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1절 5절 대강절로 준비하자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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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월 첫째 주일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더 뜻깊은 것은, 대강절 첫째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릴 대, 내릴 강, 마디절’입니다. 영어로는 ‘애드번트’ ...라틴어 ‘아드벤투스’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향하여 접근하다’는 뜻입니다.
의미로는, ‘예수님의 오심’ , ‘평화의 왕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가 되겠습니다.
자, 질문을 드려 봅니다. “나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나는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달력을 보면, 12월 25일은 ‘성탄절’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수요일이 성탄절 이지요.
평소에 달력을 꼼꼼히 보는 사람은, 12월이 되면, 성탄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달력을 않보더라도, 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면, 성탄절이 오는것은,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달력에 표시가 되어 있지만, 겨울이 되었지만, 성탄절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성탄절을 기다리지 않고, 성탄절을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자, 이 시대만 그러합니까? 아닙니다. 첫번째 성탄절 아기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시대에도, 똑같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던 세상사람들’이 되겠습니다.
1. 첫 성탄절에, 세상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았 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상반절을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당시 로마의 황제입니다.
‘가이사’라는 말은 이름입니다. 당시 로마의 전통은, 황제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양아들을 삼고, 그 양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따라서 ‘가이사 아구스도’도, 첫 번째 황제 ‘가이사’의 양아들로 들어 갑니다.
첫 번째 황제 ‘가이사’가 죽자, 양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이사 아구스도’는 두번째 황제가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 그리고 ‘존엄자’라는 의미로, ‘아구스도’라는 이름을 더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가 되어서.... 영을 내리는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라~,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고 영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1절 하반절을 보니까......‘천하는 호적을 하라’고 영을 내립니다. 즉 로마의 황제가 되어 로마를 다스리는데, 로마의 백성들은 어디 출신이, 얼마만큼 있는지,.... 천하백성은 호적을 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황제가 영을 내리자 로마의 모든 백성들은 바쁘게, 그 영을 따라서, 호적을 하려고 준비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니까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라고 말씀 합니다.
정리를 하자면, 첫번째 성탄절이 곧 도래하는데,
당시 세상사람들은, 전혀 아기예수님 오심을 기다리지 않았고~ 준비하지 않았고,
황제의 영을 따라, 호적을 준비하느라고, 바뻤던 것입니다.
자~ 핑계를 댈수 있습니다.
가이사 황제가 호적을 하라고 해서, 호적준 비하는 것도 바쁜데....
아기예수님이 언제 오신다고, 어디에 오신다고, 어떻게 오신다고,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아기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알수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꼼꼼하게, 반복하여.... 아기예수님이 세상에 오실것을 예언 하였습니다.
이사야 7:14 에 말슴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가 5:2 에 말씀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말라기 선지자가 회개의 말씀을 전한 이후, 4백년이나, 침묵기가 발생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한명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전한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가 하노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들을때,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지막 경고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임마누엘-메시야가 오시고~, 베들레헴에 오시고~, 400년 간이나 말씀이 끊어졌으니...정말 때가 가까웠다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당시의 황제도 아기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당시 세상사람들도 아기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성경을 보면, 당시에~ 황당한 일도 일어납니다.
행5:37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즉... 호적할 때, 갈릴리에 유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백성을 꾀웁니다.
“임마누엘--메시야가 오신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 임마누엘--메시야 이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저주로 치신다. 내가--자칭 메시야...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솎아서, 유다를 아기예수님이라고, 떠 받들고~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갈릴리 유다가 임마누엘 메시야 랍니다.
갈릴리 유다에게 찾아가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합시다.
“갈릴리 유다~, 갈릴리 유다~”
그러다가 나중에 갈릴리 유다는 죽고,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세상은 전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사탄이 예수님의 오심을 속여서, 가짜-자칭-메시야가 나타나는 혼란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않되고, 혼란스러우면, 성탄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준비가 않되고, 혼란스러우면 아기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미뤄지거나, 세상이 다 준비가 될 때까지 않오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니까, 이렇게 말슴합니다.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세상이 준비가 않되고, 심지어는 가짜-자칭-메시야가 나타나 혼란스러웠지만...
그러나, 아기예수님의 오심은 전혀 지체되거나 늦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이사-아구스도가 영을 내린 것이,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도와주게 됩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해야 되기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대로 아기예수님은, 성경말씀 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게 됩니다.
또한, 가짜-자칭-메시야가 나타나 혼란을 떠는 바람에, 아무도 아기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 하고 몰려 들어서, 아기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입은 사람만, 목자들과 동방박사들만, 아기예수님께 찾아와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이것인 바로 하나님에 역사를 주관하심이요,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준비를 않하여도, 예수님의 오심은 지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그대로 아기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준비 않된 것 까지 사용을 하십니다. 은혜입고 선택된 사람만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아기예수님의 오심을 준비않하는 세상과 다르게,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들어가, 은혜입은 자가 되어, 아기예수님이 오심을 준비하여, 성탄의 자리에 참여하는 믿음이 되어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지막 성탄절에, 세상은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어떤 성탄절입니까?
