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30절 먼저된 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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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를 출발하고, 한주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열심히 출발하고 있습니까?
다른사람 보다가, 앞서 달려가고 계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새롭게 함으로 새해를 출발하자’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옛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생활로써 새해를 살아가면, 숫자는 새해가 되었지만 내용은 옛사람의 연속이 되어 집니다.
생각과 습관과 생활을 새롭게 할 때, 온전히 새롭게 출발할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버리고 바꾸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해진 빈공간을 채우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좋은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곧 세상의 않좋은 것이 들어와 채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깨끗하게 하여 주셨는데, 그 사람은 깨끗해진 마음을, 그냥 텅빈채, 그대로 놓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악한 마귀가 깨끗하다고 자기 친구7명을 더 데리고 들어와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품격, 믿음의 수준에 맞에 채우고, 꾸미며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거실도 믿음으로 꾸미고, 안방도 믿음으로 꾸미고, 더 나가서 믿음생활도 믿음의 품격과 믿음의 수준에 맞게 채우고, 꾸미고, 가꾸어, 가야~ 합니다.
오늘은, ‘뒤바뀌는 순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유대지방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장의, 1절 상반절에는 “갈릴리를 떠나 강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찾아옵니다. 3절 보니까, 먼저 바리새인이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 좀 이상합니다.
3절 상반절에 말씀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마음문이 얼마나 꽉~ 닫혔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좋은 길로 가려고 예수님께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려고, 예수님을 시험을 하려고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자~ 바리새인, 유대인들은 왜, 마음이 이렇게 꽉~ 막히고, 교만하고, 딴곳에 관심이 가 있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까?
본래,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축복의 민족’ 이었습니다.
처음에 유대인은 선민이 되었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유대인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예배입니다. 성막과 법괘를 만드는 방법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성막에서 어떻게 예배드리는지 예배의 방법에 대하여, 받았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드리며 만날수 있는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어떻게 하면 동행할수 있는지, 모세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제사장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대로만 하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라에, 천국에 들어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예수님 앞에 나온, 유대인은,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골몰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의 새롭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관심과, 명예와, 허세와 교만을 위하여,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예수님께 무엇을 질문하고 싶으십니까?
“나에게 질문할때, 딱 한가지 질문에는, 내가 무조건 답을 하여 주겠다.~” 고 하신다면, 나는 무엇을 질문하고 싶으십니까?”
선민으로 선택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대한 율법을 받고, 제사장 민족이 되어서, 그대로만 가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라에,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면...
“예수님, 예배를 어떻게 잘 드릴수 있습니까?”
“예수님, 저는 지금 천국가는 길로, 잘 가고 있는것 맞지요?”
아마,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유대인으로써, 가장 알고싶은 질문이 아닐까? 싶은데....오늘 성경본문을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유가 있으면, 그의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 세상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누가복음 20장에 보면, 비슷한 질문을 하는데, 그러나 거기에서도 관심은 천국이 아닙니다.
“일곱형제가 차래대로 죽으면서, 모두 한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았는데, 죽으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
난해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수도 없는 상황을 상정하여,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늘본문 16절에 보면, 어떤 유대인 청년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그럴 때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말씀하여 주십니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러니까, 유대인 청년은 상심하여 돌아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몹시 놀라고 걱정이 되어 질문 합니다. “그렇다며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잠잠히, 오늘읽은 설교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혹시, 100m 달리기를, 해 보신분이 있으십니까?
제가 보니까, 학생때 운동회를 하면, 선수로 활약하신 분이, 좀 되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내가 지금은 이래도, 학생때는 한참 달렸습니다.~”
달리기 해보면, 몇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출발할 때 빨리 나가는 학생이 있습니다. “땅”~ 소리만 나면, 반사신경이 빨라서 그런지, 다른 학생보다가, 먼저 출발합니다.
중간에 치고 나가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은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출발은 좀 늦어도, 곧 힘을 내어서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그리고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단거리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장거리로 가면 갈수록, 이게 중요해~ 집니다.
뒷심~ 이라고 하지요. 400m 800m 단거리마라톤이라도 하면, 뒷심~이 좋은 학생이, 결승점에 먼저 들어 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발할 때, 먼저 출발한 학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천국에 들어갈수 있도록, 먼저 부름을 받았는데, 그 부름의 귀함을 잊어버리고, 천국이 아니라 다른것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선민의식이 체면과 명예가 되어, 외식과 교만의 길로 갑니다.
젊은청년은 세상재물과 세상자랑을 좋아하여, 천국이 아니라, 세상제물과 세상자랑의 길로 갑니다.
결국, 먼저 된 자가, 순위가 뒤집어져, 순서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천국에 들어가는 가능성에서 나중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부름을 받았는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믿음의 길을 갈 때, 순위가 바뀌어,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는 앞쪽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본다면, 2021년 새해를 출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발할 때, 앞서 달려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간에,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승점에, 보람있고 복되게 마무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출발이 않좋았는데 결승점에 좋게 들어간 사람 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역대상 4장 9절 10절 에 말슴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출발이 좋으면, 큰 복이 아닐수 없습니다.
늦게 출발한 사람이,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으려면 몇배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앞서가는 사람은, 조금만 힘을 내어도, 큰 힘 않드리고, 앞서 달려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주가 시작되면, 많은 요소들이 작용을 합니다.
출발이 빠른사람은, 곧 여유를 부리는 유혹이 찾아 옵니다. 여유는 나태함으로 발전하고, 교만으로 발전을 합니다.
