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7절 24절 풍족한 아버지 집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오늘은 추수감사주일 입니다. 올 한해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주일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상반절에는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풍족한 아버지 집”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풍족한 아버지 집에서 잔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게 되었습니다.”
살찐송아지를 잡고,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크게 즐거워 하게 되었습니다.
잔치가 너무너무 성대하고 좋습니다.
이 잔치를 들여다 보면, 두가지 감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탕자는 그 동안 지긋지긋한 나쁜것에서 벗어날수 있게 된 감사,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온 아들로 인하여 감사,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풍족합니다. 사랑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고, 구원이 충만합니다.
추수감사절은, 천국의 풍족함을 먼저 맛보는 주일이라 하겠습니다.
1. 탕자는 아버지에 집에 돌아와 감사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감사잔치에 참여는, 탕자는 본래 감사를 모르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살고 있는 것을, 감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을 전혀 감사할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돌하게 아버지에게 요구를 합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은, 너무 답답하고, 희망도 없는 것 같고, 이젠 저의 꿈과 희망을 펼치기 위하여, 멀리 타향으로 가겠습니다. 내가 받을 당연한 분깃을, 지금 나에게 당장 주십시요”~
그래서, 그 분깃을 받아 내어서는, 멀리 타향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탕자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건강한것, 당연한것인데 그걸 가지고 ,뭘~ 자꾸 감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가정, 나의 자녀, 나의 생활, 나의 인생~은 당연한것인게 그걸 가지고, 뭘~ 억지로 감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때의 건강이 얼마나 귀한것인지 그제서야 떠올리게 됩니다.
성인병이라고 하지요. 혈압이 높아지고, 혈관에 지방이 끼이게 되고,
그러면 배가 나오게 됩니다. 무릎이 아프게 됩니다. 나중에는, 온 몸이, 않아픈곳이 없습니다.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목도 뻐근하고~
그제서야 건강할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건강을 건강할 때 지켜야 됩니다. 건강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소중한것을 아는 것, 마져도, 큰 다행이 아닐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단계에 가까운데도, 귀함을 모르고 건강을 챙기지 않아, 몸에 큰 무리가 발생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제약없이, 마음껏 예배드리고, 마음껏 기도하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핍박을 당하였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북한에 있는 동포들이 숨어서 예배드리고, 예배드리다 잡혀서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는다는 소식은, 북한에 태어나서 운이 없어서 당하는, 나와는 상관 없는 먼이야기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으로 막상, 에배드리는 것에, 제약이 있게 되면서 보니까, 그때의 귀함을 돌아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마음껏 찬양하고, 함께 모여 구역예배드리고, 선교회 월례회를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것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탕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 집에서 아들로서 누리는 것을 전혀~ 감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오히려 답답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할때는, 아버지 집을 벗어나~, 타향에 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무런 감사도 없이, 아버지를 뒤로하고 타향으로 갔습니다.만~
그런데, 가보니까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허랑방탕하여 낭비하면 어떻게 당해낼수가 있겠습니까? 그 많던 재물이 금방 없어집니다.
타향에 가보니까, 현실이 너무 엄혹 합니다.
탕자는, 삶이 재미가 있고, 미래가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비참하고 암담하고 힘든 처지가 되어서, 돼지 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돼지가 먹는 사료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감사하며 걸어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것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감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무료하게 생각 합니다.
오히려 나에게 더 도움이 되려면, 기도 않하고, 예배 않드리고 세상에 나가서, 세상 방식데로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하나님을 뒤로하고, 믿음을 버립니다. 교회를 떠나가 갑니다.
하지만, 가보면, 생각했던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받았던 은혜, 예배드리며 받았던 은혜가 금방 떨어집니다.
기도 않하고, 예배 않드리는데, 어떻게 당해 낼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금방 없어집니다.
세상의 죄이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죄를 지어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멸망의 길을 가면서도, 전혀 멸망이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아갈때는, 항상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셔서, 은혜로, 형통으로, 찬송으로 살아갔는데,
이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보니, 마귀들만 나를 괴롭히고, 매일매일이 멸망과 죄악으로 인하여, 마음이 편안할 날이 없구나....~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주시는 은혜와 인도하심과 섭리하여 주심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건강이 있으면, 이 건강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셨으니, 이 건강, 은혜위에 또 은혜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믿음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보고, 내가 믿음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요, 또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귀한 것을, 노치지 않고 알아보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5-46절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때가되어 예수님 앞에 서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구원의 표’가 없습니다.
저기 앞에서는 예수님께서 심판을 하십니다.