첫 번째 성탄절도 우리의 관심입니다. 그리고 2019번째, 올해의 성탄절도 우리의 관심입니다.
하지만 단연 최고의 관심은, 마지막 성탄절, 최후의 성탄절,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그 날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첫 번째 성탄절에 대하여, 선지자들이 꼼꼼히 예언하였던것 처럼, 최후의 성탄절, 마지막 성탄절에 대하여서도, 세세하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1 에는 말씀합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0절 말씀합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첫 성탄절에는, 아기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기를 지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성탄절, 마지막 성탄절에는, 아기예수님이 아니라, 능력과 권능의 예수님으로, 심판의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찾아오십니다. 하늘에 징조가 나타나고,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때는 심판에 주로 오셔서, 알곡은 천국곡간으로 모으고, 쭉정이는 불에 던저 사르십니다.
자 이정도 까지, 성경은 세세하게 말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마지막 성탄절을 준비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성탄절을 준비없이 맞이하였던것 처럼, 마지막 성탄절이 와도 세상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지 않고, 죄악속에 다시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최후의 성탄절 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5장 23절 25절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지막 성탄절에 사람들은 어떠할 것인가? 성경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방주를 만들고 방주에 타십시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주에 들어가서 문닫는 것을 보는 그날까지도~, 사람들은 홍수에 멸망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죄악속에 살아 갔습니다.
“멸망은 무슨 멸망이요....요즈음 세상이 얼마나 바쁘데, 호적도 해야 하고, 주민등록증도 만들어야 하고....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노아는 방주에 들어가서... 문을 닫습니까? ”
방주에 들어가 문을 닫는 노아를 보면서,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합니까? 먹고 마십니다. 장가들고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곧 비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징조’이지요...하지만 ‘징조’를 보아도, 징조를 깨닫지 못합니다. 비는 점점 더 많이 옵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잡깁니다.
“걱정하지 말고 높은데 올라가서, 아까전에 먹던거 계속먹고, 마시던거 계속 마십시다.” 그러다가, 다 멸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오실때도, 마지막 성탄절, 최후의 성탄절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포상도교회 교인들이 징조를 보니까... 너무 급해서....예수님께서 곧 오실까 싶어서, 열심히 믿음생활 하는 것을 보면서도~, 손기락질을 합니다.
“심판은 무슨 심판요...요즈음, 세상이 얼마나 바쁜데, 주민등록증도 만들어야 하고, 여권도 만들어야 하고...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교인들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까?”
그러면서 무엇을 합니까? 먹고 마시고, 죄악의 즐거움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난리가 일어납니다. 점점 더 심해집니다. ‘징조’이지요. 하지만 ‘징조’를 보아도 징조를 깨닫지 못합니다. 온세상에 환란이 일어납니다.
“세상 본래 그런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죄악속에서 세상즐거움이나 즐깁시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에, 황당한 일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있다.
거짓 선지자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심지어는 내가 바로 재림-메시야다. 자칭-메시야다.~ 거짓-메시야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큰~표적을 보이고, 큰~기사를 보이고, 큰~ 이적을 보입니다.
그러니까...사람들이 다들 그 거짓-메시야, 거짓-선지자에게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줄 알고, 사탄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을 하려고 할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꾀우는 것입니다.
이정도 하니까.., 말씀위에 서지 못한 사람,... 바른 믿음위에 서지 못한 사람은, 거짓-그리스도....적그리스도에게 몰려가는 일이,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솎지 말라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준비를 않하고, 적그리스도로 혼란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준비를 않하고 적그리스도로 혼란하면,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것이, 미뤄지거나, 다 준비가 될 때까지, 않오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준비를 않하고, 가짜--적그리스도까지 나타나 혼란스럽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는 것은, 전혀 지체되거나 늦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그대로 오십니다.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 않한 사람을 나누게 지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과, 외식의 사람이 나뉘어 지게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가...의인과 악인이 나뉘어 지게 합니다.
믿음으로 준비하여....생명책에 이름이 있고, 구원의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시오실 때, 기뻐하며 찬송하며 맞이합니다.
반대로 준비하지 않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고, 죄악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에, 통곡하며, 절망하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대강절은 어떻게 보내어야 하겠습니까?
오늘본문 5절 하반절에는 말씀합니다.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마리아가 아직 베드레헴에 도착 않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예수님 벌써 잉태가 되셨습니다.이땅에 태어나실 준비가 완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성탄절과 마지막 성탄절.... 사이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 자리는, ‘이미’ 의 자리가 되겠습니다. 헬라어 성경으로는 ‘온’ 이라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준비가 완료된 상태가, 바로 ‘온’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직 다시 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오실 준비가 이미 준비된 상태가, 바로 이‘온’의 자리인 것입니다.
‘온’의 자리는, ‘믿음’의 자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히브리서에는 말씀합니다.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준비가 완료된 자리입니다.
이번 대강절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바로 이 ‘온’의 자리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번째 성탄절, 아기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 자리에 참여하여, 경배를 드렸던, 동방박사와 목자들 처럼,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며 예배드리는 자리에,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마지막 성탄절, 다시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