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17절 24절 청지기의 전성기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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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0년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이 되겠습니다.
2020년 한해동안, 믿음의 여정을 걸어오신, 김포상도교회 성도들, 한분 한분께
주님이 주시는 칭찬과 격려와 약속을 전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칭찬과 격려와 약속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오늘 이 칭찬과 약속은, 올 한해를 믿음으로 걸어오신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칭찬과 격려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과정이 있고, 과정이 있으면, 마무리 할때가 있습니다.
일이 그러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도 그러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 전체의 과정속에서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살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시작 지점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열심히 목표를 이루려 달려가고 있습니가?
아니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까?
학생들은, 시작 지점에 서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학년을 마무리 하고, 학기말 고사를 쳤으니까...그럼 마무리 하는 지점에 서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나 육체적 컨디션을 생각하면 마무리 하는 지점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시작지점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달란트 청지기와 두달란트 청지기입니다.
1. 시작은 똑같았는데, 결과는 큰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각각 그 재능대로, 주인이 한사람에게는 금 다섯달란트, 한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 달란트를 받은대로 그 사람의 재능을 생각해 본다면, 다섯 달란트는 월등합니다. 하지만, 한달란트, 두달란트는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하나나, 두게가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마무리를 하는데 보니까 결과는 큰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는 갑절을 납기게 됩니다. 역시 재능이 월등하니까 결과도 월등합니다.
한달란트, 두달란트는 거기서 거기니까, 결과도 비슷할것 같은데, 의외로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두달란트 청지기는, 주인이 다섯달란트 청지기와 똑같은 칭찬을 합니다.
한달란트 청지기는, 주인이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달란트를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한달라트, 두달란트 시작은 비슷한데, 결과는 왜 이렇게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입니까?
살펴 본다면, 시작이 똑같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결과가 다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과정이, 이 두사람을 차이가 나도록 만든,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과정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그 과정은 17절 18절에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17절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그렇습니다. 두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달란트 받은 자와 같게 하여 갑절을 남겼습니다.
자~ 두달란트의 사람으로써, 다섯달란트 사람과 같게 하는 것은, 큰 도전이 아닐수 없습니다.
다섯달란트는 두 달란트의 두배가 넘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능력이 있고, 역량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넘어서 도전을 하는 것은, 힘에 벅찬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 만약, 태권도 초단이, 태권도 1단과 대련을 하면 이길수 있습니까? 당연히 이길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태권도 초단이 계속~ 나는 태권도 초단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발전이 있겠습니까?
편안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발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초단으로서 능력도 역량도 않되지만, 태권도 1단의 흉내를 내고, 태권도 1단이 하듯이 따라할때...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되겠지만 그러면서 나만의 노하우도 터득하게 됩니다.
“발차기는 요렇게 하면 되겠구나...”
잠깐, 태권도 초단의 힘겨운 노력을, 영상으로 보겠습니다.
아마, 다섯달란트 청지기가, 두달란트 청지기가 노력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영상의 어린이를 보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다섯달란트 청지기라면, 두달란트 청지기에게 가르쳐 주었을것 같습니다.
“이봐 두달란트 청지기~ 힘만 쓴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 때는 좋은상품을 앞쪽에 진열해야, 손님들이 많이 오지~”
“이봐 두달란트 청지기~ 내가 좋은 도매상을 소개해 줄테니까, 가서 만나 보게나~”
열심히 애를 쓰는 것을 볼때, 가만히 두고 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르쳐 주고, 도와주고, 좋은것을 알려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달란트 청지기는 과정이 어떠 하였습니까?
“주인이 준 달란트를 땅에 파 뭍고 감추어 둡니다.”
다른 청지기가 질문을 합니다. “한달란트 청지기, 한달란트는 어떻게 했어?~”
“땅을 파고, 감춛어 두었으니까...묻지마 비밀이야.”~ 질문하기가 무안합니다.~
다섯달란트 청지기는 재능이 많아서 엄청나게 일을 합니다. 두달란트는 다섯달란트를 따라한다고 쉴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달란트는 가만히~ 있습니다.
“저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 “비밀이랍니다.~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기 때문에, 않알려 준답니다.”
나중에 보니까, 한달란트 청지기는, 스텔스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스텔스 자동차, 라고 있지요, 밤에 불도 않켜고, 없는것 처럼, 어두움 속에 않보이게 다니는 자동차들을 스텔스 자동차라고 하지요.
스텔스 비행기도 있습니다.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레이더에 않보이게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스텔스 비행기라고 하지요.
한달란트 청지기는 스텔스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밭에도 시장에서도, 없습니다.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청지기는 달란트를 남기느라 바쁜데, 한달란트 청지기는 얼굴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자 한달란트 두달란트 청지기는, 이렇게~ 서로다른 과정을 보낼 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달란트 청지기는 큰 발전이 있게 되었습니다. 노력한것에 비하여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세달란트를 남겼으면 얼마다 더 좋았겠습니까? 두달란트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칭찬은 다섯달란트 청지기와 똑같이 받았습니다.
반대로, 한달란트 청지기는 땅에 뭍어 두었던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럴 때, 주인은 큰 책망과 함께, 그 한달란트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과정에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과정은, 어떤 과정입니까?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편안한 과정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려움이 있고, 힘이 드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느 과정이 좋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질문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한달란트 청지기는 어떤 과정을 보내었습니까?
두달란트 청지기는 어떤 과정을 보내었습니까?
올한해 나의 과정은, 어떤 과정이 있었습니까?
나는 지금 어떤 과정 중에, 있습니까?
