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2절 14절 복음의 계절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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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가을1차 총동원 주일로 지켰습니다.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라는 믿음으로 고백할 때, 정금같은 믿음으로 단련이 되어, 하나님의 ‘순금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연단의 과정은, 하나도 손해본것 없이, 모든 부분에서 갚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복음의 계절’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가 되겠습니다.
1. 무화과 나무는 때가 아니어서, 열매를 맺이 않았습니다.
본문 13절,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사람은 누구나 생활에 기준을 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계를 기준 삼습니다. “12시 정각에, 교회에서 만납시다.” 그러면, 시계를 들여다 봅니다.
“내가 12시에 교회에서 만나려면, 세수하고 옷갈아 입는데, 30분, 차타고 가는데 30분, 혹시 차가 막히면 않되니까...여유 10분...그러면 10시 50분 부터 준비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시계를 기준 삼아 준비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무화과는 무엇을 기준을 삼아 살아갑니까? 당연히 계절의 변화를 기준삼아 살아가는 것이지요.
봄눈이 녹으면--봄이 왔구나~ 그리고 새싹을 틔웁니다.
여름이 되어--해뼡이 뜨거우면, 여름이 왔구나, 그리고 잎을 하나가득 달리게 합니다. 그러면서 영양분을 빨아 드립니다.
가을이 되어 선선하면--가을이 왔구나, 그리고 무화과를 맺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무화과 열매를 추수합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겨울이구나,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기준삼아, 한치에 오차가 없이, 이 싸이클을 반복하며 자라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무화과 나무 아래에 찾아오신것입니까? 12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서 드시려고, 무화과 나무아래에 찾아 오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굳이 지금 왜?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서 드시려고, 무화과 나무아래에 찾아오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마가복음 11장입니다. 11장 1절에는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제자 둘을 보내어, 한번도 타지않은 나귀 새끼를 구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장면, 어떤 장면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예루살램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셔서, 곧바로 금요일에 십자가를 지고, 죽게 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계절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 나귀타고 예루사렘으로 입성하시는 것은, 무슨 계절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복음의 열매, 대속의 열매, 사명의 열매를를 추수하기 위한, 추수의 계절, ‘가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걷옷을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예수님은 환영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이튿날 무화과나무에게 찾아가셔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말을 할수 있다면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 계절에 맞춰서, 찾아 오셔야지...이렇게 빨리 찾아와서, 열매를 찾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무화과열매가 하나도 없으니, 다른 나무에 가서, 찾아 보세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게 말씀 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그 다음날 제자들이 가보니까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으실 때, 계절이 아니라고 열매를 맺지 않던 무화과나무는, 영원히 말라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준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계절을 기준 삼습니다.
나의 성장을 기준 삼습니다. 8살에는 학교에 들어가고, 20살에는 대학에 들어가고, 30살에는 결혼을 하고...
요즈음, 기준이 한가지 늘었지요. 코로나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몇 명 확진자다~ 그러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 집니다.
확진자가 확~ 늘었습니다.~ 그러면 분노가 끓어 오릅니다. 또 누가 코로나 걸려서, 국민전체를 힘들게 하고, 코로나 걸린사람은, 코로나로 고생 좀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기준삼는 것이, 있으십니다.
복음의 열매가 얼마나 자랐는가? 이제 알곡믿음을 추수해야 하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때가 되실때, 찾아 오십니다.
요한계시록 22:12에는 말슴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에는, 어린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들며, 환영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알곡신앙을 추수할때가 되어, 다시 세상에 오실때에는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늘이 열립니다. 예수님의 호령소리가 들립니다.
그럴 때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면서,
천군천사들가 도열을 하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던 그 모습으로 그대로 내려 오십니다.
세상에 모든 나라들이, 그 모습을 보고,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계절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자 그럴 때, 세상은 두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사람과, 열매가 주렁주렁달린 무화과나무와 같은사람으로 나뉘어 집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사람은 그때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예수님 너무 일찍 오셨네요....지금 오실 때 아닙니다. 제 나이로 보면, 아직~열매맺을 때는 한창 더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나중에, 제가 오라고 할 때, 그때 오시면 되겠습니다.”~
또 다른사람은 대답합니다. “예수님, 이렇게 일찍 오실줄~ 몰랐네요. 지금 한창 바쁘고, 코로나도 절정입니다.~ 미국은 대선이고, 일본도 총리가 바뀌고, 터어키는 그리스하고 싸우고,
세상 좀 잠잠해 지면, 오셔야지...지금은 오실 때가 아닙니다.”
얼마전 아타까운 뉴스를 본적이 있지요. 요즈음 모두 집에들 있으니까 배달이 바쁘지요.
어떤 50대 가장이~ 배달을 나갔는데, 음주운전하던 BMW차가, 차선을 역주행을 해서 돌진해서, 정면으로 부딪쳤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자, 왜 세상에 혼란하고, 특히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는, 마르게 된 것입니까?
