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1절 8절 부활절 다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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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지난 첫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활절 지난 첫째 주일이, 더 중요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절은, 부활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는데,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다음 어떻게 하시느냐?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다음 행보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오겠다.”
그래서 제자들은 세가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우하여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셋째, 그 예수님은 다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셨다. 그러면..... 어떻게 보면 세상사람들은 속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셨으니, 그럼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네.~!
예수님은 예수님 대로 하늘로 올라가시고, 우리는 우리대로 세상에서 살아가고...그러니까 다 해결되고 다 끝났습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하고,.... 최고로 중요한 한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찾아 오신다는 사실 입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찾아 오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다시 찾아 오십니까?
7절에 말씀 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의 독생성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성육신’ 하셔서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성육신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뜻합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육체를 입으시고, 같이 괴로워 하고, 같이 힘들어 하며, 이 세상의 인생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세상의 가장 낮은자리에 성육신 하셔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몸소 짊어지고,
가장 험한 십자가를 향하여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럴 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예수님의 본모습으로 회기 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 갈때는,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승천하지 않으셧습니다.
본래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승천 하셨습니다. 바로, 찬란한 하나님의 독생성자의 영광으로, 하늘에 올라,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 오시겠습니까?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 오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당당한 예수님 본래의 모습, 성자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중에 그 모습을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다시오시는데, 이제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분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들로부터 강림 하시리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다음에는, 다시 찾아 오시는데, 독생성자의 영광으로 찾아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볼때에 사람들이 반응이 어떠한까?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슴인고 하니...
예수님이 부활하신 소식을 들을때에...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부활했다니...신기한 사건입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럴수도 있습니까? 이야기 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각자 자기 갈길로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 가운데, 구름타고 다시 오실때에도
예수님... 구름타고 오시다니~~신기한 사건입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럴수도 있습니까? 좋은장면 잘~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도,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각자 자기 갈길로 갈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7절 하반절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다시오실대에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리” 고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 가운데, 구름타고 오시는데, 왜? 사람들이 애곡을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 지셨습니다. “네, 노멘~...바빠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네 믿어볼지 말지, 나중에 결정할테니...자꾸 그러지 마세요.”
그랬던 사람들이 어떻게,...예수님이 구름타고 다시오시는 것을 볼때에, 기쁜 마음으로 두손을 들고,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러면서 예수님을 맞이할수 있겠습니까?
애~곡하며, 가슴이 녹아 내리며, 이를 갈면서....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진짜 예수님이, 구름타고 다시오시네”
“나는 예수님을 영접 않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왔는데”
“이제 나는 지옥에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왜... 그때, 전도할 때 거부하고, 내가 왜.... 그때, 교회 나가자고 할때 거부하고....
이 저주받을 인생아~ 이 저주받을 인생아~”
이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 아닙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심판대에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고,
너무나 자신이 저주스러워, 이를 갊며, 애통하는... 애통이 아니겠습니까?
7절 상반절에 말슴합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예수님을 찌르고, 예수님을 대적한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시는 것을 봅니다.
자칭 그리스도, 차징 메시야, 자칭 여자하나님이라고 망발을 일삼던...이단들도, 다 그때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그때도 내가 재림그리스도 입니다. 내가 재림메시야 인데요, 내가 여자하나님이랍니다. 그렇게 뻔뻔스럽게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적그리스도들은, 가롯유다와 함께, 사탄이 떨어지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질 확률이 90프로는 넘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로 33절에는,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다시오실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같은장 41절에는 또 말씀 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아직도....지금은.... 예수님을 찌르고, 예수님를 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예수님을 죽일때에도... 유대인들은.... 얼마나 목소리가 컷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항상 큽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높습니다.
“나는 논리적으로 예수님을 않믿습니다.”
“요즘 교회가 하는것 보니까, 목사가 하는것 보니까, 교인들이 하는것 보니까.....이래서 나는 교회 않나가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똑똑하고, 너무너무 목소리가 큽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행하실 때는, 항상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예고를 하시고. 준비할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십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 하였습니다만...
예수님의 행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고와 준비와 기회의 시간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24:27 에 말슴합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즉흥적으로 행하시고, 상황에 따라서 바뀌시고 그런적이 없으십니다.
성경을 이루시려고, 나귀를 타십니다.
성경을 이루시려고, 은삽십에 팔립니다.
예수님의 나심부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까지, 모든 것이...성경을 이루시려고,
철저하게 성경에 예고되고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십자가에서 죽으실 것도, 몇 번이나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귀담아 듣지를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 합니다.
베드로는 그런일이 일어나도, 나는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 합니다. “네가 두 번 닭이 울기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도, 다 예고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 십자가를 지셨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도, 다 예고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것도, 몇 번이나, 예고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오셔서 어떻게 하시는지,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몇 번이나 예고 하시고, 말슴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은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분명히 알고
항상 깨어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마침표가 찍혀 집니다.
8절, 말씀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오래간만에 승용차를 청소하는데, 아들이 아빠한테 물었습니다.
“아빠,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에요?”
아빠가 자동차 두껑을 열고, 설명을 시작합니다.
“아들아... 휘발유가 엔진으로 들어가면, 엔진이 움직이는데...
그러면,...클러치, 변속기, 추친축, 차동기어, 바퀴까지 동력이 전달 되잔아..
그래서 바퀴가 돌아가는 것야..”
아이가 너무 어렵습니다. 엄마한테 갔습니다.
“엄마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에요?”
엄마가 단 한마디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자동차 바퀴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야”
“아 그렇구나. 자동차 바퀴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구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알파’와 ‘오메가’로 설명 할수 있습니다.
한글로 표현하면 ‘기역’과 ‘히읕’입니다.
즉 ‘시작’과 ‘끝’ 인 것입니다.
부활절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것이, 역사의 종언이요, 구속사의 끝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2절 말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테스’입니다.
마르테스는 법정 용어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저기 이번에 내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날 위해서 증언을 좀 해주십시요.”
라고 부탁을 할 때, 선뜻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을 하실수 있겠습니까?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 사람을 위하여,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기가, 망서려 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테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슴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사람들 앞에서,
말과 행동과 삶과 모든 것을 다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증인’의 역할과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보니까, 사도요한은 그 증인의 역할에 충실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사도요한이 본 모든 사실을, 다 증언 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도요한 처럼,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증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6절에 말씀합니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되어, 예배에 봉사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예배의 참석하는 참석자가 아니라, 예배에 봉사하는, 봉사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명령을 쫓아, 예배에 봉사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즉. 다시오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마르테스’ 증인으로 불러주시고,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슴을 읽고, 듣고, 지키며 살아가면, 복이 있습니다.
마르테스와 제사장으로 사명감당하고 살아가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시오실때에 애통함이 아니라, 찬양과 경배로 예수님을 맞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구속사의 기념비적 이정표입니다.
부활절은 완성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가르키는, 예표입니다.
증인과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 그 앞에서 크게 상급과 칭찬과 면류관을 쓰게 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