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6장 11절 14절 나의 등뒤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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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을 은혜 가운데 잘 보내셨습니까?
각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의 명절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유의 명절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하나인 ‘부림절’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부림절’은 뜻이 아니라 음을 한문으로 바꾸어서 만든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말로는 ‘부르’라고 합니다. 뜻은 ‘제비뽑는 제비’가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림절이 되면, 서로 선물을 주고 받으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명절과 구별되는 점은, 그속에 신앙고백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1. 부림절의 배경이 되겠습니다.
때는 바사, 아하수에로 왕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게 종으로 끌려가서, 바벨론은 망하고 바사가 세워 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신분을 떳떳하게 들어내기가 조심스러운 시대 였습니다.
그때에 한 유대인이, 아하수에로 왕의 왕궁의 대문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높지 않고, 귀하지 않는 평범한 직책과 자리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모르드개’입니다.
반대로 당시에 높고 귀한 자리와 직책을 가지고 있엇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하만’입니다.
하만은 총리로써 왕의 인장을 가지고, 왕 다음으로 높은~자리에서, 절대적인 왕의 신임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건이 발생 합니다.
모든 신하들이, 하만의 권세와 위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하만총리에게 예를 가춥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신하들이 모르드개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좋은말로 날마다 타이릅니다.
“하만총리가 지나갈때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세요.”~
그러나 모르드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은 유다인임을 밝힘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유다인인데, 왜? 절을 않~하는가?
유다인이라고 절하면 않되는가?
참으로 알수 없는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르드개는 총리하만에게 무릎꿇고 절을 하기에는, 무언가 절대로 할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모르드개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찾아 보면서 생각해 본다면
에스더 2:5절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즉 모르드개는 기스의 아들 사울왕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하만에 대하여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스더 3장 1절에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즉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각사람이라고 하는데, 성경을 찾아 보면,
사무엘상 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라고 말씀합니다.
즉 옛날에, 아말렉 왕 아각을 사울왕이 이기고 사로잡아서 끌고 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왕이 끌고 온 아각왕을 사무엘선지자가 죽입니다.
그렇다면 묘한 인연으로, 유다인 사울왕의 후손과 아말렉 아각왕의 후손이, 이제는 신분이 바뀌어, 문지기와 총리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지금은~ 문지기와 총리의 관계이지만, 아각왕을 죽인 사울왕의 후손으로써, 어떻게 아각왕의 후손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할수 있는가?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무릎을 꿇지 않고, 절을 할수 없다고 버틴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자, 모르드개의 행동,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언제적 일인데, 내세울 자존심이 따로있지, 괜한 고집이 아니고 무엇이냐?~ 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하만총리가 확실히 아각왕 몇 대손인지 확인해보고, 혹시 그렇더라도 정도껏 행동 해야지, 너무 과하였다. 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십니까?
자.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문화, 행동, 예절,을 지켜 나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와 마찰과 맞딱 뜨릴때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그 사람의 자존심이고, 어디까지가 그리스도인으로써~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할때도 있습니다.
내세울 자존심이 따로있지, 괜한 고집이 아니고 무엇이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말을 들을때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 행동인것 같다.~는 반응을 받을때도 있습니다.
자 이럴 때, 그리스도인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본문으로 돌아와서, 모르드개의 경우를 계속하여 보겠습니다.
다른신하들이 모르드개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어떻게 되나~ 두고보자고 하면서, 하만총리에게 고자질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만총리는 엄청나게~ 기분나빠 합니다.
결국 하만총리를, 다른신하들에게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모르드개를 죽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고 밝혔다고 하니, 총리의 권세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하여 모르드개와 함께, 아예, 모든 유다민족, 전체를 죽여서, 본보기로 삼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러면서 언제 모든~유다민족을 죽일까? 그 날을 제비뽑아 결정을 합니다. 그 날이 “열두째달, 곧 아달월” 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르, 제비, 부림절, 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모르드개의 순수한 행동은 총리하만의 진노를 사서,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유다족속 전체가 연대책임을 당하게 되고,
그 결과, 걷잡을수 없는, 수습불가, 대 파국의 비극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하여 지면서, 유다인들은 모두 대성통곡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가짜뉴스 아닌가? 장난문자 아닌가? 반신반의 합니다.
하지만 관공서에 가서 물어보니까 진짜입니다. “아달월에, 유다인들을 모두 죽이기로 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모두 재를 뒤집어 쓰고, 거리에 나와서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웃으면서 수근 대고 지나갈 뿐입니다.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철없는 자존심이, 아니면 순수한 유다인으로써의 지조가...
엄청난 미움과 안티감정을 불러와서,
유다민족 전체가, 모두~ 죽게 되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자, 만약 그때, 내가 그~ 유다인들 가운데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르드개에게 “너 하나 때문에, 너가 처신을 바르게 못하여, 우리 모두 죽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시겠습니까?
2. 믿음의 방법을 사용하는 유대인들
한편, 모르드개의 사건은, 행복하게 잘살던 에스더에게도 불똥이 튑니다.
모르드개에는 수양딸 처럼 키우던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 싶이, 에스더는 그 후에 잘~ 자라서, 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 왕비는 자기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만약 하만총리가 계획이 그대로 실행되어, 유다인을 색출하여 죽이게 되면, 언젠가는 에스더 왕비도 유다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에스더 앞 전~ 왕비도, 아하수에로 왕의 변덕에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하수에로왕이, 에스더왕비가 유다인 인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유다인인데 아닌척하며, 거질말을 하여 나와 결혼하였다고, 에스더 왕비에게 화를 낸다면, 지금까지의 행복한 에스더 왕비의 인생은, 파탄이 날수 밖에 없습니다.
