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1절 5절 높혀 주시는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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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10월달 첫째주일로써 ‘가을2차 총동원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0월에는 넷째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10월달은 말씀위에 서서 믿음을 새롭게 하며,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달로,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연유로..10월달의 주제는 “말씀의 능력으로 존귀하게 되는 달”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게 되기 위하여는.. ‘겸손’의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겸손은 ‘겸손할 겸, 겸손할 손’입니다. 국어사전으로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나의 생각과, 나의 뜻과, 나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는 않는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높혀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말씀의 주인공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였던 아브라함’ 이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할 때,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앞에 겸손하였던 것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여 주시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1절로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성경을 보면, 다윗은 소년일때,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나갈때,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혀주어, 왕이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소년이 아니라 노년에,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혀주심으로, 복에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존귀하게 될수 있었습니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앞에 겸손하였습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마음이 닫혀 있지 않았습니다.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오픈 마인드’..였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즉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땅을 향하여 아브라함에엑 출발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2절 3절 보니까, 너무너무 유익이 많습니다.
2절에는 말씀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즉,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은 유익입니까?
부모님의 제일 걱정은, 결국 자녀 걱정이지요. 자녀들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면 좋겠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자녀들이 너무너무 잘되어, 큰 민족을 이루고, “우리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 입니다”라고 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시겠다고 하니까...
부모된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복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또한, 아브라함 자체로도, 먼 훗날에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당장 그때부터, 복의 근원, 복이 시작되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시겠다고 제안을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가끔씩 걱정을 합니다. 오늘 하루는 좋을까? 나쁠까?~
올해는 좋을까? 나쁠까?~
혹시나 잘못되어 않좋은 일이 생기면 않되는데~
그런데 복의 근원, 복이 시작되는 사람이 되면, 이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되니까. 나는 걱정은 붙들어 매고, 생활하기만 하면,
내가 하는일은 내가 복의 근원이 되니까...당연히 술~술~ 복되게 잘 풀립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은 내가 복이 시작되는 사람이니까, 복된일만 있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제안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3절에는,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이 되면, 어떤 좋은 변화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자~. 만약 내가 하나님께 이런 제안을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겸손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보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선뜻 이말씀에 순종하기에, 망서릴수 있는 상황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4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 말씀을 들을 때, 연세가 “75”세 였던 것입니다.
요즈음은 대체적으로 젊은 시대인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40대 그러면 아저씨가 연상이 되고, 50대 그러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60대 그러면, 허연 할아버지의 얼굴이, 당연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60대라도 꼬부랑 할머니를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아니 70이 되어도, 건강과 활동으로 본다면, 젊은사람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건강외모는 젊어졌지만, 그래도 한가지 변함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40년, 50년, 60년이 지나면서,...경험이 축척되고, 나만의 공식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칠십 오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
70년의 지식과 경험으로 생각해 본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75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는데, 이제 새로운 땅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과연 자식이 생기고, 후손이 민족을 이룰수 있을까? -- 75년의 지식으로 생각해 보면, 선뜻 수긍이 가는 부분이 아닌것이 사실입니다.
또, 75세라면 이제는 마무리 하는 상황인데, 누구를 저주하고, 누구의 복을 빌고,...그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사업을 크게, 다시 하게 될 일이 없을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불순종 하지 않았습니다. 75세에 하란을 출발하여, 어딘지 모르는 곳을 향하여, 언제 도착할지 알수 없는 곳을 향하여 나아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75년의 마음과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30대로 내려가서, 20대로 내려가서 ~
순수하고, 순진하고, 그럴수도 있겠다. 아니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출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75년이 아니라, 30년, 20년 10년, 5년으로 내려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듯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듯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 나의 마음을‘활짝’열고 열린마음으로--오픈 마인드로, 하나님의 말슴을 듣고 배우는 것이, 겸손이라고 하는입니다.
잠언 15:33 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입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하여 주십니다.
잠언 22:4 에 말씀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주십니다. 영광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자를,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높혀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재물을 주십니다. 영광과 명예를 주시고, 영생과 생명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때, 순종하여 행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2. 사람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프리카에 간, 선교사가 사자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도망쳤지만 점점 힘이 빠집니다.
결국, 사자가 바로 뒤까지 쫓아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저 사자를, ‘믿음의 사자’가 되게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뒤로 돌아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쫓아오던 사자가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드니, 점잖게 선교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식사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님도, 같이 식사기도를 하시겠어요? "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선교사를 잡아 먹으려고, 선교사에게 다가온 사자처럼, 아브라함에게 달라붙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카 롯’ 이 되겠습니다.
