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1절 5절 다시 시작하는 땅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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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달을 시작 하였는가? 하는데, 벌써 7월달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시작하는 땅 벧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야곱은 벧엘에서 다시 시작 하였습니다.
본문 1절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은 꿈을 향하여,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형님--에서’ 보다가 더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래서...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받습니다.
또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살때에도, 꿈을 향하여 도전을 하였습니다. “태어나는 양들 가운데 얼룩지고 아롱진 것이 있으면 내것으로 하겠습니다.”~
무모한 도전 같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큰~ 거부가 되어 다시 고향을 돌아올때도, 애서의 진노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무사히 고향에 돌아와, 정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무언가 크게~ 도전하고, 성공하고, 꿈을 이룬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믿음에 도전하고, 믿음에 성공하고, 믿음의 열매를 맺는데는 부족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도전하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꿈을 이루면, 되는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꿈을 이루고, 성공하여도, 믿음의 성숙과 열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세상에 열매는 그림자와 신기루 같이 될 수 밖게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어떤 어린아이가 좋은 양복이 마음에 든다고~, 좋은 양복을 입어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양복을 입어도, 몸이 어린아이 그대로 이면, 그 양복이 어린아이 에게 맞겠습니까?
어린아이가, 큰 양복을 입고,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면, 이상해 보이고, 어색해 보이고, 어린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장성하여 어른이 될때, 양복을 입으면, 그때는 그 양복이, 몸에 딱 맞는 옷이 되어 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고, 믿음에는 열매가 없는데, 세상의 성공, 세상의 성취가 오래~ 가겠습니까?
마치, 몸은 어린아이인데, 옷만 큰~양복을 입어, 몸에 맞지 않아, 벗을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 오늘 말씀에 야곱이 그러하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에 집에서 크게 거부가 되었습니다. 형님--에서와 화해를 하여, 다시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재산도 거부이고, 생활할수 있는 터전도 마련하였으니,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원래, 야곱의 시작과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받는 복은, 세상의 복만 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복, 영적인 복, 구원의 복, 영원한 복이, 어떻게 보면, 세상에 복 보다가, 더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시작할 때 마음과 목표는 어디가고, 세상의 복을 많이 받았으니, 그 다음에 받아야 할, 믿음의 복, 구원의 복은 그만 받고~ 세상에 복만으로 즐겁게 살아가야 되겠다. 그리고 멈추어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점차 점차, 단계 단계, 모두~ 받을 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추어 서면, 완성이 않되고, 불완전하게 되고,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3장 18절에 보면,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세겜성읍 옆에 장막을 치고, 살기로 합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가? 하면, 야곱이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아버지 이삭이 살던, 마므레 땅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이삭이 받은 땅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 땅은 아브라함의 땅이라 인정을 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 땅은 척박하고, 볼품이 없습니다.
야곱의 처음 시작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출발하였는데, 나중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세겜 사람들 많이~살고, 세겜 사람들의 재물이 넘쳐나는, 세겜성읍 옆에 장막을 치게 됩니다.
그랬더니, 세겜의 영향이 물밀듯이 들어 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의 자녀들이, 금방~ 세겜의 이방신상들을, 자기 장막에 갖다 놓습니다.
세겜 사람들의 장신구로 몸을 치장 합니다. 옷도 세겜 사람의 옷을 입습니다.
야곱의 장막은 믿음의 장막, 신앙의 가정이 아니라, 세겜사람의 장막과 같이 변하고, 세겜사람들의 우상을 가까이 하는 가정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읍에 놀러 나갑니다. 그러니까 세겜의 추장 하몰의 아들이, 디나를 끌어들여, 강간을 하고 욕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아들 가운데,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잡고 가서, 세겜 사람들을 죽입니다.
순식간에 걷잡을수 없이 일이 벌어져서, 수습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이 크게~ 걱정을 합니다. 창세기 34장 30절에 보면,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자,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지요.
야곱의 성령의 열매를 맺기에 힘썼으면, 온유하고, 오래참음에 열매를 맺어, ‘칼의 보복’과 ‘피의 역보복’을 걱정하는 최악의 자리에 가지 않았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 믿음이 열매맺기를 힘썼다면, 겁도 없이 세겜의 이방신상을, 집안에 들이고, 세겜 풍습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야곱이 하나님께 믿음의 복을 받기를 힘썼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뒤로하고, 세겜성읍 옆으로 가서 장막을 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평안하고, 조금 이루었다~ 싶으니까...하나님께 받을 복은 멀리하고, 세상의 유혹을 쫓아서 세겜성읍에 가면서, 모든 것이 그림자가 되고 신기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언제 세겜성읍의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야곱의 가정에 보복할까?~ 당장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평안과 성취는 튼튼하며, 오래갈것 같고, 영원할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세상의 평안과 성취는, 튼튼하지도 않으면, 오래가지도 않고, 더욱이~ 영원하지도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개서 1장 6절에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유다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하는데, 앞뒤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일은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성전재건하는 일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그럴 때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유다백성들이... 많이 뿌려도 수확이 적게 하시고,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입는 것을 신경써도, 헐벗게 하시고,
삯을 받아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같이 술술~ 세어나가게 하실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그때부터 유다백성들이 곡식을 뿌려도, 수확이 거두어 지지가 않습니다.