에스더의 입장에서 보면, 모르드개의 행동과 그 결과는, 너무나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와는 아는척 하지 마세요”
“나는 파사의 왕비가 되었으니, 이제는 파사인 이지, 더이상 유다인이 아닙니다. 나를 유다인이라고, 끌어 들어지 마세요”
그렇게 매몰차게 모른척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에스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유다인을 변호하기 위하여, 아하수에로 왕에게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또한, 에스더 왕비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 민족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유다인은 다함께 모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3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여 주십시요.”~
그렇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에스더 왕비는, 유다인을 모른척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르드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모두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3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2절에서 3절 에는, 이런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과 제자들에 길을 가는데,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깊이 생각을 해~ 봅니다.
맹인은 너무나 큰, 괴로움의 상태 입니다. 앞을 못보고 살아갑니다. 모든 삶이 불행일수 밖게 없습니다.
이러한 큰 괴로움과 불행을 보면서, 그 원인은 누구 때문이다. 라며 ‘탓’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누구의 죄, ‘탓’입니까? 자기 탓입니까? 자기부모의 탓입니까?
자 이 질문, 너무나 일리가 있고, 지극히 이해가 되는 질문 입니다.
어떤 않좋은 일이 발생을 하고, 어떤 나쁜일이 발생을 하면, 우리는 쉽게 잘 잘못을 따지려고 합니다.
누구 때문이다. 누구만 않그러면 됬었는데 누구가 문제이다.~
축구경기에서 지면, 한 선수를 지목 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오면, 한 사람을 지목 합니다.
공동체에 어려움이 오면,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이러한 익숙한 마음으로, 제자들은 그 맹인이 겪고 있는, 지극히 나쁜 불행을 보면서, 그 사람 탓인지, 그 부모 탓인지, 알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된 것은, 스스로의 탓도 아니요, 부모의 탓도 아니요,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즉 하나님의 역사하심, 능력, 권능,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임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다면, 맹인된 것은 불행이 아니요, 괴로움이 아니요, 믿음의 일이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으로 돌아와서, 모르드개의 행동으로부터 발생된 너무나 큰~ 비극은, 모르드개의 탓입니까? 그의 조상 사울왕의 탓입니까?
모르드개 스스로의 탓이 아니요, 그의 조상 사울왕의 탓도 아니요,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면,
비극은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방법으로 나아가면,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요, 이 일로 인하여, 곧~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일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집에서 일이 있고, 세상에서 생할하면서도 크고 작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어떨때는 개인적으로 관련이 되고~, 어떨때는 전체 그리스도인과 관련되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자 그런 일들이, 과연 재수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요~, 누구 때문에, 일어나지 않아어야할 나쁜~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물론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개인의 탓도, 부모님의 탓도, 그리스도인들의 탓도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것입니까?
본문으로 돌아와서, 에스더는 큰 불행과 비극을 모르드개의 탓으로, 못낫 유다민족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맞이하고, 믿음의 방법으로 해결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다민족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앞에서 금식기도를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밤에, 아하수에로 왕이, 밤에 잠이 오지가 않는 것입니다.
잠이 않~와서 뒤적이다가, 궁정일기를 읽어 봅니다. 그러면서 마침 ‘모르드개’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만히 읽어 보았더니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왕을 암살하는 음모를 발견하여, 아하수에로왕의 암살을 막았다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이렇게 훌륭한 신하가 있었다는 것을,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
다음날 아하수에로왕은, 하만총리를 불러서 훌륭한 신하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을 타게하고, 직접 하만총리가 그 말을 앞에서 끌면서, 거리로 나가서
훌륭한 신하~라고 알리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 하시니까, 하만총리는 오히려 마부가 되고, 모르드게는 하만총리보다 더~ 높임을 받게 됩니다.
하만총리가 너무너무 속상하여, 집에 와서 분통을 터트립니다.
그러니까 하만총리의 부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깨림직~하여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 하반절에 말씀이 되겠습니다.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자~ 모르드개 뒤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모르드개를 통하여, 누가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뒤에 계시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면,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 갑니다.
나에 등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명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에스더 왕비는 잔치를 열고,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총리를 초대합니다.
“임금님, 나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나의 민족을 나에게 주십시요”~
아하수에로 왕이 깜짝 놀라 되~ 묻습니다. “누가 감히 나도 모르게, 왕비의 생명을 헤하려 하다는 것이요? ”
에스더가 담담하게 말 합니다. “원수는, 저 하만 총리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하만총리를 돌아보고 진노를 합니다.
그 결과, 하만총리는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충성된 신하로 인정을 받아, 하만 대신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민족은 모두~ 생명을 구하고, 오히려 유다민족을 해하려는 사람을, 도리어 죽이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총리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모르드개와 유다민족은 죽게 되었습니다.
유다민족은, 3일동안 금식기도를 하며, 에스더 왕비는 죽기를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 갑니다.
그럴 때, 부림절의 ‘소망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여 주실 때, 순식간에 반대가 되어
오히려 하만이 죽고, 모르드개가 대신 총리가 되고, 유다민족은 죽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모르드개와 에스터 처럼,
어떤 일을 만날때에도, 믿음의 방법을 사용하며, 하나님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등 뒤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타나는 사명자는 그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 은혜의 길로 걸어가는, ‘소망의 역사’가 나타나는, 한주간으로 생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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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항상 동행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어떨때에는 모르드개와 같이, 에스더와 같이,
다 알수 없고, 깨닫지 못하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나의 등뒤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나의 생활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도록,
성령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매일매일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매일 믿음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악한 궤계는 무너지고,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 같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고난이 바뀌어 ‘소망의 역사’가 나타나는
부림절과 같은, 믿음의 한주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 나이다. 아멘