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11절 15절 본받는 자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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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높혀 주십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를 높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존귀하게 높혀 주십니까?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를 높혀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높혀 주십니까? 디모데와 같이 “본받는 자” 를 놓혀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좋은 것을 본받는 디모데”가 되겠습니다.
‘본받다’는 말은 근본본, 한글로 ‘받다.’는 말이 합성된 말 입니다.
직독으로 이해를 하자면, ‘근본’을 내가 받는 것입니다.
한글 사전으로는, ‘본보기로 하여 그대로 따라가다’. ‘본보기로 하여 그대로 따라하다.’
헬라어 성경으로는, ‘휘포튀모시스’, ‘에코’입니다.
휘포튀모시스는, ‘원형’,‘견본’ 이라는 뜻입니다. ‘에코’는 받다, 가지다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과 똑같습니다.
‘휘포튀모시스 에코’ 라는 말은, 원형을 내가 받고, 원형을 내가 가지게 되는 것이 되겠습니다.
디모데는, 로스드라 출신으로, 초대교회에서 높임을 받아, 중요한 직임을 감당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임을 받게 되려면, 세상과는 조건이 다름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높은가를 겨루어, 제일 높은자가 높아 집니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반대입니다. 누가 낮은가를 겨루어, 제일 낮은자를 높혀 주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낮아져야지~, 내가 제일~ 낮아져야지... 라고 한다고, 키를 낮추면 되겠습니까? 몸무게를 낮추면 되겠습니까?
무엇이 낮아져야 되고? 어떻게 섬겨야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1:13 에는 말씀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가르켜 주었습니다.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이러이러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말로만 가르킨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그럴 때,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낮은모습, 겸손한 모습, 신실한 모습을 ‘잘 본받’ 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잘 본받는’ 디모데의 자질, ‘잘 본받는’ 디도데의 자세를,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은 잘 본받는 자세와 자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여정’을 흔히들 ‘성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20살에 믿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50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0살이 되었지만, 예수님을 전혀 닮은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것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하신 것을 전혀 닯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시는 것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즉, 30년 동안,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과연 30년 동안에 이분의 믿음생활을, ‘좋은 믿음의 여정’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여정’은 ‘성화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닮아가고,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20살에 믿음생활을 하였는데, 50살이 되어서, 예수님을 많이 닯게 되었습니다.
옆사람이 말합니다. “집사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 기도하는 모습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집사님은 ‘기도의 성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집사님이 평소에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도 이렇게 대화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의 대화하는 모습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집사님은 ‘대화’하는데 성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화는 예수님을 닮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은 좀더 분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최소한 한가지씩은~, 능력이 되면, 두가지~ 세가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서 살아 갔습니다.
이럴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럴때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하셨을까?
사도바울은 매사에,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의 말씨,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기를 힘썼습니다.
아울러, 또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본을 보이기를 힘썼 습니다.
“부모님은 어린 자녀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마신다”는 말이 있지요.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씨, 행동을 워낙 잘~ 따라하니까, 혹시 나쁜 영향을 미칠까? 조심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쁜 모습이 아니라, 좋은 모습...예수님의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디모데에게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직적 사도바울 스스로 모범된 기도생활을 하면서, 그 기도생활을 디모데가 본받도록 합니다.
디모데에게 “말슴 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치고, 직접 사도바울이 스스로성경책을 읽는 모범을 보이면서, 그 모습을 디모데가 본받도록 합니다.
그럴 때,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믿음의 모습을 본받아, 성화의 삶을 살아갈 때,
기도를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주위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초대교회에 지도자가 되어, 또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본은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고, 닮아가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을 형상을 닮으면 닮을수록, 하나님께서는 높혀 주십니다. 사랑하여 주십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기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지 않고, 예수님을 본받기를 싫어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멀리하고, 배척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본받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도록, 내어 주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대인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는 자로, 맏아들이 되도록 서열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본받기를 힘쓰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이제는 복음의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무엇을 본받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역대하 33:2 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본받지 않고,
이방의 가증한 것을 본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악’하다고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디모데가, 사도바울이 가르치고 전하여 준대로, 예수님을 본받지 않고, 세상을 본받고, 세상의 풍습과 가치와, 윤리와 도리를 본받았다면,
디모데가 초대교회에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존귀하게 높아지고, 존경받는 것은, 내가 힘쓰고, 애써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예수님 앞에 얼마나 무릎꿇고,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본받으려고 하고, 또 본받았느냐? 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되어 지는 것입니다.
요한3서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만나 주십니다. 귀를 귀울여 주십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한귀로 듣고 한귀를 흘려 버리고,
세상을 닮고 세상을 쫓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는 찾을수 없도록 감추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로
2. 잘 본받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나이가 많은 권사님이, 자녀를 불렀습니다.
“어디좀 다녀와야 하는데, 너희들 차로 갔다가 올 수 있겠니?~”
첫째가 말합니다. “어머니, 제 승용차는 ‘소나타’인데 갔다가 오시지요”
권사님이 귀가 먹어서 대답합니다. “ ‘소나타’ 라니~ 엄마보고 소나 타고 갔다 오라니, 너무하구나...
