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7절 15절 성령이 오시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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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일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소개하여 주신 성령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항상 성부--하나님과 함께 역사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오실지,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지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게서는 그 예언 그대로 ‘성탄절’에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의 산소망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태초부터 계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항상 성부하나님과 함께 역사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어떻게 오실지, 오셔서 무엇을 하실지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성령강림절’에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알려주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1.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라고 성경학자들을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시기 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자~ 여기는 예수님이 보내어 주시는, 그는 누구입니까?
7절 상반절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보혜사는 한문으로 지킬 보, 은혜 혜, 스승 사.. 한글사전으로는 “보살피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헬라어 성경으로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뜻은 한글사전과 똑같습니다. 덧붙이자면, 대언자, 보호자, 위로자..라는 뜻이, 더 들어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성도를 보살피고, 은혜를 베푸시며, 대언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기 시작 하십니다.
성령님은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보살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대언하여 주시며, 보호하여 주시고, 위로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오늘날은 ‘성령님’께서 성도와 교회에 역사하시는 시대이다. 그래서 ‘성령의 시대’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성령님을 배척하고 부인하며 멀리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나다나엘은 다짜고짜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였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여도, 그 말씀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가 아니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 아니고~
메시야는 없고, 성자하나님은 없다.~
나다나엘이 그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자~이 이유가 합당한 이유입니까?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고, 마음문을 열고, 믿음으로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오히려 반대의 증거들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눈과 귀를 닫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고, 마음문을 열고, 믿음으로 눈으로 성령님을 바라보면,~ 성경에는 성령님에 대한 증거가 가득 합니다.
성령님은 성경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병든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어떤 성도는 환상을 보게하여 주시고, 어떤 성도는 장래일을 알게하여 주시며, 또 어떤 성도는 방언을 하게하여 주시고, 또 다른 성도에게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튼튼하게 세워나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하지만, 오늘날도 마치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듯,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눈과 귀를 닫고, 성령님을 멀리하고 성령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기전 나다나엘이 하던 ‘우’를, 되풀이하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일을 이어받아, 오늘날은 성령님께서 행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본문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외식과 불신앙을 꾸짖어 주셨듯이,
오늘날 성령님도--죄악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을 높이는 외식과 불신앙을 꾸짖으 십니다.
대제사장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겉으로는 의로운적, 겉으로는 하나님을 높이는척 하면서, 실상은 죄악의 길로 가고, 자기를 높이는 길로 걸어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자신이 의롭고 바르고 옳은것 처럼 강변합니다.
하나님은 높이고 자신은 낮추어--겸손한 척 합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드려다 보면, 외식입니다. 의롭고 바르고 옳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도 자기가 지키지 않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보다가 더~ 높입니다.
자, 이런 사람이 성령님을 만나면, 성령님께 꿎짖음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책망하실 때,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왜 그렇게 외식 하였던고~ 내가 왜 하나님 보다가 나를 더 높혔던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님을 배척하고 부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꿎짖으실 때, 그 책망하심을 받아 들어지 않습니다.
“나보고 외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내가 하자는대로 한다면, 이 세상은 에덴동산이 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시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책망하실 때, 그 책망이 듣기싫고, 오히려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마차가지로 오늘날도, 성령님에 대하여 마음 거북하고 마음이 찔려, 도리어 성령님에 대하여 책을 잡으려고 하고,
또한 성령님의 역사를 어떻게든지 부인하려고 하며, 더욱이 교회가 성령충만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훼방하는 경우가, 똑같이~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현재성과 역사하심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분명히 바라보고,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힘쓰는 믿음이, 분명히~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2. 성령님께 가까이 갈수 있습니까?
12절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 예수님이 계신곳으로 찾아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계신 다 더라~” 그럴때 산으로, 사람들이 찾아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산상수훈을 들려 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산으로 찾아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의 소망, 천국의 축복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빈들에 계신것을 알고, 빈들로 사람들이 찾아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빈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떼어 주실 때, 오천명이 먹고, 12광주리에 가득차는 역사가 일어 납니다.
