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 1절 10절 그가 아시나니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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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을1차 총동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9월달을 시작하는 9월 첫째 주일입니다. 9월달은 주제는 “삶이 더욱 건강하게 되는 달”이 되겠습니다.
‘삶’이라는 범주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통합적이고 통전적인 영역입니다.
‘인생’이라고 할수도 있고, 구체적으로는 ‘나의 가는 길’이라고 표현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나의 가는길’이 은혜롭고 건강하기 위하여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욥기 23장 10절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십니다.
사람은,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안다’고 생각할 때, 그때~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무엇이 문제 입니까?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제학에 숙원은, 예측입니다. 멜서스이론, 케인즈이론, 모던 모니터리 시어리--현대통화이론, 등등, 경제학에는, 여러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들을 수퍼컴퓨터에 집어넣고,--주식을 예측하면, 맞겠습니까?
잘 맞으면, 벌써 여기저기 때부자가 나타나고, 세계경제가 예측한대로 잘 돌아가고, 전세계가, 천하태평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리 좋다는 경제이론도, 그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아도, 그이론을 수퍼컴퓨터에 집어넣어서 돌려보면,
실제경제는, 이론이 예측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산으로 가는것이, 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주인공은 ‘욥’이 되겠습니다.
욥은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대비를 합니다. 먼저 준비를 합니다.
그랬더니, ‘내가 가는 길이’ 잘 됩니다. 재물도 많이 생깁니다. 좋은 평판도, 얻게 됩니다.
욥이 어떻게 ‘내가 가는길’을 잘~ 알고, 잘~ 대비를 하였습니까?
욥기 1장 5절 하반절에는 말씀합니다.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 하였더라”
즉, 욥은 혹시, 만약에 발생될 일까지, 미리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며, 잘못되지 않도록,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 이정도로, ‘내가 가는 길’을 잘~준비하고, 잘~대비하면, ‘내가 가는 길’은 평탄하고 형통하고, 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는, 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황당한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욥기 1장 20절에는 말씀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무슨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까?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스바’의 도둑때들이 와서, 욥의 많은 양때들을 다~ 데리고 갑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또 하인이 달려와서, 이번에는 ‘갈대아’의 도둑때들이 낙타들을 다~ 데리고 갑니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한순간에 재물과 재산이 사라지게 됩니다. 심지어는 자녀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까지 전하여 집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내가 가는 길’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잘~살피고, 가꾸고, 대비하고, 준비 하여 왔는데, 실상은 그런 노력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큰재앙이 지나갈 때, 손도 쓰지 못하고,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즉, 욥의 실상은, 한치 앞도 ‘내가 가는 길’을 전혀~ 알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를 보면, 개인을 보면...내가 가는 길을, 내가 잘~안다고 자신있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해 하는데, 실상은 문제는 더 커지고, 더 꼬이고,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 볼수 있습니다.
자, 구체적으로,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안다고 하는 교만이, 어떤 문제 일으킵니까? 세상에서는 그것을, ‘부메랑 효과’, ‘풍선효과’라고 하지요.
내가 안다고 부메랑을 던집니다. 그러니까 부메랑이 날아가면서 속도가 붙어서, 더 빠르게 나에게 다시 돌아 옵니다.
내가 안다고 풍선을 누룹니다. 그러니까 풍선의 다른부분이 불쑥~ 튀어 나옵니다.
즉, 내가 생각지 못한--모르는 부분이, ‘역효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세상도 이러한데, 오늘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내가 가는길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까?
인생의 길, 여러가지 계획,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약성경 사무엘상에는, ‘두 사람의 길’이 나옵니다.
‘사울왕의 길’과 ‘다윗의 길’ 입니다.
사울왕은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잘 안다.’고 자신만만해 하며, 나의 길을 방해하는 다윗만 없어지면, 나의 길은 활짝 열린다고,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정말 다윗만 없어지면, 사울왕의 길을 활짝~ 대로가 열리는 것입니까?
사울왕은 그렇게 판단을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다윗만 죽이면 된다고, 바쁘게 다윗만 쫓아 다니는데 몰두를 합니다.
그 결과, 신하들의 마음이 떠나갑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갑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사울왕에게서 떠나 갑니다.
나중에야 사울왕이 깨닫고, 급하여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러니까 무당이 더~황당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너의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그리고 다음날~ 블레셋에게 패하여, 사울왕과 요나단과 왕자들과 사울왕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죽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도망만~ 다닙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몇 번이나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오지만, 절대로 않죽입니다. 이유는 단한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받은 왕을, 내가 어찌 죽일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쫓껴다니는 다윗은 오히려, 자동적으로 하나님께서, 사울대신 왕이되게 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갔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길은 은혜와 형통으로 인도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가는길을, 그가 아시나니’, 라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돌~원석은, 내가 가는길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돌~원석이 어떻게 단련이 되고, 어떻게 정련이 되어, 순금으로 변하는지, 돌~원석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련하는 장인에게 자신을 맡길 때, 원석은 변하여 ‘순금’으로 바뀌게 되지 않겠습니까?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이 이끄시는데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를 맡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기도는 소용이 없고, 기도는 그저 마음에 평화만 줄수 있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으면, ‘해외 바이어’를 만나고, ‘세일즈’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데,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방법을 따르지 못합니다.