잘 먹는것 같은데, 잔병 치래로, 영양이 몸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입으려고 애써도 헐벗습니다. 삯을 열심히 받아도--어디에서 구멍이 있는지 나중에 보면, 모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유다백성들이 깨닫고 다시 성전재건에 힘을 씁니다. 그랬더니, 학개서 2장 18절 19절에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성전의 기초를 쌓고 난 다음 부터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곡식 종자를 심었더니,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가득가득 달립니다.
음식을 먹었더니 몸이 건강하게 됩니다. 생활에 풍요함이 찾아옵니다. 삯을 받았는데, 점점 더 불어나게 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야곱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잘 될때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얼마나 좋습니다. 하지만 비록 상황은 탕자와 같이 되었지만, 야곱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벧엘을 떠올리고, 벧엘로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벧엘에서 처음 시작할, 그때는 가진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녀들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을 향하여 있고, 그 사닥다리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그 위에 하나님께서 계셔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창세기 28장 13절, 15절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벧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면 주시면, 이번에는 그때 그마음으로, 새롭게 믿음으로, 시작 시작하기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출발할 자리는, 나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 5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은혜의 자리, 내가 예수님께 받았던 그 사명의 자리, 내가 예수님께 들었던 그 응답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예수님과가 함께 출발할 때, 믿음의 출발을, 다시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야곱은 버리고 다시 출발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내가 익숙하게 여기고, 애착을 가지는 물건은, 벌써 필요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버릴것을 버리고, 항상 새롭게 되는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찾아보았더니, 최초의 개인용 계산기--퍼스널 컬큐레이터 는 1950년대에 출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샤프의 CS-10A는, 크기가 오늘날 탁상용 컴퓨터--데스크탑 컴퓨터 정도였는데, 할수 있는 것이라곤, 4칙 연산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격은 500만원이나 하였습니다.
1970년에 샤프는 QT-8D ‘포켓트론’이라는 계산기를 내어 놓습니다. 크기는 작아져서 가정용 전화기만 하였습니다. 능력은 4칙연산 전부였고, 가격은 많이 내려서 99만 8천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이렇게 작고 갑싼 계산기가 어디에 있는가? 하며,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요즈음, 4칙 연산만을 할수 있는 계산기는, 1만원도 않습니다. 크기는 또 얼마나 작아 졌는지, 손목시계에 넣을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무선전화기는 벽돌만큼 컸고, 가격도 얼마나 비쌌습니까? 하지만 요즈음 얇아지고,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보편적인 통신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은 벧엘로 다시 올라가서,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아낌없이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버렸는가?~보았더니, ‘이방신상’을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전 같으면, 이방신상을 귀하게 여겼을수 있습니다. 이것이 재물을 갔다가 준단다.~ 이것이 행복을 갔다가 준단다~
아마도 그전 같으면 ‘이방신상’을 버린다고 하면, 가족들이 모두다 말렸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나 사건’과, ‘시므온 레위의 사건’을 겪고 보니까, 이제는 쓸모없고, 오히려 전혀 도움이 않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야곱은 세겜의 ‘이방신상’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야곱의 가정이 중요하게 여겨 버리지 못하였던 이방신상과 같이,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이지만, 애착을 가지는 물건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새 출발을 하려고 하면, 버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유품정리사’ 라는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죽음후에 남겨진 것을 정리해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고독사나, 갑작스러운 일로 가족들이 거부할때, 대신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유품정리사’가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스스로는 중독과 같이 가까이 하는 것들이, 정리할때는 그것이 원인이었구나~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귀하게 여기고, 반대로 버려야 할 것을 잘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또 2절 하반절에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는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복은 목적이 있습니다. 일할때는 ‘작업복’이 있습니다. 잠을 잘때는 ‘잠옷’이 있습니다.
옷중에서 가장 귀한 옷은 어떤 옷입니까? 당연히 ‘구원의 예복’이지요. 마태복음 22장에는, 천국잔치에 예복을 입고 들어가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예복’을 입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는, 작업복, 잠옷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기에, 합당한 옷을 입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4절 하반절에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다시 사용하지 않고, 다시 돌아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땅에 파 뭍고, 벧엘을 향하여 출발 합니다.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뒤를 돌아보고,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않고, 앞을 향하여 출발하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말씀 정리합니다.
야곱은 출발하였다 다시 옛길로 돌아갈 때 큰 낭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우상신상과 나쁜 것들을 땅에 묻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서, 다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나의 그 믿음의 자리, 그 사명의 자리, 그 은혜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가을에는 큰 결실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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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하반기를 다시 출발 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나의 그 믿음의 자리, 그 사명의 자리, 그 은혜의 자리에서 서서..
다시 믿음으로 출발하여, 기도하는데로 큰~ 결실을 이루는 하반기가 되도록,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 한분한분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