빈들로 찾아간 사람들은 ‘오병이어’를 보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께 가까이 갈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곳에 찾아갔듯이, 성령님이 계신곳에 찾아가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나는 ‘예배’와 관계가 없습니다.~
금요기도회를 드린다고 하는데, 나는 ‘기도’와 관계가 없습니다.~
부활절, 성탄절,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나는 절대로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을 만나고,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하심를 보고,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님의 뜻을 알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소식을, 아무리 듣어도, 가만히~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볼수도, 만날수도 없습니다.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싶어서,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자를 만져 주시면, 어떤 중한 병도 깨끗이 낫게 된다고 하는데~ 나의 이 깜깜한 눈도,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면, 환~하게 뜨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물어 물어,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간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소경 바디매오는, 온 힘을 다하여 ‘여리고’로 찾아 갑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찾아가는 길이 얼마나 힘이 들었 겠습니까? 돌에 걸려 넘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부딪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하여, 예수님이 계신 여리고~ 로 찾아 갔습니다. 깜깜한 눈을 뜰수 있는 기회인데, 그 고생쯤이야 고생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여리고에 도착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는데, ‘웅성우성’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예수님 오십니다. 저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바디메오는 온 힘을 다하여, 그때부터 부르짖기 시작 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 사람들이 말립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럴 때 예수님께 가던길을 멈추고 서십니다. 그리고 돌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부르라 하시니”
바디메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일어나 뛰어서.. 예수께 나아 갑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겉옷이 문제 이겠습니까? 눈을 뜨느냐? 뜨지 못하느냐? 천금같은 기회가 내 앞에 왔는데~ 겉옷을 버리면 어떻고, 걸려 넘어지면 어떻습니까?
바디메오는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을 향하여, 달려 나갔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음성으로 말씀 하십니다.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큰~ 응답을 받고 싶은 사람은, 바디메오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아갔고, 어떻게 만나게 되었은지, 참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디메오 처럼, 중한 기도 제목이 있을때, 우리도 바디메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그 간절한 기도에 멈추어 서시고, 돌아보시고, 우리에게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바디메오처럼, 온 정성을 다하여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온힘을 다하여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온유한 음성으로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큰 능력~으로 뜨겁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을 받을 때, 거절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밭에 일을 하러 가야 된다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을 하러~, 어떤 사람은 장례가 났다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 합니다.
청함을 받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반대로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12제자 입니다.
12 제자는 항상~ 예수님과 동행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같이 머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 합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는 12 제자에게,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이생의 축복과--영생의 축복을 받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약속대로 오순절--성령님이 임하실 때, 12제자는 방언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할때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과 동행할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따라갔듯이, 우리도 성령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데로 따라가면을, 성령님과 동행할수 있게 됩니다.
성령 인도하시는데로 찬송을 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데로 믿음생활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주십니다. 성경속에 진리를 깨닫고 알게 하여주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을 받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고, 듣고,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나에게 찾아오시면
제자들이 보았던, 십자가의 예수님의 그 은혜를 똑같이~ 체험하게 하여 주시고,
제자들이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님의 산 소망을 똑같이~ 붙잡게 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신령한 환상과, 장래의 일어날 일과,
방언과 귀신이 떠나가고, 하나님 나라가 튼튼히 세워지는 모든 역사를~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이,
체험하고 고백하고 참여하도록,
성령님께서는 우리--한사람 한사람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시겠다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듯,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받았던 모든 은혜와 축복을
우리도 똑같이 받고, 참여하고, 살아가도록, 성령님께서는 역사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자, 한주간 동안도,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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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시고, 이제 성령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내가 찾고, 내 안에 모셔 드리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진리의 길로, 구원의 길로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 한분 한분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