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8절 23절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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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아기예수님의 오심은,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 ‘나의 사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성탄절이, ‘나의 사건’이요,‘나의 고백’이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요셉'이 되겠습니다.
첫 번째 성탄절은, '요셉'의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순탄하고 은혜롭고 소망이 가득한 성탄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이 아닐수 없습니다.
2017번째, 올해의 성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절이 어떤 절기나, 뉴스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이번 성탄절을, 바로 ‘나의 사건’으로 인정하고, ‘나의 믿음’으로 고백할 때,
이번 성탄절은, 아기예수님이 나에게 찾아오시는, 성탄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 요셉은 어떻게 하여, 나의 사건으로 인정하고, 고백할수 있었습니까?
2천년 당시에는 ‘약혼식’이 있고,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였지요..
요즈음은 ‘약혼식’이 생략 되고, ‘상견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들이, 속이 더 깊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요셉도 당연히,‘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순서대로 절차대로 은혜롭게 결혼식을 잘 하였습니다...그런데도 결혼식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18절에 말씀 보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 후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하려고 보니까,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잉태가 된 것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도 똑같습니다만, 이정도 사건이면, 너무나, 영향이 큰 사건이 아닐수 없습니다.
결혼이 파혼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먹구름이 끼입니다.
파국으로 치닫을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나의 사건이라면, 세상의 어떤 신랑도, 어떤 신부도,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성경을 보면, ‘요셉의 의로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19절 보니까,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요셉의 의로움이 무엇인가? 뒤 이어 설명이 나옵니다.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즉, ‘마리아의 처지’를 베려를 하였습니다.
만약, 동네방네 다니면서 큰소리로, 이일을 여기저기 퍼트리면,마리아가 어떻게 되겠습니다.
“요셉은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피해자 이다. 마리아는 벌써 아기를 잉태한 여자이다.” 그러면 마리아의 평판은 아주 나빠질수 밖에 없습니다.
자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던 요셉은... 마리아를 베려하였습니다.
아이가 잉태된 사건을, 드러내지 않고,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 결혼을, 마무리 지을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오늘날 기준으로 치더라도, 요셉은 남자로써, 대단히 괜찬은 남자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해심이 많고, 자기 아내의 입장을 베려하는,
아량이 넓고, 속이 깊고, 남자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마음씨 넓은 의로움이, 첫 번째 성탄절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게 하고,
은혜롭게 만드는 출발점이 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생활 할 때, 은혜를 쏟아버리고, 큰복을 쏟아버리는 것은,... 인간적인 그릇이 방해를 할때가 많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이해해주고
조금만 더 배려해주면서,...그러면서... 그 고개를 넘으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인간적인 결정과 판단과 감정을 앞세울 때...
은혜를 쏟아버립니다. 큰복을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셉이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으로...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할 때...
그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현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20절 말씀을 보니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이 장면에서, 요셉의 두 번째 요소가 작용을 합니다. 그것은 ‘요셉의 믿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주의 사자’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상식과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 조차도, 나의 기준으로 ‘취사 선택’을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지금 마리아의 배속에 있는 아기는 ‘성령님’을 통하여 된 것이다. 라고 할 때, 요셉은 그대로 받아 들이고, 믿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간, ‘코메디언 구봉서 장로님’에 대한 일화입니다.
처음 구봉서 장로님이 전도를 받아서,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교회에서 나가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는데, 바로 오늘 본문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후배 연예인이,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이 부분만은 도무지 이해가 않되고. 못 믿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지.... 성경공부가 진도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그걸 보고, 참고 있던 구봉서 성도가 말을 합니다. “야~~~ 요셉이 괜찬다고 하잔아...요셉이 마리아를 괜찬다고 하는데.... 아무상관이 없는 니가.... 왜 않 괜찬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성경공부가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여준 말씀을....어떻게 이렇게 철썩같이 믿게 되었습니까?
징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징표로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징표이다.’ ‘이 말씀이 곧 너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할 때,
요셉은, 그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 인줄로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놀라운 믿음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말씀을 보면서
‘그 성경구절이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 진다’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썩~~ 믿음성이 못생겨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을 붙잡고, 그대로 금요기도회를 비롯해서, 기도해 보면, 이 말씀이 맞습니다.
근심이 있는 사람, 마음이 소원이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분명히 응답을 받습니다.
올해 우리교회에서도, 1년 넘게, 한가지 기도제목으로, 계속 기도하여, 응답받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내용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기도하게 하십니다.
6개월동안 기도하고
1년동안 기도하고
2년 동안 기도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않생기는 사람이.. 기도하니까... 아이가 생깁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기도하니까...그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이 이루어 질줄로 믿고, 기도하면, 오늘날도, 말씀 그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믿음은, 말씀을 들려 줄때,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줄로 알고,
그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자 요셉에게 이 두가지 요소, 즉 의로움과 깊은 베려심.
