄는데로 살아갑니다.
육체가 충동하는데로, 욕심을 발동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요. 선그라스를 끼면, 세상에 어둡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선그라스를 끼면 죄악을 탐하고, 죄악을 갈망하게 됩니다.
또한 죄악의 충동과 죄악에 대한 갈망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원하는데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결과 성령의 열매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죄악의 열매만 맺게 됩니다.
얼마전 나쁜짓을 하고 10여년 넘게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사람이 있지요. 그랬더니 그 사람을 징벌하겠다고, 격투기 선수, 힘이 좋은 사람, 싸움 잘하는 사람들이 몰려가서, 벼르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온적이 있습니다.
선한 방법이 아니라 악한방법으로 징벌하여도, 징벌하니 정의라는 생각에,
의협심, 분기, 감정이 뭉쳐지며 일어난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악을 악으로 징벌하고, 죄를 죄로 징벌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세상이, 바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르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될 수 밖에 없고,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진노의 자리에 있었던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바리새인들의 교만, 사두개인들의 술수, 대제사장의 판결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바리새인은 죄를 지으면서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다고 말하는, 지극히 스스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두개인은 성전의 책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영을 부정하고 천사를 부정하고 부활을 부정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다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믿지 않으면서 성전에서 봉사를 합니다.
대제사장은 율법으로 판단을 하여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도 불의로 판결을 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줍니다.
자, 이러한 불의와 죄악된 일에, 예수님께는 더 큰 악으로 징벌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온전히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화목의 제물이 되십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 에베소서 2:14, 16, 18 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즉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원수된--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하여 주셨다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전적인 포용, 일방적 화해는, 인간으로써는 이해할수 없는 정의와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건을, 아가페 사랑,~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자녀 삼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은 포용과 화해에 머물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속제제물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 앞에 서는 사람에게, 완전한 죄의 소멸을 이루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는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게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유대민족 처럼, 족보가 잘 되어 있습니다.
족보를 보면, 제일 맡집에 아들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형제들 중에 아들을 택하여, 맡집에 양자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면, 그 양자는 명목만 맡집에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맡집에 아들이 되어 집니다.
맡집에 재산을 상속받고, 맡집에 종손이라는 자리도 상속받고,
맡집에 종손이 되어, 대를 이어가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진노의 자녀’ 였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명목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양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도, 상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계시록 21:6-7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자리에 계신 한분한분은,~ 또한 카톡방속으로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한분한분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탕자처럼 죄악세상으로 나가는 사람 있습니다.
죄악속에, 고생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않돌아오고 그대로 죄악속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속받는 그 집에 자녀로써, 좋은 상황이 될 수가 없지요.?
자녀는,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아버지 선물 좀 사주세요”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보면 반갑게 맞이합니다. “아버지, 학교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집을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여행이라도 떠나면 처음에는 여행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지만 곧 집떠나면 고생이 됩니다. 빨리 아버지에 집에 돌아가야지~ 그러고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를 기다지리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돌아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이시간부터, 다시한번,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을 상속받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임을, 분명히 고백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3. 예수님은 우리를 파송하십니다.
아기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파송 하십니다.
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하여 출발하는것은,
세상이 본향이기 때문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영광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하여 파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세상으로 파송을 받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찾아 오셔서 하셨던, 그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을 향하여 출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17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파송을 받았습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입니다. 즉 아기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귀한 일과, 가르쳐 주셨던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되게 하셔서, 이제 우리는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며, 다시 오시고마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혀 자랑할 일이 아니요,
오히려,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사명을 받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 미안, 페피 스튜마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이코노미안’은, 가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청지기를 뜻합니다.
‘페피스튜마이’는 위임받다, 위탁받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즉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종이 아니라 책임있는 청지기가 되어, 전적으로 책임을 받고 위임을 받아서, ‘복음전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겨주심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신것 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주심으로, 오늘 우리의 사명의 길을, 온전히 책임있게, 하나님의 자녀로써, 감당해 나가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시려,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일수밖에 없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막힌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사랑받는 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 귀울여 주십니다.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상속하여 주시겠다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 오신것 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복음의 사명자로 파송하십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이 본향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아기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기뻐하고, 복음의 사명자로 감사하며,
은혜롭게 보내는, ‘성탄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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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기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어 주시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심으로,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하여 주시니, 무한감사 드립니다.
본향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사랑 감사하여 복음의 사명자로, 세상을 향하여 출발 하오니,
이번 주간은, 성탄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한주간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하고, 감사하며, 복음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탄절 주간으로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