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절 14절 긍정적인 믿음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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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성장하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되지 못하고, 성도간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이 성숙하지 목하고, 믿음생활이 성숙하지 못할때, 모범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씀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피~흘리신 예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온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의 믿음이 성장하고, 나의 성품이 성숙하게 됩니다.
성장하는 믿음, 성숙한 성품으로 살아가면,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입어, 범사에 결실이 있는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긍정적인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긍정은 한문으로 즐길긍, 정할 정입니다. 한글사전으로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이 되겠습니다.
반대는 부정입니다. 한문으로는 아닐 부, 바를정입니다. 한글사전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반대함이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부사로써, 포지티브, 네거티브, 긍정적인, 부정적인~ 이라고 많이 쓰지요.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오병이어’사건 입니다. 오병이어는 너무나 유명하여, 4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1. 빌립은 부정적인 제자 였습니다.
오늘 본문 6절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소문이 전하여 집니다.“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는 신령한 능력이 있으신 분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씀과 틀립니다.”
예수님은 어떤 산으로 올라 가십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큰 무리가, 그 산으로 모여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리를 보시고, 먹을 것을 주셔야 되겠다~ 여기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먼저 빌립에게 말씀 하십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자 여기에서 하필이면 왜? 빌립한테 질문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는 제자는 12명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요한한테 예수님께서 질문하실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빌립한테 질문을 하십니다.
그 깊은 내용을 모두 알수는 없으돼, 빌립에게 질문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깊은 뜻이 계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뜻이 무엇인지...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림이 어떻게 대답하실지 이미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기 위하여,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빌립에게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위에서 사람들을 볼 때에,“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매사에 긍정적이고, 신중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신중하고, 무겁게 말을 합니다.
반대로 매사에 부정적이고, 신중하지 않고, 입이 가벼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매사에 부정적이고, 신중하지 않고, 가볍게 말을~ 합니다.
자~ 빌립은 어떤 사람입니까? 전자 입니까? 후자 입니까? 성경을 보면 후자~였습니다.
부정적이고, 신중하지 못하고, 입이 가볍습니다.
자~ 빌립이 대답을 하였는지,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의 대답을 보니까 얼마나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7절 하반절에 보니까 “부족 하리이다”~라고 예수님께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실때는, 뜻이 계시고 계획이 있으셔서 질문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빌립은 간단하게 대답을 합니다. “부족합니다 않됩니다.”~
그러면서 부족하고 않되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7절 중간에 보니까 “2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즉 “예수님,~ 우리한테 이백데나리온의 돈이 없는데~ 절대로 않됩니다.”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자~ 이렇게 대답하는 빌립--똑똑하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것으로 마음이 가득차있다고 해야 합니까?
더욱이 오늘 본문, 7절 상반절을 보니까, 빌립은 관점과 가치관 생각이 부정적인 것을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즉, 각 사람이 배부를 만큼 먹는것은 고사하고,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가지 중~ 한가지의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 부정적으로--빌립과 같은 자리에 서거나, 긍정적으로 아멘~하는 자리, 두 자리 중, 하나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 앞에서, 어떤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긍정적인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정적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빌립’은 예수님의 12제자중 한 사람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행하실 때, 옆에서 보았습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과 함께 먹으며 자서, 함께 생활 하였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빌립의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가치관, 부정적인 관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할때도, 그냥 생각없이 나오는 말이~ “예수님 부족합니다. 않됩니다. 왜냐하면 2백데나리온의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을 5천명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시지만, 그 말씀을 않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반대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종 종, 세상에서도 이런 사람을 볼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입추가 지나서 그런지, 햇뼡은 뜨겁지만, 제법 습도가 낮아진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여름이라, 모든 사람이 다~ 더위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유독 매사에 부정적이고, 그냥 쉽게 하는 말이 불평이고~, 앞뒤 생각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말과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 그런사람이 옆에 있다면, 믿음성이 가고, 가까이 지내고 싶고, 신뢰감이 생기고 그렇지가 않지요~.
이런 더위도~ 견디지 못하고, 부정적이 말과 행동을 한다면, 힘든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이분은 조심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열왕기하 7장 18절 20절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엘리사 선지자때, 아람군대가 처들어와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를 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성이 포위가 되니까, 성안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집니다.
보리가 떨어집니다. 밀가루가 떨어집니다. 성안에 모든 사람들게 굶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럴 때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아니~ 지금, 성에 먹을것이 없어서, 보리와 밀가루를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금을 달란트로 주어도 파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내일 한세겔--동전에 가장 작은 단위가 세겔입니다. 그런데 한세겔에, 보리는 두스아, 고운 밀가루가 한세겔이 되어, 넘쳐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장관이, 혀를 차면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겠습니까?”
부정적이 사람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실 리가 만무할뿐 아니라, 설령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그런일이 어떻게 있을수 있겠습니까?~
자~ 이 경홀히 여기고, 불경한 말을, 하나님께서 않듣고 계시겠습니까? 다~ 내려다 보시고, 듣고 계십니다.
시편 94: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귀를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도 만들고, 동물들의 귀도 만드셨습니다. 귀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그 경홀히 여기고, 불경한 말을 못들으시겠습니까?