그리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있을 때에..
요셉은, 첫 번째 성탄절을 불행과 파국의 낭떠러지 앞에서, 구하고.... 오히려 은혜 충만한, 성탄절이 되도록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은혜충만한 성탄절,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나의 사건으로 고백하는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요셉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 베려심과 의로움을 가지고 성탄절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나의 것으로 붙잡고 받으며 성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올해의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시는, 나의 성탄절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2. 요셉이 듣게 된, 예수님 이름이 되겠습니다.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히 이름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합니다.
2017년 올해, 최고로 인기 있는 이름이 무엇인가? 살펴 보았더니
남자 어린이는 ‘도윤’, 여자는 ‘하윤’ 이라고 합니다.
2위는 ‘하준’ ‘서윤’,
3위는 ‘서준’ ‘서연’
참고로 1940년대는 ‘영수’ ‘영자’ 란 이름이, 최로고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는 ‘지훈’ ‘지혜’...
2000년에는 ‘민준’, ‘유진’...란 이름이,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에도 유행이 있는데, 예수님은 어떠 하였는가?
예수님은 유행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속에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공생애 기간동안 무슨 일이 하실 것인가? 가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두가지 인데,
먼저 요셉을 향하여, 태어날 아기에게, ‘예수’라는 이름으로, 지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21절에 보면, ‘그가 자기 백성을 그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앞으로,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는 일을... 할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십자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대속받게 되는 것과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그 이름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은, 얼마나 감사하고, 능력있는 이름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예수님의 대속의 삶...이 이미 그 이름속에 다 예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이름이 너무나 좋아서, 이렇게 증거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그 이름의 뜻을 알고,
그 이름을 능력있게.. 열심히 불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가 열심히 사용하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의 이름 속에는, 우리를 향한 사랑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이름을, 이제부터는 열심히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라는 이름을 짓는 것은,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기 위함인데, 바로 ‘임마누엘’의 예언이 되겠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하시는 분이 십니다.
사람에게는, ‘아호’나, ‘호’가 있지요. ‘베드로 시몬’, 그럴 때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고, 시몬은 이름입니다. 그러니가 바위 시몬..이라는 전체적인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임마누엘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아때 세상이 죄로 관영할 때,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성전이 더렆힐 때,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지 못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지성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을 향하여, 막힘없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초대교회에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에게 임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인하여,
세계와 세상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모든 사실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라고 하는 이름속에, 함축적으로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저스트 피프틴 미티츠, 단지 15분 뿐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장래가 촉망받는 잘생긴, 젊은 청년입니다.
그런데 가슴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폐암 말기 선고를 받습니다.
장면은 바뀌어, 병실에 이 청년이 누워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말합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당신의 생명은 15분 남았습니다.”
그말을 듣고 청년이 멍~~ 하니 있습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째깍 째깍 흘러 갑니다.
5분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한통의 전보가 날아 듭니다. “억만장자 당신의 삼촌이 자식도 없이 죽었습니다. 상속자는 당신 뿐이니, 어서 와서, 상속절차를 밟아 주세요”
하지만 10분 남은 상황에서, 그 많은 재산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한통의 전보가 옵니다. “당신의 논문이, 우리학교 개교이래 가장 훌륭한 논문으로 선정 되었습니다. 당신은 최우수 박사로 선정 되었습니다. ”
하지만 5분 남은 상황에서, 이러한 명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또 한통의 전보가 또 옵니다. “당신의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아가씨가 결혼을 승낙 하였습니다.”
그 소식도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세통의 전보를 손에 잡고, 시간이 다 되어서..쓸쓸하게 운명을 맞이하면서, 연극은 끝이 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귀 와, 명예와, 행복이 나와 함께 동행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연극의 내용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인생의 끝도 똑같습니다.
15분이 짧다고 생각하고, 50년 100년은 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의 입장에서 긴 것이지...
거북이는 200년을 살고, 세콰이어 나무는 3천년을 살고... 예수님께서 기도하던 겟세마네 동산에는, 아직도 그때의 올리부 나무가... 살아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올리브 나무는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요, 지금 우리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50년 100년도, 마냥..긴것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광음이요, 촌각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영원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는 길이, 활짝 열린다는 사실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되는 순간...
그 이름속에서, 영원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 넘어 천국을 볼수 있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 피조물, 새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럴 때, 요셉은 이루 말할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첫 번째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 입니다.
정리를 합니다.
오늘은 아기예수님의 나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요셉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이름속에 들어있는, 의미와 교훈을 살펴 보았습니다.
요셉의 의로움과, 믿음이 있었기에, 첫 번째 은혜충만하게 진행될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이름과 뜻이, 믿음의 표징이 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 입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이 되어서, 요셉처럼 마음문을 활짝열고,... 성탄절 기간, 나의 사건 나의 믿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