조카 롯은,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욕심은 너무너무 많습니다.
마치 사자가 선교사를 잡아 먹으려고 하듯이,
롯은 아브라함의 모든 복을 가로채려고, 아브라함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4절 상반절에는 말슴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는데,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보고, 아브라함과 함께 갔습니다.
자, 사람을 보고, 사람과 함께간 ‘롯’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믿음없는 모습이 들어납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
그러니까 롯이 얼른 땅을 살피고, 결정을 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땅들을 살펴 보니까... 땅 중에서 소돔과 고모라 땅이 제일 좋습니다. 물이 넉넉하고, 마치 하나님의 동산처럼 좋습니다.
“아저씨,~ 저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겠습니다. 아저씨는 반대쪽으로 가시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결국 척박한 네게브 땅, 요단 서쪽으로 갈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 이런 롯이 잘 되겠습니까?
창세가 14장에 보면, 주위 왕들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노략을 할때, ‘롯’이 잡혀가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고소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18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롯을 구해오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롯’이 ‘아브라함’에게 감사하다고 ‘감사인사’하는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성에 의인이 있으면, 그 의인을 성과 같이 멸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롯을 위하여, 5번을 기도하여, 의인의 숫자를 10명까지 낮추며, 어떻게 든지 롯을 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게 됩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겨우 도망쳐나와, 평생~ 굴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세 번이나, 구해 주었지만, 롯은, 교만하게도 한번도 아브라함에게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런 롯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선입관을 가지고, 나쁘게 말하고, 험담하지 않고, 겸손하게 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교만하게 살았는데, 그 교만함이 그가 원하는 것을 가질수 있도록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롯에게 겸손하게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오히려 잘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복은, 사람이 많들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롯’처럼 사람이 아무리, 좋은것은 내가 다 가져야 되겠다고 힘을 써도, 하나님께서 않주시면, 한가지도 가질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고,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 하고, 롯이 어려움을 당하니까 롯을 구해주고,
롯이 위험하니까, 롯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러니까.. 축복은 누가 받았습니까? 롯이 아니라, 그때마다 아브라함이 받게 됩니다.
창세기 13장에, 롯이 소돔을 보고, 좋은땅이라고 소돔으로 출발하고 난다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4장에서는, 잡혀간 롯을 구하고 돌아올때에, 살렘왕 멜리세덱이 마중을 나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줍니다.
창세기 18장에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있으면 구해달라고 기도할 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러 가던 주의 사자를 통하여, ‘이삭’이 태어나는 약속을 받고, 그 다음해에 ‘이삭’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롯, 아브라함에게 교만하여 은혜를 갚지 않았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 겸손하게 롯을 대할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필요한 좋은 것으로 다~갚아 주시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8 에는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이를 향하여, 넒은 마음을 가지고, 겸손함으로 대하는 호의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른가정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중보기도 받을 만한 믿음과 덕스러움이 없다면, 그 기도한 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대로 ‘반사’가 되어, 다~ 나에게 돌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 겸손으로 대하고, 넓은 마음과 호의로움으로 대할 때...
롯이 교만할 때마다, 복이 도로 아브라함에게 돌아오게하여 주셔서,
아브라함은 더욱 잘 되는, 축복속에 살아가게 하여 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순종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높혀주시고 존귀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는자로써, 롯에게 겸손과 넓은마음과 호의로움으로 도와주고, 은혜를 베풀고, 중보기도를 해줄 때,
그 복을 받을 그릇이 않되는 롯은, 하나도 못받고, 그 복은 도로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서, 아브라함은 더욱 존귀하게 되고, 마음에 소원이던...후사--이삭도 태어나도고,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순종하고,
사람앞에서도, 겸손으로 행하여,
그때마다 하나님 갚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높혀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도로 나에게 돌아와서,
더욱 감사하며 보내는. 은혜의 한주간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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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지시하시는 구원의 길로, 매일매일, 나아가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매사에 순종으로 행하여, 하나님께서 높혀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갈수 있게 하여주시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 한분한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한주간 동안, 세상에 나가서 살아갈때에, 사람들을 대할때에도, 그리스도인으로써 겸손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복은 도로 나에게 돌아오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좁은길, 진리의 길, 형통의 길로 걸어가는
복의 근원되는 한주간, 복의 근원되는 10월달로 보낼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