또, 손과 발을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불신앙의 끝판왕이 되어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않보시겠습니까?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장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그날 저녁, 사마리아성에 문둥병자 4명이, 굶다굶다 죽기를 각오하고~ 아람군대에게 가서 구걸하기로 합니다.
여기서 굶어 죽으나, 가서 붙잡혀 죽으나, 죽는것은 매한가지이니, 아람군대에게 가 봅시다.
그리고 아람군대에게 찾아갔더니, 아람군대가 도망가고 없습니다. 그래서 성에 돌아와 그 사실을 알립니다.
그랬더니 사마리아 성에 사람들이, 아람군대 진영에 있는, 밀과 보리를 가질러 달려 나갑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만든다 해도, 어찌 그런일이 있을까?” 막말을 하였던 장관은, 성문에 서 있다가 백성들에게, 밟혀 죽게 됩니다.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나의 마음 중심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일이 있을수 있으랴?
예수님께서 5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라 하신들, 어찌 그런일이 있을수 있으랴? 우리에게는 2백 데나리온이 없어서,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어느 세상인데, 예수님 말씀은 절대로 않됩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앞에서,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자는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5병2어를 맛볼 것이요,
반대로 절대로 않된다고~고 부정하는 사람은 그 불신앙 그대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5병이어도 맛볼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앞에서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하감하고 계십니다.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누구를 만날때에도
믿음의 사람은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과 얼굴표정, 말과 행동에서 긍정적인 믿음의 언행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2. 나는 누구의 친구입니까?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
사람은 누구를 친구로 삼느냐?에 따라서, 그 친구에게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잠언 2: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지혜를 친구로 삼으면, 나는 지혜의 영향을 받습니다. 지혜가 나를 선한자의 길로 행하게 하고,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합니다.
학교의 학생을 볼 때, 그 학생의 또래 친구가 누구인가? 를 보면, 그 학생의 성격, 상황을 짐작케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좋은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힘쓰며, 좋은 믿음을 본받아, 나의 믿음이 점점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의 ‘빌립’에게는, 어떤 친구들이 있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 44절 45절 에는 빌립의 친구들이 누구인지 말씀합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렇습니다. 빌립은 뱃새다 동네 출신입니다. 오늘 오후 찬양예배 때에 ‘벳새다’ 동네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말씀이 나가겠습니다만, ‘벳새다’라는 동네가, 그렇게 믿음이 좋은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신앙으로 이름이 있는 동네가 ‘벳새다’ 동네입니다.
그런데 그 벳새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있었으니, 베드로와 동생 안드래,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입니다.
자~ 나다나엘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향하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라고 말하였던 제자 이지요.
무언가? 부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공유하는, 부정적인 믿음의 친구들이--베드로 안드래, 빌립, 나다나엘, 4명--벳새다 친구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빌립이 “2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라고 대답할 때, 옆에 있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래가 얼른 거듭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자~ 안드래는, 빌립을 향하여 “빌립~, 부정적이고 불신앙의 생각을 가지고 있군~ 여기,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는데, 예수님은 이것으로 충분히 5천명을 먹이 실 수 있다네” 라고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빌립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부정의 증거로 보탠것이,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즉 “예수님, 빌립의 부정적이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데,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즉 안드래는 부정적인 친구 빌립과 함께, 예수님 앞에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9절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어떤집에 들어가시니까, 믿음의 친구 4명이, 중풍병이 걸린 친구를 위하여,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위에 올라갑니다. 4명의 친구들은 지붕에 기와를 벗기고, 예수님이 앉아 계신 곳으로, 중풍병 걸린 친구을 침상채로 내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즉 중풍병걸린 사람만 보신것이 아닙니다. 그 친구들의 믿음까지 함께--“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만약, 중풍병자의 믿음만 좋고, 4명의 친구들의 믿음은 오늘 본문에 부정적이고 믿음 없을 때의--베드로 안드래 빌립 나다나엘과 같았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모두 보실때’ 칭찬을 하셨겠습니까?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빌립과 안드래의 대답을 뒤로 하시고, 그 부정적인 생각의 증거물로 가지고 왔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후, 5천명에게 나눠 주시도록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뜻대로, 5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14절 말씀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자 이때, 빌립과 안드래는 얼마나 낯이 뜨거웠겠습니까? 반대로 5병2어를 바쳤던 어린이와 순종하였던 다른 제자들은 얼마나 의기양양, 은혜 충만이--되었겠습니까?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예수님 앞에서 역사를 이루는데 쓰임받지 못하며, 칭찬받지도 못합니다.
반대로 믿음의 말과, 믿음의 행동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예수님께서 쓰시는 선한 청지기의 ‘언-행~’이 되어 집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빌립은 예수님 앞에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긍정적인--믿음의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생활하여, 예수님의 뜻과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보내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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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긍정적인 말과 행동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지게 하려고, 세상의 지혜와 철학과 경험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과 삶을, 부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줄로 아오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이길수 없습니다.
한주간 동안도, 범사에 아멘~으로 생활하여, 긍정적이고 좋은일이 충만하게 되도록, 예수님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