내가 생각할때는~, 십자가 지면 손해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좁은길이요--좁은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인생에 큰 손해요 실수입니다.~
내가 볼때는 십자가는 지면 않되고, 넓은길, 넓은 문으로 가야, 성공할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반대로 열심히 갑니다.
내가--나의 가는 길을 알고,
세상이--나의 가는 길을 알고,
다른분이--나의 가는 길을 안다고 다른분을 더 신뢰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길로 가고,
세상이 가르쳐주는 길로 가고,
다른분이 좋다고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 6절에 말슴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2.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됩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어떤분이 바쁘게 길을 가다가, 목이 말라서, 커피점에 들어갑니다.
“여기, 아이스, 아프리카노, 하나 주세요”
커피집 주인이 알아듣고 말해 줍니다. “‘아프리카노’가 아니라 ‘아메리카노’ 말이지요?”
“아~ 네, 시원한 걸로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길을, 누구보다 제일 잘~ 아십니다. 그렇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나를 정금으로 완성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정금’이 왜 대단합니까? 물속에 수천년 있어도, 진흙속에 수천년 있어도,
다른것은 썩어지고, 녹이슬고, 사라져도
‘정금’은 변함이 없습니다. 영롱한 빛을 밝하며,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정금으로 만드시되, 좋은모양, 영광스러운모양, 은혜로운 모양으로 나를 다듬으시면,
나는, 영원토론, 천국에서, 그좋은 모습, 영광스러운모습, 은혜로운 모습으로, 영롱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나를 영원토록, 찬란한 모습이 되도록 만드실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 경건의 비밀이 있습니다.
‘원석’이 바로, 영원토론 찬란한 ‘정금’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단련’이라는 과정을 거칠 때, ‘정련’이라는 과정을 거칠 때...
원석에 있는 잡성분들은 빠져나가고, 순수한 금이 남아서, 그 황금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도인이, ‘단련’이라는 과정을, 매우 혼란스럽게 생각합니다.
원석을 정금으로 ‘단련’시킬 때, 어떻습니까?
원석을 뜨거운 불에 넣어서, 끓어야 합니다. 식혀야 합니다. 끓여야 합니다. 식혀야 합니다.
그러니까, 원석에 입장에서는,~ 뜨거워 지면, 이거 잘못되고 있는게 아닌가? 어마어마하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힘들어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열심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정련과 단련의 과정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얼음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거 잘못되고 있는거 아닌가?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 정말~ 잘못되는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원석이, 불에 들어가 ‘정련’과정 중에 있을때...
뜨겁다고 “나는 이렇게 뜨거운것은 못견디겠습니다.~” 내가 판단할때는 잘못되고 있는 상황 같은데, 나는 시원한대 나갈랍니다.~ 그리고 나가버리면...
황금이 되다가 스톱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순금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잡성분이 뒤섞여있는, 이상한 상태로 끝나버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순금이 되기 위하여서는, 연단의 과정을, 믿음으로 잘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5:4는 말씀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정금으로 만들고 계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 안에서, 인내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장인이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가는 길을, 정금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살펴 볼 부분은,
만약, 최고의 장인이 순금으로,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면, 그 순금작품은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황금같은 믿음이..되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면, 나는 최고의 작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정금으로 만들어 가시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최고로 멋있게 되도록,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그 뜻과, 모양을 보면서, 내스타일이 아니라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타일’이라고도 하고, ‘케랙터’라고도 하고, ‘타입’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연단을 잘하고, 단련을 잘하고...마지막에 작품으로 완성되는 단계인데,
‘스타일’이 않맞다고, ‘내 타입’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아트리에’를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37편 7절 9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대가의 솜씨는, 그 작품이 완성될 때 나타나고, 훌륭한 작품이 시간이 갈수록, 더 인정받는 것 처럼..
하나님의 솜씨는, 나의 인생이 완성될 때 나타나고,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갈수록, 내가 더 인정받도록, 나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는길은..... 그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연단하신 후에, 내가 순금이 되고, 최고로 훌륭한 하나님의 순금작품이 되도록, 나를 만들어 주십니다.
욥은, 욥기 1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연단의 과정을 보냅니다.
그런데, 연단의 과정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 과정으로 보냅니다.
그럴 때, 욥기 마지막, 42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찾아 오십니다.
욥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하여 젔는지, 욥기 42장 2절, 6절에 이렇게 고백 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겸손하게 회개하는, 순전한 믿음--순금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자 이러한 욥의 순전한 믿음--순금같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욥기 42장 10절에 말씀합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욥이, 나의 가는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연단의 과정을 지날 때...
손해본거. 회복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갚절로 더 올라가게 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선남선녀로 잘 자라게 하여 주시고, 욥은 증손자를 보도록 장수하게 하여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는 믿음도 복되고, 세상에서 복되고, 생활도 복되도록
욥의 인생 전체가...욥의 가는 길이, 하나님의 훌륭한 순금작품 되도록,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가는길을, 그가 아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붙잡고
나의 믿음이, 순금같이 변하고,
나의 가는 길이,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으로 완성되어가는
은혜의 한주간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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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늘도 나를 무한사랑하여 주시고,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이 이끄시는데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나의 가는 길은,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한 주간동안도, 매일매일 예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뜻대로--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변하고,
순금같은 믿음으로 성장성숙하게 하여,
연단의 과정은, 갑절로 올라가는 과정이요, 자녀들이 잘되고, 건강과 장수하게 되는,~
욥이 받았던 축복에 참여하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