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13절 24절 반환점을 따라서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오늘은 5월달을 마무리 하는 주일입니다. 5월달을 시작하였다~ 하였는데, 벌써 시간이 흘러 5월달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은 6월달 첫째 주가 됩니다. 6월달은 한해의 반을 마무리 하는, 한해의 반환점, 한해의 전환점이 되는 달입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의 사역에서, 반환점,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가리사랴 빌립보’의 사건이 되겠습니다.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가이사랴 빌립보’는 어떤 도시입니까?
얼마전 ‘가이사랴’의 믿음좋은 백부장, ‘고넬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가이사랴를 책임지는 백부장 고넬료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고넬료 스스로와, 또한 고넬료 가정 전체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까지만, 떠 올리셔도, 대단한 성경지식이 되겠습니다.
오늘에 ‘가이사랴 빌립보’는 뒤에, 글자가 더 있습니다. ‘빌립보’
그냥 ‘가이사랴’는 항구도시입니다. ‘가이스랴 빌립보’는 가이사랴에서 동쪽과 북쪽으로 100km 안쪽에 있는, 산중에 있는 도시입니다.
사람들은 항구도시 ‘가이사랴’와 산중에 도시 ‘가이사랴’를 구별하기 위하여, 산중에 있는 도시 ‘가이사랴’에는 ‘빌립보’란 말을 덧 붙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이사랴 빌립보’는, 항구도시--‘가이사랴’가 아니라, 산중에 도시--‘가이사랴 빌립보’가 되겠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도시를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덥지요. 조금만 나가면, 광야입니다. 조금만 나가면, 풀한포기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하지만 ‘가이사랴 빌립보’는 높은 산중에 있는 도시 입니다. 온통 푸른 나무와 식물이 가득합니다.
도시가 면하는 산에서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솟아나, 도시를 흘러 갑니다.
그러니까 항상 샘물이 흐르고, 풀과 나무가 가득하고, 시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경치도 좋고, 시원하고, 푸른 나무가 가득하고, 좋은땅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기 저기에 신전을 많이 세웠습니다.
샘이 솟아나는 곳에는 삼림의 신, 판 신전을 세웁니다.
수목이 울창한 곳에는, 당시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세웁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강원도 깊은 산속에~, 아니면 함경북도 개마고원 깊은 산속에, ‘계룡산’과 같은 우상의 활동이 많은 산이 있고, 그 산 밑에 도시가 있다고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의 제일 북쪽에 있는, 시원하고~, 수목이 울창하고, 사람들이 휴식하며~, ‘우상의 신전’이 많은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이사랴 빌립보’가 복음서에 예수님의 사역에 반환점, 전환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가이사랴 빌립보’에 올때까지는 준비의 과정, 훈련의 과정, 교육의 과정이었다면, ‘가이사랴 빌립보’를 내려갈때에는, 실천의 과정, 실행의 과정, 결단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이사랴 빌립보'에 올 때 까지는,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하고, 교육 하였습니까?
먼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하시고, 교육 하셨습니다.
갈리리에 가셔서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
그리고 그 제자들 앞에서, 눈먼자를 고칩니다. 산상수훈--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여러 비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자~ 그 고치심, 말씀, 비유는, 사람들을 위함 입니까? 제자들을 위함 입니까? 둘~다입니다.
사람들이 고침을 받을 때, 그 사람에게서 병마가 떠나 갑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도개인에게 비유를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고민을 하면 돌아갑니다.
한편, 사람들이 고침을 받을 때, 제자들이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바라봅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 제자들도 옆에서 듣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도개인이 비유를 듣고 돌아갈 때, 제자들도 그 비유를 듣고 곰곰이 생각 합니다.
그리고 오늘, 휴양소와 같고, 잡다한 우상의 신전으로 가득한,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복잡한 세상을 떠나서, 한적한 산에 오니까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하지만, 온갖 우상신전으로 북적이는 산속에 오니까 기분이 이상해 집니다.
삼림의 신--판~신전--대단합니다. 입구에서 안내인이 부추킵니다. 수목이 울창하듯, 울창해 지려면 판~신전에 들어가서 동전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도 해볼까요...믿져봐야 본전, 재미 있을꺼 같은데, 우리도 동전 던져 봅시다...그러지 않겠습니까? ”
황제의 신전, 아우스크투스 집. 입구에서 안내인이 부추킵니다. 황제가 어릴 때 태어났던 그 침대가 여기에 있습니다.~ 황제의 시민이라면, 아우스크투스의 집에 들어가서, 절을 하고 가세요~
“우리도 가서 절을 할까요? 황제가 태어난 침대라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이나 해 봅시다.”~
한창~ 제미도 있고, 눈도 휘둥그래지는데, 예수님께서 구경하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그렇습니다. 기분도 들뜨고, 북적부적~재미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우상신전에 들어가서 향불을 피우고 행운을 빌고 나오고, 많은 신전 안내인들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 그 번잡한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
자~ 테스트의 순간이 아닐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기도를 보고, 예수님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상으로 가장 번잡한 자리에서, 예수님은 누구인지 대답해 보라는,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자~ 우리도 이와 같은 자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마음을 차분히 하여 성경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교회에서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한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번잡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안내인들이 손짓을 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손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길이 있습니다. 재물의 신~, 성공의 신~, 행운의 신~,을 만나 보세요~”
혹시나 그러한 정신 산만한 유혹을 받을 때,
성경말씀은 성경말씀이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데, 저 길은 어떤 길인가? 솔깃~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재물과 행운이 굴러 들어오게 해 준다는데, 구경이라도 한번 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혼란과 유혹과 정신을 빼놓는 듯한--산만한 자리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그곳에 서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
그럴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오늘날로 보면, 종로 네거리나, 강남--삼성동--코엑스 네거리에서, 예수님께서 질문 하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럴 때 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대답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여 주십니다. “너는 이지원이라, 내가 이지원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한참 복잡한 홈플러스에서, 예수님께서 원장로님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그럴 때 원장로님이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대답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여 주십니다. “너는 원춘기라, 내가 원춘기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라는 것은 지옥이지요.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종로 네거리에 가보시고, 삼성동-코엑스 네거리에 가 보시면, 많은 인파로 정신 없습니다. 우상의 ‘큰 신전’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세상으로 나가면, 예수님 생각, 교회 생각은 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가 심한데, 꼭 예배드릴 필요는 없잖아요.?