둘째가 말합니다 “어머니, 제차는 아벨라인데 괜찬겠어요”
귀가 먹은 권사님이, 화를 냅니다. “아~벨라, 라고? 너희들 동생은 없다. 엄마 나이가 이젠 80인데... 못할 소리가 없구나, 아~ 벨라 라니..”
셋째가 말합니다 "어머니, 제차는 그레이스 봉고차 인데 괜찬겠어요?“
차이름이 그레이스--‘은혜’, 너무 은혜스럽구나...그 차로 갔다 오자꾸나..
그래서 권사님은 소나타 않타고, 아~벨라 않타고, 그레이스--‘은혜’ 봉고차로 다녀 왔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권사님 같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귀한 신앙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딤후 1:5 에는 말씀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또한, 디모데는, 그 믿음이 훌륭하여, 주위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행16:1-2 에 말씀합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좋음 믿음을 본받기 위하여서는, 먼저 모범을 보여주는, 좋은 믿음의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본받는 자는, 마음문을 활짝 열고, 좋은 믿음을 본받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7 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그리스도인은, 다른이의 믿음을 인도하기 위하여, 내가 한가지씩 다른 사람을 보일, 믿음의 본을 보어야 합니다.
“나는 기도의 본을 보여 주어야 겠습니다.”~
“나는 순종의 본을 보여 주어야 겠습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본받게’ 되어 집니다. ‘봉사’ 그러면 우리교회에서는 김집사님이 ‘봉사’ 대장입니다.~
봉사할 때 솔선수범하고, 봉사할 때 열심으로 앞장서고,
‘봉사의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하는지, 김집사님을 볼때마다, 본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배’ 그러면 이집사님이 우리교회에서 ‘예배’ 대장입니다.~
예배드릴 때, 30분 일찍와서, 기도하고, 정리하고, 예배위원 없으면, 대신 서고,
‘예배의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되는지, 이집사님을 볼때마다, 본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문을 활짝열고, 믿음의 본을 보이기를 힘쓰고,
또한 믿음의 본을 보여 주던 자를 생각하며, 그 행실의 결과가, 얼마나 은혜롭고 축복을 받는지를 보고, 그 믿음을 본받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2 에는 말씀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은 본받기를 힘쓸 때, 믿음의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받았던, 좋은 축복도,~ 나도 받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던,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고, 후손이 크게 번성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신실함으로, 어려움이 바뀌어 큰 성공이 되고, 낮아짐이 바뀌어 존귀하고 높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브라함의 믿음, 요셉의 믿음, 뿐만 아니라, 성경에 있는, 여러 훌륭한 믿음을 본받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믿음의 결과 받은, 좋은약속과 축복들을, 나도 동일하게 받게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게르지않고, 오래참으로...나도 그 믿음에 이르고, 나도 믿음경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15:5 에는 말씀 합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이렇게 좋은믿음을 본받는 자가 되어, 예수님을 열심히 본받게 되는 그리스도인은
서로, 뜻을 같게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로 불러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천국에서, 구원의 알곡으로 불러 주십니다.
자, 가을에 키를 잡고, 알곡을 모을려고 키질을 하면, 남는것이 있는가?하면, 밖으로 날아가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알곡들은 다~ 남아서 천국창고에 들어가게 되지만, 키질할 때, 가라지는 바람에 날려서, 밖으로 날아가 밑에 떨어지게 되어 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을 따라서 믿음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은
정상적으로 교과서적으로 보면, 그 그리스도인은 알곡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본받고, 다른생각을 품고, 다르게되어,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뜻을 같이하여,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뜻을 바라보며, 성화여정을 가게 되어 진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본받는 그리스도인은, 스스로도 좋은 본을 다른이에게 보여주고,
더 좋은 믿음을 잘 본받아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축복도 받고,
그러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좋은 믿음과, 사도바울의 좋은 믿음을 잘 본받아
초대교회에 훌륭한 믿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믿음을 본받는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이에게도 좋은 믿음의 본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혀주시고, 더욱 큰 일을 맡겨 주십니다.
또한, 좋은 믿음이 받는, 큰 축복에도 참여하게 하여 주십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좋은 믿음을 본받자가 되어, 매일매일 믿음이 성장하고,
다른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하나님께서 높혀주시는,
한주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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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매일매일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여정이, 진리의 길, 성화의 길이 되어서,
마무리 할때에는 예수님을 확연히~ 닮은 모습에, 이를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매일매일, 신실함으로, 좋은 믿음을 본받기를 힘쓰고,
또한 나의 좋은믿음의 본을 다른 이에게 보이며, 은혜를 끼치며~
그리하여 예수님의 뜻으로 하나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는데 크게 쓰임받는, 디모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또 한주간 동안,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좋은믿음을 본받는자가 받는, 은혜와 축복 속에 생활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높혀주심 가운데, 감사하며 살아가는, 한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