늦게 출발한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고, 낙망낙심하게 됩니다. 절망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먼저 출발한 사람, 늦게 출발한 사람, 모두 똑같습니다.
유혹은 똑같이 찾아오고, 이 유혹을 이기지 않으면, 중간에, 결승점에, 좋은 결과를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자, 야배스는 출발이 않좋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역대상 4장 9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수고롷게 태어 났습니다.
태어나는 환경이 않좋아서, 야베스룰 낳을 때, 집안 형편이 수고롭고~
야베스를 낳는 어머니의 상황이 않좋아서, 어머니는 야배스도 고생속에 낳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야배스의 마음속에는 동경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나도 복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은 땅도 넓고, 하는 일도 잘 되고,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데,
나는 땅도 없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생활속에는 근심걱정이 떠나가지 않으니...
나도 복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동경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변함이 없는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동경, 이런 생각은, 젊은이, 장년, 노년, 할것 없이, 누구나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사업장도 넓고, 생활도 풍요롭고, 하는 일도 다~ 잘되고, 근심걱정이 없는것 같은데~
나는 왜 사업장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도 없고, 생활에 근심걱정이 떠나가지 않으니.....나는 왜 이리 박복한 사람인가?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야베스는 동경만 하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뒷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의 뒷심은 오기나, 만용이 아니라, ‘믿음이 뒷심’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말씀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여기서 ‘이스라엘 하나님’ 이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부분을, 더하여서 불렀습니다. 에벤에셀에 하나님, 엘샤다이 하나님, 임마누엘에 하나님,
이것을 성호, 하나님의 거룩한 칭호 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the name of the LORD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누구가 사용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입니까?
‘야곱’이 사용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입니다.
야곱이, 형에게 미움을 받고, 몸만 빠져나와, 도망을 가게 됩니다.
홀홀단신으로 집에서 도망을 갈 때, 갈곳이 없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고, 받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수도 없습니다.
이런 야곱이기에, 외삼촌 라반에 집에 가서, 정말~ 몸으로 떼우며, 살아갈수 밖게 없었습니다.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면서, 살아갑니다.
잘못하면, 몇배로 갚아내며, 살아갑니다.
하는수가~ 없지요. 출발이 늦으니까, 몸으로 다~ 감당하며 살아갈수 밖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좋아서, 하나님께 축복받기 위하여, 그 길을 걸어 갑니다.
“형~ 잘못했어, 하나님께 받은 장자의 축복, 형한테 돌려 줄게 ” 절대로 그러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 축복을 안고~가고 싶어서, 그 고생길을 걸어갑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축복이 입합니다. 야곱의 소유가 점점 늘어납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두딸과 결혼을 합니다. 외삼촌 보다가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돌아올 때, 천사와 시름을 하는데, 천사가 야곱에게 말해 줍니다.
“너는 이제부터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래서 야곱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마음속에, 야곱이 받았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야곱에게 복을 주신, 이스라엘 하나님” “그 복을 나에게도 복을 주시옵소서”...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출발이 어떠한지 알수 없으되, 야곱의축복을 받고 싶은 분들은, 야베스 같이, “야곱에게 복을 주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야곱에게 복을 내려주신 똑같은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만나주실 때, 야베가 야곱처럼 바뀌고
야베스에게 복을 내려주신, 똑같은 하나님을 오늘 내가 만날 때, 하나님께서는 야베스를 바꾸어 주셨듯이, 나를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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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양을 치로 나가듯, 야베스도 기도하며, 아침에 일어나 양을 치러 나갑니다.
야곱이, 얼룩 양은 내것으로 하기로 하였는데 오늘 태어나는 양은 얼룩양 일까?
야베스도, 양이 오늘 세끼를 낳는데,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 세 마리일까?
바라는 것이 야곱을 닮아가고, 생각하는 것이 야곱을 닯아가고, 살아가는 것이 야곱을 닮아갑니다.
그러니까...받는 축복도, 야곱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아뢰고, 야곱처럼 살아갈 때, 야곱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베스는, 출발은 수로롭고, 중간에도 걱정과 근심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야곱처럼 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올해, 나는 누구처럼 바뀌고 싶으십니까?
야베스처럼, 야곱처럼, 아브라함 처럼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야베스를 닮고, 야곱을 닮고, 이삭을 닮고, 아브라함을 닮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 처럼 말하고, 아브라함처럼 기도하고, 아브라함 처럼 예배드리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그대로 똑같이 나에게도,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종으로 횡으로가 다녀보라.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눈으로, 올 한해를, 먼곳까지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마음으로, 계획을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축복으로 주셨듯이, 나에게도 “축복의 한해”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베스가 야곱처럼 바뀌고, 모든 것이 뒤바뀌어, 앞쪽에 서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던, 비결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먼저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 됩니다.
유대인은 선민으로, 먼저 부름을 받았지만 나중되고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부름받았지만, 천국에 들어갈 때, 앞서게 되었습니다.
야베스는 출발이 않좋았습니다만,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며--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축복을 사모할 때--
지경이 넒어지고, 범사가 형통하며, 존귀한 자로, 결승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새해가 출발이,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좋은 믿음을 닮고,
그래서 믿음의 뒤심을 발휘하여, 축복의 올 한해를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하나님, 올 한해 출발할때에, 먼저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게 되게 하심을 기억하고, 신실함으로~ 겸손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앞에 큰 복을 받는 한해가 되고 싶습니다. 성경속에 좋은 믿음을 닮아서, 그 복을 내가 꼭~ 받는 한 해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