기도할 필요가 꼭 있습니까?
성경 볼 필요가 꼭 있습니까?
예수님과 세상을 조화시키고, 예수님 반~, 세상 반~ 균형을 잡아 야지요.~
예수님은 그 사람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해도, 세우기가 힘이 듭니다. 반쪽자리가 됩니다.
예배 않드리는 교회, 기도 없는 교회, 성경을 않보는 교회, 세상반~ 예수님 반인 교회...
그런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길수 있는 교회가 되겠습니까?
나의 위에 세워져 가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어떤 그리스도인이 등산을 갔습니다. 길을 잃고 해메다가, 큰길로 연결된 출렁다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며~ 한발짝씩 걸어가는데, 출렁다리에서, 툭툭~ 삐걱삐걱 소리가 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불안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무사히 건너가게 해 주시면, 앞으로 기도생활 잘 하겠습니다. 예배생활도 잘 하고, 봉사생활, 헌신생활 잘 하겠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이제는 출렁다리를 다~건널 것 같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이 다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방금기도는 취소고요, 가끔씩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발짝 내딛는데, 출렁다리가 끊어집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공중에 붕~떠서~ 정신없이줄을 잡고, 다행히~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끈을 잡고 올라오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취소한다는 기도는 농담입니다. 그걸로 이렇게 역정을 내시다니, 심심할까 농담하였는데,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벽을 무사히 올라 왔다고 합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베드로는, 우상의 신전 앞에서, 번잡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고백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온전히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국에 열쇠를 주십니다.
이제~ 베드로는 구원 받았습니다. 천국에 도착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열쇠로 천국문을 열면, 천국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열쇠를 받았기 때문에, 그 받은 천국열쇠를 가지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 위에는, 지옥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를 세우십니다.
또한 천국열쇠를 주십니다.
천국열쇠를 받은 사람이, 이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매이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얼마나 축복이요, 얼마나 귀하며, 얼마나 놀랍고 은혜스러운 선물 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베드로 처럼, 예수님 앞에 믿음의 고백을 하여, 천국의 열쇠를 받고,
이땅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자,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고, 이제는 반환점,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지금 까지는, ‘가이사랴 빌립보’로 올라오는 길이라면, 이제부터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길을 가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까지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천국--열쇄를 주시는 길을 걸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사하시려,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는 길을 가려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모든 길에는 반환점, 전환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항상~젊고, 항상~ 자랄수 없습니다.
기업도, 나라도, 세계도 역사도, 항상 앞으로만 나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아무리 큰 제국도, 처음 시작하여 커나가가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기세만 보면, 끝없이 잘된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반환점이 있지요. 그 반환점을 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조금씩 기울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환점이 있습니다. 그 반환점을 지나면, 그 다음에는 지혜와 지향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장난감을 갖고 싶고, 조금 더 자라면, 보이는 세상의 것을 갖고 싶습니다.
하지만, 반환점 다음에는 천국이 지향점이 되고, 천국열쇄를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항변 합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그 반환점, 그 전환점은 참으로 생각하기 괴로운, 반환점이요, 전환점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열쇄 뿐만 아니라, 이대로 쭉~, 이스라엘의 모든 권력과 부와 명예의 열쇄 까지 베드로에게 주셔서, 베드로가 그 열쇄들을 가지고, 앞으로 계속하여~, 이스라엘에서 권력과 부와 명예와 열락을, 즐기고 싶은 것이, 베드로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한다 싶었는데, 벌써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반환점이다~ 라고 하시며,
이제부터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온갖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길로 가겠다고 하시니, 방금 천국열쇄 받은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 하겠습니까?
그래서 항변하며,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예수님께서 반환점을 돌 때, 같이 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 가실 때, 나도 그 십자가를 향하여 같이 걸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받은 천국열쇄를 사용할, 천국문에 다다르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때,
그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의 열쇄를 주시고, 이 땅에서 풀고 매는 것이, 하늘에서도 풀리고 매어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을 막아 설 때,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는 코로나도, 반환점을 도는 것 같습니다. 올해의 반환점도 돌게 됩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한사람 한사람, 주님이 쓰시는 성전이 되고, 천국열쇠를 받은자가 되어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한주간으로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하나님, 올 한해의 반환점을 앞두고, 지금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오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으로, 전환점을 알아보고,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쫓아가며,
나는 주님의 전이요, 나의 삶은 천국열쇄 품고, 예수님 온전하게 따라가는, 은혜의 여정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하나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