알곡은 천국창고로~,
가라지는 지옥으로~,
마음이 급하여, 뒤에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저기 구원의 표가 있습니까?”
“그럼요. 저는 복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믿음의 열매까지 맺어서, 큰~상급의 면류관도 받게 될것 같습니다.”
“그럼 그거, 저좀 빌려 주시면 않될까요?”
“될소리를 하세요. 이 표는 하나밖에 없어서, 지금 빌려주고 그러는거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탕자는,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귀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빠찬스’를 쓸 기회가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늦었지만, 아버지 집에 돌아가야 되겠구나~”
“아버지 집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아버지 집에는 품꾼 마져도 풍족한데...”
“이제는 아들이라고 하지 말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며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로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추수감사절은, 바로 ‘아빠찬스’를 사용하여, 아버지 집에 돌아와 잔치에 참여한 탕자와 같이,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을 살펴보고, 믿음의 잔치에 참여하여, 감사하는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하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2.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22절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90살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같은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천국에서 살 집으로 안내를 합니다.
그런데 천국의 집은, 얼마나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고, 큰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살짝 걱정이 되어 천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살려면 얼마나 내야하나요?”
천사가 대답합니다. “염려 마세요.~ 돈이 필요없습니다. 이곳은 천국이니까요”
다음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천사를 따라서, 천국동네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천국에는 세상과는 비교할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물건이 가득합니다.
할머니가 묻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가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하나요?”
천사가 대답합니다. “전혀요,~ 돈은 필요 없습니다. 원하는대로 가지면 됩니다. 이곳은 천국 이니까요”
식사시간이 되자 난생 처음보는 산해진미가 가득합니다. 물론 값없이 맘대로 먹을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서, 천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않되는데요.”
천사가 대답합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무엇을 먹든, 몸에 나쁜 영향이 없습니다. 여기는 천국이니까요”
그러자 그 때까지 묵묵히~ 듣고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역정을~ 내면서, 말을 합니다.
"이 모든걸 봐~.....당신이 그~ 건강식품만~ 먹자고~ 않했어도, 30년은 일찍 왔겠다."
천국에 늦게 와서 속상한 마음은 알겠지만, 습관이 되니까... 할아버지는, 천국에 와서도 역정을 내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습관이요, 행동도 습관이요, 그래서 불평이 습관이 되도록 하여서는 않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가 습관이 되고, 감사가 나의 가치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잔치를 열어 줍니다.
그러면서 탕자에게 “좋은 옷을 내어 입힙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좋은 신을 신깁니다.”
뿐만 아니라, 살진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열며 즐거워 합니다.
만약, 세상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혹시 반대로 하지는 않았을까요?
아버지 집에 있는 재물을 다~탕진하고,
실패하여, 품꾼이 되어 돌아 오다니,
너가 무슨 양심으로, 무슨 면목으로,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였느냐?
혹시~ 세상의 사람이라면, 탕자를 나쁜아들이라고, 야단치고, 내어쫓지는 않았을까요?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고 하니,?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습관, 감사의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나서 4장 9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니느웨를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없습니다.
사명자 이지만, 매사에 불평이요, 불만이었습니다.
바다에 던져져서 죽을뻔 하다가, 물고기 배속에서 살게될 때, 잠깐 감사의 기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또다시 불평과, 불만이 발동을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도, 그럴줄 알았다고, 불평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옴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 기뻐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그런데,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니까, 멸망을 면하였다고 불평을 합니다.
또한 박넝쿨을 가지고는, 얼마나 역정을 내는지 모릅니다. “내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리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청지기라도, 아무리 사명자라도, 심지어는 선지자 라 하더라도, 감사의 습관, 감사의 가치관이 없으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행할때에도...
불평속에 잠기고, 불평으로 바라보고, 불평으로 생활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할때 감사하며 기도하고,
예배위원을 할 때, 감사로 예배위원을 하고
생활속에서도 식사를 할 때 감사로 식사를 하고
그럴 때,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생활을 살아갈수 있게 됩니다.
즉, 나의 하는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감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멀리떠날 때, 아버지 집의 귀함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기뻐함으로 잔치를 열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모든 일에 감사의 습관, 감사의 가치관으로 행하여...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올 한해동안 건강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 합니다.
또한 코로나 중에도 매일매일 동행하여 주심을 감사 합니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진리의 길로 걸어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하는 일과, 계획과, 가정와 자녀들과 모든 일 가운데, 섭리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믿음의 눈을 열어,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감사하며 살아갈 때, 범사가 형통하고 은혜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는, 이제~ 연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