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8절 20절 평화의 왕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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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전, 정확히 2017년 전,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성탄절은 조용하게 찾아 왔습니다.
당시에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첫 번째 성탄절에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린 사람의 전부였습니다.
모두 넉넉잡고 계산을 해도, 20명, 30명 정도뿐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도, 성탄절은 조용하게 찾아왔습니다.
당시와 같이 오늘날도, 성탄절에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늘 아기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고 예배드리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행운이 아닐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예수님과 내가,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에 이어, 2017년 성탄절에는, 오늘 우리가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린 목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성탄절 아기예수님의 나심의 소식을 들을 때, 매우 무서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 보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아기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4절에 보면 천사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오심은 ‘평화의 소식’ 그 자체 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혼란과 대립과 절망이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소리쳤습니다.
누가복음 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예수님의 오심의 소식은 평화의 소식이요, 크게 기뻐해야 되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 하였습니다.
1. 두려움이 아니라 평화의 소식으로 아기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일이 아닐 때 관심이 없습니다.
반대로 나의 일이면, 강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기뻐합니다. 놀라워 합니다. 근심합니다. 슬퍼합니다.
성탄절도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세상사람들은 무관심하게 됩니다.
성탄절에 다른일을 합니다.
2천년전 당시...목자들은, 평소에 성탄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달력을 보고, 12월 25일은 성탄절이지...하고 아는 것 처럼,
목자들도, 아기예수님이 오시는, 성탄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보면, 성탄절은 대한 말씀이, 다 나와 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메시야가 오시는 것은 당연히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의 일로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는 날이, 성탄절이고..그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때에, 내 앞에 오시겠어?
그리고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을 치고 피곤하게 있는데, 문득 하늘을 보았더니 징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서서 하나님의 영광 비춥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구주가 나셨다. 그리스도가 나셨다”
깜짝 놀라서 하늘을 보았더니, 하늘이 새까맣게, 천군천사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큰 소리가 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목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무서워 하고, 벌벌 떨면서, 두려워 하였습니다.
세상에 그날이 오늘이구나..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세상은 뒤집어 지는 것인가?
막연히 생각하던 일이, 나의 일이 될 때, 놀라고 당황하고 무서워 하고, 두려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만약에, 예수님께서 “오늘 2017년 성탄절이 마지막 성탄절이다. 이젠 내가 직접 세상에 내려 되겠다.”
그러면서 하늘에 천군천사들이 새까맣게 내려오고,
“이 세상에 마지막이 왔다. 평화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라”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누구도 담담하게 하늘을 처다보고 있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옆에 사람잡고, “저게 뭡니까? 예수님께서 오시는 겁니까?”
“지금 예수믿어도 늦지 않나요?, 이젠 다 끝났습니까?”
혼비백산, 비명과 통곡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올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5 에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한달란트 가진 청지기는 평소에 불평이 많았습니다.
한달란트 가진 청지기는 할 말이 많았습니다.
“나는 한달란트만 주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그러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면서 허송세월 합니다.
주인이 돌아는 것은 당연히 정해져 있는 사실이지만, 정작 주인이 돌아올 것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때가차서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달란트 청지기는 벌써 주인이 돌아 왔는가? 깜짝 놀랍니다.
준비를 전혀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 하면서, 변명을 하면서, 주인앞에 서게 됩니다.
준비하면 당당합니다.
준비하면 오히려 기다립니다. 빨리 주인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빨리 예수님이 왔으면 좋겠다고, ‘아멘 주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그리고 서로서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준비를 않하면, 변명하게 됩니다.
준비를 않하면,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게 됩니다.
목자들은 준비하지 않고, 나의 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 성탄절을 맞이할 때,
두려워 하고, 무서워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실 때, 사람들이 기뻐하며 환영합니다.
바리새인들인 사람들의 환영하는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예수님께 항의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통곡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9: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성에 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루살렘성은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불신앙의 도시, 평화를 차버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평화를 차 버리고,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할 자격과 입장과 여유가 됩니까?
어떻게 든지 예수님을 모셔드리고, 어떻게든지 평화의 도시기 되기를 힘써도 될까말까인데..