과정이 편안하고 어려움이 없으면, 좋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과정에, 힘이들고 여려운일이 생기면, 불안하고 근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과정이 생략되고, 좋은 결과만,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되겠습니다. 사울왕은 과정이 없습니다. 재미뽑기로 바로 왕이 되었습니다.
자~ 과정이 생략되고 바로 왕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기위한 과정이 없으니까, 왕이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합니다. 사울은 왕이 되어서, 그때부터 좌충우돌 시행착오가 발생이 됩니다.
신하들을 핍박 합니다. 제사장들을 죽입니다. 백성들이 떠나갑니다.
결국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우상에게 찾아가고, 결과는 대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반대로 다윗왕은 왕이 되기 위한 과정이~, 힘이 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칩니다.
왕에게 미움을 받고, 피신한다고 블레셋에게 찾아갔다가 겨우 도망쳐 나옵니다.
또한, 사울왕을 죽일수 있는 기회를 몇 번이나, 만나게 되지만, 절대로 사울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자 이런 과정을 통하여, 다윗은 왕으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않되는지, 철저하게 배우고, 깨우치게 됩니다.
다윗왕은 어려고 힘들지만 왕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되니까,
왕이 되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오히려 왕으로써 해야할 일을 잘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을 세우고, 성전건축을 계획하고, 주변족속을 평정하고, 이스라엘 역사의 기틀을 놓게 됩니다.
그렇다면, 소년다윗이 왕이 되기전에 겪었던 과정을 단순히 ‘고생의 기간’, ‘괴로움의 기간’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을 좋은왕이 되게 만드는, 등용문의 과정, 제왕학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위대함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위대하지 않습니다.
과정이 결과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칼라스’,‘21세기 오페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안나 네트렙코’ 라는 성악가가 있습니다.
푸치니의, ‘오 미오 바비노 카로’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라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으로 유명 합니다.
이 성악가의 노래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풍부합니다. 호흡이 얼마나 좋은지 숨을 않쉬는것 처럼 끊김 없이 노래를 부르는데도, 풍부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지막 여음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알고보니, ‘안나 네트렙코’에게는, 엄청한 훈련의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체조를 배웠습니다. 중학교에서는 농구를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무대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게 다 훈련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체조를 해서, 몸이 균형잡히고 자세가 곧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부를 때, 자세가 잘 나오는 훈련이 되었던것 것입니다.
또 농구를 배우면서 폐활량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못지 않게, 엄청난 폐활량으로, 노래를 부를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무대청소부를 하면서 무대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무대청소를 하면서 혼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 소리를, 우연히~ 지휘자가 듣게 됩니다.
‘게르기 예프’라고 하는 유명한~ 지휘자가 듣고, 무대청소를 하던 ‘네트렙코’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합장을 할 때 서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엑스트라로 서고, 나중에는 주연으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소문이 나면서, ‘유럽 오스트리아 빈’으로 진출을 합니다.
타임지가 뽑은 2007년, 2010년 올해의 인물100인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여성성악가로 발돋음 하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려 봅니다. 나의 전성기는 언제 입니까?
지금 입니까? 아니면 이미 지나갔습니까?
오늘 본문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
두달란트 청지기의 전성기는 지금이 아닙니다. 앞으로가 전성기입니다.
주인은, 두달란트 청지기에게 앞으로 많은 것에 맡기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많은 것을 맡기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것을 네게 맡기리니”
그러니까 두달란트를 받았던 것은, 많은것을 맡기위한 준비의 과정이었습니다. 테스트의 과정이었습니다.
자~ 나는 앞으로의 전성기를 잘 준비하고 있습니까?
올해,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예배생활도 힘들었고, 기도생활도 힘들었고,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힘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달란트 청지기도, 힘들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달란트 밖에 않되는데, 무엇을 하려해도, 하기도 뭐하고~ 이렇게 힘들 바에는, 땅에 파뭍어 버리자~
그러면서 준비의 과정인줄 모르고, 생략을 하였더니,
준비가 않되어 있으니까, 주인이 더 큰 일을 맡길수가 없습니다.
한달란트 청지기는, 자신의 전성기를, 스스로 지워버리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두달란트청지기 처럼, 오늘 이시대를 살아간다면,
예배생활도 힘들고, 기도생활도 힘들고, 봉사생활도 힘들지만..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힘들지만,
이 기간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연단과 테스트의 과정으로 보냅니다.
이런 때일수록, 카톡으로 예배드릴 때, 그냥 대충 드리지 않습니다. 온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어떤 장로님은 카톡으로 예배드릴~때에도,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처럼, 똑같이~ 양복을 입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그대로 합니다. 헌금순서때 그대로 헌금합니다. 폐회찬송할때도 일어서서 박수치면서 폐회찬송을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다 지켜 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과, 나의 간절한 형편과 계획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먼저 준비하게 하시고,
준비가 다 되면, 오늘날도 더 많고, 더 좋은 것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나의삶의과정을, 한달란트 청지기 처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두달란트 청지기처럼~ 보낼 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전성기’는 시작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2020년을 마무리 합니다.
한해동안 선한싸움 싸우며 오신,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여 주시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두달란트 청지기 같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을, 준비의 과정으로 보내어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성기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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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2020년을 마무리하며 주일예배를 드리게 하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온, 김포상도교회 모든 믿음의 식구들... 두달란트 청지기 처럼 칭찬하여 주실줄로 믿습니다.
아울러, 지금 나의 생활을 믿음 안에서, 준비의 과정으로 보내어
더 큰일, 더 좋은 일을 받게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나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