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1절 15절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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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1.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등지고, 갈릴리 호수로 내려 갔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벌써~ 베드로와 열한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손에 못자국 흉터를 보여주시고, 허리에 창자국 흉터를 보여 주십니다.
음식도 같이 잡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부활신앙 위에 든든히 서지 못하고, 신실한 복음의 증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등지고,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3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베드로의 일생을 요약해 자면,
본래, 베드로는 어부 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럴 때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베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그렇다면 베드로는, 더~ 힘을 내어 사도로써,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베드로의 바른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겠다고 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그러면서, 혼자 가지 않고, 다른 제자들까지 데리고~, 옛사람의 길로, 돌아 갑니다.
자 이런 베드로 모습, 오늘 우리가 볼 때, 과연 믿음이 좋다, 모범된 믿음생활이라고 칭찬할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6장 6절에는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우리의 옛사람은 같이 십자가에 못박혔 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에 종노릇 하는 옛사람은 뒤로하고,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입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께 부름을 받고,
공생에 기간동안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베드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실 때, 지켜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복음의 사명도, 당부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직접, 이 모든 일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다시 옛사람--어부의 길로 가기 위하여, 베드로는 갈릴리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자 이런 베드로에게, 오늘 본문을 보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15절 하반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믿음이 있느냐?” 그렇게 질문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야, 왜 옛사람의 길로 돌아가느냐? ” 라고 질문하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등지고, 다시 옛사람의 길로 돌아가려는 베드로를 향하여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라고 질문 하십니다.
사람은, 제일 사랑하는 것을, 제일 귀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이 골프를 제일 사랑하면, 주일날에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보다는, 골프치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질문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골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어떤 사람이 낚시를 제일 사랑하면, 예수님을 뒤로하고, 물고기 잡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물고기 잡는 것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거, 맞느냐?”
내가 더 귀하게 여기고, 내가 더 사랑하것 것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그것을 쫓고, 그것을 얻으려 하고, 그것을 향하는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베드로가 그러하였습니다.
어떤 부모님이, 자녀를 상대적으로 사랑합니다.
자녀를 사랑할가? 낚시를 사랑할까? 자녀와 낚시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봅니다.
어떨때는 낚시 보다가 자녀를 더 사랑하고, 어떨때는 자녀보다가 낚시를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나는 낚시가 더 귀하다~” 그리고 자녀를 버리고, 낚시를 위하여, 낚시에게 갑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부모님은 자녀의 부모님입니까?, 낚시의 부모님 입니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그리고 갈릴리고 내려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물고기를 잡으려 가느냐?” “물고기 잡는 것이, 그렇게 중요 한가 ?” 묻지 않으 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간단하게, 베드로에게 질문 하십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
즉 베드로에게 진실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베드로 같이 상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도 질문 하십니다. “나를 사랑 하느냐?”
2.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자리로 돌아가라~ 말씀 하십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 합니다.
15절 하반절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 아시잖아요. 내가 예수님 사랑하는 줄 아시 잖아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왜 제자로 부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양과 같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헤메는,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도록 하는 사명을 맡기시려,
베드로를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옛사람의 길로 돌아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맡긴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라.~
부모님이 자녀를 정말 사랑한다면, 부모님의 자리에 돌아가서, 자녀를 잘 길러 야지요.
마찬가지로, 베드로가 정말 예수님의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에 돌아가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사족을 답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베드로에게 사명을 감당하라 고 하시니까? “사명을 감당하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 사람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 그러면서, 옆에 있는 ‘요한’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은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는 베드로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스스로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갈릴리로 돌아 가면서, 요한은 순교하지 않는것이 아닙니까? 라고 질문을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말씀 하십니다.
사명은 내가 예수님께 받는 것이고, 내가 예수님 앞에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예수님께서는 의의 면류관을, 나에게 씌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명은 내가 감당하는데, 옆에 사람이 면륜관 받을 일이 없거니와,
옆에 사람 때문에, 내가 받을 며류관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갈 때,
내가 주님을 절대적 사랑하듯, 절대적으로 나의 사명의 길을 가야지,
상대적으로 다른 사명과 비교하고, 다른 사명을 돌아보면,
나의 사명을, 소홀히 하는 일이, 나타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받은 사명이, 나에게 제일 좋고, 제일 귀한 줄로 알고,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나의 사명이 제일 귀하고, 다른 사명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높고 낮음이 어디에 있으며, 중하고 경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두달란트도 성실하게 감당하면, 다섯달란트와 똑같이 칭찬을 받고,
다섯달란트 라도 땅에 파뭍으면, 한달란트 청지기와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다시 옛사람의 길로 돌아 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기를 말씀 하셨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신 작은사명을 잘 감당하여,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큰 칭찬을 받는
‘의의 면류관’ 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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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부활의 산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쓰게되는
영광된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