무슨 여유가 그렇게 많아서,
평화를 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에 죽이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나는 평화를 주려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데, 평화의 눈으로 보니, 예루살렘은 나에게 않보이는 구나..”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멸망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패악하고 무지한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통곡을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말씀 뒤에, 예루사렘이 어떤 모양으로 멸망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 하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30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아니하고, 제일 참혹하게, 제일 험하게 예루살렘 성은, 멸망하게 되어집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못 밖으라고 넘겨주었던, 그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램성은 철저하게 평화를 빼앗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회는 무한정, 영원히 내 맘대로 할수있도록,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앙의 길로 걸어가도, 아무탈 없고,
마지막에 예수님 오시기 10분전에 회개하여, 한쪽 강도처럼 낙원에 들어가는,
만화같은 상상은, 내 머리 속에는 가능하지만, 예수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몸을 바쳐 평화를 주시려고 하지만, 그 평화를 배척하고 차버릴 때,
예루살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예수님을 보고 울던 제자들보다 몇배더 통곡을 하며,
예루살렘에는 평화가 없다고,
예루살렘에는 왜 평화가 없냐고..통곡을 하며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예수님을 멀찍이 바라보아서는 않되겠습니다.
나와 관계없는 일로 생각하고, 무심경하게 보내면 않되겠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예수님을
나의 마음중심에 모셔드리고,
우리나라가 평화의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 어떤 피조물 보다도, 더 귀하여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이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2. 전하고 영광돌리고 갔다.
본문 2장 16절,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쳤는데, 답이 황당하여 인터넷에 올라 왔습니다.
과목은, ‘슬기로운 생활’입니다.
문제 “부모님은 우리를 왜 사랑 하실까요?”
초등학생이 답을 달았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장난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답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왜 사랑하실까요?
평소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니까 당연히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달라고 하는 장난감은 사주고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짜장면 사주고...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시험문제에, 답을 하려고 보니까 그 질문이 당연한 질문이 아닙니다.
아이이지만...“그러게 말입니다.” 부모님은 무었 때문에, 내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고, 왜 이유도 없이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실까요? ”
아이이지만...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왜? 하늘영광 다 버리고, 이 세상에 찾아 오셨는데..
그것도 궁궐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 회장님 집안에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외양간 말구유 위에 찾아오셨습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흙수저 가운데 제일 흙수저...
가장 밑바닥에 찾아 오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성탄절에 가장 낮은곳, 가장 외롭고 괴로운 자리에 찾아 오셨습니까?
자 이 질문을 던진다면....“그러게 말입니다.” 라고 대답할수 밖게 없습니다.
않그래도 되는데, 그렇게 까지 않하셔도 되는데, 궂이 왜 그렇게 까지 하였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시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의 산 소망이 있음을 가르켜 주시려고, 직접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그 사실을 못 믿을 때, 나타나셔서, 못자국난 손을 보여 주시고, 창자국난 허리를 보여주시면서, 믿는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깊은 경륜과 섭리와 역사하심을, 다 이해하고 다 설명할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초등학생과 같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순서와 작용과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고 자랑하고 전할수는 있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이는 당연히 말합니다. “우리 아빠가 최고에요? 우리 엄마가 최고로 예뻐요.”
그게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이의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다 이해할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높이고, 전하는것은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 오셨어요.. 그날이 성탄절이에요..
예수님... 감사합니다.
자 이렇게 성탄절을 전하고, 나누고, 기뻐하는,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목자들은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사들이 전하여준대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아서, 경배하고,
천하들이 전하여준 모든 말을,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만약, 목자들이 듣기만 하고, 벌벌떨기만 하고 끝났다면, 점수를 주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전하였기 때문에, 목자들은 합격 점수를 받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받는것은 스스로의 몫이 로되,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목자들 처럼, 열심히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이 지나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님의 평화를 전하고, 예수님의 구원하심을 전하고...
목자들처럼 열심히 소문을 내고, 퍼트려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예수님을 나의 일로 알고, 나의 중심에 모셔 드려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이 지나면, 이제부터는, 나를 무한정 사랑하신 예수님을, 나는 열심히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의 성탄절 신앙으로 살아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