무화과나무의 계절과 예수님의 계절에, 불일치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자, 한가지 질문을 드려 봅니다. “나의 계절은 무엇을, 기준하고 있습니까?”
세상사람들은 각각,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지표를, 절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을, 절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절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생활을, 절대적으로 생각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자기계절에 꽃을 피우고, 자기계절에 열매맺는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그 계절에 맞추어, 잎을 무성하게 피웠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않맺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계절이 되어....추수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 오십니다.
그리고, 불현듯 무화과나무를 찾아오실 때, 그 계절의 불일치로 인하여, 무화과나무는 열매없이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열매없이 예수님 앞에 선~ 무화과나무는, 영원히 뿌리채 마르는 무화과나무가 되었습니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계절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2절 33절에 말씀을, 다같이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시골교회에, 어떤 할머니는, 성경을 얼마나 빨리 읽는지 모릅니다.
조금 지나면 성경1독, 조금지나면 성경 2독
그런데 한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성경을 모두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 이름만, 읽고 지나갑니다.
아브라함-아브라함, 이삭-이삭, 야곱-야곱 한 장넘기고, 다윗-다윗 나단-나단,
목사님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할머니, 왜 사람 이름만, 읽고 넘기세요”
“아유~ 목사님도, 제가 나이가 많잖아요~ 곧 천국 갈텐데,
천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아는척이라도 해야될거 같아서, 성경에 있는 이름을 열심히 외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마지막 때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 하십니다.
32절에 “무화과 나무가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아까운줄 알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볼때는, 자연의 계절을 알수가 있습니다.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구나~ 그러면 곧 가을이 찾아 오겠구나~,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요, 열매의 계절입니다.
곧 있으면 무화과나무를, 추수할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이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자~이와같이~, 무화과 나무의 비유와 같이, 그리스도인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이 모든 일은, 24장에서, 마지막 때에는 이런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신 모든 일이 되겠습니다.
몇가지만, 소개를 해 드리자면,
주의 임하심과 세상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라고 제자들이 질문할 때,
“사람의 미혹이 받지 않게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여기있다, 저기있다, 내가 예수님이다 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 합니다.
난리의 소문과, 민족과 나라들이 서로를 대적하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재난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식어지고, 실족하여, 예수믿는 사람을 미워하고, 잡기까지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이 지나가고, 정말 마지막 때가 되면,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그 징조는 너무 분명하여, 돌이킬수 없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징조가 나타날 때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30절에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의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날 때, 왜? 사람들이 환영하며 기뻐하지 않고, 통곡을 합니까?
세상의 계절을 쫓아서 살아가고,
내가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기준삼아 살아가면서, 열매를 맺으려 하다 보니... 예수님의 계절에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맺은 열매는 없는데, 예수님이 너무 빨리 오신다고 생각이 되니까.......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영원히 뿌리채 말라버리는데,.....그러니까 열매가 없는 사람은 통곡을 하면서, 불현듯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모든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계절, 예수님의 추수의 때를 기준삼아, 예수님께서 찾으실 알곡믿음을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때 예수님을 기뻐하며 맞이하게 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어떤 교회의 주일학교에, 새로운 어린이가 두명이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과 생일을 물어 봅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형제 인데요, 둘다 일곱살입니다.. 내 생일은 4월 8일이고, 동생의 생일은 같은 해 4월 20일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선생님이 말합니다. “그럴 수는 없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형제 인데, 생일이 같은해 인데, 한명은 4월 8일, 한명은 4월 20일... 아닌거 같은데”
그러자 다른 아이가 대답합니다. “사실이에요. 우리 중 하나는 양자 거든요."~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합니다. "그럼 누가 양자로 들어온 거니?"
두 아이가 싱긋 웃더니 대답을 합니다. “우리도 그게 궁금해서, 아빠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우리를 둘다 너무나 사랑해서, 누가 양자인지 잊어버리셨대요."
“그렇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양자녀 삼아 주셨는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 주셔서, 누가 양자인지 잊어버리신것 처럼,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계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찾아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이유이고,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추수의 계절이 될 때, 우리를 데리러, 이 세상에 다시 찾아오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상속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예수님 처럼,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복음의 계절, 구원의 계절이 될 때,-----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계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절, 십자가의 계절, 구원의 계절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말씀을 정리 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계절을 쫓아서 열매를 맺을 때, 불현듯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 열매 없이 설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뿌리채 마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한사랑하여 주십니다.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계절이 될 때,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복음의 열매를 맺으며, 예수님의 계절을 쫓아서 살아가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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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를 무한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려, 기다리고 계시는 줄로 아오니,
그 사랑을 힘입어, 구원의 계절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어, 예수님 앞에 크게 칭찬받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